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1001
998화. 나는 누구인가
‘미치광이 아버지를 구하려고 딸과 아들이 여든 노승과 결탁해서 아버지 머리를 폭파했네……. 정말 효자 나셨네, 효자 나셨어.’
한 폐허에서 이 전투를 방관하던 허칠안이 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뒤이어 그가 깨어난 웅왕에게 말했다.
“자네도 왔군.”
신수의 주먹에 맞은 뒤 허칠안은 옥쇄를 빌려 신수의 공격 흐름을 끊고, 천고의 ‘이성환두’ 능력을 이용해 자신의 기운을 감췄다.
그리고 그림자 도약으로 밀림 속에 몸을 숨겼다.
신수의 후속 추격을 피한 허칠안은 화근을 다른 쪽으로 넘겼다.
그 죗값은 도액 나한과 아소라가 모조리 다 받았다.
그렇게 흥미진진하게 구경하던 차에, 갑자기 박살난 웅왕이 왔다.
“아파 죽겠군…….”
웅왕이 낮은 소리로 신음했다.
허칠안은 그를 위로했다.
“괜찮네, 누워 있게. 내가 이미 자네 대신 기운을 감추었으니.”
“자네 탑을 왜 쓰지 않는가? 상처를 치료할 수 있을 텐데.”
웅왕은 의아한 얼굴을 했다. 표정도 좀 어리숙하고, 입에서는 피도 내뿜고 있어 어떻게 봐도 참 불쌍해 보였다.
“그럼 목표가 드러날 걸세.”
‘……일리 있군.’
웅왕은 허칠안의 설명을 받아들였다.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상처를 치료하고 회복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쯤 되면 허칠안은 줄행랑을 쳐도 그만이었다. 깔끔하게 화근을 다른 쪽으로 돌려 아소라 혹은 도액을 해치우면 되지 않은가.
허칠안은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신수는 침착해져야지. 그리고 요족에게 장악당해야만 남요가 십만대산의 후속 전역을 버티며 불문을 견제할 수 있어. 만약 내가 정말로 가버리면 그건 망하는 거야. 일부 전투에서는 이겼어도 전체적으로 지는 셈이지. 아, 대빵들과 겨루는 건 정말 지치는 일이야. 반드시 한 걸음 걸을 때 열 보를 내다봐야해.’
그는 구미천호도 이 점을 깨달았으리라 믿었다. 그렇기에 나서서 신수를 저지하고 한동안 도액 나한과 아소라와 손을 잡았을 것이다.
‘근데 문제는 아소라, 도액이 분명 지금 후퇴를 생각할 거란 말이지…….’
꼼꼼하게 관찰한 결과, 허칠안은 신수가 통제 불능이 된 뒤에 완전히 본능에 따라 전투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어떠한 기교도 없었다.
웅왕에게 공격당했을 때, 신수는 기회를 틈타 통제하는 게 아니라 본능에 따라 반격했다. 그런 뒤 정혈을 삼켰다.
‘머리가 없으니 좋네. 머리가 없어져야 상대하기가 좋지…….’
그때였다. 허칠안은 신수 법상의 머리가 다시 응집된 걸 보았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공중에 있는 3명, 수풀 속에 있는 둘, 현장에 있는 초범 다섯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저것이 바로 반보 무신이었다. 불완전하고, 통제를 잃고 본능만 남아 전투하고 있다고 해도, 그는 여전한 반보 무신이었다.
‘정말 저속한 무사군…….’
허칠안은 이를 악물었다. 이제야 다른 체계가 초범 무사를 마주했을 때 왜 이를 부득부득 갈며 치를 떠는지 절실하게 체득했다.
아소라, 도액, 웅왕, 구미천호가 방금 뜻이 통해 신수 법상의 머리를 손쉽게 깨부쉈다고 해도, 사실 신수는 근본적으로 큰 상처를 입지 않았다.
그에 반해 아군 측의 내구도는 아주 낮았다. 조심하지 않으면 법상에게 잡혀 산채로 정혈이 뽑힐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다른 체계의 초범이 초범 무사를 칠 때의 소감 아니겠는가.
* * *
아소라는 신마 같은 법상을 보며 빠른 속도로 말했다.
“사리자에게 이곳을 떠나자고 소원을 빕시다.”
‘응공’ 과위의 위격으로 전송 진법을 모방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도액 나한은 일찌감치 싸우겠다는 생각을 버렸기에 더는 망설이지 않고 세 번째 소원을 말했다.
“세 번째 소원, 나와 아소라가 아란타로 돌아가길 원합니다.”
순간, 사리자가 밝아지더니 다시 어두워졌다.
하지만 둘은 여전히 제자리에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조금씩 밤하늘이 먹처럼 새까매진 것을 알아차렸다. 달은 어디로 숨었는지 알 수 없었다.
갑자기 안색이 급격히 나빠진 아소라가 천천히 말했다.
