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1008
1005화. 천지회 단체 채팅방 (1)
또 이각을 기다리니 영흥제가 어슬렁어슬렁 걸어왔다. 그는 기분이 아주 좋은지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이미 어느 정도 배를 채운 진 태비가 빙그레 웃으며 일어났다.
“마침 폐하께 드릴 술과 안주를 데우고 있습니다.”
진 태비가 즉시 궁녀에게 술과 안주를 내오라고 분부했다.
영흥제도 웃으며 화답했다.
“오늘은 마음껏 술을 마실 가치가 있습니다. 임안, 너도 짐과 함께 몇 잔 마시자꾸나.”
진 태비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가 떠보듯 물었다.
“폐하, 듣자 하니 남강에 일이 생겼다고요?”
영흥제가 웃으며 말했다.
“남요가 십만대산을 되찾고 불문을 결제할 수 있었던 건 허 은라의 공이 매우 큽니다. 만약 허 은라가 몸소 병사들 앞에 나서지 않았다면 남요가 십만대산을 되찾고 싶어도 그리 쉽지는 않았을 겁니다.”
임안의 눈이 반짝였다.
‘그였구나…….’
마음이 복잡해진 진 태비는 문득 딸을 보고 멈칫했다. 얼굴이 너무도 환해진 딸을 보니 순간 좀 머쓱해진 까닭이었다.
* * *
천종.
우뚝 솟은 선산(仙山), 드리워진 상운(祥云).
이곳에 원숭이 울음소리와 학의 울음소리가 아득히 울렸다.
운무와 숲 사이 겹겹이 어우러진 궁전에서는 때때로 아득하고 광활한 종소리가 울렸다. 이 무릉도원 같은 선궁(仙宮)을 가득히 채운 소리였다.
그때, 운해 위에서 웅건한 이수(異獸) 한 마리가 머리를 내밀었다.
이수는 선산을 잠시 굽어보더니 운해에서 걸어 나왔다.
그 몸은 사슴과 비슷하고, 눈처럼 하얀 비늘로 가득 덮여 있었으며, 머리에는 뿔 한 쌍이 나 있었다. 그리고 말발굽에는 뱀의 꼬리가 있었다.
곧이어 바다처럼 푸르른 세로 눈동자가 정면을 응시했다.
* * *
눈처럼 하얗고 웅건한 이수는 운해에서 현신해 선산으로 천천히 향했다. 구천 위의 신수(神獸)처럼 한 걸음, 한 걸음씩 속세로 걸어 들어왔다.
이내 흰색 운무가 발굽 아래에서 솟구쳐 허공을 걷는 이수를 받쳐 들었다.
웅!
갑자기 공기가 진동했다. 꼭 수면 위에 일렁이는 잔잔한 물결 같았다.
물결은 점점 아래로 퍼지며 그릇 형태의 장벽을 그려냈고, 끊임없이 겹쳐진 선산을 뒤덮었다.
“수산대진(守山大陳)…….”
백제는 자신의 위격이 너무 높아 천종의 수산진법을 유발했음을 알았다.
이때, 진법에 빈틈이 활짝 벌어지더니 냉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멀리서 온 손님이군. 도우가 모시지요.”
뿔 돋은 머리를 가볍게 끄덕인 백제는 발굽을 내디뎌 공중에서 사라졌다.
* * *
백제는 선산 꼭대기 우뚝 솟은 거대한 선궁에 다시 나타났다.
굵고 단단한 기둥은 100장(丈) 높이 둥근 천장을 받치고 있었다. 기둥에는 구름무늬, 화염, 질풍 등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웅장하고 거대했지만, 짙은 쓸쓸함이 묻어났다.
선궁은 그만큼 광활했고 아무런 장식도 없었다.
기둥 끝 거대한 받침 위에는 아홉 빛깔이 반짝이는 연화대가 있었다.
연꽃잎이 천천히 회전하는 가운데, 그 위에 백발의 흰 수염이 난 도사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눈을 감고 머리를 떨군 것이 꼭 졸고 있는 듯했다.
도사는 겉모습도, 분위기도 평범하고 일반적이었다. 다만 백제의 눈에 보이는 도사는 진실과 허구 사이에 놓여 있어 그저 역사 속 투영처럼 보였다.
“나를 백제라 칭하면 된다. 운주 백성들은 이렇게 나를 칭한다.”
백제는 입에서 사람의 언어를 내뱉었다. 목소리는 나지막했다.
“우리 천종에 무슨 일로 온 것인가.”
천존은 인사치레를 하지 않았다. 말하는 풍격이 직설적이었다. 온 자가 신마의 혈통이라고 해서 감정의 동요가 생기지도 않았다.
백제가 천천히 대전에 서서 천존을 직시했다.
“그해 도존이 모든 신마 혈통을 구주 대륙에서 내쫓았다. 이를 아는가?”
“관심 없다.”
백제는 천존의 태도에 의외란 반응도 없었다. 그저 담담하게 응했다.
