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77)
절대회귀-77화(77/424)
제77회 누가 그 자리를 차지하려 들면?
오늘 나는 내 사람 모두를 데리고 왔다.
이 방법을 제안한 혈천도마부터 일화검존, 이안과 서대룡, 그리고 마군주 장호까지.
나머지 사람들에게 왜 풍천교주를 방문하는지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다. 그들이 의도적으로 뭔가 하기를 바라지 않아서였다. 오늘 자리는 설득이 필요없고, 감동을 줄 필요도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귀한 손님들이 함께 오셨구려. 잘들 오셨소이다!”
두 팔까지 활짝 벌리며 우릴 반기는 풍천교주는 만난 이래 가장 기분이 좋아 보였다.
족쇄 사내에게 크게 실언했었는데 벌써 화해를 한 걸까?
“갑자기 흥취가 나서 함께 있던 일행들과 함께 찾아뵈었습니다. 결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괜찮네. 이런 기회에 신교의 호걸들과 교류하는 것 아니겠나?”
“하해와 같은 마음이십니다.”
함께 온 사람 중에 가장 먼저 인사한 사람은 혈천도마였다.
“반갑소.”
“잘 오셨소.”
당연히 풍천교주는 마존들과는 익히 아는 사이였다.
“근래 이공자와 친분이 깊어졌다는 소식은 들었소.”
“잘못 들으셨소. 친분이 깊어진 정도가 아니라 내가 이공자 왼쪽 날개요.”
우리끼리는 날개 이야기를 농담처럼 편하게 주고받았지만, 혈천도마가 다른 사람에게 이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아마 족쇄 사내에게 자신은 이렇게 검무극을 신뢰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리라. 이런 모습을 보일지는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했으니, 함께 온 일화검존은 얼마나 놀랐겠는가?
그녀가 이 자리를 내켜 하지 않을 것을 알았지만, 이 기회에 혈천도마와 한 번이라도 더 보게 하려고 부탁했다. 그녀를 내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내 의지도 있었고.
잠시 놀란 얼굴로 혈천도마를 쳐다보던 일화검존이 풍천교주에게 말했다.
“그렇다고 제가 오른쪽 날개는 아니랍니다.”
어떻게든 혈천도마와 얽히고 싶지 않은 그녀의 의지였는데 풍천교주는 재치 있는 농담으로 받아들이며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이번에 청선이 마존이 되는 일에 큰 도움을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이공자를 믿고 한 일입니다.”
그녀는 내게 공을 돌렸다. 거기에 하나 더.
“그리고 큰 도움은 도마께서 주셨습니다. 저는 기권표를 얻어냈지만, 도마 선배는 온전한 한 표를 얻으셨지요.”
그녀는 구체적인 이름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도마 덕분에 한 표를 얻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밝혔다. 아무리 싫어하는 도마라지만 남의 공을 차지하면 마음이 불편해서 그냥 있지 못하는 게 그녀의 성격이었다.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당연히 일화검존이 한 표를 확보했고, 혈천도마가 기권표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혈천도마가 한 표를 확보했다고? 이 괴팍한 늙은이는 그래 놓고선 날 찾아와서 생색 한 번 안 냈다.
내가 혈천도마에게 전음을 보냈다.
―따돌림받으신다더니요?
―그게 불쌍해서 누가 도와줬나 보지.
―두 번만 따돌림받으시면 마존들 전부 꿇리시겠습니다.
―두 번 다시 부탁하러 다닐 일 없다.
―감사합니다.
―됐고.
풍천교주가 혈천도마에게 포권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내 친구보다 낫소.”
“애초에 강호에서 친구를 찾는 것이 이상한 일 아니겠소?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만났다 헤어졌다 하는 거지. 그렇게 사는 것이 여러모로 인생이 깔끔한 법이오.”
“좋은 가르침, 잊지 않겠소.”
그렇게 두 마존이 인사를 마쳤고 이번에는 장호가 그에게 인사했다.
“마군주 장호입니다.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용맹하신 마군주를 이렇게 뵙다니, 오히려 이 몸이 영광이외다.”
“새외지존을 뵙게 해달라고 이공자님을 졸랐습니다.”
“허명뿐인 이름이니 실망이나 하지 않으면 좋겠소이다.”
장호는 내 부탁을 듣고 이유도 묻지 않고 따라왔다. 어떤 일을 맡겨도 묵묵히 해낼 것 같은 이 믿음직스러움은 장호란 사람만이 가진 특별함이었다.
다음으로 서대룡이 인사했다.
“제가 이 자리에 끼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황천각 조사관 서대룡입니다.”
“자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네. 우리 이공자의 오른팔이라지?”
그러자 서대룡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정말 그런 말도 다 했습니까? 라는 표정에 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계신 걸 보니, 정말 다들 그렇게 여기나 보다.”
