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5)
절대회귀-5화(5/424)
제5회 맹수는 발톱을 숨기지 않는다.
사냥터는 멀리 갈 필요도 없었다.
본교 뒷산은 험하기로 유명했고 곳곳에 방어진과 기관진식이 설치되어 있어서 애초에 아무도 출입할 수 없는 곳이었다. 인적이 끊어진 이곳에 사람이라곤 오직 아버지와 나, 둘 뿐이었다.
‘아, 셋이겠구나.’
아버지의 수신호위(守身護衛) 휘(輝)가 어디선가 은신한 채 따라오고 있을 테니까.
난 그를 휘 아저씨라고 불렀다. 어려서는 자주 봤는데, 클수록 볼 기회가 없었다. 아버지가 절대적으로 믿는 수신호위인 휘. 내게 이안이 있다면 아버지에게는 휘가 있는 셈이다.
기를 끌어올려 주위를 살폈지만, 휘의 기척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과연 은신술에 있어서는 최고 경지에 오른 실력자답다. 물론 이런 휘도…… 그날 화무기에게 죽었다.
이날 아버지가 내게 한 첫마디는 이것이었다.
“그 정신 사나운 짐은 다 무엇이냐?”
나는 내 몸만큼이나 큰 혁낭을 짊어지고 있었다.
“며칠 동안 필요한 것들입니다.”
“며칠? 하루만 있다가 내려올 작정이다.”
“혹시 모르잖습니까? 저와 하는 사냥이 재미있으셔서 며칠 더 하고 싶으실지요.”
아버지는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이겠냐는 속마음을 노골적으로 표정에 드러냈다.
“꿈도 야무지구나.”
아버지와 함께한 지 채 반 시진도 되지 않았지만 나는 한 가지 몰랐던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에 대한 내 기억이 상당히 왜곡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나는 아버지가 거의 말이 없던 분이라고 기억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생각보다 제법이더구나.”
비무에서 구평호를 상대하는 모습을 평가하는 말씀이었다. 내공 없는 움직임이었지만, 회귀 전 인생에서 쌓은 실력이 묻어났을 터, 나는 아버지를 굳이 속이려 들지 않았다.
“실력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그래 보였다.”
분위기를 타고 덧붙인 농담 한마디.
“저는 하악질하는 고양이가 아니라 발톱을 숨긴 맹수입니다.”
아버지가 발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았다.
“맹수인데 발톱은 왜 숨기느냐?”
“아, 그런 관점은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만.”
“그래서 넌 고양이다.”
돌아서려던 아버지가 불쑥 물었다.
“비천검법(飛天劍法)은 몇 성에 이르렀느냐?”
비천검법은 천마의 혈육에게 전수되는 무공이다. 오직 천마에게만 전수되는 구화마공(九禍魔功)에는 비할 수 없지만, 마존들이 익힌 무공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평가되는 극상승의 무공이다.
물론 상위의 무공을 익혔다고 무조건 더 강한 것은 아니다. 누가 펼치느냐에 따라, 약한 무공으로도 얼마든지 강한 무공을 지닌 사람을 죽일 수 있었으니까.
아버지를 속일 수 없다고 판단했기에 솔직히 대답했다.
“대성을 이뤘습니다.”
그 순간!
피잉!
아버지의 손가락 끝에서 발출된 한 줄기 지풍(指風)이 내 볼을 스쳐 지나갔다. 본능적으로 얼굴을 돌려서 피하지 않았으면 볼에 구멍이 뚫렸을 것이다.
아버지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정말 대성을 이루었구나!”
나는 지풍의 기세에 화끈한 볼을 매만지며 소리치듯 물었다.
“맙소사! 믿지도 않으시면서 지풍을 날리신 거군요. 제가 못 피했으면 어쩌려고요?”
“거짓말한 대가를 치르는 거지. 대성을 이뤘다면 피할 수 있을 테고.”
“아버지를 닮은 이 잘생긴 얼굴에 흉터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한차례 코웃음을 친 후 아버지는 걸음을 옮겼다.
‘당시의 내가 무서워할 만했구나.’