“네 모습을 보니 그해 그가 떠오르는군. 난 남강에 가서 고신을 만났다. 고신이 내게 도존이 어쩌면 이미 몰락했을지도 모른다 말하더군. 고신이 그리 판단했다는 건 도존이 몰락했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소리지.
하지만 난 납득이 가지 않더군. 그해 구주에서 그의 존재를 위협할 수 있던 건 깊은 잠에 빠진 고신뿐이었다. 단, 도존의 몰락은 고신과 관계가 없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이유로 초품이 몰락한 것일까?
내게 답할 수 있는 자는 구주를 통틀어 고신, 무신, 부처뿐이다. 만약 유성이 죽지 않았다면, 그도 포함이겠지. 그러나 이 초품들은 죽었거나 봉인돼 있다. 어쩌면 네가 내게 대답해줄 수 있을지도. 운주의 그 2품 술사가 도문의 천존이 아무 까닭 없이 사라질 거라더군.”
대전에 한차례 바람이 불어와 백제의 목덜미 갈기를 가볍게 흔들었다.
백제는 쪽빛 세로 눈으로 천존을 응시하고 있었다. 백제는 지금 도존의 몰락과 천존들의 소실이 같은 성질이라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천존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런데 입을 열지 않았는데 그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나와 무슨 상관인가!”
백제는 천종이 이런 꼬락서니일 줄 예상했다는 듯 화도 내지 않았다.
“그해 내가 구주 대륙을 떠날 때, 도문에 유파는 많았지만 인종과 지종은 없었다. 듣자 하니 이건 그가 나중에 창설했다더군. 천종에는 이 두 종파의 심법이 있지. 나는 ‘천지인’ 3종의 수행법을 좀 보고 싶다.”
천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백제 앞에 고서 3권이 떠올랐다.
남색 표지에 그중 한 권에는 ‘태상망정’이란 글이 적혀 있었다. 다른 두 권은 태상망정에 비해 두께가 절반도 미치지 못했다. 당연했다. 천종에 인종과 지종 2종 심법은 첫 편만 있을 뿐, 깊이 있는 내용이 있을 리가 없었다.
백제는 ‘인종’과 ‘지종’의 고서를 눈여겨 바라보았다.
촤라락-
지면이 빠른 속도로 넘어가며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을 보였다.
백제는 침묵했다. 눈에는 곤혹스러움이 스쳤다.
“이 두 종파의 심법은 천종과 판이하고 흠이 아주 많군. 도존이 그해 나를 구주 대륙에서 내쫓을 때 이미 초품 위격이었는데 구태여 인종과 지종을 창설할 필요가 있었는가?”
의혹을 품은 백제의 눈이 ‘태상망정’ 고서로 향했다.
책장은 다시 스스로 넘어가며 곧 바닥을 보였다.
이후 또 한 번 넘겨가며 수차례 반복해서 읽던 백제가 눈을 감았다.
한참 뒤, 백제가 쪽빛 눈을 떴다. 거대한 탄식이 대전에 메아리쳤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았네.”
천존은 보기 드물게 입을 열었다.
“자네 역시 그가 이미 몰락했다고 여기는가?”
백제는 잠시 침묵하더니 천천히 말했다.
“이에 얽힌 일은 지나치게 복잡해 정확한 답을 줄 수는 없다. 하지만 현재 단서로 말하자면, 도존은 확실히 몰락했다. 유가 성인은 문지기가 아니고 도존도 아니다. 그럼 문지기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생각을 가다듬던 백제가 다시금 말했다.
“나는 이 일을 발설하지 않을 것이다.”
천존은 여전히 말이 없었고, 백제는 돌아서 흰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 * *
강렬한 태양이 내리쬐는 바다 위, 작은 배 한 척이 정처 없이 표류하고 있었다. 그 안에 낚시 중인 한 여인이 있었다.
얇은 옷에 정밀하고 가느다란 유모를 쓴 여인, 모남치였다.
배 주변으론 백희가 넘실대는 파도에 몸을 싣고 개헤엄을 치고 있었다. 깨끗하고 투명한 바닷물 속에 용을 쓰는 짧은 다리가 보였다.
정말 백희는 물 만난 강아지가 된 듯 아주 즐거워하고 있었다.
허칠안은 상반신을 드러내고 배 위에 누워 있었다. 한창 지서 파편을 들고 천지회 구성원 전서를 보는 중이었다.
언젠가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보던 전생의 어느 평범한 나날 같았다.
한동안 훈련을 거쳐 천지회 구성원들 휘하의 병사는 일정 정도 전투력을 갖췄다. 물론 정규군보다는 약하겠지만, 잡군보다는 월등히 강했다. 그중 이묘진 군대의 실력이 가장 강했고, 초원진이 그다음, 이영소가 가장 약했다.
항원은 상인과 부호를 약탈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 그저 배고픔과 추위에 시달리는 백성을 힘닿는 대로 돕고 있었다.
‘때로는 지나치게 원칙을 고수하는 것도 진부합니다, 항원 대사.’
