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1021
1018화. 나를 찾는다고?
감정이 백돌을 쥐며 웃었다.
“그해 내가 방비하였으나 애석하게도 이성환두의 힘이 잠시 천기를 속여 자네와 천고 노인의 목적이 달성되었지. 하지만 자네는 당초 그이가 어떻게 운주에서 경성까지 순조롭게 도망쳤다고 생각하는가?”
탁!
백돌의 등장에 흑돌은 다시 가루가 되었다.
순간 표정이 굳어버린 허평봉이 바둑돌을 쥐고 잠시 침음했다.
“스승님께서는 제가 운주에 잠복해있다는 걸 이미 다 알고 계셨으면서 왜 20년 동안 나서시지 않은 겁니까?”
감정은 그를 쳐다보더니 웃는 듯 마는 듯 묘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말하면 믿겠는가? 내가 알았다면, 자네가 일을 해낼 수 있었겠나?”
허평봉이 탄식했다.
“천명사는 언제나 제정신이 아니지요. 됐습니다. 모두 다 지나간 일이지요. 그해 경성을 떠나 500년 전 그 혈통을 육성해 천명사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스승님, 제가 안배를 시작하고서 제일 먼저 둔 바둑돌이 어떤 건지 아셨습니까?”
감정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진 귀비입니다!”
허평봉의 착점으로 백돌이 가루가 됐다. 그리고 허평봉은 그다지 기쁘지 않은 표정으로 개탄하며 말했다.
“말하자면 저는 위연과 동병상련입니다. 진 귀비의 부친 형부상서는 일찍이 저를 이끌어주며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젊었을 때, 저희 둘은 이미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했지요. 애석하게도 세상일은 수시로 변하더군요.
원경이 궁녀를 뽑을 때 그녀가 입궁했습니다. 그해 바로 그녀를 이용해 밀고했어요. 위연과 원경, 군신 사이를 멀어지게 하고 그가 수련 경지를 스스로 폐하도록 압박했지요. 요 몇 년간 궁중의 크고 작은 소식은 전부 그녀를 통해 들었습니다. 하지만 거사 이후, 이 바둑돌은 쓸모없어졌습니다.”
진 귀비는 경성에서 허평봉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허평봉의 반란 계획은 전혀 알지 못했다.
지금 두 사람은 완전히 대립된 입장이었다.
“참, 저는 그녀를 통해 단서를 쫓아 원경제의 상태를 알게 됐고, 정덕의 존재도 알게 됐습니다. 이로써 원경이 도를 닦도록 꾀어내고 대봉 국운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후속 계획이 생긴 거지요.”
흑돌이 폭발하는 소리 사이로, 감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정덕이라는 종양을 도려내 주었으니 자네 부자에게 여러모로 감사해야겠군. 그렇지 않으면 나도 정덕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을 것이네.”
허평봉은 가만히 바둑판의 백돌을 바라보며 말했다.
“감정 스승님, 요 몇 년간 그해 무종이 거사하던 때의 경과를 끊임없이 복기하고 분석했으나 두 가지 일은 끝내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해 무종 황제의 거사는 아주 급작스러웠습니다. 만반의 준비를 한 지금의 운주에 훨씬 미치지 못했지요. 하지만 사조께서도 너무 성급히 대응하셨습니다. 스승님께서 반란을 일으킬 거라는 걸 예상하지 못한 듯했습니다. 과연 고의로 못 본 척한 것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아니라면 재미있어지지요. 명색이 천명사인 사조께서 어찌 스승님께 속은 걸까요?
술사의 천기 차단도, 이성환두도 한순간 한 가지만 차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천명사는 미래를 꿰뚫어볼 수 있지요. 설령 일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해도 평생 차단할 수는 없습니다. 감정 스승님, 어떻게 하신 겁니까?”
여기까지 말을 마친 후, 허평봉의 눈에 이상야릇한 빛이 스쳤다.
“왜냐하면, 스승님께서는 문지기이시니까요. 이게 바로 스승님께서 진정으로 사조를 죽일 수 있었던 이유겠지요.”
감정이 허평봉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하지만 자네가 문지기라면, 초대는 또 뭐지?”
갑자기 감정 뒤쪽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렸다.
어느새 그곳에는 흰 비늘에 사슴뿔, 악어 입술과 사자의 갈기를 한 거대한 짐승이 자리해 있었다.
* * *
둥! 둥! 둥!
송산현에 천둥 같은 고(鼓) 소리가 울려 퍼졌다.
민병은 성벽 위를 분주히 뛰어다니며 등유, 뇌목, 화포가 적재된 상자와 화살을 운반해왔다.
화포수는 민첩한 동작으로 사격 각도를 조정했고, 궁수는 화살 주머니를 발 옆에 두고, 수비군도 전부 동원되어 질서정연히 맡은바 준비를 했다.
