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1014
1011화. 익숙한 기운
어쨌든 의아하더라도, 조소소는 일단 웃으며 한 마디 맞장구는 쳤다.
“만약 명성을 떨쳐 용맹한 스승이 되실 수 있다면, 양 사형께서는 확실히 사서에 기록되어 후세에 이름을 떨칠 수 있을 겁니다.”
그녀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자고로 세력을 이룬 자는 마지막에 전쟁에 패하든, 대업을 이루든 전부 사서에 한 획을 그을 수 있었다.
짝! 짝! 짝!
저채미도 힘껏 손뼉치며 사형의 총명함에 탄복했다.
양천환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 내심 점점 더 자신감이 붙었다. 본인이 생각해도 자신의 기지가 참 훌륭한 것 같았다.
그런데 이영소가 약간 망설이다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
“양 형의 계획엔 문제가 없습니다. 영웅은 혼란을 틈타 일어나지요. 양 형의 수련 경지와 수단이면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허칠안은 제압하고 싶어도……. 양 형께선 아마 모르실 수도 있는데…….”
양천환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뭘 알고 있는가?”
“허칠안이 남요와 손을 잡고 불문을 십만대산에서 내쫓았습니다. 남요가 복국했습니다. 만요국이 다시 나타났어요. 이건 사서에 강렬하게 한 획을 그을 만한 사적입니다. 그리고 허칠안은 그 혼자만의 힘으로 구주 정세를 바꾸고 쇠퇴해가는 중원 형세를 만회했습니다. 반드시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길 장거이지요. 양 형께서 그를 제압하고 싶어도 사실상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이영소는 말을 마치고 가만히 앉아 있는 양천환을 발견했다. 양천환은 한순간 돌이 된 것처럼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조소소 등도 말없이 안타까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양천환과는 고작 방금 알게 된 사이지만……. 그의 비통함이 이 방 안을 다 채울 듯했다.
* * *
잠도.
장기가 가득하며 햇빛은 비치지 않고 바닷바람은 걷히지 않는 산골짜기에 허칠안이 모남치의 손을 잡고 조심스레 걷고 있었다.
허칠안은 어두컴컴한 골짜기를 한번 내려다보며 이야기했다.
“유명잠은 아주 대단한 이수예요. 그것이 내뿜는 고치실은 초범경의 무사까지 감을 수 있고, 맹독까지 있지요.”
“어떤 누에가 초범을 잡아먹을 수 있단 말인가. 자네 말이 헛소리란 건 알겠지만 뭐, 증거가 없군.”
흰 여우를 안은 모남치는 입을 삐죽이곤 깊은 골짜기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말로는 믿지 않는다고 했지만, 표정은 아주 조심스러웠다.
그때, 허칠안이 모남치의 어깨를 톡, 밀었다.
아슬아슬하게 발끝을 걸치고 있던 모남치는 갑자기 균형을 잃고 하마터면 깊은 골짜기에 떨어질 뻔했다.
“허칠안! 너랑 끝장을 보겠어……!”
모남치는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아예 백희도 내려놓고 허칠안에게 필사적으로 달려들었다.
허칠안은 가볍게 고개만 젖혀 피한 후, 빙그레 웃었다.
“부도보탑으로 들어가실래요?”
모남치는 순간 성가시게 하고 싶기도 하고, 좀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망설이는 그녀를 보고, 허칠안이 다시 한번 말했다.
“형편이 심상치 않다고 보이면 제가 마마를 탑 안으로 넣을 거예요.”
“그럼, 알겠어…….”
허칠안은 화신의 허리를 끌어안고 골짜기로 뛰어 들었다.
* * *
맹독을 품은 장기가 덮쳐왔지만 허칠안도, 모남치도 아무 영향을 받지 않았다. 허칠안은 오는 동안 이미 너무 많은 독기를 흡수해 독고를 배불리 먹은 상태였다. 심지어 지금은 좀 아쉽기까지 했다. 골짜기의 독기는 밖에 있는 것보다 더 독하고 더 순수하지 않았다.
백희는 두 발로 부드러운 코를 힘껏 감싸고 있었다. 물론 몸속에 이미 독고의 자고가 주입돼 있어 알아서 독소를 다 흡수하고 있었다.
철컥!
두 사람이 천천히 떨어지자 발 아래에서 낭랑한 소리가 들려왔다.
백골 몇 토막이 부딪히는 소리였다.
허칠안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골짜기는 짙은 까만색으로 보였고, 창백한 백골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마치 쓰레기처럼 아무렇게나 내버려져 있었다.
대부분 조류와 어류, 동물들이고 인간의 뼈는 거의 볼 수 없었다.
이곳은 바다에 인접한 남강에 위치했다. 남강은 본래 요족의 본거지니 애초에 이곳까지 어선으로 항해하는 인간이 있을 리가 없었다.
