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1013
1010화. 양천환의 묘책
우르르…….
생기라곤 찾을 수 없던 유랑민들이 순식간에 ‘살아났다’. 다들 단숨에 바닥에서 튕겨 올라 그 기병을 향해 다가갔다.
탁!
검은 치마의 여인은 채찍을 휘둘러 몰려오는 유랑민을 억지로 물린 후, 호통을 치며 말했다.
“줄을 똑바로 서라! 감히 충돌하는 자가 있으면 바로 후려쳐 죽일 테니.”
유랑민들은 그녀를 극도로 두려워하는 듯 즉각 대형을 갖췄다.
기병들은 몸을 돌려 말에서 내렸다. 다들 포대를 하나씩 들고 있었는데 포대 안에 찐빵이 담겨 있었다. 그것들을 한 사람당 하나씩 나눠주었다.
모든 유랑민이 음식을 받았을 때, 포대도 비었다.
검은 치마의 여인은 다시 말에 올라탔다가 문득 양천환과 저채미를 발견하고 위아래로 훑었다.
“너희들 차림새를 보니 이재민이 아닌 것 같군. 어디서 온 자들이냐.”
저채미가 막 답을 하려는데, 양천환이 홀연히 공중으로 떠올라 사람들을 등진 채 느릿하게 말했다.
“손으로 밝은 달을 움켜쥐고 별을 따니, 세상에 나 같은 이 없네. 천하가 양천환을 용납하지 않으니 이후의 대봉에 캄캄한 밤이 내리리라.”
유랑민을 포함한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말도 잇지 못하고 눈만 끔뻑거렸다. 다들 경외하는 얼굴이었다.
검은 치마의 여인은 말을 재촉해 산채 밖에 이르렀다. 그리곤 조망탑 위의 수위에게 ‘안전하게 돌아왔다’라는 손짓을 했다.
산채 문이 천천히 열렸다.
“사당가, 자네 어째 밖의 그 이재민들을 데리고 돌아온 건가.”
한 수위가 정성스레 앞으로 나아가 말을 끄는 동시에, 뒤쪽 노란 치마의 소녀를 주목했다. 큰 살구 눈에, 약간 야위어 보이는 얼굴, 맵시 있고 정교한 이목구비까지, 좀처럼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검은 치마의 여인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들은 우리 사람이 아니네. 우선 되는 대로 자리를 내주게.”
간단한 설명 후, 그녀는 말에서 내려 저채미를 데리고 안으로 향했다.
* * *
남루한 목조 집과 황토집을 지나쳐 목적지에 다다랐다. 이곳도 여전히 황토집이었지만 밖에는 울타리가 쳐 있었다.
검은 치마의 여인이 크게 외쳤다.
“이랑, 나와 보세요. 옛 친구가 이랑을 찾습니다.”
이내 방에서 세 사람이 걸어 나왔다.
가운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풍채가 늠름한 공자가 있었다.
오른쪽은 흰 치마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었는데 분위기가 점잖았고, 왼쪽은 자색 옷의 여인으로 피부가 희고 눈이 생기발랄했다.
모두 자색이 뛰어난 미인이었다.
여인들은 저채미를 보더니 살짝 눈살을 찌푸렸고, 경계하는 눈빛을 했다.
“채미 낭자!”
일찌감치 양천환과 연락이 닿은 이영소는 조금도 놀라지 않고 좌우를 두리번거린 후에 물었다.
“양 형은?”
바로 이때, 지붕 위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전해졌다.
“천하가 양천환을 용납하지 않으니 이후의 대봉에 캄캄한 밤이 내리리라. 손으로 밝은 달을 움켜쥐고 별을 따니, 세상에 나 같은 이 없네.”
모두가 고개를 들었다.
지붕 휘, 백의를 입은 사내가 뒷짐을 쥔 채 옷소매를 펄럭이고 있었다.
내막을 모르는 흰 치마와 자색 옷의 여인은 경외하는 마음이 들었다. 속세를 벗어난 고인(高人)이 틀림없어 보였다.
이미 시 두 구절을 들었던 검은 치마의 여인도 여전히 놀란 기색이었다.
이영소가 세 여인을 향해 말했다.
