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67)
절대회귀-67화(67/424)
제67회 한창 이럴 나이지.
다음 날 나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그간 풍천교주와 있었던 일을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교내의 사정이니 아버지도 대충 다 알고 계시겠지만, 내가 와서 말씀드리는 것과 사마명에게 보고받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니까.
마침 아버지는 수련 중이셨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안으로 들어오라는 기별이 있었다.
“수련장 안으로 들어오시랍니다.”
허공에서 들려온 소리는 아버지의 수신호위인 휘였다. 오랜만에 듣는 그의 목소리.
“오랜만입니다, 아저씨.”
“네, 도련님.”
짤막한 대답이 들려왔다. 어려서 휘의 손을 잡고 마가촌 거리를 걸었던 기억이 있다. 길거리 음식을 사달라며 졸랐던 것 같은데. 어쨌든 그날의 기억은 내게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었다.
“아저씨, 언제 얼굴 한 번 뵈어요. 제가 식사 대접 하겠습니다.”
“네.”
“편하게요, 아저씨.”
그가 내 호의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현재 나에 대한 마음이 어떤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나에게는 기분 좋은 추억이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감흥이 없는 일상이었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그와는 친하게 지내야 한다. 아버지가 가장 믿는 사람이 그였으니까.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수련장으로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아버지는 명왕보로 공격을 해왔다.
점멸보로 피하면서 흑마검으로 아버지의 천마검을 쳐냈다. 흑마검과 천마검의 첫 격돌이었고, 오히려 그냥 피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시도였다. 당연히 아버지는 내 경지의 변화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실력이 늘었구나!”
아버지 역시 명왕보의 경지가 훨씬 높아진 상태에서 공격한 것인데, 그것을 더 위험한 방식으로 막아낸 것이다.
“당연히 늘어야죠. 본교에서 무공수련을 제가 제일 많이 할 겁니다. 아니다, 두 번째겠네요. 이안이 제일 많이 합니다.”
“왜 세 번째라고는 생각지 않느냐?”
아버지가 얼마나 열심히 풍신사보를 수련하고 계시는지 이 말에서 짐작할 수 있었다.
‘아버지, 잘하고 계십니다. 꼭 대성을 이루셔야 합니다. 반드시요!’
아버지와 함께 수련장을 걸어 나왔다. 우린 나란히 걸으면서 대화를 나눴다.
“무슨 일로 왔느냐?”
“풍천교주가 저와 손을 잡고 싶어 합니다. 느낌상 팔마존과 분열이 생긴 것 같은데. 혹시 알고 계셨습니까?”
굳이 그가 시공이환술을 전수해줬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이 부분은 풍천교주 역시 외부에 알리지 않을 내용이었으니까.
아버지는 이번 일의 핵심을 이렇게 보고 있었다.
“마존들이 풍천교주를 이곳까지 끌어들인 것은 오만한 짓이었다. 그를 찾아가서 해결했어야 했고, 데려올 생각이었으면 모두가 찾아가서 부탁했어야지.”
“풍천교주의 자존심을 잘못 건드렸군요.”
그가 중원진출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여럿이겠지만, 그것들을 하나씩 들어내다 보면 가장 밑에 놓인 것이 정말 그의 상처 난 자존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것 아니라고 소홀한 것들이 결국 가장 큰 문제가 되지. 이번 일은 명백한 마존들의 실수다.”
나는 아버지의 고뇌를 엿볼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선 마존들을 풍천교주와 싸움 붙여 구경하다가, 충성심이 부족한 것들부터 싹 없애버리고 싶으실 거다.
하지만 본교의 주력인 그들이 무너지면, 결국 무림맹이 치고 들어올 것이 뻔했기에 팔마존은 그야말로 아버지에게는 필요악인 셈이다.
“하면 풍천교주는 왜 아버지를 찾아뵙지 않고 저를 찾아온 것일까요?”
이번 대답 역시 아버지는 확고했다.
“첫째 이유는 나를 어려워해서고, 둘째 이유는 널 이용하기 쉽다고 여기니까.”
“저를 이용해서 뭘 하려는 걸까요?”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물었다.
“질문은 네 군사에게 해라.”
“저는 군사가 없잖습니까?”
“구해야지.”
“어디서 사마 군사님처럼 똑똑한 분을 구해옵니까?”
아버지는 그저 코웃음을 한 번 치실 뿐이었다.
“가진 분의 여유십니다!”