세상에 어느 아버지가 자식을 향해 망설임 없이 지풍을 날리겠는가? 그것도 얼굴에! 죽진 않았겠지만 못 피했다면 큰 상처를 입었을 공격이었다.
앞서 걸어가시던 아버지가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네 나이에 대성은…… 대단하다.”
지난 삶에서도 삼십 대가 훌쩍 지나서야 대성을 이뤘으니, 아버지가 놀라는 것도 당연하다. 어쨌든 무공에 관해서는 진심인 아버지였기에, 저 칭찬은 극찬이었다.
“감사합니다.”
이후에 우린 한참 동안 아무 대화를 나누지 않고 산을 탔다.
한 방에서 이렇게 아무런 대화가 없다면 숨이 막혔을 것이다. 하지만 산을 오르는 행위는 달랐다. 묵묵히 걸음을 옮기는 것만으로도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 들었다.
한참의 침묵을 깬 것은 나였다.
“사냥은 누구에게 배우셨습니까?”
잠시 사이를 두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형에게 배웠다.”
“제게 큰아버지도 계셨습니까?”
“죽었다. 너만 한 나이에 내 손에 죽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난 예의를 갖춘 위로의 말 대신, 솔직한 생각을 말했다.
“잘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발걸음을 멈추고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아니었다면 저는 태어나지도 못했을 테니까요.”
잠시 나를 차갑게 응시하던 아버지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아버지라고 어디 골육상쟁(骨肉相爭)이 남긴 마음의 상처가 없겠는가? 지난 삶에서 많이 보았다. 겉으로 강한 것처럼 보인 사람일수록 마음의 상처가 깊은 경우를.
그래서 이렇게 고름을 짜듯 툭 내뱉었던 거다.
지난 삶에서 내가 배운 교훈이 있다.
시체는 묻어도 마음의 상처는 묻지 마라.
그랬기에 아버지에게서 이런 말을 들을 수도 있는 것일 테고.
“당시의 나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형을 죽이지 않고 후계자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을 찾지 못한 거다.
내 대답은 단호했다.
“제게도 기대하지 마십시오.”
아버지가 힐끗 나를 돌아보았다. 아까보다도 눈빛이 차가웠지만 내 할 말은 했다.
“아버지가 못해 내신 일, 저도 못 합니다. 그리고 고민할 가치라도 있는 형을 주시고 그런 말씀을 하셔야죠. 아시잖습니까? 형이 얼마나 비열하고 잔인한지.”
“뒤에서 잘도 욕하는구나.”
“욕 들어도 쌉니다.”
사실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앞으로 형이 후계자가 되기 위해 저지른 짓들을 생각하면.
“변방에서 고생 중인데 너는 편한 곳에서 욕이나 하고 있구나.”
“천마신교 대공자쯤 되면 변방이 아니라 지하뇌옥 맨 끝방에 갇혀도 고생 안 합니다.”
형은 지금 아버지의 명령을 받아 활동 중이었다. 이 당시의 형은 아직 본색을 드러내기 전이었고, 나름 능력도 출중했기에 아버지는 형을 나보다 더 믿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교내의 많은 마인들이 형의 줄을 잡기 위해 노력했고.
“형은 절대 후계자 자리를 양보 안 할 겁니다. 형을 살리면서 후계자가 되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자만입니다.”
나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표정에는 ‘네가 이런 아이였더냐?’라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내 눈빛이 꿋꿋이 대답했다. ‘네!’
다시 아버지가 걸음을 옮기셨다.
나는 지난 생에 혼인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식이란 존재가 남자에게 어떤 감정으로 다가오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래서 궁금하다.
아버지에게 나는 어떤 존재인지.
그렇게 얼마나 산을 올랐을까?
“쉿.”
아버지의 신호에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가 손가락으로 저 멀리 정면을 가리키고 있었다.
“보이느냐?”
눈을 크게 떴지만 울창한 숲만 보일 뿐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안 보입니다.”
“나는 보인다.”
“저기에 뭐가 있습니까?”
“저녁거리.”
“그럼 잡아야지요.”
내가 혁낭에 걸어둔 활부터 꺼내자 아버지는 나의 성급함을 제지했다.
