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1006
1003화. 타진(打診) (1)
얼마 지나지 않아 도액은 선림 깊은 곳에 이르러 그 보리수를 보았다.
거대하고 울창한 보리수는 선림 깊은 곳에 서 있었다. 줄기가 굵고 단단하며, 사람 팔뚝만 한 굵기의 덩굴을 드리우고 있었다. 너무 빽빽하여 줄기를 거의 뒤덮을 정도였다.
보리수는 키가 크지 않지만, 사방팔방으로 뻗은 모습이 우산과도 같았다.
도액 나한의 동공이 수축되었다.
나무 그늘 아래 심하게 풍화된 자갈 무더기가 있었는데 자세히 판별해보니 부서진 돌조각상이었다.
‘유가 성인 조각상이 훼손됐다! 부처께서 곤경에서 벗어나셨다…….’
도액 나한은 그 돌 조각상을 보며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뒤에서 감정이 담기지 않은 차분한 목소리가 울렸다.
“도액, 자네 여기서 뭐하는가.”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보통 사람은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식은땀이 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도액은 2품 나한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솜씨가 깊었기에 천천히 돌아서 3장(丈) 밖의 광현 보살을 쳐다보았다.
“신수가 봉인을 깨고 세상에 다시 나타나 남요가 십만대산을 되찾고 복국을 선포했습니다. 중대한 일이니 본좌는 부처께서 더는 깊이 잠들어 있으면 안 된다고 여겼습니다.”
도액은 2품 나한으로 부처의 제자였다. 이론적으로는 지위가 광현 보살 못지않았다. 그는 직접 부처를 만날 자격이 있었다.
다만 불문은 과위를 숭상하고, 나한은 보살과 비교하면 1품이 떨어져서 평소에는 보살의 지위가 더 높았다.
“부처께서는 세상의 업화를 없애신다. 깨어나야 할 때 알아서 깨어나실 것이고, 자네를 만나야 할 때 알아서 자네를 만나실 것이다. 만나길 원치 않으신다면 자네가 위로 올라가든 아래로 떨어지든 만나 뵙지 못할 것이다.”
광현 보살이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도액 나한은 양손을 합장하고 고개를 숙였다.
“본좌의 마음이 급했습니다.”
광현 보살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게, 다시는 부처님을 괴롭히러 와서는 안 될 것이야.”
도액은 더는 말하지 않고 발길을 돌렸다.
도액이 막 광현 보살을 스쳐 가던 그때, 갑자기 뒤에서 미세하면서 기이한 속삭임이 전해졌다.
“살려줘, 살려줘…….”
도움을 청하는 소리는 마치 우물에 던져진 돌이 고요한 수면 위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킨 것 같았다.
도액의 마음이 바로 우물이었다.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조금씩 고개를 돌려 뒤에 있는 광현 보살과 그 보리수를 바라보았다.
광현 보살은 눈을 가늘게 뜨고 미소를 보였다.
“일이 더 있는가?”
‘광현 보살은 묻는 말에 반드시 답한다. 숨기고 거짓말하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지금 솔직하게 털어놓고 부처님이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는 게 낫다. 그는 분명히 무언가를 알고 있다…….’
도액 나한은 더는 진상에 대한 갈망을 억누르기 어려웠다. 결국 그는 양손을 합장하고 불호를 왼 후 광현 보살을 주시하며 말했다.
“가나수 보살께서 대승불법을 받아들이지 않겠다 하시니 저희는 부처님의 뜻을 청할 뿐입니다. 마침 가나수 보살께선 아란타에 계시지 않으니…….”
도액은 적당한 정도에서 멈추고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광현 보살은 그를 몇 초간 주시하다가 표정을 좀 누그러뜨렸다. 그는 느리지도, 급하지도 않게 말했다.
“지금 불문은 천년대계의 결정적인 순간이니 아란타 위아래로 마음을 단결해야 하는 법.”
도액 나한은 합장하고 고개를 숙였다.
“아미타불, 본좌가 노여움을 샀습니다.”
말을 마친 그는 돌아서 천천히 떠났다.
광현 보살은 멀어지는 도액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땅에 흩어진 돌덩이를 보았다. 몇 초간 가만히 있던 그는 단단하게 얽힌 보리수를 쳐다보았다.
* * *
선림을 나온 도액 나한은 벼랑 가장자리에 이르렀다.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불어와 그의 가사를 마구 흔들었다. 마치 그의 영혼을 동결한 듯했다.