“그대들에게 소개하지. 이분은 사천감의 양천환이오. 다들 양 사형이라고 부르면 되오. 감정의 삼제자요.”
뒤이어 그는 또 세 여인도 소개했다.
흰 치마의 여인은 조소소(趙素素)라 하는데 부친이 현령이었다. 자색 옷의 여인은 우함수(于含秀), 부친은 현지 어느 강호 세력의 방주였다.
그리고 검은 치마의 여인은 남람(藍嵐)이라 하며 상주 복운종(覆云宗)을 스승으로 둔 연신경 수련 경지였다.
이영소가 말했다.
“소소는 산수에 정통해 저를 도와 살림하고 장부를 적습니다. 산채 전체의 지출을 관리하지요. 수아는 전에 아버지를 도와 신도를 훈련하고 관리한 적이 있어 산채 질서는 전부 수아에게 기대고 있습니다. 람아는 수련 경지가 가장 강해 저와 함께 나가 지주 약탈하는 일을 맡고 있고요. 묘진의 말이 맞습니다. 저는 군사를 이끌고 싸울 재목이 아니에요. 묘진이 직접 가르쳐도 안 될 겁니다. 제가 아는 인연 중 인재가 많아 다행이지요.”
한참을 참던 양천환이 한 마디 내뱉었다.
“역시 자네답군!”
이영소는 손사래를 치며 양천환과 저채미에게 방으로 들어오라 권했다.
* * *
저채미, 양천환에게 차를 내준 후, 이영소가 물었다.
“어째 오신 겁니까? 처리할 중요한 일이라도 있나요?”
유모를 쓴 채 등지고 앉은 양천환은 말없이 침묵을 지켰다.
대답은 저채미가 대신했다.
“양 사형이 허칠안을 압도하기 위해 사천감의 재물을 전부 기부할 계획이었거든. 과시하고 싶었던 거지. 그러다 송 사형이 불만을 품어서 양 사형을 고발했어. 그래서 우린 감정 스승님께 추방당했고.”
“…….”
이영소는 한참을 참다가 한 마디 내뱉었다.
“역시 양 사형답습니다!”
이후 그가 저채미에게 물었다.
“채미 낭자께선 어째 같이 나오셨나요? 여기 관여할 필요가 있나요?”
저채미는 약간 멋쩍어하며 말했다.
“먹을 걸 얻고, 그 대신 일하는 거지. 양 사형이 나한테 밥을 사주잖아.”
‘……진짜 너희들답다.’
이영소는 그냥 말을 아꼈다.
이때, 양천환이 말했다.
“내가 도중에 만난 이재민들을 데리고 왔네. 자네처럼 유랑민을 모아 산을 점령하고 왕 노릇을 할 작정이네. 군량과 마초라면 내가 처리할 것이야. 하지만 다들 당분간 이 형의 산채에 머물러야겠네.”
양천환과 저채미는 오는 길에 이재민들도 같이 데리고 왔었다.
이영소는 지출을 관리하는 조소소를 돌아보았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영소도 곧바로 승낙했다.
“해 봅시다, 해 봐요. 양 형의 신출귀몰한 전송서라면 돈벌이를 위해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는 놈들 식량 창고를 약탈쯤이야 식은 죽 먹기지요.”
양천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약탈하지 않을 걸세. 군량과 마초가 필요하면 바로 사면 그만.”
그 말에, 조소소가 미소를 지었다.
“양 사형, 이건 작은 지출이 아닙니다. 지금 곡식 가격이 올라…….”
말을 마치기도 전에 저채미가 나서서 말했다.
“사천감을 나올 때 감정 스승님께서 우리한테 각각 5만 냥씩 주셨어.”
이영소는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백은 오만 냥이라니! 사천감은 역시 사치스럽군요…….”
저채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황금이야.”
‘죽이고 빼앗을까……?’
이영소는 반사적으로 눈빛이 달라졌다.
이내 양천환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이번에 고통스러워하는 백성을 차마 보지 못해 도움을 주려는 것뿐만이 아닐세. 가장 주요한 목적은 한곳에 모아 세력을 이루어 감히 얕보지 못하는 대군을 만드는 것이야.”
“그런 뒤 청주에 가서 싸웁니까? 양 형과 제가 같은 길을 걷는가 보군요!”