정말이지 사마명처럼 똑똑한 군사를 구하는 것이 내 지상과제다.
“넌 군사 없이도 잘해 가고 있지 않느냐?”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만, 대부분 운이 좋아서 잘 풀린 일들이 많습니다.”
회귀 전의 많은 경험을 토대로 상황을 헤쳐 나가는 것이지, 나 역시 군사형 인물은 아니다. 혜안과 통찰력으로 나를 보필할 군사가 꼭 필요하다.
“이 질문만 대답해 주십시오. 풍천교주가 원하는 것이 뭡니까?”
아버지가 발걸음을 멈추고 대답했다.
“그의 꿈은 중원진출이다.”
“신물을 지킨다고 권좌를 떠나지 않는 사람인데요?”
“그건 그 사람의 집착하는 성격이고.”
“꿈은 중원진출이다, 이 말씀이군요.”
회귀 전 인생에서 풍천교주는 중원진출을 하지 못했다. 화무기가 무림을 다 휩쓸어 버렸기 때문에, 감히 한 발짝도 중원에 발을 디디지 못하고 새외에서 생을 마감했다.
한데 내가 회귀를 함으로써 그의 인생도 바뀌고 있었다. 원래라면 오지 않았을 중원에, 그것도 본교에 직접 찾아오게 되었으니까.
“대대로 새외 혈교는 중원을 노렸지.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은 없지만, 중원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바람은 그들의 핏속에 있다.”
“이제야 저를 찾아온 이유를 알겠습니다.”
굳이 아버지에게 묻지 않아도 다 아는 내용이지만, 아버지에게 들어서 알게 된 것처럼 굴었다. 때론 알아도 모르는 척 이렇게 행동해야 하는 법이다. 가증이라기보단, 아버지에 대한 예의였다.
세상 대부분 부모는 자식이 와서 이렇게 물어봐 주길 바랄 테니까. 아버지라고 다르실까?
적어도 이 부분만큼은 다르지 않았다. 그렇지 않다면 이 말씀을 하지 않았을 테니까.
안으로 들어가시려다 아버지가 무뚝뚝하게 덧붙였다.
“기왕 왔으니 밥이나 먹고 가라.”
“네!”
아버지가 밥 먹고 가라는 말씀이 제일 좋다.
하지만 좋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괜히 그랬다간 다음부터는 밥 먹고 가란 말씀은 절대 하지 않으실 테니 말이다.
절대 쉽지 않은 아버지다.
* * *
아버지와 식사를 마치고 황천각으로 돌아왔을 때 생각지도 못한 사람의 방문이 있었다. 바로 마불이 나를 찾아온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어르신.”
“한 번 온다는 것이 늦었네.”
그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멀리서 볼 때보다 키가 더 작았고, 그의 황금색 피부를 보고 있자니, 손으로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불.
명실공히 형의 오른팔.
“자, 앉으시지요.”
“그러세.”
마불이 자리에 앉았다. 그는 누가 내려다보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앉아서도 허리를 저렇게 꼿꼿하게 펴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친우가 중요한 신물을 도난당했으니, 내 어찌 그냥 있겠는가? 사건조사가 어떻게 되어가나 알아보러 왔네.”
“현재 제가 직접 이번 사건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정말 도적이 든 것이 사실인가?”
“사실이라뇨?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내가 천연덕스럽게 묻자 그는 그걸 몰라서 묻는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본교 내원에 도적이 들었다는 사실을 어찌 믿겠는가?”
“풍천교주가 자작극을 벌인 것이 더 믿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시작부터 우린 팽팽한 기류를 조성했다.
그의 눈동자에도 은은한 금빛이 감돌고 있었다. 황금대라마공의 대성을 이룬 자만이 나타난다는 현상이었다.
과연 마불의 무공은 얼마나 강할까? 마불이 익힌 황금대라마공은 섭혼마공의 사술만큼이나 상대하기 까다로운 무공이었다.
“만약 정말 내원에 도둑이 든 것이라면, 본교의 명성이 크게 손상될 것이네.”
“그렇겠지요.”
“조용히 처리해야 하지 않겠나?”
“어떻게 말입니까?”
“그가 떠들어대지 못하도록 일단 새외로 돌려보내는 것은 어떤가? 어차피 그가 있다고 못 잡을 도적을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명백히 나를 떠보는 말이었다. 그는 자작극이라 확신하고 있었고, 내가 그 일을 돕고 있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일개 각주인 제 말을 듣겠습니까?”
