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1000
997화. 원력(愿力)
고공에 서 있던 초범 강자 다섯은 산꼭대기 숲 전체가 일제히 허리를 굽히는 걸 보았다. 성벽에 근접한 민가도 전부 무너졌다.
남성 서쪽으로 불빛이 움직이며 개미처럼 작은 사람 형체들이 성문 방향으로 급히 도망치는 것이 보였다. 셀 수도 없는 인파였다.
그리고 물러난 승병, 선사, 성 방어군은 질서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핏빛이 흩어지며 20장(丈) 높이의 우뚝 솟은 법상이 천천히 허리를 폈다.
몸 전체가 새까맣고, 등에는 근육질 팔이 12쌍이나 있었다. 미간에는 검은 불꽃 자국이 빛났으며 머리 뒤쪽엔 이글이글한 불의 고리가 타올랐다. 얼굴은 조각상처럼 어떠한 표정도 없었다.
힘과 악의 화신처럼 모든 혈육에 공포스러운 괴력이 깃들어 있었다. 주변은 사악하고 기이하며 무시무시한 오염된 기운으로 가득했다.
허칠안은 한순간 빙고에 떨어진 듯 온몸에 추위를 느꼈다. 모공들도 일제히 벌어져 식은땀이 뚝뚝 떨어졌다.
무시무시한 위력에 오염된 게 아니었다.
허칠안이 지정된 것이었다. 신수가 바로 그를 지정했다.
이에 관해선 허칠안도 깨달음을 얻었다.
‘신수가 미쳤어. 절박하게 자신을 보완하려는데 내 몸에 단수가 있으니.’
다음 순간, 거대한 그림자가 허칠안을 뒤덮었다.
20장(丈) 높이의 그 법상이 소리 소문 없이 허칠안 앞에 나타나, 12쌍 팔로 주먹을 쥐고 동시에 내리쳤다.
‘엄청 빠르다! 그림자 도약을 할 틈이 없어…….’
허칠안은 즉시 결단을 내렸다.
부도보탑이 진옥의 힘을 뒤흔드는 동시에, 허칠안 미간에 금칠이 반짝이더니 빠르게 전신을 물들였다. 그와 함께 머리 뒤쪽 불의 고리가 폭발했다.
쿵!
뒤이어 역고는 난폭한 상태에 진입했다. 온몸의 근육이 팽창했고 체격은 2배로 장대해졌다.
허칠안은 곧 태평도와 진국검을 교차해 내리쳤다.
펑!
도검이 하늘로 치솟아 먼 곳으로 발사됐다.
금빛과 불빛이 서로 뒤엉켜 폭발하며, 금강신공이 그대로 무너졌다.
허칠안은 눈앞이 캄캄해져 순간 의식을 잃었다.
그는 정신을 차린 뒤에는 몸이 유성처럼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날아가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것도 거꾸로 날아가고 있었다.
허칠안의 두 팔은 이미 직감을 잃고 무력하게 축 늘어져 있었고, 온몸의 뼈도 다 부서져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쿵!
허칠안은 먼 곳에 있는 산에 세차게 부딪쳤다.
그 여파로 산사태가 일어났다.
막 추격해가려던 신수 법상은 갑자기 몸이 굳어버렸다. 마치 누군가 나무 몽둥이로 몸을 연거푸 때리는 것처럼 떨림도 이어졌다.
옥쇄!
허칠안은 상처를 되돌려주며 신수의 박자를 끊고 숨 돌릴 틈을 찾았다.
도액 나한은 양손을 합장하고 천천히 말했다.
“아미타불! 구미천호 시주님, 신수는 여러분이 부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시주님은 그의 무시무시함을 전혀 몰라요.”
구미천호의 눈동자에 붉은빛이 스쳤다. 그녀는 아소라와 도액을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
“상대의 창으로 상대의 방패를 공격하다니, 불문은 손익을 참 잘 따지는군. 본좌는 신수가 왜 이렇게까지 통제를 잃은 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아소라가 도액 나한과 좌우로 구미천호를 둘러싸곤 천천히 말했다.
“이건 광현 보살만이 안다. 너희 말이 맞다. 신수는 확실히 내가 다스릴 수 있는 자가 아니지. 하지만 마찬가지로 너희가 다스릴 수 있는 자도 아니다. 두 대사께서는 자업자득이라는 이치를 아시는지?”
은발 미인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빙그레 웃음을 그렸다.
“너희는 허칠안을 너무 얕봤어.”
그때, 신수의 법상이 마치 목표를 잃은 듯 무너진 산 상공을 좌우로 둘러보았다. 그는 더는 자신의 나머지 사지 기운을 감지할 수 없었다.
스스로를 보완하려는 본능을 따라 정혈을 갈망하던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시선이 향한 곳은 세 명의 초범경 고수들 쪽이었다.
솨…….
도액 나한, 웅왕, 아소라, 구미천호는 식은땀이 흘렀다.
