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74)
절대회귀-74화(74/424)
제74회 감을 믿으세요.
“요즘 제가 군사를 구하고 있습니다.”
오늘 사마명과의 만남은 이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저로는 부족합니까?”
사마명의 농담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버지나 저나, 한 욕심 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아버지는 절대 사마 군사님을 제게 나눠주지 않으실 겁니다. 잘 아시잖아요, 우리 아버지?”
사마명은 미소로 대답을 무마했다.
“그래서 군사님께 조언을 구하려고 찾아뵈었습니다. 어떤 군사를 구해야 할지 여쭤보려고요.”
잠시 사마명은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말이 없었다. 평온한 모습이지만 그의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내가 찾아온 의도에서부터 어디까지 말해줘야 할지. 자신이 말해준 여파가 자신이나 본교에, 혹은 후계싸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온갖 생각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정리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좋은 군사의 조건에 대해 알지 못한다. 다만 이 사실만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좋은 군사는 결국 좋은 선택을 한다.
내가 아는 한 사마명은 누구보다 좋은 군사였으니, 분명 제대로 된 답을 줄 것이다.
그가 다시 한 잔의 술을 마셨고, 내가 술잔을 다시 채워줬을 때, 그는 생각을 마쳤다.
사마명이 의미심장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혹시 이미 고민이 끝난 것은 아닙니까?”
이 질문에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사마명은 이미 족쇄 사내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내가 염두에 둔 사람이 그라는 것까지 그는 알고 있다.
그는 지금 내게 이렇게 말한 것이다.
―풍천교의 그 사람을 군사로 생각하고 계십니까?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총군사 사마명이 풍천교의 군사 역할을 하는 족쇄 사내에 대해 모를 리가 없었으니까.
요즘 도난 사건을 핑계로 풍천교주의 거처를 드나들던 내가 갑자기 이렇게 만나서 군사를 구하고 싶다고 말했으니, 당연히 그를 떠올렸을 것이다.
“고민하는 사람이 있긴 합니다만, 아직 확신이 들지는 않습니다.”
직접 묻는다면 그는 절대 대답하지 않을 것이기에, 난 눈빛으로 물었다.
―그를 내 군사로 삼아도 되겠습니까?
사마명은 나를 응시하며 대답을 아꼈다. 이제 오늘 만남에서 가장 중요한 말이 나올 순간이었다.
“사람을 얻는 일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일입니다. 기나긴 과정을 거쳐야만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죠. 그러니 지금은 이공자의 감을 믿으십시오.”
감을 믿으라.
누구라도 해줄 수 있는 평범한 조언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조언은 의미가 달랐다. 내가 족쇄 사내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 내 감을 믿으라 했으니 결국 그를 받아들이란 조언이었다.
족쇄 사내가 본교에 해가 될 사람이라면 절대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마명이 인정하는 능력이 되는 사람이란 의미.
사마명은 내 사람이 아니지만, 적어도 본교를 위한 충성심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내가 천마가 될 가능성이 있는데 아무나 추천하진 않을 것이다.
“네, 제 감을 믿겠습니다.”
내가 잔을 들자 사마명이 고개를 한번 끄덕인 후 힘차게 건배했다.
오늘 그는 내게 자신의 감을 믿으란 말을 했을 뿐이다.
아버지든 마존이든, 후일 족쇄 사내를 내게 추천했다는 혹여 있을지도 모를 추궁에서 그는 자유로웠다. 심지어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왜 그를 추천했느냐고 따질 수 없다. 사마명은 그저 감을 믿으라고 했을 뿐, 그를 추천하지 않았으니까.
우린 두 시진을 꽉 채워서 술을 마셨다.
이런저런 온갖 이야기를 다 나눴지만, 사마명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고 단 한 마디의 실수도 하지 않았다.
* * *
며칠이 지났다.
겉으로는 다른 날과 다름없는 날들이었지만 마존들 사이에서 온갖 모략과 정치질이 난무한 며칠이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운명의 날이 되었다.
“지금 한창 투표 중이겠군요.”
서대룡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지금 마존들의 회합을 통해 차기 마존을 결정하고 있었다.
혈천도마나 일화검존이 다른 마존을 설득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따로 찾아가서 묻지 않았고, 그들 역시 내게 와서 말해주지 않았다.
“이번 일에도 각주님이 개입되어 계신 거죠?”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른팔인데 모르는 일이 많아서 섭섭하지?”
