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1003
1000화. 복국
허칠안이 계속해서 말했다.
“만약 부처가 봉인을 벗어나고자 수라왕의 정혈을 연화해 몸을 다시 만들고 수행했다면 소원을 빈 건 그저 핑계일 것이다. 부처가 진정 원하는 건 남강 요족의 기운이다. 그것이면 유성의 봉인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지.”
구미천호는 바로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아니, 불문의 목적은 이미 달성됐네. 만약 자네가 말한 것과 같다면 신수는 일찌감치 제자리로 돌아가 부처가 되었겠지.”
허칠안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만약 아란타에 있는 그 부처가 또 다른 사람이라면요?”
이 간단한 말에, 초범 강자 셋은 솜털이 곤두서고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렇다면 신수가 부처라 자칭하는 행위가 아주 잘 설명되었다.
갑자탕요 때 만요국과 함께 몰락한 건 진짜 부처. 그리고 지금 아란타의 그분은 부처의 칭호를 도용한 존재인 것이다.
계속해서 허칠안의 말이 이어졌다.
“이렇다면 신수의 소원이 왜 남요를 도화하는 건지 설명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갑자탕요로 변했지만. 이는 부처의 본래 의도가 아니라 누군가 뒤에서 밀어붙인 겁니다. 신수는 그해 불문을 적으로 삼아 그 존재와 맞섰던 겁니다. 이 추측을 검증하려면 갑자탕요의 도화선을 이해해야 합니다.”
도액 나한에게 시선이 쏠리자, 그가 살짝 고개를 저었다.
2품 나한조차 모른다면, 허칠안의 추측에 더욱 힘이 실렸다.
“두 번째 가능성, 신수와 부처는 같은 사람이다. 칠백여 년 전, 부처가 1차로 봉인에서 벗어나 수라왕 정혈을 연화해 신수가 생겼다. 하지만 남요를 대하는 문제로 그들 사이에 분열이 생겼고, 지금의 이 결과를 야기한 것이다. 부처가 결국에는 이겨 남강 십만대산을 점령했고, 마침내 유성 봉인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신수의 존재로 부득이하게 자신을 봉인해야 했고, 그리하여 깊은 잠에 빠진 것이다.”
허칠안의 두 번째 추측은 지금 얻은 단서를 근거로 하여 차근차근 따져본 것이었다. 사실 그는 이 가능성에 더 무게를 뒀다. 일찍이 부도보탑 안의 단수가 부처는 신의를 저버린 소인배라고 말한 적 있기 때문이었다.
도액 나한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한 사람이 두 사람으로 분화된다니. 불문은 도문이 아니다. 이 방면으로는 신통력이 없어. 3대 과위, 9대 법상 모두 이런 일을 하지 못한다.”
‘네가 그렇게 말하면 그 일 배후의 진상이 더 복잡해지잖아…….’
허칠안이 말했다.
“두 번째 추측을 검증하는 건 아주 간단하다. 도액 나한이 아란타로 돌아간 뒤 유성의 조각상이 아직 있는지 없는지 보면 된다. 음, 유가 성인의 조각상을 찾아보는 거지. 만약 조각상이 아직 있다면 첫 번째 추측이 정확하다. 조각상이 없거나 찾을 수 없다면 두 번째 추측이 답일 테고.”
도액 나한과 아소라는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지금 내 수련 경지는 3품 초기까지 떨어졌어. 아소라는 나보다 약간 강하고, 도액 나한은 그래도 2품 수준이지. 마마가 입은 부상이 심하지 않고, 웅왕도 있으니 우리 쪽 승산이 아주 약간 높아. 신수는 확실히 미친 거 같고. 진짜 싸우기 시작한다면, 양쪽 다 손해가 막심할 거야…….’
허칠안이 말했다.
“그렇다면 이만?”
도액 나한은 또 아소라와 눈을 마주친 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만!”
‘아주 좋아, 아주 좋아. 모두 살고자 하는 욕구가 대단하군. 초범까지 수행하는 게 쉽지는 않았겠어…….’
허칠안은 안도의 한숨을 쉰 후 즉시 부도보탑을 몰아 허공을 갈랐다.
이윽고 구미천호 허리 뒤쪽 여우 꼬리가 길게 뻗어 나오더니 웅왕과 신수를 감싸고 허공을 밟으며 빠르게 사라져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만요국 요병도 깊은 산속으로 돌아갔다.