이 모든 것이 허신년표 훈련의 결과였다. 병사들은 이미 모든 절차가 본능에 각인돼 있었다. 민병이라 해도 훈련 효과는 상당했다. 이들은 지난 한달 내내 매일 반복해 연습하고 성을 끊임없이 오르락내리락했었다.
묘재방은 성가퀴 위에 서서 먼 곳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황야에 새까맣게 밀집한 대군이 서서히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대군 선두에는 표면에 철판이 깔린, 2장(丈) 높이 괴차(怪車)가 있었다. 마치 거대한 방패 같은 괴차는 총 6대로, 민병이 십여 명씩 밀고 있었다.
묘재방은 저 괴차를 본 적은 없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적군이 제조한 것임을 알았다. 성벽 위 높은 곳에서 폭발하는 화포를 막는 데 쓰이는 것이었다.
이윽고 적군이 서서히 상노 사정거리에 진입했을 때, 묘재방이 호령했다.
“화살!”
뻥! 뻥! 뻥!
긴 창 형태의 화살이 발사되었다.
화살은 굉음과 함께 큰 방패를 손쉽게 찔러 넣었다. 하지만 침투력으로 이름난 화살도 저 큰 방패들을 효과적으로 무너뜨릴 순 없었다.
그래도 묘재방은 낙담하지 않았다. 조용히 적군이 화포 사정거리에 진입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또 손을 휘둘렀다.
“발포!”
쿵!
화포가 갑자기 뒤로 물러나더니 포구에서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포탄이 한 발씩 발사되며 운석처럼 거대한 방패 위를 내리쳤다. 동시에 팽창한 불덩이가 일었다.
거대한 방패가 폭발하며 부스러진 나무와 이글이글한 쇳조각이 튀었다.
하지만 이 역시 수비군 일부 화력만 막았을 뿐, 적군의 사상자는 적었다.
그리고 방패 6대가 전멸하고, 화포 3대가 파손되는 대가를 치른 뒤, 반란군은 마침내 병선(兵線)을 자신들 쪽 화포의 사정권까지 밀어붙였다.
쿵! 쿵! 쿵!
쌍방의 화포가 맞폭격하며 성벽 위와 황야에 잇따라 불구덩이가 일고, 짙은 연기가 넘실댔다.
이어진 호각 소리에 반란군이 기다렸다는 듯 돌격했다. 무리는 개미처럼 새까맸고, 그 기세는 무지개와 같았다.
허신년은 성벽 위에서 침착하게 깃발을 흔들며 지휘했다.
암영부 족인은 성에 개미처럼 달라붙어 공격하는 적군을 한 명씩 죽였다. 또한 시고부의 공시수는 적군의 시체를 ‘우군(友軍)’으로 바꾸었고, 역고부 전사는 무시무시한 체력으로 아래로 뇌목과 낙석을 내던졌다.
모두가 허신년의 지휘하에 더할 나위 없는 호흡을 맞췄다.
“조심하세요!”
갑자기 허신년과 제법 가까이 있던 묘재방이 그를 덮쳤다.
허신년은 돌연 하늘과 땅이 빙빙 돌면서, 엄청난 굉음을 들었다.
쿵!
성가퀴가 폭발하며 균열이 생겼다. 긴 창 형태의 화살이 성가퀴를 꿰뚫고 허신년이 있던 자리에서 폭발한 것이었다.
‘보통 화살은 기기를 쏠 수 없다. 이건 고수가 투척한 것이야…….’
묘재방은 번뜩 스친 생각에, 성벽 옆으로 달려들어 아래를 내려다봤다.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인파 속, 익숙하면서도 낯선 인물이 있었다.
탁호연!
그가 손에 암고부 전사의 머리를 들고, 다른 손에는 긴 창을 쥔 채 섬뜩하게 웃으며 성벽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자를 막아라!”
허신년은 냉정하게 깃발을 휘둘렀다.
성 내에선 비수군 3백이 발로 기름통을 붙잡고 솟구쳐 올랐다. 병사들은 활을 멘 채, 손에는 화살촉에 솜화약을 감싼 화살을 쥐고 있었다.
3백 비수군은 마치 폭격기 같았다.
비수군은 가장 강한 부대로, 전장에서 거의 백전백승이었다.
설사 4품 무사라 해도 ‘전도(箭道)’를 수련한 게 아닌 이상, 활로 비수군을 위협할 생각은 하지 말아야 했다. 바람을 몰아 추격한다 한들 4품 무사의 비행 속도를 비수와 같은 선상에 놓을 순 없었다.
바로 그때, 하늘가에 청량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늘에서 적색의 거대한 새 무리가 날개를 퍼덕이며 오고 있었다. 드높은 기세의 새 떼는 족히 500마리는 되어보였다.
선두에는 날개가 3장(丈)에 달하는 거대한 새가 날고 있었다. 그러나 새 등에 탄 기병은 보이지 않았다.
문득 허신년의 눈동자가 수축했다.
* * *
곽현.