마지막으로 인사한 사람은 이안이었다.
“이공자님을 보필하는 이안이라고 합니다. 뵙게 되어서 영광이에요.”
“기세가 살아있는 눈빛, 참으로 오랜만이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수련 삼매경인 그녀의 기세는 요즘 한 자루 칼이었다.
누구라도 벨 것 같은 날카로운 기세.
이 예기를 어떻게 낮춰가는가가 앞으로 그녀의 과제였다.
“저기 서 조사관이 오른팔이라면 여기 이안은 제 심장과도 같은 사람입니다.”
내가 모두 앞에서 그렇게 말하자 이안이 당황했다.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지만, 나는 선포하듯 당당히 말했다.
“다들 알고 계십시오. 이안이 심장입니다.”
둘이 있을 때 말하는 것과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은 정말 하늘과 땅 차이만큼 다르다. 둘만 있을 때 할 수 있는 말이라면, 모두 앞에서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관계가 진짜 관계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 그런 관계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정말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이안을 만난 것은 내게 큰 행운이라 할 수 있다. 단지 회귀 전의 목숨 빚 때문만은 아니다. 아버지에게도 말했듯, 그녀가 훌륭한 사람이어서다.
꼬리를 아홉 개나 감추고 있다면서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
나와 친해졌기에 그 말을 밝혔지, 그렇지 않다면 그녀는 평생 여우임을 감추고 곰처럼 자신의 소임을 다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날 위해 몸을 던질 필요는 없다. 누가 날 높이 산다고, 그를 위해 희생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잊어선 안 돼. 그 둘은 확실한 별개라는 것을.”
상관과 수하에 대한 내 가치관이었다.
이안에게 한 말이지만 동시에 족쇄 사내에게도 한 말이기도 했다.
풍천교주가 감탄했다.
“이렇게 칭찬할 사람이 있다는 것이 부럽네.”
그의 어깨너머로 족쇄 사내가 보였다. 그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공자가 이렇게 수하 자랑을 하니 나도 그냥 있을 수 없군. 자, 나도 한 사람 소개하겠소. 저기 족쇄를 차고 있는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의 오른팔이오.”
나는 내심 놀랐다. 풍천교주는 지금까지 한 번도 족쇄 사내를 인사시킨 적이 없었는데, 오늘 소개한 것이다. 게다가 오른팔이라는 표현까지 하면서. 실언 이후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혈천도마가 대놓고 물었다.
“오른팔인 사람을 어찌 족쇄로 묶어 두셨소?”
“잠시라도 눈을 돌리면 승천할 사람이라서 억지로 붙잡아 두었소.”
“승천할 사람은 승천시켜 줘야 하지 않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더이다.”
혈천도마는 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이놈의 이무기들이 어찌나 제멋대로인지, 우리 같은 인간들은 쉬이 다룰 수가 없지요.”
그러면서 혈천도마가 나를 쳐다보았다. 보내 줄 사람은 풀어주라는 말을 하면서, 동시에 내가 승천할 용이라는 칭찬을 한 것이다.
혈천도마는 정말 눈치도 빠르고, 분위기 파악을 잘한다.
정말 한 십 년만, 아니 이십 년만 젊었어도 혈천도마를 군사로 삼았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는 펄쩍 뛰면서 절대 안 한다고 하겠지만.
그러는 사이 술상이 차려졌다.
우린 둘러앉아서 서로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나는 운명이 인간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운명은 우리에게 기회를 제공할 뿐이다. 그 기회를 판단하고 잡는 것은 사람에게 달렸다.
회귀에 대비해 많은 조사를 하고 대비했지만, 거기에 족쇄 사내는 빠져 있었다. 회귀 후 내 삶에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를 사람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괜찮다.
오히려 내가 미리 알고 준비하지 않았기에 이런 자리가 마련되었으니까. 내가 누구인지 알려줄 수 있는, 그래서 종국에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그런 자리 말이다.
오늘 자리의 첫 포문은 이안이 열었다.
몇 순배의 술이 돌았을 때, 이안이 조심스럽게 나섰다.
“저분에게 술 한 잔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그녀가 말한 사람은 족쇄 사내였다. 내가 시키지 않은 일이었다. 일전에 내가 그에게 술을 준 것 때문에, 풍천교주는 한 차례 큰 말실수를 했었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이안이 같은 제안을 하고 있었다.
풍천교주는 앞서 나에게 보였던 반응과는 달리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 사람도 좋아할 거네.”
확실히 달라졌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안이 술병과 잔을 가져가서 그에게 술을 따라 주며 정중히 물었다.
“무인께서는 이 종을 지키고 계시나요?”