“보이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잡겠다는 거냐? 우선 눈을 감고 주위를 느껴라.”
“네.”
고수들은 상대를 파악할 때, 주위 공기의 파동으로 파악한다. 흔히 말하는 상대의 기도가 바로 이것이다.
주위에 느껴지는 기도는 단 하나, 아버지의 기도다. 잔잔하다. 그래서 두렵다. 이 기도가 화가 나면 얼마나 사나워지는지 누구보다 잘 아니까. 저 평화로운 바닷속에는 세상을 뒤집을 태풍이 잠들어 있다.
“이젠 한 줄기 기운을 내보내라. 딱 한 줄기다.”
나는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한줄기 기운을 발출했다.
“천천히 기운을 끊지 말고. 네 몸이 실타래라 생각하고 실을 뽑듯이 천천히 발출해라.”
회귀 전 삶에서 이렇게 실처럼 가는 기운을 앞으로 내보낸 적은 없었다. 기운을 발출하는 데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내 기도로 상대의 기세를 누르기 위해서. 한데 지금은 전혀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기를 발출하고 있었다.
“더 가늘게. 끊어지면 안 된다!”
몸에서 발출된 기운이 이렇게 길게 나아갈 수 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더, 더, 더.”
옆에서 독려하는 아버지가 없었더라면 결코 이렇게까지 길게 기운을 내뿜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내 기운이 뭔가에 닿았다.
“닿았느냐?”
아버지는 나만큼이나 빨리 내 기운이 무엇인가에 닿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네. 느껴집니다.”
“무엇인 것 같으냐?”
“나무인 것 같습니다.”
놀랍게도 그것이 무엇인지 느낌이 왔다. 정말 느낌이라서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분명 나무였다.
“그 주위를 살펴보거라. 천천히.”
실타래에 묶인 실이 다 풀어져서 금방이라도 실이 흘러 내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더욱 길게 기운을 늘어뜨려 주위를 탐색했다. 그러다 나무 아래에서 하나의 살아있는 기운을 발견했다.
“혹시 멧돼지입니까?”
아버지가 아무 대답도 없자 나는 슬며시 눈을 떴다. 아버지는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계셨다.
“아니면 곰입니까? 털이 빳빳하고 몸통이 길쭉한 것이 멧돼지 같았는데.”
“멧돼지 맞다.”
나는 내 기운이 도달한 곳을 쳐다보았다. 여전히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저 먼 곳 숲에 있는 멧돼지를 알아낸 것이다.
“이 거리에서 한 번에 맞추기는 쉽지 않은데.”
아버지는 직접 겪고서도 믿기 어려운 눈치였다.
생각해 보니 조금 전의 수법은 그저 사냥에 필요한 잡기(雜技)가 아니었다. 무공으로 적용시킬 수 있는 굉장한 비기.
“원래는 저 실패하는 것 보면서 놀리시려고 했군요.”
“당연히 실패했어야 하니까.”
“저 아버지 아들입니다.”
“나도 처음에는 한 번에 못 맞췄다.”
“저는 천무지체 아닙니까?”
천무지체가 언급되자 아버지의 눈빛이 살짝 달라졌다.
당시의 나는 천무지체와 관련해서 아버지에게 이런 섭섭함을 가지고 있었다.
―강함을 그렇게나 추구하는 분이, 강한 후계자를 찾기 위해 비무대회까지 열어서 자식을 깨부술 인재를 찾으시는 분이, 천무지체인 저를 왜 그렇게 방치한 겁니까? 왜 저를 밀어주지 않으시는 겁니까?
심지어는 아버지가 나를 질투하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도 했다. 그래, 당신의 나는 그렇게 옹졸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세상일이 내 바람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천무지체인 나를 특별대우해주세요가 아니라, 천무지체인 신체를 잘 활용해서 스스로 특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 특별함에 모두의 기대와 열망이 실렸을 때, 비로소 천무지체는 하늘이 내린 축복이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뭐 하고 있느냐? 저녁 굶을 작정이냐?”
난 기운이 느껴졌던 곳을 향해 힘차게 활을 쏘았다.
피잉.