“유명잠이 어디 있는 거지?”
모남치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방은 고요했고, 귀신의 그림자도 없었다.
허칠안은 귀를 살짝 움직이다가 빙그레 웃었다.
“왔네요.”
그는 꿈틀거리는 소리, 빽빽하게 꿈틀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이내 전방에 짙은 안개 같은 장기가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짙은 안개 깊은 곳에서 검은 빛이 발사됐다.
슉!
허칠안은 모남치의 손을 잡고 뒤로 물러났다.
검은빛은 정확히 그들이 원래 서 있던 위치에 박혔다.
점액질의 까만 고치실로, 잘 살피니 옅은 회색을 띤 실이 뭉친 것이었다.
‘햇수가 부족한데…….’
허칠안은 한번만 보고도 자신이 찾으려는 유명잠사가 아님을 알았다.
그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양 볼을 부풀리더니 힘껏 불었다.
그러자 깊은 골짜기의 장기가 흩어지면서 한동안 깨끗해졌다.
뒤이어서 먼 곳에 있던 장기가 하늘하늘 떠오르더니 빈 공간을 메웠다.
시야가 맑아진 틈에 허칠안과 모남치는 전방의 적을 똑똑히 보았다.
반은 사람 형태에 반은 누에 형태를 한, 십여 마리 괴물이었다. 피부색은 거무스름했고 상반신은 인간에 하반신은 통통한 누에의 모습이었다.
사내도 있고, 여인도 있는데 모두 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
얼굴은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눈은 흰자위 없이 까만 보석 같았고, 송곳니 두 개가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하지만 이목구비를 논하자면 다들 아름다웠다. 생김새가 아주 수려했다.
“아주 중후한 기혈이군!”
“이건 집 앞에 떨어진 맛있는 음식이잖아. 깔깔!”
“나 저 수컷의 오장육부를 먹겠어. 장기가 가장 맛있으니까.”
“엇, 그 옆에 있는 암컷은 왠지 모르게 매혹적이군.”
“먹자, 먹어. 그들을 먹자고, 하하하.”
“나는 저들이 벌벌 떨며 비는 걸 보는 게 더 좋아.”
유명잠들은 거리낌 없이 대화하며 스스로 그물에 걸려든 두 사냥감을 자세히 살폈다. 다만 허칠안과 모남치의 귀엔 명확한 말이 아닌, 의미 없는 울부짖음처럼 들렸다. 그리고 백희는 너무 작아서 아예 무시당했다.
‘나는 유명잠이 누에 형태인 줄 알았지, 인간 머리와 누에 몸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네. 똥 싸고 나면 엉덩이는 닦을 수 있으려나? 뭐, 실력이 나쁘진 않지만, 초범은 아니야. 배후에 분명히 더 강한 존재가 있는 거야…….’
허칠안은 검처럼 손가락을 합치고 미간을 두드렸다.
즉시 금칠이 반짝이기 시작하면서 빠른 속도로 퍼져 온몸을 물들였다.
슉!
허칠안의 머리 뒤에서 불의 고리가 폭발하면서 후끈후끈한 고온으로 장기에 열기가 올랐다.
“초범, 초범이다!”
앞에 있던 유명잠이 날카롭게 소리지르더니 고개를 돌려 도망쳤다.
나머지 유명잠도 뿔뿔이 흩어져 아늑한 골짜기 깊숙한 곳으로 도망쳤다.
“……이렇게 도망친다고?”
모남치는 눈을 깜박이다가 다소 실망한 듯 말했다. 그러다 방금 자신을 겁주던 허칠안이 생각나 화가 치밀었다.
“이건 자네가 얘기한 것과는 완전히 다르잖아! 또 나를 놀렸어.”
“조급해 마세요. 작은 놈들을 놓아주면 자연스레 큰 놈이 올 겁니다.”
허칠안이 웃으며 말했다.
그는 일부러 초범경 기운을 밖으로 내뿜었다. 불의 고리가 이글이글 타오르며 후끈후끈한 고온이 골짜기를 데워 아예 금이 갔다.
모남치는 그저 좀 덥다고 여겼을 뿐, 초범 무사의 위압에 아무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백희가 메추라기처럼 그녀 품에 숨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대략 10초 뒤, 모남치는 발밑에 전해지는 진동을 느꼈다. 뒤이어 산사태가 난 듯 먼 곳에서 거대한 바위가 굴러떨어지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허칠안 역시 땅 밑을 뚫고 나온 무시무시하고 횡포한 기운이 이쪽으로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했다.
짙은 안개가 모였다 흩어졌다 하는 사이, 거대한 윤곽이 드러났다. 그 윤곽은 서서히 더 뚜렷해졌다.
