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1012
1009화. 관문에서 나온 금련
오색구름이 감돌고, 물소리 졸졸 들려오는 인적 드문 산골짜기에 초가집 십여 채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 연못가에 기품 있고 부드러운 백련 도사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백련 도사는 제자들을 데리고 한창 산속의 영기를 마시고 있었다.
집과 관목 덤불 사이엔, 황갈색 고양이 네다섯 마리가 서로를 쫓고 쫓으며 놀고 있었다.
지종 제자들이 이곳으로 이사 온 지도 이미 반년이 흘렀다. 반년간 중원은 한재가 들끓고 유랑민이 재난을 일으켰다. 공덕을 수행하는 지종한테는 정말로 하늘이 준 좋은 기회였다. 오직 수행 환경만을 논했을 때였다.
지금 지종 제자들은 절반 넘게 밖으로 뛰쳐나와 선행을 하고 덕을 쌓아 수련 경지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극히 드물게 외출하던 백련 도사도 이미 4품 전봉에 발을 들여놓았다. 반년 전만해도 그녀는 4품 중경(中境)이었을 뿐이었다.
매일 반드시 수행하는 식기를 마친 뒤, 백련 도사가 눈을 뜨고 제자 이십여 명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길게는 두 달, 짧게는 열흘, 너희 중에도 나가서 공덕을 쌓아야 할 사람들이 생겼다. 하지만 한 가지 일은 반드시 명심하거라. 선행을 하고 공덕을 쌓는 건 마음에서 우러나와야지, 실리를 위해 수행하고 선행해서는 안 된다. 선행을 위한 선행을 하면 반드시 인과의 배반을 받을 것이다. 알겠느냐?”
제자들은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해했습니다!”
백련 도사가 고개를 끄덕인 후 계속해서 교육하려던 그때였다.
쿵!
갑자기 남쪽에 있는 초가집이 폭발하더니 아름다운 빛이 솟구쳤다.
“금련 사형께서 관문을 깬 건가?”
백련 도사는 문득 고개를 돌렸다. 놀라면서도 기뻤다.
“금련 사숙께서 관문을 깼다!”
제자들 역시 크게 기뻐하며 바라보았다.
허공에 검은 머리칼의 늙은 도사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몸에서 발산하는 일곱 빛깔 노을빛은 아름답고도 몹시 상서로운 느낌이었다.
공덕의 빛이었다.
순식간에 금빛이 사그라들며 늙은 도사가 천천히 내려왔다.
백련 도사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온화한 얼굴에 미소를 그렸다.
“금련 사형, 하얀 머리가 까매졌군요. 수련 경지가 크게 올랐나 봅니다.”
사실 그녀는 일부 수련 경지를 회복한 거라 말하고 싶었지만, 곁에 제자들이 많이 있어 말을 아꼈다.
금련 도사는 조용히 가부좌를 튼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금련 사형?”
백련의 외침에, 갑자기 뒤에서 금련 도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네. 나는 이미 양신이 되어 초범 영역에 발을 들여놓았네.”
백련은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우아하게 발을 핥고 있는 황갈색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고양이는 백련의 시선을 받고 갑자기 경직된 채 발을 내렸다.
“콜록콜록!”
황갈색 고양이가 목청을 가다듬은 후, 평소와 다름없는 투로 말했다.
“초범 영역은 역시나 신기하군. 빈도가 한동안 원신을 통제할 수 없게 만드는 바람에 할 수 없이 고양이에 빙의했네.”
제자들은 비로소 크게 깨달았다. 금련 사숙은 신진 초범으로, 힘을 다스릴 수 없어 원신이 몸을 벗어나 고양이 몸에 빙의된 것이었다.
이후, 금련 도사는 황갈색 고양이 몸에서 벗어나 자신의 육신으로 돌아가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독거 수행하였는가?”
“반년 됐습니다.”
백련이 대답했다.
금련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뒤, 소탈한 자태로 말했다.
“근래에 외부 세계에 큰일이 발생했는가?”
“허 은라가 원경제를 죽였습니다.”
“허 은라가 혼자서 칼 한 자루를 들고 무신교의 30만 대군을 막았습니다.”
“허 은라가 초범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허 은라가 검주에서 금강 둘을 죽였습니다.”
“위연이 죽었습니다.”
“운주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불문이 대봉과의 동맹 조약을 파기했습니다.”
“중원에 한재가 들끓고 유랑민이 재난을 일으켜 이미 백성이 안심하고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한 마디씩 끊이지 않고 말했다.