이영소가 감개무량하게 말했다.
“…….”
양천환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이는 당연히 목적 중 하나네. 그리고 이건 사실 내가 생각해낸, 허칠안을 제압하는 방법일세.”
대체 무슨 근거로 허칠안을 제압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이영소는 일단 허칠안을 제압한다는 소리에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양천환이 담담하게 말했다.
“허칠안 이 개자식이 백성들에게 영합해 여러 차례 자신을 과시했잖나. 난 아무리 해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사실에 정말 낙담했네.”
‘그의 홍안지기가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다는 사실에 정말 낙담했지…….’
이영소는 깊이 찬동했다.
“휴, 양 형께서는 저를 아시는군요.”
자신만만한 양천환은 여전히 담담한 어조를 유지했다.
“하지만 최근 갑자기 내게 묘책이 생겼네. 성공하기만 하면 양천환 이 세 글자로 허칠안을 제압할 수 있어!”
이영소는 얼마나 흥분했는지 손을 비비며 눈을 반짝였다.
“양 형, 어떤 묘책인지요?”
한동안 그는 절망했었다. 존귀한 공주는 둘째 치고, 대봉 제일 미인과 인종 도사 낙옥형만으로도 허칠안에게 상대도 되지 않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에 허칠안을 누를 방법을 생각했다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양천환은 찻잔을 받치고 유모를 한쪽으로 젖혔다.
그 순간, 저채미와 이영소는 약속이나 한 듯 몸을 기울였다. 양천환의 진짜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다.
“…….”
그러나 양천환은 찻잔을 내려놓고 마시지 않았다.
“콜록콜록! 양 형, 계속하시지요.”
성자가 목청을 가다듬고 말했다. 그와 저채미 모두 아쉬운 표정이었다.
옆에 있던 세 낭자는 두 사람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 눈만 깜빡였다.
이윽고 양천환이 모든 사람을 등진 채 말했다.
“사실 허칠안의 모든 행위는 그저 한순간 이름을 떨치는 것일 뿐이네. 내 세대의 사람들이 따지는 건 한순간의 명예가 아니라 영원한 명성이지. 유가 사람들이 싫긴 해도 확실한 말은 하나 남겼지. 군자는 덕을 쌓고, 공을 세우고, 모범이 될 만한 훌륭한 말을 남기는 법이고 이는 삼불멸(*三不朽: 영원히 변치 않는 3가지)이라지. 내 구태여 허칠안과 순간의 쾌락을 위해 싸울 필요가 있겠는가? 나는 후세에 명성을 떨치고 사서에 남을 인물이 될 것이네.”
여기까지 말을 마친 후, 돌연 양천환의 어조가 열렬해지기 시작했다.
“이 형, 지금 중원은 매우 어지럽네. 운주 반란군이 맹렬하게 몰아닥치고, 각지에서도 유랑민이 반기를 들었네. 이 난세는 반드시 사서에 기재되겠지.
만약 내가 이 난세에서 유랑민을 모아 중원을 놓고 쟁탈전을 벌인다면? 마지막에 반란을 평정해 중원에 태평한 천하를 돌려주고 조정에 태평성대를 돌려준다면, 나 양천환의 명성은 틀림없이 그 개자식 허칠안을 누를 걸세! 수차례 내 기연을 빼앗은 허칠안에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걸 알려주게 돼서 다행이군.”
‘그쪽이 반란을 평정할 수 있다면 왜 곧장 황제가 되지 않고? 그럼 허칠안은 물론, 당신 스승 감정이라도 너만큼 영예롭진 않을걸…….’
이영소는 속으로 한껏 비아냥거렸다.
조소소는 이제 대략 이해가 됐다. 양천환은 허칠안과 사이가 나빴다. 허칠안에게 기회를 뺏긴 모양이었다. 그래서 복수하려는 것 같은데, 듣자니 좀 이상했다. 복수하려면 그 대상은 허칠안이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지만 양천환은 허칠안보다 더 두각을 나타내고, 입신양명하는 것에 목적을 두었다. 이건…… 대체 무슨 복수에 속하는 거지?
조소소는 고개를 돌려 우함수와 남람을 쳐다보았다. 그녀들 역시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인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