대답하지 않을 것 같았는데, 뜻밖에 족쇄 사내가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그랬는데…… 이젠 종이 나를 지켜주고 있소.”
이 대답이 얼마나 귀한 대답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이안이 대화를 이어 나갔다.
“저랑 비슷하네요.”
족쇄 사내가 슬쩍 고개를 들어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제가 도련님을 지켰는데, 이제는 도련님이 절 지켜주시거든요.”
나는 보았다. 족쇄 사내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그래서였을 것이다. 이안이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 종은 무인께 떠나란 소리 안 하죠? 우리 도련님은 제게 자꾸 떠나라고 하세요. 내 삶을 살길 바란다고요. 정말 그래서일까요? 아니면 제가 싫어서 내보내시려는 걸까요?”
그러자 족쇄 사내는 또 그녀의 물음에 대답했다.
“싫어서 내보낼 사람을 두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내 심장이라는 말은 하지 않겠지요.”
족쇄 사내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이안의 질문에 벌써 두 번이나 대답을 하고 있었으니까.
애초에 이안의 질문이 그랬듯, 족쇄 사내의 대답 역시 이안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역시 그렇겠죠?”
이안이 내 쪽을 쳐다보았다. 나는 지금 그녀가 또 하나의 꼬리를 펼치고 있음을 느꼈다. 이렇게 자신들을 데리고 이곳에 온 이유가 이 남자와 관계가 있을 거라는 촉이 발동한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족쇄 사내와 이런 대화를 하지 않았을 테니까.
나는 심장을 두 번 두드린 후 그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안이 활짝 웃었다.
“너무 저러시니까 장난 같아서요.”
그때 앉아 있던 서대룡이 자기 술잔을 들고 그곳에 가서 합류했다. 너무 자연스럽게 움직여서 말리고 말고 할 것도 아니었다.
서대룡이 이안 옆에 앉으며 말했다.
“이 무인을 너무 걱정하셔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저를요?”
“네. 지금껏 각주님을 관찰한 결과 수하들이 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십니다. 험난한 도산검림을 떠나서 잘 살기를 바라는 부모 마음 같은 거죠. 저를 사부님께 무공을 배우게 한 것도 그런 걱정 때문이라고 생각하고요”
“아!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이안이 나를 다시 쳐다보았다. 비천검법을 전수받은 그녀였으니 당연히 그 말이 그럴듯하게 들렸으리라.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오해다. 앞으로 제대로 부려 먹기 위해서 가르치는 거다. 그렇게 순진하면 평생 이용당한다!”
그러자 서대룡이 그녀를 대신해 대답했다.
“일하다 보면 제대로 부려 먹는 사람 밑이 편할 때가 있습니다. 어설프고 우유부단한 수장 밑에 있으면 더 힘들죠.”
이안이 공감한다는 듯 술잔을 내밀었고 서대룡이 건배했다.
“서 조사관님은 우리 도련님을 왜 그리 좋아하세요?”
“제가 좋아하는 것처럼 보입니까?”
“그렇지 않다면 이 자리로 안 오셨을 거잖아요?”
이안은 서대룡의 성격을 한눈에 꿰뚫어 보고 있었다.
맞는 말이었다. 튀는 것 싫어하고, 위험한 것 싫어하는 그가 자진해서 이안의 옆자리로 간 것은 나름의 용기를 발휘한 것이었다.
“제가 오른팔이니까요.”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 한마디에는 서대룡의 많은 심경이 담겨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족쇄 사내가 고개를 들며 나직이 물었다.
“누군가 그 오른팔 자리를 차지하려 들면 어쩔 겁니까?”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라 그가 먼저 꺼낸 말이었다. 그 첫 말은 너무나 도발적이었다.
생각지 못한 질문에 서대룡은 깜짝 놀랐다. 치렁치렁 내려온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족쇄 사내의 눈빛이 강렬했다.
뭐라 답을 할까 복잡한 심경이 표정에 드러나더니 이내 서대룡이 차분히 대답했다.
“제가 소심하고 겁이 많아서 맞서 싸우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차지하라고 하십시오. 저는 그런 날을 대비해서 다른 사람의 오른팔이 되려고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다행히 사람들마다 오른팔은 있어서요.”
그 대답에 도발적이던 족쇄 사내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한편 그 너스레의 주인공이 자신임을 알았기에 혈천도마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혈천도마를 보며 말했다.
“잘 키우십시오.”
“싫다.”
그때 마군주 장호가 그들 쪽을 쳐다보며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냈다.
“다음 오른팔 후보로 내가 줄 서 있소. 서 조사관은 사람이 좋아서 그 자리를 넘길지 몰라도 나는 아무에게나 오른팔 자리를 넘기진 않을 것이오.”
장호가 새로운 면모를 드러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