“풍천교주가 자넬 찾아왔다고 들었는데?”
“인사차 왔었습니다.”
“풍천교주는 자네가 후계자가 될 거라 믿고 있네.”
“그런 내색은 없었습니다만.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누군갈 찾아갈 사람이 아니니까. 그는 누군가 와서 인사를 받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라네. 그런 그가 자넬 찾았다면, 후계자의 가능성을 본 것이겠지.”
말을 하면서도 그는 끊임없이 내 반응을 살펴 속마음을 읽으려 했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건 우리 아버지도 실패하는 시도다.
“이공자, 본교를 위해서 그를 돌려보내야 하네.”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 말이었다.
내가 그를 돌려보내려 하면 그걸로 좋은 것이고, 이 제안을 거절하면 본교를 위해 움직이지 않은 것으로 몰아갈 수가 있을 테니까.
“아니죠. 그렇다면 그를 돌려보내면 안 됩니다.”
“무슨 말인가?”
“말씀대로 그는 이번 일을 빌미로 본교의 평판을 깎아내릴 겁니다. 그럼 붙잡아둬야지요. 오히려 본교에 있을 때까진 함부로 입을 열진 못할 테니까요. 제가 넌지시 말해두겠습니다. 신물을 찾으려면 함부로 입을 열지 말라고요.”
순간 마불은 뭐라 대답하지 못했다. 물론 그렇다고 그는 혹 떼러 왔다가 하나 더 붙이고 갈 정도로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었다.
“풍천교주는 능구렁이 같은 사람이야. 분명 다른 속셈이 있네.”
“그럼 제가 손을 잡는 척해서 그의 속셈을 알아내겠습니다.”
“이렇게 고집이 세니 앞으로 훌륭한 황천각주가 될 듯하군.”
“주로 옳다고 믿는 일에서 그렇습니다.”
마불은 그 말을 자신이 옳지 않은 사람이라는 질책으로 받아들였다.
기회다 싶었는지 마불이 빠르게 손가락으로 수인(手印)을 지었다.
전법광인(轉法光印)!
순간 마불의 몸에서 황금빛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태양보다 강렬한 이 빛에 상대는 일순간 눈을 뜰 수가 없다. 이 찰나의 순간은 마존급 실력자들에게는 억겁처럼 긴 순간이었다. 여길 찔러 죽일까, 저길 찔러 죽일까? 아니다, 두 군데 다 찌르자.
나도 눈을 감았다.
하지만 눈을 감기 전,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빛에 내 눈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그의 몸에서 황금빛이 쏟아져 나오고, 그 중심에서 마불이 움직이는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이 순간 빛을 발한 것은 황금대라마공이 아니라 나의 신안술이었다.
하지만 나는 일부러 눈을 감았다. 굳이 마불에게 내 실력을 그대로 드러낼 필요는 없었으니까.
다시 눈을 떴을 때, 마불은 내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아이 같기도 하고, 어른 같기도 한 그의 얼굴이 낯설게 느껴졌다.
날 바라보는 눈빛은 딱 이랬다.
내가 죽이고자 마음먹었다면 넌 이미 죽어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만만해도 될 사람이었다. 황금대라마공의 수인은 모두 다섯 개. 이렇게 눈을 가린 후 날아들 이후 공격이 얼마나 무서울지는 당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포까진 아니더라도, 짐짓 놀라고 두려운 반응을 의도적으로 보였다.
이 정도면 충분한 경고가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마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처음 혈천도마가 나를 찾아왔을 때와 반대되는 말을 했다.
“난 자네와 자주 보고 싶네. 이렇게 차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고. 나와 함께 하면 자네에게 좋은 일만 가득할 걸세.”
“형과 많이 나누십시오.”
나의 치기 어린 오만에 마불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래, 한창 이럴 나이지. 그럼 또 보세.”
“살펴 가십시오.”
그가 종종걸음으로 방을 나가자 일부러 지었던 굳은 내 표정이 풀어졌고 황금빛으로 물들었던 방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보시오, 마불. 당신은 나를 자주 안 보는 게 좋을 거요. 나와 얽힌 마존들은 아직까진 세 부류밖에 없소.
친해졌거나, 친해지고 있거나, 죽었거나.
당신은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오? 지금으로선 우리가 친해질 것 같진 않은데…….
그럼 당신, 네 번째 부류를 만들 자신 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