* * *
은폐된 어느 석굴에 한창 모닥불이 활활 타올랐다. 검은 연기는 석굴 꼭대기 갈라진 틈으로 솟구치고 있었다.
이곳은 남강에 있는 만요국 거점 중 하나로 ‘천굴성(千窟城)’이라 불렸다.
석굴 안으론 더 깊은 곳으로 통하는 복도가 세 갈래로 나 있었다. 동굴과 복도는 거미줄처럼 산허리까지 널리 퍼져 있었는데, 바깥에는 독충, 맹수, 장기, 빈틈없는 하류가 엄호하고 있어 아주 은밀했다.
여긴 단 한 번도 발각된 적이 없었다. 원시림과 험준한 산, 하류가 널리 퍼진 십만대산에서 요족의 은폐된 거점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복도를 빠르게 지나치는 한 여인이 있었다.
야희였다.
그녀는 품에 한 여자아기를 안고 있었고, 어깨에는 백희가 서 있었다.
곧이어 석굴에 발을 들여놓은 야희는 아리땁고 화려한 한 낭자를 보았다. 그녀는 주춧돌에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은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마마, 어서 청희를 구해주세요…….”
야희의 목소리가 갑자기 멎었다. 가까이 걸어가서야 그녀는 침상 옆 부들방석 위에 가부좌를 튼 대여섯 살의 아이를 발견했다.
구미천호는 저도 모르게 둔부 위쪽의 고 짧고 작은 여우꼬리를 털더니 눈을 뜨고 담담하게 말했다.
“괜찮아, 내일이면 회복될 거다.”
야희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뒤이어 그녀는 계속해서 아이를 쳐다보다가 한번 떠보듯이 물었다.
“허랑?”
사내아이는 순진무구하게 눈을 깜박이더니 구미천호를 돌아보았다.
“어머니, 저 여인은 누구예요?”
구미천호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어미가 네 대신 키우는 민며느리란다.”
갑자기 여덟 개 여우 꼬리가 발사되어 허칠안을 휘감았다. 여우 꼬리 하나는 내친김에 허칠안의 허리띠도 풀려고 했다.
“마마! 마마! 할 말 있으시면 좋게 하세요!”
허칠안이 다급히 외쳤다.
구미천호는 여전히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가 하나 더 늘었군. 어미가 아이 엉덩이 정도는 토닥일 수도 있지.”
결국 그녀도 허칠안의 바지를 벗기지 않고, 여우 꼬리로 그의 엉덩이를 힘껏 때리는 선에서 마무리 지었다.
“……허랑, 언제 회복할 수 있어요?”
야희가 아기를 안고 빠르게 다가왔다. 늘 생기발랄하고 매혹적인 여우 눈이 걱정으로 가득했다.
허칠안은 탄식과 함께 말했다.
“이틀 후면 저절로 회복될 것이오. 그대가 요족 호법들을 시켜 각지 요병을 안정시키시오. 3일 후면 만요산을 탈환할 것이오.”
야희는 곧바로 아기를 안고 왔던 복도로 떠났다.
허칠안은 석굴 내 단순한 장식을 한 바퀴 훑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마마께서는 아란타를 공격해 신수 머리를 되찾고 그가 완전히 다시 살아나도록 도울 계획이 있으셨습니까?”
구미천호가 담담하게 말했다.
“자네의 2가지 추측 중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르든 내 계획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네. 신수는 당분간 봉마정을 뽑지 않을 것이야. 비록 그의 전투력은 약해지겠지만 1품이 나오지 않는 한 그는 여전히 무적이니까.”
“만약 광현의 진짜 몸이 온다고 해도 저희는 여전히 원래 계획대로 일을 처리합니다. 만약 그저 분신이 온다면, 생각건대 봉마정이 있으니 신수도 발광하지 않을 겁니다.”
허칠안은 그대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자네는 뭐하러 가는가.”
구미천호가 물었다.
허칠안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부향에게 팽이버섯을 먹자고 청하려고요.”
* * *
열흘 뒤.
야희와 청희가 남성의 옹성에 앉아 있었다.
조요들은 성벽 위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서신을 가져오거나 보내러 갔다.