“수라 영역! 이건 그가 세운 영역이다. 그가 기억 일부를 되찾았군.”
수라 영역은 전임 수라왕이 만든 기술로, 수라왕만의 고유 기술이었다. 아들인 아소라도 이 수를 익히진 못했다.
그의 영역 안에선 사냥감은 도망칠 곳이 없어 죽거나 반대로 적을 죽였다.
도액 나한의 얼굴이 굳었다.
이는 그들이 관여하지 않을 수 없음을 뜻했다. 이제는 신수를 해치우거나 그에게 제거당하는 길뿐이었다. 하지만 양측의 전투력 차이를 보면 확실히 신수에게 제거당하는 쪽으로 추가 기울었다.
‘수라 영역…….’
생각이 번뜩인 구미천호가 소리 높여 말했다.
“신수! 네가 바로 수라왕이고 수라왕이 바로 신수다.”
그녀는 신수의 자아 인식이 깊어지도록 하여 이성을 각성시키려 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신수 법상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는 몸을 반쯤 돌리고 아소라를 향해 12쌍의 팔을 동시에 펼쳤다.
* * *
‘일 났다. 신수를 죽이는 건 현실적이지 않아. 할 수 없어. 신수를 제압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아, 어떻게 해야 할까…….’
허칠안은 자신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선 법보, 빽, 수법이 차례로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봉마정이 떠올랐다.
‘봉마정이 신수를 봉인할 수 없는 건 틀림없어. 그렇지 않고선 신수가 불문 때문에 분시돼 각지에 봉인됐을 리가 없잖아. 신수를 제압할 수는 있겠지만, 문제는 봉마정을 그 몸에 어떻게 집어넣느냐 인데…….’
머리를 굴리는 사이, 허칠안은 갑자기 졸음이 몰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옆에 있는 웅왕이 끄덕끄덕 졸고 있었다.
‘제기랄! 하마터면 땅에 박힐 뻔했잖아!’
허칠안은 깜짝 놀라 온몸에 식은땀이 났다. 그는 얼른 웅왕의 몸에 올라타 귀를 잡고 흔들며 난리를 쳤다.
웅왕은 비로소 정신을 좀 차리고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나 졸리네. 어떤 때는 나도 졸음을 절제할 수가 없다고.”
허칠안은 문득 한 생각이 번뜩였다.
“우선 자지 말고 이따 내가 자라고 하면 그때 자게.”
웅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선을 다하지.”
* * *
허칠안은 그림자 도약을 빌려 사람들 아래쪽 밀림에 접근했다.
거리를 좁힌 그가 심고의 힘으로 원거리 전음을 했다.
“여러분, 제게 그를 제압할 방법이 있습니다만…….”
교전하던 아소라, 도액, 구미천호가 동시에 귀를 기울였다. 잠시 정신을 집중해 경청하던 그들은 점차 눈을 반짝였다.
이내 아소라, 도액의 머리 뒤에서 동시에 화려한 광륜이 빛났다.
그들은 동시에 합장하고 획일적인 어조로 말했다.
“첫 번째 계율, 불살생!”
두 2품은 다시 힘을 합쳐 계율에 영향을 가했다.
막을 수 없는 신수의 주먹이 돌연 굳었으나, 1초도 채 되지 않아 계율의 영향에서 벗어났다.
1초도 채 되지 않는 그 시간 동안, 8개 여우 꼬리는 이미 썼던 방식을 다시 시전했다. 거대한 구렁이처럼 팽창해 높고 거대한 법상을 휘감았다.
동시에 허칠안은 웅왕을 들고 숲에서 하늘 높이 날아올라 신수를 향해 웅왕을 힘껏 투척했다.
웅왕 식철수는 신수의 3장(丈) 밖에 떨어졌다.
허공에 뜬 식철수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깊이 잠만 잤다.
한창 구미천호와 힘을 겨루다 조금씩 속박을 벗어나고 있던 신수 법상은 갑자기 거대한 졸음이 해조처럼 밀려들었다. 졸음은 아예 원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듯 자꾸만 머리를 떨구고 잠을 자고 싶어졌다.
물론 신수는 절대로 자지는 않았지만 분명 발버둥 치는 힘은 줄어들었다.
3중 통제!
식철수 투척 후, 허칠안의 손짓에 저 멀리 밀림에서 진국검이 절로 날아와 그의 손으로 떨어졌다.
허칠안은 검을 들고 긴 무지개로 변해 법상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슥- 슥-
진국검의 검 끝이 칠흑같이 새까만 가슴에 닿으며 불꽃이 튀었다. 동시에 정신을 착란시키는 날카로운 울림이 전해졌다.
‘뚫려라, 뚫려라…….’
허칠안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이마에 핏줄이 불거졌다. 역고는 광화(狂化)에 진입했고 이에 따라 온몸의 근육도 팽창했다.
