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68)
절대회귀-68화(68/424)
제68회 끝까지 이공자.
“섭혼마존의 제자는 모두 다섯입니다만 그중에서 나이나 실력으로 볼 때 후계 싸움의 유력한 후보는 일제자 양도(梁導)와 삼제자 청선입니다. 참고로 청선은 여인입니다.”
서대룡의 보고에 내가 물었다.
“서환진 내에서의 두 사람 평판은?”
“아무래도 나이가 있다 보니 경험과 무공실력은 양도가 우세합니다만, 서환진 내에서의 인기는 청선이 높습니다. 젊고 아름다운 그녀에 비해 양도는 성격이 포악해서, 이미 여러 귀술사들이 그에게 다쳤습니다. 심지어 죽은 이들도 있고요. 그런데도 죽은 섭혼마존이 그를 아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높았는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죠.”
“두 사람을 낱낱이 조사해. 무공, 재산, 능력, 취미, 인간관계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알겠습니다.”
“과연 풍천교주는 누굴 선택할까?”
내 질문에 서대룡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풍천교주가 그들 중 한 사람을 선택합니까?”
“응. 그래서 섭혼마존 제자들에 대한 자료도 보내줬어.”
“왜죠?”
“내가 서환진의 후계싸움에 뛰어들라고 했으니까.”
“맙소사! 또 무슨 일을 꾸미시는 겁니까? 설마?”
어딘가에 생각이 꽂힌 서대룡이 전음을 보냈다.
―풍천교주도 죽일 겁니까? 아니면 양도? 청선까지요?
―내가 살인마냐? 다 죽이게.
그제야 서대룡은 안도했다.
“다행입니다.”
“다들 내가 누굴 죽일까 봐 걱정하는 것이 요즘 내 모습이군.”
“또 누가 걱정했습니까? 사부님요?”
“사부님?”
“아! 혈천도마 어르신요.”
“아직 어르신께 사부라고는 안 부르지?”
“네, 허락 안 하셨습니다.”
한데 서대룡은 그를 사부로 모시는 모양이다. 자기도 모르게 사부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니.
서대룡이 도마에게 점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하긴, 혈천도마의 책 읽는 모습에서 이미 서대룡은 풍덩 빠졌을 것이다.
“그래서 풍천교주는 누굴 선택할까?”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수석 입학에 천재인 네가 모르면 어떻게 알아?”
“공부 열심히 해서 수석 입학이지 천재는 아니죠.”
“천재라고 했잖아?”
“그건 각주님께서 하신 말씀이고요.”
“그때 잘난 척하면서 고개를 끄덕였잖아?”
“인정합니다. 제 마음속에 저도 어쩔 수 없는 허세가 있다는 것을요. 그러니 절 천재에서 실무에 능한 녀석 정도로 하향조절 해주십시오. 대신 두 사람 조사는 확실하게 해오겠습니다.”
서대룡이 꾸벅 인사를 하고 집무실을 나갔다.
* * *
“그래서 우린 누구를 지지해야 하나?”
풍천교주의 물음에 족쇄 사내는 음뢰종만 쳐다보고 있었다.
“자넨 그 종은 왜 그리 쳐다보고 있나? 종에 새겨진 악귀가 말이라도 거나?”
그러자 족쇄 사내가 불쑥 말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무섭게 왜 이래?”
“가끔 내게 말을 걸곤 합니다.”
“뭐라고 하는데?”
멍하니 악귀를 쳐다보며 족쇄 남자가 말했다.
“넌 왜 그렇게 사냐?”
잠시 흐르는 침묵.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나?”
“예전에는 속 좁고 욕심 많은 한 인간 때문에 이러고 산다고 대답했었지요.”
“지금은?”
“어쩌면…… 꼭 그 인간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니 뭐라던가?”
족쇄 사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 번 더 재촉하자 족쇄 사내는 풍천교주를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뭘 자꾸 묻습니까? 조각이 무슨 말을 한다고. 미쳤습니까?”
풍천교주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암, 내가 안 미치는 게 이상하지. 조만간에 내가 거기 앉아서 그 조각된 악귀와 대화를 나눌 거야. 넌 왜 그렇게 무시당하고 사냐고? 왜겠냐? 이 악귀 놈아, 네가 쭉 지켜봐서 알잖아!”
“청선입니다.”
“깜짝이야! 제발 기수식이라도 취하고 찔러!”
종잡을 수 없는 족쇄 사내였지만 필요할 때 이렇게 답을 내놓기에 소중한 사람이었다.
“왜 청선인데? 내가 볼 땐 양도가 후계자가 될 것 같던데.”
“그럼 그 사람을 선택하시든지요.”
족쇄 사내는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 입을 닫았다.
풍천교주가 슬그머니 그의 옆으로 갔다.