“두 분 장로, 서부의 흑풍성(黑風城)은 이미 점령했습니다. 서역 적군 2만 명을 섬멸하고, 적군 800명을 포로로 잡았습니다. 성안의 15만 백성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전쟁 포로는 노비로 삼고, 백성은 당분간 적절하게 배치하여 전쟁 결과를 기다려라. 만약 백성 중 누군가 감히 암암리에 소란을 피우고 반항한다면 때려죽여도 무방하다.”
“두 분 장로, 북부의 백벽성(白壁城)을 서역군이 다시 탈환했습니다. 성에 남아 지키던 요병들이 전군 전멸했습니다.”
“백병성의 보급선을 봉쇄하고 당분간 포위한 채 공격하지는 않는다. 허 은라가 나서서 상대하러 갈 때까지 기다려라.”
“두 분 장로, 웅왕께서 동선(東線)의 옥성(沃城)을 공격할 때 실수로 잠드셨습니다. 성 내 10여만 서역인들이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아군이 병사 한 명 희생하지 않고 이 성을 점령했으나 감히 성에 들어갈 요족이 없습니다.”
“정보를 마마께 전하고 마마의 명령을 따라라.”
그렇게 20일간의 전쟁 끝에 광현 보살, 아소라 존자, 도액 나한이 이끄는 서역 각국의 군이 결국은 요족에게 밀려 서역으로 물러났다.
요족은 서역 군 18만을 몰살하고, 적군 3만, 백성 62만을 포로로 잡았다.
서역 수비군이 남강에서 물러난 지 이틀 째, 구미천호는 만요산에 군요를 소집해 복국을 선포했다.
500년 동안 유랑하던 요족이 마침내 고향으로 되돌아왔다.
후대 사서는 이날을 ‘남요복흥(南妖復興)’이라 칭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중원 무사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 * *
남성.
동틀 무렵, 허칠안은 푹신하고 쾌적한 침상에 누워 고치실로 짠 남쪽 특유의 가벼운 갖옷을 덮고 있었다.
그 곁엔 야희가 모로 누워 그에게 착 달라붙어 있었다. 마치 하인에게 부축을 받고 있는 듯한 매우 무력하고 나른한 모습이었다.
“경성에서 여러 해 생활하다 보니 이미 인족의 모든 게 습관이 됐어요. 남강에 돌아온 뒤 요족 생활이 볼품없고 섬세함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마마께서 남성을 불태워 만요국을 다시 재건하실 줄 알았어요.”
야희가 개탄하며 말했다.
구미천호는 서역인이 지은 27채 성을 남겨 만요국 거점으로 삼았다. 이러한 결정엔 사실 큰 패기가 필요했다. 모든 요족이 변신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모든 요족이 인류 도시에 살길 좋아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보통은 산림에 모여 자연에서 거리낌 없이 생활하는 게 여러 요족의 이상적인 삶이었다.
그래서 구미천호는 27채 성을 남기는 동시에 남강 각지에 요족 집단의 활동 영역을 구분했다. 충분한 병력을 보장하고자, 또 빠른 속도로 전투에 투입할 수 있도록 구분된 지역과 27채 성을 그리 멀리 두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요족 대부분은 성에 거주하고 있었다. 첫째는 전쟁이 막 안정됐고, 둘째는 충분히 많은 요병이 서역 인족을 관리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대의 마마는 아주 이성적인 여인 아니, 자요(雌妖)지. 성지를 남겨놓고 인족의 제도를 모방하면 요족에게 이점이 더 크다오.”
허칠안이 웃으며 말했다.
얇은 갖옷 아래, 야희는 더욱더 그에게 몸을 바짝 붙였다.
“마마께서는 서역 각국이 포로를 원치 않을까 걱정하세요. 그럼 이 서역인들을 죽일지 남길지가 문제니까요.”
그해 서역인은 남강으로 와 ‘황무지를 개간’하고, 수만 백성을 이주해 남강에 성지를 지었다. 이후 십만대산의 약초, 목재, 산미 등등을 향유했다.
500년 후인 지금, 27채 성에 주변 마을을 더하면 총 인구가 백만에 달했다. 이중 일부는 전쟁으로 죽고, 일부는 서역으로 다시 도망쳤으나 포로 신세가 된 이들이 더 많았다.
서역 각국이 이렇게 많은 사람을 수용하려면 우선 식량이 문제고, 다음으론 거주지, 논밭 분배 문제 등등이 있었다.
과연 그 모든 걸 감당하길 원하는지, 꺼리는지 의심할 만한 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