희현은 절반가량 무너진 성벽 위에서, 하늘에 우뚝 선 손현기를 바라보았다. 이내 희현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성벽이 종이와 무슨 차이가 있던가? 손현기, 지금 우리 군이 성을 공격했다. 성 전체가 그럴진대 감히 화력으로 곽현을 뒤덮으려는 건가?”
손현기가 차가운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희현은 한번 비웃곤 성으로 시선을 돌렸다. 백성들은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고, 양군 장병들은 성에서 시가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저으며 한마디로 평했다.
“부인지인(*婦人之仁: 하찮은 인정을 일컬음)!”
손현기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희현이 패도를 뽑아 들고 혀를 차며 웃었다.
“바로 네 부인지인으로 동릉이 함락된 것이다. 내가 너였다면 설령 적군 1천을 죽이고 아군 8백을 잃는다 해도, 설령 성 내 백성이 전부 화포에 죽는다 해도 적군 정예병을 소탕했을 것이다.
아, 자네에게 말하는 걸 잊었군. 자네가 차마 동릉 백성을 죽이지 못해 이미 내가 혈단으로 제련했다. 보름이 걸렸는데 다행히 넌 발견하지 못했지. 그렇지 않았다면 나도 성공을 눈앞에 두고 실패했을 것이야.”
말하는 동시에 그가 나무 상자를 꺼내 열었다.
탁!
짙은 생기가 붉은빛을 동반하며 반짝였다.
희현은 손가락으로 혈단을 쥐고 삼켰다. 그의 기운이 순식간에 폭발하며 꿋꿋하게 한 단계가 올랐다.
3품경은 혈단을 삼킴으로써 기기와 기혈을 강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껏해야 3품 중경으로 끌어올릴 뿐, 그 후로는 혈단의 효과가 크지 않았다.
“네가 함께 희생될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나도 너를 죽이긴 귀찮구나. 사천감으로 썩 꺼져라. 사흘 안에 청주는 함락될 것이다.”
희현은 당연한 진리를 말하듯 아주 가볍게 한마디 툭 던졌다.
* * *
바다 위.
우아하게 웅크려 앉은 백희의 왼눈에 청광이 흘러나왔다.
허칠안은 선미(船尾)에 가부좌를 틀고 웃으며 말했다.
“마마, 어째 한가롭게 저를 찾으십니까?”
구미천호가 부드럽고 매력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어떤 영혜사가 남강에 와서 자네를 찾는다 했다더군. 자네를 만나지 못하니 나를 찾아와 알아보았네.”
‘영혜사? 이이포 아니면 오달보탑? 허, 나를 찾는다고? 죽음을 자초하나?’
허칠안은 곤혹스러우면서도 우스웠다.
구미천호가 덧붙여 말했다.
“명금석을 주러 왔다더군.”
“네?”
허칠안은 입을 쩍 벌리고 경악했다.
뭔가 잘못 들은 게 아닐까? 명금석은 초혼번을 정제하는 재료 중 하나인데 무신교가 그 명금석을 선물하겠다고?
꼭 허평봉이 갑자기 나타나서는 ‘아들아, 아비가 한 모든 일이 전부 다 너를 위한 것이란다.’라고 말한 듯한 기분이었다.
“자네가 승낙한다면, 자네 위치를 알려주겠네. 본좌는 세상사에 얽매여 있어 자네와 수다 떨 시간이 없다고.”
구미천호가 한껏 귀찮음을 표했다.
“좋습니다!”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양이 스스로 그물에 걸려들었는데 그가 응하지 않을 이유가 있으랴.
구미천호가 바로 떠나려는데, 갑자기 허칠안이 외쳤다.
“마마! 우선 가지 마십시오. 하나 여쭐 일이 있습니다.”
“음, 무슨 일인가?”
“전에 유명잠을 만난 적이 있으시지요?”
“물론, 안 그럼 어찌 자네에게 유명잠사가 있는 곳을 알려줬겠는가.”
허칠안은 금세 언짢은 얼굴이 됐다.
“그럼 마마께서는 훨씬 전부터 신마가 몰락한 원인을 알고 계셨겠군요?”
구미천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
“어째서 저한테 알려주지 않으셨습니까?”
구미천호가 빙그레 웃었다.
“자네도 묻지 않았잖나. 난 알고 있는 비밀이 아주 많네. 뭐, 예를 들면 아직 내가 경험이 없다는 것? 그런 비밀은 자네에게 말하지 않았는데?”
‘아이, 진짜…….’
허칠안은 속으로 살짝 짜증을 내다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제가 말하려는 건, 마마께서도 ‘대황’이라는 신마를 알고 계십니까?”
잠시 생각 후, 구미천호가 고개를 저었다.
“들어본 적 없네.”
허칠안은 ‘대황’족의 특성을 이야기한 후, 끝으로 덧붙였다.
“유명잠이 백제가 바로 린족이라고 했습니다. 신마 시대가 끝난 뒤, ‘대황’이 거의 다 통째로 먹었다더군요. 이 일을 어떻게 보십니까?”
순간, 백희 왼눈의 청광이 격하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