“왜 청선이냐고?”
“그냥 소신껏 양도로 선택하시오. 교주나 되는 사람이 언제까지 남 말에 따를 겁니까?”
“좋네, 소신껏 청선으로 하겠네.”
풍천교주는 철석같이 족쇄 사내를 믿었다. 이유는 필요 없었다. 지금껏 그가 보여준 과거가 있었으니까.
“청선이란 말이지? 그럼 어떻게 그녀를 제자로 삼을 수 있겠나?”
“그건 나도 모릅니다.”
“자네가 모르면 어쩌나?”
“여기 이렇게 묶여있으면서 그것까지 아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하긴. 그것도 그렇지.”
그렇다고 풍천교주는 그의 족쇄를 풀어준다는 말을 하진 않았다. 지금껏 온갖 말들을 나눴어도, 그 말만은 하지 않았다.
족쇄를 풀어주면 남자는 훨훨 자신을 떠나버릴 것이다. 세상 누가 이런 꼴로 만든 사람이 좋아서 남겠는가? 풀어주는 순간 끝이다. 그랬기에 족쇄를 푼다는 말은 풍천교주의 절대 금기어였다.
“내가 청선을 찾아가 볼까?”
“가서 뭐라 하실 거요?”
“내 제자가 되어라. 너무 고압적인가? 내 제자가 되는 것을 허락하마. 어때?”
“그래서 잘도 제자가 되겠소.”
“그럼 어떻게 하라고?”
“처지를 바꿔 생각해 보십시오. 속내를 알 수 없는 새외 늙은이가 와서 갑자기 제자가 되라는데, 교주라면 그 말에 넘어가겠소?”
“어림없지.”
“남들도 마찬가지요. 그냥은 안 되는 일입니다.”
“설마 자네 말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족쇄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사부가 돼서 무공도 가르쳐줄 건데? 대가를 치르려면 그쪽에서 치러야지.”
“낡은 사고방식이오. 대가는 더 간절한 사람이 치르는 겁니다.”
“싫네, 이제는 주는 게 아니라 받고 싶네. 나는 본래 받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내 신물을 채울 것을 잔뜩 싸 들고 와서 배우라고 해! 온종일 무릎 꿇고 마당에서 간청하라고 해!”
족쇄 사내는 다 주라고 했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기왕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 대상은 청선이 아니어야 합니다.”
“그럼 누구?”
“이공자는 여기 신물을 더 원할 겁니다. 지난번에 신물을 둘러볼 때, 눈여겨보는 것들이 있더군요.”
“망할!”
“이공자는 이번에도 해답을 들고 올 겁니다.”
“또 이공자인가?”
탄식하는 풍천교주에게 족쇄 사내가 담담하게 말했다.
“끝까지 이공자일 거요.”
* * *
서대룡의 호언대로 적어도 그는 실무에는 확실히 능했다.
양도와 청선에 대해 낱낱이 조사를 해온 것이다. 그들의 집안과 가족은 물론이고 무공수준은 물론이고 성격에, 대인관계며, 하다못해 좋아하는 음식까지 조사했다.
“한데 청선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어떤 점을?”
“청선이 사우종을 만난 적이 몇 번 있습니다.”
“사우종을?”
생각지 못한 이름이 튀어나왔다.
“네. 아무래도 접점이 없는 관계인지라, 혹시나 해서 보고드립니다.”
서대룡은 내가 일화검존과도 인연을 맺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따로 보고하는 것이다.
나는 사우종의 최후를 떠올렸다.
그는 섭혼술에 걸려 일화검존을 죽이려다가 역으로 죽었다. 누구의 섭혼술인지 끝내 밝혀지지 않았던 죽음이었는데.
‘아! 그것이 바로 청선의 섭혼술이었구나!’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하나의 결론.
“두 사람, 서로 사귀는 사이다!”
내 말에 서대룡은 깜짝 놀랐다. 두 사람이 사귀어서 놀란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사실을 앉은 자리에서 맞혀서 놀란 것이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사우종은 일화검존을 좋아하고 있었다. 청선과 사귀는 과정에서 그것을 들켰다면? 그의 죽음은 청선의 질투심과 분노가 만들어낸 결과가 틀림없다. 특히 청선은 젊었는데, 자기 남자가 나이 든 여자를 사랑한다면 그 자존심의 상처는 몸을 관통당할 정도로 깊을 것이다.
사귄다고 판단하는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다.
앞서 심혼대법의 시체들이 묻혀 있던 곳을 말해준 사람도, 능휴의 부채를 훔쳐서 그곳에 넣어둔 사람도 청선이 틀림없었다. 섭혼마존의 제자가 아니라면 알아내거나 해낼 수 없는 일들이었다. 더불어 사우종과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면, 그런 중요한 정보를 유출했을 리도 없고.
