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6)
절대회귀-6화(6/424)
제6회 내가 천마가 된다면.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짐을 다 챙긴 후 아버지에게 말했다.
“돌아가셔야지요.”
“가긴 어딜 가느냐? 명색이 천마와 사냥을 나왔는데 호랑이 한 마리는 잡고 가야지.”
어디 그래서겠는가? 나와 함께 한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는 의미다.
“다행입니다.”
“뭐가?”
“둘째 날을 위한 준비도 했거든요.”
“헛소리 말고 앞장서거라.”
“네.”
아버지와 나는 더욱 깊은 숲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아버지가 다시 내게 말씀하셨다.
“다시 눈을 감아라.”
“네.”
“목표는 우현 백 장 밖.”
지난번보다 더 멀다.
“이번에는 바람을 느껴라.”
“느껴집니다.”
이번에도 내 모든 삶을 통틀어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씀을 하셨다.
“네 기운을 바람에 실어라.”
나는 무공을 배운 이래 단 한 번도 내 기도를 바람에 실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누구도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이 없었으니까. 어떤 무공서에도 그런 말은 적혀 있지 않았으니까.
새로운 배움이 주는 전율이 짜릿하게 몸을 타고 올라왔다.
물론 아는 것과 그것을 실행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지만.
“우선 기운을 발출해라.”
어제 멧돼지를 찾을 때처럼 조심스럽게 기운을 내뿜었다.
“이렇게 늦고 조심스러우면 잡기술 밖에 안 된다. 실전에서 쓰려면 최대한 빨리 네 기운을 저 끝까지 뻗어내야 한다.”
하지만 기운을 바람에 싣기가 쉽지 않았다. 바람도 느껴지고, 기운도 느껴지는데. 각각 따로 노는 이것들을 어떻게 합쳐야 하나?
게다가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바람은 쌩쌩 부는 바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 주변 공기의 흐름을 바람이라 표현하고 있었다. 여러 흐름 중에서 정면으로 흐르는 공기를 찾아내 기운을 실어야 했다.
한참을 헤매어도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해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빨리하라고 재촉하지도 않았다. 그저 뒷짐을 진 채 먼 산을 바라볼 뿐이었다.
왜 사람은 누군가의 등에서 그 사람의 인생을 보는 걸까? 아버지의 등에서는 절대자의 강함을 느껴야 했는데, 외로움과 쓸쓸함이 느껴졌다.
“제법이구나.”
“네?”
순간 내가 발출한 기운이 백 장 밖 우현에서 뚝 끊어졌다.
‘헛! 언제 내 기운이 저기까지?’
아버지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무심결에 내 기운을 바람에 실어서 날려 보낸 모양이다. 회귀 전 삶에서 얻은 심득(心得)이 적지 않다 보니, 어렵다고 여겨지는 일도 손쉽게 이뤄진다.
“저도 모르게 됐습니다.”
아버지는 다소 격앙된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우연이든, 운이든. 그렇게 쉽게 되는 일이 아닐 테니까.
이내 아버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씀하셨다.
“상관없다. 어차피 그놈은 멀리 달아났다.”
해가 뉘엿뉘엿 땅거미를 만들어갈 때, 우린 아까 놓친 놈을 다시 만났다.
“아까 그놈이다!”
아버지 말씀이니 그런가 보다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내 눈에는 보이지도 않았으니까. 저 멀리 있는 것의 크기와 기운까지 정확히 파악한 아버지가 놀라울 따름이다.
“백오십 장 밖이다. 바람에 실어서 찾아라.”
다시 기운을 발출하며 바람에 실으려고 노력했다.
아까 무심코 성공한 것으로 봐서, 내 수준이라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결국 마음의 문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바람에 기운을 얹으려고만 했다. 그것이 문제였다. 의도적으로 얹으려는 행위.