명색이 성숙한 나한으로서 그는 이미 마음을 통달하여 희로애락 등의 감정에 좌우되지 않았다. 호기심도 당연히 이성을 잃게 만들지는 않았다.
도액 나한이 발을 내디디자 몸이 금빛으로 변했다. 그대로 달아난 그는 다음 순간 한기를 내뿜는 연못 위에 나타나 연화대에 가부좌를 틀었다.
“아미타불…….”
도액 나한은 양손을 합장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불호를 외웠다. 곧이어 몸 표면에서 옅은 금빛이 반짝였다.
그는 좌선 상태에 진입했다. 불문 선공은 모든 외사(外邪)를 물리치고, 마음속 마귀를 순식간에 평정할 수 있었다.
* * *
반주향 후.
도액은 눈을 떠 좌선 상태를 벗어났다. 그의 눈빛은 차분하고 표정은 담백했다. 더는 이상이 없었다.
이때, 오솔길 밖에서 나지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우람한 체구가 녹색 식물을 지나 연못가에 나타났다.
아소라였다.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도액이 소매에서 금사발을 꺼내 앞에다 가볍게 엎어 놓았다.
순식간에 연못이 장벽에 뒤덮여 덮어 놓은 그릇의 모습을 띠었다.
아소라는 그제야 입을 떼 나지막이 말했다.
“제가 진마간에서 호흡 소리를 들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려 했는데 무사의 위기 예감이 잠잠하더군요. 이건 아주 비정상적이라 물러났습니다.”
아소라는 명색이 보살 아래 전투력 제1인자였다. 그는 오늘 일차로만 탐색한 뒤 그쯤에서 멈추고 더 나아가지 않았다.
어쨌든 이 일은 초품과 관련 있었다. 아소라는 초품의 위력을 정확히는 몰라도 초품 앞에서 자신은 개미보다 조금 강한 수준이란 걸 아주 잘 알았다.
아소라가 말을 마치자 도액이 느릿느릿한 어조로 말했다.
“선림 깊은 곳, 보리수 아래에 확실히 유가 성인 조각상이 있었네. 하지만 진작에 무너졌더군.”
아소라는 허칠안의 말을 떠올렸다. 만약 조각상이 있다면 부처는 아직 반 봉인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고, 그해 갑자탕요를 밀어붙여 신수를 봉인한 건 또 다른 신비로운 초품일 것이다.
반대로 조각상이 깨졌다면 부처는 이미 만요국 기운을 빌려 유성 봉인에서 벗어났으나 신수를 봉인하기 위해 일부러 깊이 잠든 것이었다.
“그럼 두 번째 가능성이군요. 부처와 신수가 동일인이니 부처는 이미 곤경에서 벗어난 겁니다. 혹은 진마간 안의 그분이 바로 그분이거나요.”
아소라는 아무런 의아함 없이 차분하게 말했다. 그날 허칠안이 이미 분명히 분석했으므로 어떤 상황이든 마음의 준비는 충분히 한 상태였다.
그런데 도액 나한이 고개를 가볍게 가로저었다.
“내가 아직 미처 살피기도 전에 광현 보살께서 오셨네. 내가 돌아서 떠날 때, 뒤에서 살려달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고.”
아소라가 눈썹은 없으나 돌출된 눈썹 뼈를 세게 움직였다.
“살려달라고 말하는 소리요?”
도액 나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되면 허칠안의 두 번째 가능성은 그리 믿을 만해 보이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곧 침묵에 빠졌고, 등에서 한기가 솟구쳤다.
한참 뒤, 아소라가 천천히 말했다.
“광현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도액 나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선림을 빈틈없이 지키더군. 이로 유추해볼 때 보살들 대다수에게 문제가 있네. 적어도 보살들은 비밀을 알고 있겠지. 예를 들자면 유가 성인이 부처를 봉인한 일이라던지.”
지금 이미 허칠안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했다. 그렇다면 보살들은 확실히 이 일을 알고 있으나 숨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명색이 2품 나한조차 진상을 알지 못하니 틀림없었다.
아소라는 연못을 보며 사색에 잠겼다.
“살려달라고 한 자가 누구이며 깊이 잠든 자는 누구인지 확실히 밝혀야 진상을 파헤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저희한테 너무 위험합니다.”
도액의 눈빛이 반짝였다.
“자네 말뜻은…….”