“…….”
한참 듣던 금련 도사는 얼굴이 경직된 채 멍하니 백련을 쳐다보았다.
“빈도가 고작 반년 동안 독거 수행했다고?”
10년 후가 아닌 게 확실한가?!
* * *
상주와 검주의 경계.
노란 치마의 매력적인 소녀가 관도를 걷고 있었다.
저채미가 경성을 떠난 지도 이미 한 달이 지났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이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쓸고 갔다.
지난날 고난은 그녀의 아래턱을 뾰족하게 만들고, 변변치 않은 음식은 그녀의 기질을 가라앉혔다. 경성을 떠날 때의 그 활발했던 소녀는 이제 상당히 차분해지고 얼굴도 많이 야위었다.
다만 그 큰 살구 눈은 전보다 더 밝게 반짝이고 있었다.
처음에 그녀는 허칠안이 준 ‘식단’을 따라 갔다. 가는 곳마다 현지 별미를 찾아다녔다. 그 후에 매우 기뻐하며 허영음과 리나에게 서신을 보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갈수록 그녀는 서신을 쓰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얼굴의 웃음도 서서히 줄어들었다.
떠도는 여정 역시 ‘식단’에서 재난 상황을 쫓는 형태로 바뀌었다.
“양 사형, 저희 이번에는 어디로 가나요?”
사천감의 추방자로서 저채미는 당연히 양천환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양천환은 한참 앞서 걸으며 사매에게 뒤통수만 보였다.
“최근 나와 의형제를 맺은 형제와 연락이 닿아 그를 보러 가고 싶네만.”
저채미가 큰 눈을 깜박였다.
“양 사형한테 의형제가 어디 있어요.”
“이영소네, 천종 성자 이영소. 난 이미 허칠안을 억누르고 홀로 두각을 나타낼 묘안이 떠올랐어. 지금 가서 친한 동생과 함께 누리는 김에 그가 최근에는 좀 어떠한지 보려고 하네.”
저채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그녀는 분명 얼마 전의 양 사형의 모습을 기억했다.
양 사형은 허칠안이 검주에서 불문 금강을 벴다는 소식을 듣고 질투심에 가슴을 치고 발을 동동 구르며 큰 소리로 울부짖었었다.
자세히 알아본 결과, 저채미는 손 사형 역시 이 일에 개입해 한껏 활개를 치고 다녔다는 사실을 알았다.
양 사형은 다시 가슴을 치고 발을 동동 구르며 하늘에 대고 욕을 퍼부었다. 그 말더듬이가 분명 비굴하게 무릎을 꿇고 허칠안에게 아첨해, 사람들 앞에서 과시할 기회를 얻은 것이라며.
그랬다, 양 사형은 손 사형의 그 방식을 전혀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 * *
반 시진 후, 사형과 사매는 으슥하고 외진 꼬부랑길에서 관도로 접어들었다.
관도는 순식간에 떠들썩해졌다. 일반적으로 떠들썩하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니라, 실제 관도 양쪽에 유랑민이 많이 모여 있었다.
다들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 어떤 이는 풀뿌리와 나무뿌리를 열심히 깎고, 어떤 이는 하는 일 없이 앉아 멍하니 있는가 하면, 건초 더미 위에 누워 있는 누군가는 숨이 간당간당해보였다.
인파 속에는 남루한 천막들도 있었다.
‘여긴 성지와 멀리 떨어져 있는데. 이곳에는 뭐하러 모인 거지? 먹을 것도 없는데 말이야…….’
저채미는 보고 있자니 좀 곤혹스러웠다.
그녀가 시선을 거두고 눈앞의 양천환을 바라봤을 때, 그는 머리에 이미 유모를 쓰고 있었다. 늘어뜨린 건 얇은 천이 아니라 두꺼운 면직물로, 초범 무사조차도 꿰뚫어볼 수 없는 그런 두꺼운 면직물이었다.
“어머니, 저 너무 배고파요…….”
길가에 예닐곱 살 사내아이가 어머니 품에 웅크리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흐트러지고 얼굴에 때가 낀 모자 둘은 굶주림에 뼈가 드러날 정도로 쇠약해보였다.
“조금만 더 참으렴, 잠들면 배가 고프지 않을 거야…….”
젊은 부인은 아이를 품에 안고 찬바람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의 얼굴엔 멍 자국이 여러 군데 있었고, 손목에는 검붉은 피가 있었다. 입술도 하얗게 질려 다치고 병든 사람 같았다.