“아뇨, 영원히 몰랐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런 일에 제외된다고 절대 삐치지 않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저 모르게 진행하십시오. 각주님이 무림일통 하신 것도 다음날 소문 듣고 알아도 괜찮습니다!”
“자네 원래 이렇게 웃긴 사람인데, 처음에 나 볼 때 어두운 척한 거지?”
“이젠 저도 헷갈립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밝은 게 좋지. 그녀도 그걸 더 좋아할 거야.”
“그녀라니요?”
“자네가 좋아하는 후배 말이야.”
“저조차 잊고 있었든 그녀 말이죠?”
이제는 부인하는 것을 포기했다는 듯 서대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각주님 덕분에 우린 혼인하게 될 겁니다.”
“그러려면 밥부터 먹어야지. 밥 먹자고 이야기해봐.”
“바쁜 사람에게 뭐하게요.”
“밥 먹는 거와 바쁜 게 무슨 상관이야? 처음부터 그런 부담을 가지니까 될 일도 안 되는 거다. 그냥 편하게 자주 볼 수 있는 사람으로 다가서야지.”
살짝 서대룡의 눈빛이 반짝이는 것이 느껴졌다.
“자주 본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자주 보면 달라지지. 대신 너무 편한 사람은 되면 안 돼. 이게 제일 중요해. 만만하게 보이지 말 것!”
“만만하게 안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눈에 힘을 줘야 할까요?”
“맙소사!”
내가 한숨을 내쉬자 서대룡이 재빨리 말했다.
“농담입니다, 농담.”
“아니란 것 아니까 더 슬프다.”
“제가 그 정도로 감이 없진 않습니다.”
그 진위를 밝힐 수는 없었다. 수하가 뛰어 들어와서 투표 결과를 보고한 것이다.
“결과가 나왔습니다.”
“어떻게 됐나?”
“무승부가 나왔습니다.”
“무승부? 마존이 일곱인데 어떻게 무승부가 나와?”
“마존 한 분이 기권했다고 합니다.”
“아, 기권도 있었군.”
마존들이 누가 어디에 표를 던졌는지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아마 혈천도마와 일화검존 중 한 사람은 절반만 설득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일제자와 삼제자가 비무를 해서 승부를 보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내일 바로 진행한답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군.”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결국 비무로 결정을 짓게 되었다. 차라리 서환진 입장에서는 잘 된 결정이었다. 실력이 뛰어난 쪽이 마존 자리에 앉는 것이 뒷말이 없을 테니까.
보고한 수하가 나가자 서대룡이 물었다.
“누가 이길 것 같습니까?”
“왜 묻나?”
“저잣거리에 가서 내기도박이라도 걸게요. 박봉인생 이럴 때 인생역전 하는 거죠.”
“청선에게 전 재산 걸어!”
“왜 삼제자죠?”
“삼제자에게 거는 게 아냐. 풍천교주에게 거는 거지. 아니, 정확하게는 풍천교주의 절박함에 거는 거지. 그는 자기 제자를 지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어디가?”
“집 저당 잡히러 갑니다!”
서대룡이 문을 열고 나가다가 걸음을 멈췄다.
“안 말리세요?”
“어차피 자넨 내기도박 안 할 테니까.”
“어떻게 아세요?”
“도박하는 사람은 일확천금이나 노리지, 자네처럼 현실을 바꿀 생각을 안 하거든.”
서대룡이 씩 웃으며 문을 닫았다.
“저 진짜 갑니다. 눈에 힘주고 밥 먹으러 갑니다.”
나는 창가로 걸어갔다.
어슴푸레 땅거미가 내려앉은 연무장으로 무인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투표 결과를 들은 각각의 조직들은 내일 결과에 주목하고 있을 것이다.
청선이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게 더 중요한 것은 혈천도마와 일화검존이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을 테니까.
‘고맙습니다, 어르신들.’
* * *
다음 날, 비무가 벌어졌다.
비무대 주위로 칠마존과 그의 수하들, 서환진의 귀술사들이 모두 모였다. 이번 대결은 마존들의 직속 수하들이 아니더라도 구경할 수 있도록 했기에 나와 풍천교주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다만 아버지는 참석하지 않았다.
비무대 위로 일제자 양도와 삼제자 청선이 올라섰다.
그들의 등장에 서환진 귀술사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죽은 섭혼마존에 비하면 아직 한참 모자란 그들이지만, 앞으로 서환진을 이끌어나갈 차기 마존이었다.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따라 서환진의 운명이 갈라질 것이다.