기운을 바람길을 따라 같이 보냈다. 마치 친구와 나란히 걸어가듯, 바람과 함께 뒤엉켜 논다는 기분으로 기운을 내보냈다.
그렇게 별개의 기운으로 날아가다가 어느새 바람과 내 기운은 두 마리의 용이 서로를 휘감으며 날아가는 것처럼 함께 어울리기 시작했다.
‘아! 이거다!’
바람에 싣는다는 것이 사람이 말에 올라타는 느낌이 아니라, 이렇게 서로 뒤엉키게 만드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스스스스스슷.
바람을 타고 간 내 기운이 순식간에 백오십 장 밖까지 도착했다.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순간, 저 멀리서 우렁찬 호랑이의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내가 흠칫 놀랐고, 길게 뻗어나갔던 기운이 뚝 끊어졌다.
“정말 호랑이였군요!”
나는 호랑이에 놀랐고, 아버지는 내게 놀랐다. 아마도 내가 이렇게 빨리 아버지의 가르침을 체득할지 몰랐던 모양이다.
아버지, 이제 시작입니다. 아버지와 함께 유유자적 호숫가를 거닐고 싶지만, 우린 물살을 타야 합니다. 급물살을 타고 폭포 아래로 떨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상대해야 할 적은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머나먼 바다 한가운데서 홀로 태풍을 헤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아버지, 저를 바다로 보내주십시오.
“기운을 발출하는 수련을 게을리 마라. 그 개수가 늘어난 만큼 네 수명도 늘어날 거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아버지보다 더 많은 숫자를 만들 겁니다. 저는 반드시 그래야 하니까요.
“이번에는 눈을 감고 내 기운을 느껴봐라.”
나는 눈을 감고 기도를 발출해서 아버지의 기도를 느꼈다.
내 기도가 호랑이를 찾았듯, 아버지의 기도를 느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아버지 주위에 펼쳐진 기운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살폈다.
내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아버지? 대체 이게 뭡니까?”
아버지는 거미줄 가운데 서 계셨다. 수십 가닥의 선들이 아버지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어나가 있었다. 내가 탐색할 수도 없이 멀리 뻗어진 기운들.
누군가 아버지에게 몰래 다가오려면 저 거미줄을 피해서 와야 할 것이고, 그건 절대 불가능했다.
이런 경지에 이른 아버지를 화무기 그놈이 이겼다고? 대체 어떻게?
정말 그러고 싶지 않지만, 다시 한번 놈에게 경탄(驚歎)을 금치 못했다.
* * *
그날 밤.
“제 비장의 한 수는 바로 이것입니다.”
혁낭에서 꺼낸 것은 술이었다. 그것도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술이었다.
잘 포장해온 깨끗한 잔을 꺼내서 술을 채웠다.
“좋구나.”
“제겐 너무 독합니다.”
사실 난 술을 좋아하고 잘 마셨다. 평생을 대법 재료를 찾으면서 힘들 때마다 한 잔씩 홀짝이던 것이 어느새 많이 늘었다. 굳이 아버지에게 주량 자랑할 생각은 없어서 독하다고 했을 뿐. 밤새 퍼마시면 아버지가 먼저 쓰러지실 거다.
“술 독하다고 엄살 부리는 마인은 없는 법이다.”
“술 좀 못 마시면 어떻습니까? 독주(毒酒)보단 독심(毒心)이죠.”
“독심?”
독심이란 말에 아버지가 비웃으며 물었다.
“네가 살기 위해 날 죽일 수 있느냐?”
잠시 사이를 두고 내가 대답했다.
“아뇨. 어찌 자식이 부모를 죽일 수 있겠습니까?”
솔직히 이것도 거짓말이다. 죽여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면, 아버지를 죽일 수 있다. 제대로 대화를 나눠본 게 오늘이 처음인데, 어찌 내 목숨보다 소중할 수 있겠는가?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아버지는 절 죽일 수 있으십니까?”
“이게 고민거리가 된다면, 독심이란 말을 함부로 입에 담아선 안 되겠지.”