저채미는 희망을 잃은 여인의 눈과 음식에 대한 아이의 갈망 그리고 굶주림에 관한 공포를 느꼈다.
그녀는 천천히 걸어가 모자 둘 앞에 웅크려 앉았다. 이후 몸에 지닌 사슴 가죽 자루에서 양피지로 싼 찐빵 2개를 꺼냈다.
순간 핏발이 가득 선 눈들이 형용하기 어려운 빛을 띠며 시선을 돌렸다. 인간의 눈이라 보기 힘들 정도로 무시무시한 눈빛들이었다.
젊은 부인은 찐빵을 받고는 졸음으로 정신이 몽롱한 아이를 흔들어 깨우고선 절박하게 말했다.
“얼른 먹으렴, 얼른 먹어…….”
동시에 그녀는 입에 찐빵을 쑤셔 넣으면서 옆에 둔 날카로운 돌을 집었다. 그렇게 먹고 싶어 안달이 난 주위의 유랑민들을 거친 눈빛으로 훑었다. 동시에 그녀는 아이에게 빨리 좀 먹으라며 채근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저채미는 목이 메어 눈을 부릅뜬 아이를 보고 얼른 물주머니를 꺼냈다.
“천천히 먹어, 물 좀 마시고.”
아이가 물을 마실 때, 저채미는 젊은 부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자네들은 여기에 모여 뭘 하는 것인가?”
저채미가 보고 들은 바로는 유랑민의 생존 방식은 대략 3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산적이 되어 다른 백성을 약탈하는 것이었다. 마치 메뚜기가 국경을 넘는 듯 약탈당한 백성들 역시 유랑민이 되어 그 규모는 점점 커져갔다.
또 하나는 성 밖을 틀어막고 조정이 베푸는 것에 기대 어렵게 살아가거나 온 산천을 뒤져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는 것이고, 나머지는 자원 입대하여 민병이 되는 것이었다.
사실 입대는 선택하는 이가 가장 적었다. 조정의 군량과 마초가 제한적이라 너무 많은 민병을 키울 수 없었고, 지금은 청주가 한창 전쟁 중이라 민병이 되면 곧 청주 전장으로 수송될 운명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유랑민들은 그 어느 선택지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다들 이곳에 모여 의지할 데 없이 찬바람 속에서 죽기만 기다리는 걸까?
젊은 부인은 찐빵을 두 입만 깨물고 먹지 않았다. 그녀는 그대로 찐빵을 손에 쥐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
“전방 60리 밖에 산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 산적 두목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루가 멀다고 나와서 물건을 빼앗습니다. 매번 빼앗고 돌아갈 때마다 사람을 파견해 먹을 걸 보내곤 하지요.”
이내 그녀는 찐빵을 다 먹은 아이를 보고, 남은 찐빵을 건넸다.
“먹으렴…….”
뒤이어 젊은 부인은 저채미를 한번 쳐다보더니, 소리를 낮춰 애원했다.
“낭자, 제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겠습니까?”
저채미는 어리둥절했다. 그녀는 아이를 데리고 다닐 수 없었다. 이 사내아이는 허영음과 나이가 비슷해 보였지만, 야위고 허약해 허영음보다도 먹여 살리기 힘들어 보였다.
무엇보다 저채미는 사천감에서 추방당한 자였다. 이곳저곳 돌아다녀야만 하는 신세에 몸이 약한 아이가 동분서주의 고난을 어찌 견디겠는가.
저채미가 거절하려는데, 젊은 부인이 더욱 애절하게 말했다.
“곧 있으면 아이를 보호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자들이 아이를 보는 눈빛이 점점 이상해지고 있어요. 어젯밤에는 누군가 슬그머니 제 아이를 데려가려 했어요. 다행히 제가 제때 깨어나 그들과 죽기 살기로 싸웠지요…….”
저채미는 이제야 그녀 얼굴의 멍 자국과 손이 검붉은 핏자국으로 물든 연유를 알았다. 이 순간, 저채미는 거의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때 갑자기 저채미의 귓바퀴가 움직였다.
어디선가 말발굽 소리를 들려왔다.
저채미는 바로 일어나 전방의 관도를 바라보았다. 그곳에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기병 부대가 보였다. 선두에 있는 자는 검은 치마를 입은 수려한 여인으로, 눈썹이 짙고 눈이 크며 재기가 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