특히 아소라, 웅왕, 구미천호는 위기 예감을 지닌 자들로, 현재 신체의 모든 세포가 포효하고 모든 신경이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도액 나한보다 더 중후하고 순수한 이 무사들의 기혈이 바로 신수의 주된 목표였다.
아소라는 슬그머니 몸을 팽팽하게 조이며 강건한 근육에 힘을 축적했다.
그는 자신이 신수의 최우선 목표임을 예리하게 직감했다. 수라 정혈은 신수에게 치명적인 매력이 있었다.
갑자기 저 멀리 높고 거대한 법상이 까닭 없이 사라졌다.
다음 순간, 아소라 뒤에서 12쌍 팔이 뻗어 나왔다.
마치 파리지옥의 벌어진 이빨 같았다.
신수 법상은 어느새 아소라 뒤에 나타났다. 법상의 새까만 얼굴은 무표정이었으나 악의가 넘치는 표정보다 더욱 음침하고 공포스러웠다.
아소라는 소리 없이 무너져 내린 뒤 지옥에서 뻗어 나온 듯한 12쌍 팔이 모아지기 전, 아래쪽에서 포위를 벗어났다.
아소라의 눈에 옅은 금색의 희미한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천리안이었다.
그는 바로 이 신통력으로 신수의 움직임을 미리 포착했고, 적기에 반응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허칠안과 같은 신세였을 터였다.
추락하는 과정 중, 아소라의 머리 뒤에 화려한 광륜이 떠올랐다.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첫 번째 계율, 불살생(不殺生)!”
도액 나한이 합장하니 머리 뒤쪽 광륜이 부각됐다. 그도 천천히 말했다.
“첫 번째 계율, 불살생!”
갑자기 신수 법상이 발산하던 사악한 기운이 어느 정도 수그러들고 정신적 오염이 약간 감퇴했다.
두 나한이 힘을 합쳐 드디어 가까스로 신수에게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 순간, 구미천호는 잠시 망설였다. 이대로 신수가 아소라를 사냥하도록 방임하면 아소라는 죽는다.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하지만 그리 되면 도액 나한만 남는 것인데, 그 상황에선 더 이상 풍랑을 헤칠 수 없었다.
그녀는 반드시 요족을 이끌고 남강에서 도망쳐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그녀가 신수의 사냥감이 될 터였다.
또한 이 역시 요족이 조만간 신수의 ‘사용권’을 잃게 될 것을 의미했다. 신수가 없으면 요족은 복국할 수 없었다. 설사 만요산을 되찾는다고 해도 결국에는 불문에게 다시 점령될 것이었다.
아니, 통제를 잃은 신수는 본능에 따라 남강에서 미친 듯 학살하며 정혈을 빼앗을 테고 이곳은 장차 구주의 금지구역이 되고 말 터였다.
요족은 이제 만요산을 공격해 점령하는 것조차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구미천호는 비로소 광현 보살의 진짜 의도를 깨달았다.
불문이 요족의 거사를 대응하는 방책은 대윤회법상의 힘으로 신수가 통제를 잃고 미치광이가 되도록 만들어 남강을 금지구역으로 만들고, 요족의 복국 계획을 무산시키는 것이었다.
그 후엔 운주 반란군을 도와 대봉을 전복해 중원의 전쟁을 해결하고, 1품 술사로 승직한 허평봉과 가나수 보살이 신수를 제압한 후 분시(分尸)해 봉인한다면 십만대산은 여전히 불문의 것일 터였다.
그러나 불문의 계획을 알아도 구미천호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었다.
대윤회법상은 왜 신수를 통제 불능으로 만든 것인가?
어쨌든 지금 구미천호에게 시급한 건 신수를 봉인하거나 이성을 회복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결말은 처참한 패배뿐이었다.
8개 여우 꼬리가 바람을 맞으며 부풀더니 온 하늘을 가리는 큰 구렁이로 변했다. 구렁이는 밤하늘을 스쳐 굳은 상태의 신수를 둘둘 휘감았다.
신수 12쌍의 팔은 힘을 내 여우 꼬리의 속박을 천천히 벌렸다.
구미천호의 새하얀 얼굴이 갑자기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몸을 가볍게 떨었다. 관자놀이의 핏줄까지 섰다.
쌍방은 힘을 겨루고 있었다.
다행히 구미천호는 요족이라 기력이 무쌍했다. 다른 체계의 초범 고수였다면, 애초에 신수와 팔씨름을 할 수도 없었을 것이었다.
기회를 잡은 아소라는 나지막이 울부짖었다. 머리 뒤 광륜이 몸속으로 무너지며 오색찬란한 빛을 내는 사리자 한 알이 머리 위에서 솟아올랐다.
이는 무려 살적과위의 사리자를 상징했다.
아소라는 손을 뻗어 사리자를 손바닥에 쥐었다.