아버지의 눈빛에서 느꼈다. 단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나를 죽일 수 있음을.
“그럼 전 독주나 배워야겠습니다.”
술을 마신 후 독하다고 인상 쓰는 나를 아버지는 묘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날 밤, 나는 홀로 앉아서 아버지가 알려주신 기발출을 연습하고 있었다.
‘이거 재미있네.’
이제는 제법 빠르게 기를 바람에 실어서 저 멀리 보낼 수 있었다.
칠흑의 어둠 속을 내 기운이 탐색하며 돌아다녔다. 이 행위는 너무나 신나는 일이었다.
‘이건 나무고, 그 아래 바위가 있고…….’
그곳을 기어 다니는 작은 벌레의 움직임도 느껴졌다.
다시 기운을 다른 곳으로 보냈다. 수련하면 할수록 기가 움직이는 속도가 빨라졌다.
빠르게 주위를 탐색하던 기가 흠칫 멈췄다. 뭔가 이질적인 느낌을 통과한 것이다.
‘뭐지?’
기를 다시 뒤로 뺐다가 다시 그곳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앞서 그 이질적인 기운은 사라지고 없었다.
난 눈을 뜨며 그곳을 응시했다. 어둠 속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대체 뭐였지? 분명 저기 뭔가가 있었는데.’
그때 누워 있던 아버지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안 주무셨습니까?”
“거긴 왜 쳐다보고 있었느냐?”
“저쪽에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었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는 흠칫 놀란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반대쪽으로 돌아누웠다.
“이만 자자.”
“네.”
나는 아버지와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누웠다.
‘그게 뭐였을까?’
아버지의 반응으로 볼 때, 분명 뭔가 아는 눈치셨는…….
“!”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휘! 휘 아저씨다!’
아버지 수신호위의 은신을 느낀 것이다. 두 번째로 다시 느끼려 할 때는, 그가 몸을 피해버린 것이고.
그렇다고 생각하니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이틀 전만 해도 절대 알 수 없었던 그의 기척을 내가 알아낸 것이다. 물론 휘가 필사적으로 몸을 숨기려던 상황은 아니었지만, 기본 은신을 알아차린 것만 해도 대단한 발전이었다.
만약 수련을 계속해서 아버지처럼 수십 가닥의 기운을 동시에 발출할 수 있다면, 그 어떤 은신술도 무력화될 것이다. 찾는 과정이 생략되고 그냥 여기, 저기, 거기. 단지 발견될 뿐일 테니까.
어설피 술을 마셔서일까, 그날 밤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대법 재료를 찾다가 지치면 술을 마셨고, 그럴 때면 자주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았다. 내 외로움을 함께 했던 그 날의 별들이, 오늘도 변함없이 빛나고 있었다.
잠들지 못하는 것은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속마음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습자지에 물을 빨아들이듯 무공을 받아들이는 내 재능에 격정을 느끼고 계시지 않을까?
“아버지는 마존들 중에서 누굴 제일 믿습니까?”
꼭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는데, 아버지는 반응을 해주셨다.
“그건 왜 묻는 게냐?”
우리 가문이 멸문하던 그 날.
화무기는 천마전을 유린했다.
천마전.
세 개의 기문진과 여섯 개의 기관진식, 그리고 가려 뽑은 마인들이 철통처럼 지키는 곳.
다시 천마전을 중심으로 각기 여덟 방향으로 팔마존과 그들의 수하들이 천마를 수호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일화검존이 이끄는 북천검가(北天劍家)의 마검(魔劍)들이.
남쪽으로는 혈천도마가 이끄는 남도종(南刀宗)의 도귀(刀鬼)들이.
동쪽으로는 불패권마(不敗拳魔)가 이끄는 동권문(東拳門)의 철권(鐵拳)들이.
서쪽으로는 섭혼마(攝魂魔)가 이끄는 서환진(西幻陳)의 귀술사(鬼術士)들이.
