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1023
1020화. 변천 (1)
백제가 현신한 뒤, 공기 중 수분이 급격히 증가하고 운해가 넘실대기 시작하더니 서로 겹치고 부딪치며 세찬 천둥이 발생했다.
사람들 아래 운해는 천둥과 번개를 일으키는 먹구름으로 변했다.
백제는 쪽빛 세로 눈으로 백의를 펄럭이는 감정을 응시했다. 그리곤 전과 다름없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문지기는 쉽사리 몰락하지 않을 테지. 만약 자네가 문지기라면 초대는 또 뭐란 말인가?”
살륜아고를 만난 뒤, 백제는 상대적으로 만족스러우나 또 역설적인 답을 얻었다. 초대 감정의 예사롭지 않은 갖가지 행동이 그가 바로 문지기임을 암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지기가 또 어찌 그리 쉽게 죽는단 말인가.
감정이 침묵하자, 백제가 계속해서 말했다.
“신마가 몰락한 뒤 나는 줄곧 생각했다. 만약 세상에 하늘의 법칙을 상징할 수 있는 어떤 물건이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꽃, 새, 물고기, 벌레, 초목, 요괴? 신마? 인간과 요족? 지금의 각 체계? 아니다. 전부 아니다.”
백제는 잠시 말을 멈추고 고개를 저은 뒤,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기운이네! 신마가 몰락한 건 천명이 이러하기 때문이지. 인간과 요족 두 종족의 궐기 역시 천명이 이러하기 때문이네. 지금까지 요족은 기울고 있으나 인족은 차츰 구주 대륙을 지배하고 있네. 이 역시 천지자연의 법칙이니 인족이 흥할 수밖에. 그리고 이 모든 건 기운을 피해갈 수 없네. 기운과 관련된 양대 체계 중, 유가는 기운을 삼켜 그것과 하나가 됐네. 유가 지식인이 오래 살 수 없는 건 이러한 이치 때문이지. 하지만 술사는 다르네. 술사는 기운을 연화하고 기운을 장악하지.
천명사와 나라는 동체(同體)로 나라가 멸망하면 죽고, 이와 반대라면 나라와 나이가 같네. 자신과 천도(*天道: 천지자연의 법칙)가 돌보는 자를 한데 묶어 융합하는 게 큰 이치일세. 이렇기에 내게는 초대 감정이 문지기라고 의심할 이유가 있네. 그는 하늘의 법칙을 받들었기 때문에 술사 체계를 세운 것이지.”
감정이 손을 뒤집어 검을 내리쳤다.
수령(水靈)검이 내리친 건 잔영이었다. 곧이어 백제의 진짜 몸이 감정 앞에 나타나더니 오른발을 들어 수수하고 질박한 발을 내리쳤다.
쿵! 쿵! 쿵…….
마치 이 한 수로 허공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띵!
기울어진 땅, 끈적끈적하고 칠흑같이 까만 검광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것은 곧 다시 전송되어 돌아왔다.
동시에 이 검은 천기는 차단되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고요해졌고, 다음 순간 백제의 옆구리를 세차게 베었다.
검광은 순수한 수령의 힘으로 폭발했다. 거꾸로 날아간 백제는 네 발로 허공을 딛고 수십 장(丈) 미끄러진 후에야 일격의 힘을 상쇄했다.
백제는 먼 곳에 있는 감정을 보며 느릿하게 말했다.
“자네와 같은 경지의 적과 맞붙은 건 오래간만이야. 재미있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가나수 보살 머리 위로 두 법상이 응집되었다.
허평봉 발밑에서는 직경 3장(丈)의 원진(圓陳)이 빛났다. 천간지지(天干地支), 오행팔괘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
지금, 3대 전봉 고수가 모두 감정을 포위하고 그를 죽이려 하고 있었다.
허평봉의 진법은 위력이 함축되어 드러나지 않았고, 가나수 보살의 법상은 뚜렷한 이상 형태를 동반했다.
6장(丈) 높이의 좌측 법상은 황금으로 주조한 듯했다. 근육이 다부지고, 등 뒤에는 팔 12쌍이 부채꼴로 펼쳐져 있으며 머리 뒤쪽에선 이글거리는 불의 고리가 타고 있었다.
불의 고리는 꼭 힘과 화염의 화신 같았다. 나타나자마자 고공의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고 찌는 듯한 한여름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팽창한 위압이 열기를 동반해 사방을 휩쓸었다.
또 우측 법상은 연한 금빛 법상으로, 책상다리로 앉아 고개를 숙이고 눈을 내리깐 채 양손을 합장하고 있었다. 이 법상은 산악 같은 중후함을 발산함과 동시에 주변이 바람 한 점 없이 굳어 있었다.