“남요를 이용해도 됩니다. 구미천호가 불문과 대등한 실력으로 맞서고 싶어 하니 분명 신수의 머리를 찾으러 올 겁니다. 그때가 저희의 기회입니다.”
아소라는 솔직하게 말했다.
정상적인 상황에선 광현이 아란타에 주재하고 있으니 그들이 상황을 제대로 조사하기란 전혀 불가능했다.
도액이 탄식했다.
“당분간은 어떠한 행동을 취해서도 안 되네. 광현 보살이 아마 이미 내게 의심을 품었을 테니.”
* * *
청주, 군막 안.
허평봉은 광현, 유리 두 보살의 모습이 사라지고, 가나수 보살이 금사발을 거둔 걸 보았다.
그는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후, 다소 떫은 현지 찻잎을 맛보았다.
“남요가 복국한 건 정말이지 사서에 기재되기 충분한 대사군요. 광현 보살이 왜 직접 남강으로 가지 않았을까요? 기회를 틈타 아란타를 공격하는 구미천호를 방비한다 해도 이 일은 꽤 처리하기 쉬울 텐데 말입니다.”
눈처럼 하얀 백의를 입은 허평봉은 마치 오랜 벗과 한담을 나누듯 온화한 어조로 말했다.
가부좌를 튼 가나수 보살은 눈을 감고 합장한 채 아무 말이 없었다.
허평봉은 가볍게 탄식한 후 목소리를 낮췄다.
“보살께서 역사에 길이 남을 큰일을 치르셨습니다. 하지만 승리하면 왕이 되고, 패하면 도적이 되는 법이지요. 결국 사서에 어떻게 쓰일 건지는 후대인이 어떤 태도인지 봐야 합니다. 보살의 명성이 아주 높다면, 어찌 부친이 극악무도해 보이겠습니까?”
* * *
운록서원.
원장 조위는 벼랑가에 뒷짐을 지고 서서 먼 남쪽을 바라보았다.
“영흥 1년 겨울, 남요가 돌아와 허칠안과 연합하여 불문을 내쫓고 만요국을 재건하였다.”
다음 순간 뒤쪽 허공에 탁자 하나가 나타났다. 연이어 종이가 펼쳐지고 붓이 절로 벼루에 뛰어들어 먹물을 묻힌 뒤 종이에 글자를 써내려 갔다.
묵적은 순식간에 다 말랐다.
“한 사람당 한 부씩!”
조위가 손을 흔들자 종이와 책상이 사라졌다.
서원 안에서 또랑또랑하게 글 읽는 소리가 들렸다. 서당에서는 글을 가르치는 선생들과 많은 서생이 동시에 조위의 묵보(墨寶)를 거뒀다.
이와 보조를 맞춰 귓가에 조위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종이에 적힌 내용을 주제로 한 사람씩 책론을 쓰거라. 서생들은 각자의 스승에게 검사받고, 글을 가르치는 선생은 나에게 검사받거라.”
‘무슨 큰일이기에 원장이 직접 주제를 제시하며 전 서원의 지식인들을 시험하는 것인가…….’
서생이든, 선생이든 경악하고 의아한 얼굴로 종이를 줍거나 펼쳤다.
집중해 글을 읽던 그들은 동시에 눈을 크게 뜨고 그대로 넋을 잃었다.
남요가 복국했다.
사서에 기재된 그 탕요 대전이 지금 이 순간 완벽하게 역전되었다.
역사에 묻혀버린 그 만요국이 구주에 다시 등장한 것이다.
이 순간, 모든 이들은 생생한 역사를 직접 목격한 것에 동요하고 있었다. 너무도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동시에 다들 원장 조위의 진정한 의도도 깨달았다. 이들은 사서를 숙독했다. 500년 전 만요국이 멸망한 뒤, 불문의 이 행위에 관한 선배나 선현들의 평론 글과 구주 대륙 짜임에 준 영향 분석 등등을 읽은 자들이었다.
그중 예를 들자면 불문의 갑자탕요는 인족이 구주 대륙을 통치하는 데에 토대를 마련했다는 것이 있었다.
또한 갑자탕요 이후, 요족이 머물 곳을 잃고 도처를 유랑하며 근거지를 쟁탈하고자 인족과 여러 차례 격렬한 충돌을 일으켰고 불문의 이 행위로 평범한 백성이 괴로워졌다는 평도 있었다. 또 예를 들자면…….
이렇듯 지금 남요가 복국하고 원장 조위가 이를 평하라고 한 것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