상반신은 노부인 형상에 하반신은 비대한 누에인, 거대 괴물이었다. 전에 그 회색 유명잠과는 달랐다. 이 거대한 누에의 피부색은 짙은 밤하늘 같았다. 이 유명잠 앞에 허칠안과 모남치는 순간 개미처럼 작아보였다.
“넌 누구냐?”
유명잠이 입에서 기괴한 음절을 내뱉었다.
동시에 유명잠이 허칠안을 자세히 살피니, 혈기왕성하고 기기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었으며 몸속에 익숙한 기운도 있었다.
보석 같은 까만 두 눈은 허칠안을 한참 주시하다 갑자기 낯빛을 굳혔다.
“고(蠱)구나!”
‘이 유명잠은 초범경이다. 보통 3품보다 강하나 2품에 이르진 않았나보네. 지금 말하는 건 무슨 언어지? 그냥 의미 없는 포효같진 않은데…….’
허칠안은 이것이 바로 구미천호가 말한 진정한 유명잠이라는 걸 알았다.
초범경의 생령(生靈)을 먹을 수 있는 유명잠.
‘하, 죽이는 게 쉽진 않겠는데? 우선 백희와 모남치를 부도보탑으로 거둬야겠다. 그런데 이런 이수는 무슨 수법을 지닌 지도 모르고, 위격도 높아서 경솔하게 나섰다간 실패할 가능성도 있겠어…….’
허칠안은 생각하면서 부도보탑을 꺼냈다.
“너는 고인데 여기는 뭐 하러 왔지? 그해 너희 신마 사이의 일이 우리 혈통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유명잠이 큰 소리로 물었다. 동시에 허칠안이 빛을 발하는 보탑을 꺼내는 걸 보고 즉시 몸을 구부렸다.
곧 유명잠의 아랫배가 팽창했다. 마치 무언가를 잉태하고 있는 듯했다.
양측은 일촉즉발의 형세였다.
바로 이때, 모남치 품에 있는 백희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하는 말이 신마어예요.”
‘신마어?’
허칠안은 여전히 기세를 비축하며 물었다.
“네가 어떻게 알아?”
“당연히 알죠. 저도 신마어를 할 줄 알아요.”
허칠안은 물론 모남치도 깜짝 놀랐다. 모남치가 보기에 백희는 맨날 흐느껴 우는 새끼 여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내 그 새끼 여우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마마께서도 신마어를 할 줄 아는데요? 제가 막 태어났을 때 마마를 따라 배웠어요. 다른 언니들은 습득하지 못했는데 저는 익혔지요!”
‘뭐 저렇게 득의양양해?’
허칠안은 잠시 생각 후에 말했다.
“그럼 내가 잠사를 구하러 왔다고, 무엇으로 바꿀 수 있는지 물어봐.”
만약 거래하는 방식으로 유명잠사를 얻을 수 있다면 당연히 피를 뒤집어쓰고 서로 싸우고 죽이는 것보다 백번 나았다.
백희는 바로 고개를 끄덕인 뒤, 목을 길게 늘이고선 날카로운 목소리로 유명잠을 향해 이상한 음절을 내뱉었다.
기세를 비축해 언제고 공격할 태세였던 유명잠은 익숙한 신마어를 듣고 처음엔 어리둥절해했다. 그러나 참을성 있게 다 듣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저 잠사를 원한다? 여우야, 먼저 내게 대답하라고 해라. 저 사내와 고는 무슨 관계지?”
백희가 유명잠의 말을 번역했다. 이후 허칠안이 말했다.
“난 그저 고의 힘을 얻었다고만 알려.”
여우의 번역을 다 들은 뒤, 유명잠은 머뭇거리지 않고 조건을 제시했다.
“나는 네 정혈을 원한다. 너무 많을 필요는 없다. 세 방울이면 된다.”
유명잠 역시 허칠안의 강대함을 아는 게 분명했다. 또한 교환하는 방식으로 필요한 걸 얻을 수 있다면, 전혀 싸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곧이어 유명잠의 복부가 공처럼 부풀어 올라 점점 위로 이동하더니 가슴, 목구멍을 통과해 마침내 뭔가를 세차게 분출해냈다.
슉! 슉! 슉…….
순수하게 까맣고 가느다란 선이 온 하늘에 뿌려진 후 골짜기로 떨어졌다. 그리고 선들은 석벽에 달라붙어 코를 찌르는 독기를 내뿜었다.
실을 다 토한 뒤, 유명잠은 다소 숨을 헐떡였다. 적잖게 힘을 소모한 듯했지만 전력은 여전했다. 허칠안이 말을 바꿀 것 따위는 조금도 겁내지 않았다.
‘유명잠사, 색은 칠흑같이 까맣고, 맹독을 지녔으며 더할 나위 없이 단단하고 질김. 유명을 통하면 영혼을 맞이할 수 있음…….’
허칠안은 문득 유명잠사 관련 기록이 스쳤다.
사천감의 ‘재료학’ 비서가 출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