검 끝이 마침내 피부를 찔렀다.
이를 본 도액 나한은 양손을 합장하고 네 번째 소원을 얘기했다.
“네 번째 소원, 이 검으로 가슴을 찌르겠습니다.”
그 즉시 진국검의 빛이 일정 정도 커지며 검 끝이 혈육을 찔렀다.
‘충분해…….’
허칠안의 얼굴에 뜨거운 피가 튀었다.
그가 진국검을 뽑아 들자, 왼손 소매 속에 준비한 봉마정이 미끄러져 나왔다. 허칠안은 그것을 손끝에 끼우고 손바닥으로 신수의 가슴을 쳤다.
신수의 몸에 봉마정 절반이 박혔다.
극심한 고통으로 신수는 졸음에서 완전히 깨어났고, 수라 정혈이 들끓었다. 위기 속에서 그는 더 강한 힘을 폭발시켰다.
탁! 탁! 탁…….
팽팽하게 조여진 끈 같은 굵직한 여우 꼬리 8개가 끊어졌다. 구미천호는 고통스러운 나머지 얼굴에 경련을 일으켰다.
뒤이어 신수의 주먹이 허칠안을 날렸다.
땅!
마치 모래주머니를 터트리는 듯했다.
아소라는 좌측에서 덮쳐 봉마정 절반을 넣으려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그 역시 신수의 주먹에 맞아 날아가는 신세가 되었다.
뒤이어 방금 꼬리를 이은 구미천호는 우측에서 습격하였으나 마찬가지로 가까이 가지 못하고 신수의 두 주먹에 맞아 날아갔다.
참 태산과도 같은 부성애였다.
신수 대사는 사이좋게 왼 주먹은 아들을, 오른 주먹으론 딸을 때렸다.
띵! 띵! 땅! 땅!
도액 나한의 99알 염주는 아름다운 불꽃처럼 신수의 주먹에 부딪혔다.
24개의 손은 바람도 통하지 않는 빽빽한 방어망을 형성했다.
그들의 자폭에 가까운 공격이 허칠안에게 기회가 되었다.
허칠안은 이성환두로 기운을 감추고, 신수 겨드랑이 아래 그림자를 뚫고 나왔다. 신수가 제때 알아챌 수도 없었다.
땅!
허칠안은 주먹을 쥐고 직격타를 날렸다. 봉마정 머리 부분을 쳐서 신수 몸속에 완벽하게 넣는 데 성공했다.
일을 마치고, 허칠안은 바로 그림자에 녹아들어 먼 곳으로 도망쳤다.
도액, 아소라, 구미천호는 삼각지세(三角之勢)를 갖추고 신수를 포위했다. 하지만 계속 공격을 이어가진 않았다.
현재 신수 법상은 굳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도액 나한 외, 허칠안을 포함한 초범 넷의 기력 소모가 심각했다. 전투력도 어느 정도 떨어졌다.
그중에서도 허칠안과 아소라의 전투력 하락이 가장 심각했다.
허칠안은 대윤회법상 힘에 침식된 것이 치명타였다. 그는 지금 7살짜리 아이에 불과했다. 오히려 나중에 신수에게 주먹으로 맞은 건 큰 문제도 되지 않았다. 고작 치명상일 뿐이었다.
그리고 아소라는 신수에게 정혈 절반을 빼앗겼다. 죽었다 다시 살아난 뒤에 연속으로 목숨을 건 대전을 치렀으니 기진맥진한 것도 당연한 얘기였다.
‘봉마정으로 신수가 이성을 회복할 수 있길 바라야지. 그렇지 않으면 이제 고전을 치르겠지.’
허칠안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방금처럼 강한 적과 맞닥뜨리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봉마정은 틀림없이 신수를 제압하고 그의 실력을 약화시킬 수 있었다. 만약 봉마정으로 신수가 이성을 회복하지 못한다고 해도, 후속 전투는 방금처럼 위험하고 고달프지는 않을 터였다.
만약 신수가 스스로 주문을 외워 봉마정을 뽑아낼 수 있다면, 그가 이미 정신을 차렸고 사람들의 목적 역시 달성했음을 의미했다.
계속해서 긴장을 늦추지 않고 주시하는 가운데, 먼저 공중에 뒤덮였던 영역이 수축되고 이에 따라 신수의 법상 역시 수축했다.
다시 사람들 앞에 머리와 오른팔이 없는 신수가 나타났다.
웅왕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그를 방해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었다.
신수가 계속 ‘잠자는 저주’의 영향을 받는 건 모두의 공통된 인식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신수의 중얼거림을 듣고 도액 나한, 아소라, 구미천호, 허칠안 모두의 낯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아직도 회복하지 않았다고?!’
뒤이어 그들은 신수가 고통스러워하며 하는 말을 들었다.
“생각났다. 나는 수라왕이 아니다. 나, 나는 부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