모든 것들의 아귀가 맞아떨어졌지만, 서대룡에게는 이러한 사실을 말해줄 수가 없었다.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뭔가 국면을 바꿀 생각이 나신 거군요.”
“어떻게 알았어?”
“눈빛이 달라지셨거든요. 각주님, 천재를 왜 찾으십니까? 각주님이 천재신데.”
“난 천재 아니지. 잔머리 굴리고, 이득 되는 것 안 놓치려는 정도고. 이런 머리 말고, 큰 머리 쓸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해. 조직에 그런 사람이 있는 거와 없는 거 차이가 크다.”
“저는 잘 모르겠지만, 암튼 대단하십니다.”
“모르긴 뭘 몰라. 자네 조사 덕분에 알아낸 건데. 천재를 구해도 그 사람과 자네 안 바꿔.”
“그러시겠죠. 어차피 둘 다 가지실 테니까요. 한데 어디 가십니까?”
난 이미 집무실을 걸어 나가고 있었다.
‘신물 벌러!’
이 역시 그에게 알려줄 수 없는 일이었다.
* * *
나는 그길로 풍천교주를 만났다.
그의 거처는 사건 현장이었고, 황천각주인 나는 언제든지 공식적으로 드나들 수 있는 명분이 있었다.
“어서 오게.”
“잘 지내셨습니까?”
“보내 준 자료는 잘 봤네. 고맙네.”
“별말씀을요.”
그와 인사를 주고받으며 나는 족쇄 사내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나를 쳐다보지 않았지만, 그를 볼 때마다 이대로 스쳐 지나갈 인연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내 시선이 다시 풍천교주를 향했다.
“서환진의 후계자 싸움에 뛰어들 방법을 찾으셨습니까?”
“아직이네.”
“서두르셔야 합니다. 곧 마존들이 개입해서 후계자를 뽑을 겁니다.”
“자네도 알다시피 이곳에서 나는 저 사람과 마찬가지로 족쇄를 차고 있다네. 하다못해 서환진의 후계자들을 만나는 일조차 쉽지 않네.”
나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는 후보 중 누굴 제자로 삼았으면 좋겠나?”
“청선입니다.”
내 대답에 놀라지 않는 것으로 볼 때, 이미 족쇄 사내와 그렇게 결론을 내린 모양이다. 과연 그러했다.
“우리도 청선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네.”
나는 사우종 때문이라지만, 저 족쇄 남자는 무슨 이유로 청선을 선택한 것일까?
“한데 그녀를 설득할 방법이 없네.”
“만약 제가 청선을 교주님께 직접 찾아오게 할 수 있다면요?”
“찾아와서는?”
“제자가 되고 싶다고 부탁하는 거죠. 밥을 지어서 떠먹여 드리겠습니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더 바랄 것도 없지.”
“대신 신물 하나를 주십시오.”
밝아졌던 풍천교주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
“자네 정말 뻔뻔하군.”
“뻔뻔한 게 아니라 당연한 겁니다. 합당한 대가 없이 친분이나 충성심을 앞세워 일을 시키는 건 아버지 시대에서나 통하던 일이죠.”
“나 역시 그때 사람이라네.”
“시대가 바뀐 것을 인정하셔야 합니다. 앞에 앉은 제가 요즘 사람이란 것도요. 이게 싫으시면 화석처럼 굳어서 자기 좋은 곳만 바라보고 사셔야죠.”
물론 그런 삶을 원하지 않았기에 풍천교주는 인상을 굳혔다.
나는 부드러운 어조로 그를 설득했다.
“이번 일은 젊은 사람 상대하는 일이니 제게 맡겨 주세요. 신물이 아깝지 않은 결과를 내겠습니다.”
“잠깐 생각 좀 하세.”
“그러시죠.”
난 모른 척 신물을 구경하면서 족쇄 사내와 풍천교주 사이에 전음이 오갈 시간을 주었다.
이윽고 풍천교주가 내게 말했다.
“좋아, 자네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마땅한 기색이 가득했지만 결국 그는 족쇄 사내에게 설득된 모양이다.
“그녀가 찾아와서 제자로 받아달라는 말을 하는 것까지입니다. 그녀를 마존의 자리에 올리는 것은 교주님의 역량입니다.”
“만약 그때도 도움이 필요하면 또 찾아와서 신물을 요구하겠지. 그냥 차라리 지금 다 가져가게!”
“제가 그럴 능력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저를 위해서도, 교주님을 위해서도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풍천교주에게는 정중히, 족쇄 사내에게는 스치듯 눈인사를 하고 그곳을 나왔다.
그길로 나는 한 사람을 찾아갔다.
이번 일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 바로 사우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