기존의 강자였던 양도가 이길 것인가, 풍천교주에게 무공을 배운 청선이 이길 것인가?
칠대삼 정도의 비율로 양도가 이길 것으로 예상했다. 청선이 비록 풍천교주의 제자가 되었지만, 무공을 배울 시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이다.
양도와 청선 모두 시공이환술을 전수받지 못했기에 우린 그들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세상 싱거운 싸움이 되었을 것이다. 두 사람이 동시에 눈앞에서 사라진 후, 승패가 결정이 난 후에야 모습을 드러냈을 테니까.
두 사람 사이에 정중한 인사는 없었다.
“비겁한 년. 사부 팔아먹은 년.”
“지금 사부를 들먹이는 것부터가 사부 팔아먹는 짓이다. 이 멍청한 사형아.”
싸늘한 욕설과 함께 비무가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인생과 목숨이 걸린 싸움이란 것을 알았기에 인정사정 봐주지 않았다.
양도가 불러일으킨 시커먼 연기가 청선을 덮쳤고, 그녀의 섭혼술이 양도의 정신을 침입했다. 귀신 울음이 들렸고 귀신들린 바람이 불었다.
바닥에서 검은 괴물이 튀어나와 상대를 끌고 들어가려 했고, 허공에서 튀어나온 붉은 손이 상대의 머리통을 뽑으려 했다.
마존이 아니라 그 제자들의 싸움이었음에도 생각보다 치열하고 강력했다. 기대를 안 했기에 다들 놀랐다.
콰콰콰콰콰쾅!
굉음과 함께 지축이 흔들렸고, 마른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지켜보던 마인들은 이런 생각을 하며 절망했다.
대체 저 수법을 어떻게 막아내지?
왜 정파에서 섭혼마존을 가장 까다롭게 여겼는지 이 제자들의 싸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를 수법이 연달아 튀어나왔다.
모두들 숨을 죽였다.
그들이 암기를 날려도, 바닥을 뒹굴어도, 아무도 무시하지 않았다.
날아오던 암기를 검은 악귀가 튀어나와 대신 맞았고, 바닥을 뒹구는 순간에도 손에서는 귀기가 발출되고 있었다. 바닥을 녹이는 핏물이 상대방을 덮쳤고, 아지랑이가 상대의 양팔을 뜯어내려 했다.
그들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구사했고, 싸움은 필사적이고 처절했다. 상대의 목을 물어뜯어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 지켜보던 마인들은 격정에 휩싸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싸움 내내 들렸던 귀곡성이 그쳤다.
두 사람 주위를 휘감으며 미친 듯이 회오리치던 회색빛 연기가 사라지자 서로를 마주 보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모두들 알 수 있었다. 드디어 싸움이 끝났다는 것을. 누가 이겼는지는 아직 알 수가 없었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양도였다.
“마지막 수법은?”
“새 사부님에게 배운 필살마기.”
“난 네년이…… 이런 쌍년인지 어려서부터 알고 있었다.”
“그럼 잘 알겠네. 돌아가신 사부님보다 내가 더 뛰어난 섭혼마존이 될 거라는 것을.”
청선이 그를 세워둔 채 귀술사들이 모인 곳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그들에게 말했다.
“그래서 우리 서환진이 팔마 중 최고가 될 거다!”
그녀의 말이 끝나는 순간.
파파파파팍!
일제자 양도의 입과 코, 귀에서 피를 분수처럼 뿜어냈다. 전신 혈맥이 가닥가닥 끊어진 채 바닥에 쓰러졌다.
청선이 일제자를 잔혹하게 죽여버릴 줄 생각도 못 했기에 일순간 침묵이 흘렀다. 그것도 잠시, 그곳을 진동할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
청선은 천천히 칠마존이 앉아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정중히 포권했다.
“인사드립니다, 청선입니다.”
그녀를 뽑은 이들은 웃고 있었고, 뽑지 않은 이들은 굳어 있었다.
혈천도마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대표로 소리쳤다.
“서환진의 새로운 주인이 탄생했다!”
그의 외침에 모두가 함성을 질렀다.
새로운 섭혼마존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청선이 풍천교주를 쳐다보고 정중히 포권하며 인사했다.
다음으로 나를 보면서 인사했다.
하지만 그녀는 사우종이 있는 쪽으로는 눈길 한번 보내지 않았다.
남몰래 스쳐 가는 눈빛이라도 기대했는지, 사우종은 매우 실망한 기색이었다. 언젠가부터 그의 인생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