어둠 속에서 모닥불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그 위에는 잘 손질된 멧돼지 고기가 익어가고 있었다.
“짐승 손질은 언제 배웠느냐?”
“책 보고 배웠습니다.”
“그런 것 치곤 꽤 익숙하던데?”
아버지, 제가 잡아먹은 멧돼지만 해도 수백 마리는 될 겁니다.
나는 슬쩍 화제를 돌렸다.
“깔고 계신 그것은 아부용으로 준비한 겁니다. 끙끙대며 짊어질 가치가 있었죠.”
아버지는 내가 혁낭에 넣어온 호랑이 모피를 깔고 앉아 계셨다.
내 생색에 아버지의 입술이 살짝 말려 올라갔다. 사람 얼굴에 비웃음이 저렇게 잘 어울리기도 어려운데, 아버지는 그 어려운 것을 잘도 해내신다.
“나와 사냥을 하고 싶다고 한 것은 내게 잘 보여서 후계자가 되고 싶어서냐?”
“아뇨. 그래봤자 아버지에게 안 통한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안다니 다행이구나.”
“후계자로 선택되는 것은 아버지 도움이 없어도 해낼 수 있습니다.”
“자신만만하구나.”
“물론 욕심 많고, 잔인하고, 성격 더러운 형이 저를 방해하겠지만요.”
“또 뒤에서 까는구나.”
“까야죠. 점수를 매기는 심판 앞에서 대놓고 깔 기회가 어디 흔하겠습니까?”
아버지, 진짜 가족 간의 평화로운 형제애를 원하셨다면, 처음부터 정해주셨어야죠. 후계자는 누구다, 허튼 생각 마라. 그렇게 정해둬도 싸우고 죽이고 생난리가 나는 것이 후계 다툼 아닙니까?
“왜 나와 사냥을 하고 싶다고 했냐?”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뭐라도 하나 배워서 강해지려고요. 첫 번째는 성공한 것 같습니다.”
“강해져서는?”
내 자리를 노릴 테냐는 아버지의 도발적인 눈빛에 내가 재빨리 대답했다.
“강해지고 싶은 이유가 천마가 되고 싶어서는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아직 정정하신데 천마 타령하다 청춘을 날리고 싶지 않습니다. 후계자가 되고 천마의 무공을 배울 수만 있다면 저는 만족합니다.”
나이로 볼 때 아직 아버지의 눈에는 형이나 내가 후계자가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일 것이다. 실제로도 아버지는 지금부터 십 년쯤 후에 형을 후계자를 정했다.
지금 나로선 십 년이나 기다릴 수는 없다. 낭중지추(囊中之錐)로는 부족하다. 주머니에서 송곳을 꺼내 여기저기 푹푹 찔러대야 할 때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구화마공을 전수받아 대성을 이뤄야 한다. 아니, 그 이상의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 십성대성을 이룬 아버지도 화무기에겐 패했으니까, 나는 십이성대성을 이뤄야 한다.
“가끔 한 번쯤 상상해 봅니다. 살다가 정말 패 죽이고 싶은 놈이 생겼는데, 못 죽이면 얼마나 속이 터질까. 그 꼴 당하기 싫어서라도 강해지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표정 변화가 없었기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두 번째 이유는?”
“아버지와 단둘이 지내보고 싶었습니다. 처음이잖아요?”
다시 아버지의 입가에 조소가 짙어졌다.
“딱 죽기 좋은 싸구려 감성이군.”
“천하제일인과 함께 하는데 어찌 싸구려겠습니까? 노래를 부르면 천하제일명곡이고, 술을 마시면 천하제일명주일 겁니다. 똥을 싸도…….”
“거기까지.”
“네! 한 시진 동안 입 꾹 닫겠습니다.”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고 난 기분 좋게 웃었다. 아마 아버지 앞에서 처음 웃는 웃음일 것이다. 아버지는 냉정하게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지만 말이다.
‘아버지를 떠올렸을 때, 추억이랄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무서웠던 기억이 추억은 아니잖아요? 이번 생에서는 제 추억을 그렇게 황량하게 만들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좋아하진 마십시오. 아버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절 위해서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