허칠안은 속으로만 짧은 평을 내렸다. 본래 사람은 고정된 원칙을 영원히 지킬 수 없었다. 처한 환경, 상황이 달라지면 적당히 원칙을 바꾸는 것도 고려해야 했다. 당연히 그건 합리적인 범위 내여야 했다.
[칠: 그저께 관병에게 토벌 당했습니다. 전부 정예병이 왔었어요. 저는 관병과 사투를 벌이고 싶지 않아서 군대를 이끌고 포위망을 뚫었는데 그 관병들이 바짝 추격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이영소가 최근 닥친 문제에 대해 얘기했다.
현지 관아에서 그의 본거지로 군대를 파견해 토벌했다. 전에도 이런 상황이 있었으나 전부 뿔뿔이 흩어진 병사들이라 전투력이 강하지 않거나 아예 현지 향신이 조직한 민병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무려 군노와 화통까지 갖춘 정예병이 왔다.
[이: 대략 닷새 전, 나도 조정 정예병을 맞닥뜨렸네. 혹시 황제 머리에 문제가 있나? 우리가 그를 도와 정세를 안정시키고 유랑민을 위로하는데 감격하지는 못할망정 군대를 파견해 우리를 토벌한다니?이렇게 많은 병력이 있는데 청주에 투입하면 안 되는 건가? 내 보기에 이 황제는 그 사람 아버지보다 딱히 나을 게 없어. 둘 다 자리만 차지하는 자들이지. 이 몸이 조만간 기회를 잡아 그를 찔러 죽이는지 잘 보라고.]
비연 협객이 천지회 내부에 센 주먹을 날렸다.
[사: 그럴 리가. 영흥제가 신년의 계책을 승낙하진 않았지만, 동요는 됐었네. 이 계책의 이점을 알고 있다고. 지금 누군가는 그를 대신해 세상 사람들 모두가 가장 옳지 않다고 여기는 일을 하고 있네. 향신과 명문 귀족을 약탈하여 유랑민을 위로하는데 당연히 기뻐해야 마땅하지.]초원진은 토벌당하지 않았는데, 영토가 고정적이지 않은 것이 이유였다.
그는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출병해 근처 떠돌이 패거리를 토벌해 섬멸하거나 끌어들였다. 치는 곳마다 일정 시간 머물며 천천히 청주로 나아갔다.
이때, 천지회의 꾀주머니 회경이 전서했다.
[일: 바로 그가 승낙한 일이 아니기에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이네. 그가 승낙하지 않은 이상, 누가 뒤에서 유랑민을 모으고 힘을 비축하겠는가?아마 영흥제는 배후 주동자가 어느 친왕이라 의심할 거야. 예를 들면 본 공주의 친 오라버니인 염친왕이 있겠지. 제왕에게 황위를 노리는 형제는 반란군과 같은 셈이니까.]
천지회 구성원은 문득 큰 깨달음을 얻었다.
초원진이 전서로 말했다.
[사: 그렇군요. 조당에 오래 있지 않아 제 후각이 둔해졌습니다. 영흥은 아직 패기가 부족합니다. 저였다면 차라리 상대의 계략을 역이용했을 겁니다.우선 황위를 노리는 형제가 유랑민을 안정시키는 걸 돕게 한 후, 청주 전쟁에서 이기면 다리를 부숴버리는 것이지요. 연금하거나, 암살하거나 형제의 계획을 만천하에 알리거나. 어쨌든 명색이 제왕으로서 친왕을 상대하는 건 난도가 크지 않으니까요.
밖에서 유랑민을 모으는 고수라면, 허, 본래 조정 사람이니 복종시키는 건 전혀 어려움이 없다고 할 만하겠습니다. 한두 명 야심이 부푼다고 해도 꺾을 수 있으니까요. 만약 반란군을 이기지 못해 만사가 허사로 돌아간다면 유랑민 일을 더 이상 고려할 필요가 없어지고요.]
회경이 전서로 평가했다.
[일: 영흥은 본래 이미 이룬 일을 발전시키는 군주네. 능력, 패기, 수완을 논하자면 지금 국면을 다스릴 수 없어.]침음하던 초원진이 말했다.
[사: 상대적으로 사황자께서 확실히 더 우수하지요.]능력, 총명함, 지혜, 담력과 식견을 논하자면 회경의 친 오라버니 염친왕이 영흥제보다 한 수 위였다.
본디 반공개적인 장소에서 제왕에 대해 멋대로 논하는 건 실로 큰 죄였다. 하지만 초원진은 이미 조당에서 물러난 지 여러 해나 지났고, 천지회 사람은 모두 냉혈한이라 기피할 필요가 없었다.
화가 나는 건 화가 나는 것일 뿐, 영흥제의 처리에 대해 천지회 구성원들은 아무런 방도가 없었다.
우선 이는 제왕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처사고, 담력과 식견, 패기 같은 건 짧은 시간 안에 키울 수 있는 능력이 아니었다.
영흥제는 그냥 그런 황제였다.
아무리 욕을 한다고 한들 일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