주먹에서 눈부신 빛이 발광하며 밤하늘을 아름답게 비췄다. 일순간 만요산 지계에 스산한 기운이 가득 찼고, 날짐승, 들짐승, 나무와 풀까지 다 죽었다.
“허!”
아소라의 포효와 함께 화려한 빛을 발하는 그의 주먹이 신수의 미간을 정확하게 명중했다.
하늘과 땅 사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잔잔한 물결이 퍼지며 아래쪽 산봉우리를 비추었다. 형형색색의 기괴한 형상이었다.
신수는 뒤통수 쪽 불의 고리가 터져 흩어지고, 미간은 균열이 일었으며 화염 자국까지 다 훼손되었다.
격노한 신수는 귀청 떨어질 만큼의 포효를 질렀다.
뻑! 뻑! 뻑…….
신수 법상을 휘감았단 여덟 개 여우 꼬리가 차례로 끊어졌다.
결국 엄청난 상처를 입은 듯 구미천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하지만 끊어지고 갈라진 여우꼬리는 마치 생명이 있는 듯 떨어지지 않고 구미천호의 뒤로 날아와 스스로를 연결했다.
곧이어 신수의 12쌍 팔이 사방팔방에서 아소라를 뒤덮었다. 겹겹이 쌓아 그를 손바닥으로 가렸다.
이때, 도액 나한 머리 위에서 사리자 한 알이 떠올랐다.
사리자는 금빛 찬란하게 부유한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첫 번째 소원, 아소라가 내 옆에 있길 원합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온 하늘을 가리는 손바닥에 뒤덮여 있던 아소라의 형체가 도액 나한 옆에 나타났다.
펑!
기기가 겹겹이 터지는 가운데 신수의 손바닥들이 함께 나섰으나 아무것도 내려치지 못했다.
남법사의 사리자는 ‘응공(*應供: 부처를 일컫는 말)’ 과위의 사리자로, 첫 번째 남법사 주지가 환생하여 다시 수행할 때 남긴 것이었다.
허칠안과 손현기가 신수의 두 다리를 빼앗던 그날 밤, 아소라는 ‘응공(*應供: 부처를 일컫는 말)’ 사리자에게 자신과 같은 조력자를 원한다고 소원을 빌었었다.
이 사리자는 지난 수백 년간 줄곧 남법사에 바쳐져 참배 세례를 받았다.
신도들은 성심성의껏 공물과 제물을 바쳐 원력(*愿力: 부처에게 빌어 원하는 바를 이루려는 마음의 힘)을 쌓았다.
원력이 충분할 때 응공 과위는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신자들의 바람을 만족시켰다. 원력은 한결같은 성질이 아주 강해서 오직 제물을 바친 자에게만 보답했다.
도액 나한은 이 사리자에게 제물을 바친 시간이 길지 않았다. 그래서 원력에 한계가 있어 다섯 가지 바람만 만족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줄곧 비장의 패로 남겨두었던 이유였다.
이 다섯 가지 바람은 당연히 합리적인 범위 내여야만 했다. 한도를 초과할시,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때, 흑백이 뒤섞인 털을 지닌 웅왕이 나는 듯이 팔다리를 벌렸다. 그는 꼭 뚱뚱한 공성추(攻城錘)처럼 신수를 향해 돌격했다.
땅!
웅왕이 두 발로 신수의 미간을 세차게 강타해 균열을 악화시켰다.
공격을 받은 신수는 본능적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퍽!
주먹은 웅왕의 포동포동한 복부에 명중했다.
주먹은 식철수의 몸을 뚫고, 뒤에서 사나운 광풍이 되었다.
웅왕은 방금 전 허칠안처럼 포탄이 되어 발사됐고, 먼 곳에 있는 산봉우리에 부딪혀 산사태를 일으켰다.
도액 나한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웅왕이 신수 법상에게 달려들 때, 도액의 소매에선 99알의 염주가 튀어나왔다.
띵! 띵! 띵…….
염주는 서로 부딪치며 한 줄로 꿰어졌다.
꼭 가느다란 검 한 자루 같았다. 눈부신 빛이 반짝이는 검 한 자루.
곧이어 도액 나한이 손을 밀자 검이 유채색의 흐르는 빛으로 변했다.
그는 양손을 합장하고 말했다.
“두 번째 소원, 이 수의 위력이 배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르르……. 쾅! 쾅!
밤하늘에 먹구름이 겹겹이 쌓이더니 굵직한 나무 형태의 번개가 내리쳐 염주 세검(細劍)에 겹쳐졌다.
염주 세검의 비행 속도는 급격히 빨라져 은색 불꽃을 잡아끌었다. 염주는 날카롭게 울부짖으며 신수 법상의 미간을 꿰뚫었다.
쾅!
법상의 머리가 터졌다. 다만, 피와 살이 없어 순수한 역량으로 흩어졌다.
머리 없는 법상은 그대로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