북동쪽에는 극악소마(極惡笑魔)를 닮고 싶은 무면객(無面客)들이.
남동쪽에는 대취마(大醉魔)와 함께 취해있는 주객(酒客)들이.
남서쪽에는 독왕(毒王)과 함께 온갖 독을 연구하는 독아(毒牙)들이.
북서쪽에는 마불(魔佛)의 혹세무민(惑世誣民)에 열광하는 광승(狂僧)들이.
당시에 난 외부에서 적이 뚫고 들어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중에 보니 그날 외부는 뚫린 적이 없었다. 팔마존 중 누군가 화무기를 천마전이 있는 내전으로 들인 것이 확실했다.
배신자는 하나일 수도, 혹은 그 이상일 수도 있다. 배신자가 누구였는지에 대해서만큼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게 누구든 상관없다.
난 팔마존들 모두를 배신자라 여기고 있으니까.
아버지의 죽음 이후 팔마존의 선택은 복수가 아니라 봉문이었다. 누구 하나 나서서 복수하려 하지 않았다. 여덟 명 중 하나라도 나섰다면 이렇게 배신감을 느끼진 않았을 거다.
그래, 이해한다. 천마의 시체를 밟고 선 화무기의 압도적인 무위에 감히 복수할 마음이 들지 않았겠지.
당신들도 인간인데 이해한다, 이해해.
그러니 당신들도 이해해라.
앞으로 내가 당신들을 마음껏 이용하더라도, 쓰고 버리는 소모품 취급해도, 당신들도 이해하길 바란다. 그게 공평하지 않겠나?
“만약 제가 천마가 된다면 팔마존을 휘어잡고 그들의 목줄을 틀어쥘 겁니다.”
“뭣이?”
아버지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 기세에 주위의 누운 풀들이 일제히 몸을 세웠다. 나도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이유는?”
아버지가 생각하시는 것보다 그들은 훨씬 더 멀리 있으니까요. 아버진 백 장 밖에 숨은 호랑이는 정확히 아시지만, 눈앞에서 웃고 있는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는 알지 못하니까요.
차마 이렇게 말할 수는 없었기에 다른 이유를 들었다.
“그들과 관련해서 부정부패가 심합니다. 당사자는 물론이고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자들 역시 마찬가집니다.”
아버지는 말없이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기에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물론 교를 원만히 운영하기 위해서 그들의 권위를 인정해 줘야 하겠지요. 하지만 그들은 선을 넘었습니다.”
이 당시만 해도 팔마존과 관련해서 여러 사건 사고가 있었다.
“제대로 기강 한 번 잡아야 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아버지는 가타부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나는 그 태도에서 아버지의 속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버지 역시 공감하는 바가 있다고. 팔마존에 대한 불만이 분명 있으신 거다. 그렇지 않았다면 마존들 기강을 잡아야 한다는 말에 이미 건방지다며 불호령이 떨어졌을 테니까.
“괜한 욕심을 부렸다간 가랑이가 찢어지고 배가 터져 죽는 법이다.”
“하하, 앞날이 구만리인데 그럴 수는 없죠. 천천히 걷고 적게 먹겠습니다.”
헛소리나 망언이 아니라 욕심이라 표현했다.
나는 아버지의 속마음을 짐작했다. 아직 뽑지 않은 아버지의 칼날 역시 나와 방향이 같다는 것을.
걱정마십시오, 아버지. 저는 그들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요.
마지막 재료인 비마혼을 구하기 위해 본교로 돌아와 긴 세월을 보냈다. 지금부터 먼 미래의 일이었기에 나는 팔마존에 대해서 모두 다 알고 있다. 그들이 어떤 인생을 살았고, 어떤 최후를 맞았는지.
‘제가 줄 제대로 세우겠습니다.’
그렇게 저 밤하늘의 별들만큼이나 여러 생각이 드는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