촤르르…….
다시 파도 소리가 울렸다. 이번에는 허황된 검은 파도가 100장(丈) 높이까지 일었다. 마치 하늘까지 이어진 거대한 벽 같았다.
이에 비해 눈처럼 하얀 백의의 감정은 개미처럼 작아 보였다.
타닥!
동시에 백제 머리 위의 뿔에서 불꽃이 튀더니, 뿔 사이에 하얗게 이글거리는 뇌구(雷球)가 형성되어 끊임없이 힘을 축적했다.
감정은 다시 낡은 수법을 시전했다. 오른손을 뒤로 내밀어 검은 파도에 집어넣고선 천천히 검은 장검을 뽑았다.
그 순간, 허평봉이 갑자기 사라지더니 전송술로 감정 옆에 번쩍 나타났다. 같은 동작을 취한 그는 왼손을 검은 파도에 집어넣고 검은 장도를 뽑았다.
사제 둘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동시에 칼과 검을 뽑아 힘차게 베었다.
우르르……, 쾅! 쾅!
운해 위, 만경창파(萬頃蒼波)가 폭발하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허평봉은 감정의 검을 막은 뒤, 전송술로 즉시 퇴각했다.
번쩍이며 사라진 그의 형체는 수십 장(丈) 밖의 구름 속에 나타났다.
하지만 허평봉은 퇴각에 성공하지 못했다. 감정은 여전히 그의 옆에 있었다. 꼭 감정을 데리고 함께 전송한 것만 같았다.
백발의 감정이 무표정하게 손을 뻗어 허평봉의 목덜미를 잡으려 했다.
웅!
그러자 갑자기 허평봉 발밑의 원진이 회전하더니 ‘수(水), 택(澤), 토(土)’ 이 세 글자 부호가 빛나기 시작했다. 그의 앞에선 검누런 내층과 시커먼 외층, 표면에 불꽃이 튀는 장벽이 솟구쳤다.
동시에 그의 허리춤에 있는 비단 주머니에서 유광이 한 줄기씩 흘러나왔다. 묵직한 청동 종, 황동 호심경, 흑철 방패, 화염이 감도는 원형 고리 7겹……. 무려 8개나 되는 최상급 호신 법기였다.
그런데 그때, 순식간에 청동 종이 파열됐다.
펑……!
호심경이 파열되고.
펑……!
흑철 방패가 파열됐다.
펑……!
7겹 원형 고리까지. 감정의 손은 세상 가장 막강한 힘을 지닌 신기처럼 제자의 최상급 법기를 모조리 다 부쉈다.
허평봉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법기가 감정의 빈틈에 저항하는 사이에 발을 들어 밟았다.
전송진이 발하는 빛 사이로, 가나수 보살이 허평봉 앞을 막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에 따라 어깨와 팔꿈치부터 허리와 등까지 결이 생긴 근육에 들끓는 신력이 충만해졌다.
쾅!
가나수 보살의 일격이 폭발했다. 동시에 가나수 보살 머리 위, 우측의 불동명왕법상이 합장한 손으로 재빠르게 법인(法印)을 빚었다.
순식간에 이 공간의 주름이 억눌려 평평해지며 응고 상태에 빠졌다.
전송진법이 더는 효력을 발휘할 수 없자, 감정은 대수롭지 않게 손을 들어 가나수 보살의 주먹을 막았다.
웅!
어두운 금빛 주먹이 육각형으로 된 장막을 내리쳤다.
1품 보살의 주먹 힘이 삽시간에 장벽 정면을 뒤덮고 극심하게 흔들렸다.
웅웅~
육각형 장벽은 미친 듯이 힘을 뺀 뒤에 산산이 흩어졌고, 감정은 재빠르게 미끄러지며 물러났다.
이 틈에, 백제는 마침내 기회를 잡았다.
칙! 칙! 칙!
불꽃이 튀는 소리와 함께 백제 뿔 사이에서 서서히 조성된 하얗게 이글거리는 뇌구가 발사되었다.
운해가 갑자기 일렁이며 빽빽한 불꽃이 번쩍였다 사라졌다.
번개, 무려 번개였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감정은 현재 전송술도 시전하지 못하고 미끄러지고 있는 상태였다.
결국 감정은 양손을 밑으로 누르고 뇌구를 두 손바닥 사이에 정확히 합쳤다.
뇌구가 계속해서 밀어내니 감정은 계속해서 미끄러졌다.
기회를 잡은 백제와 가나수 보살은 함께 움직였다. 억센 근접전 능력으로 이 천명사에게 묵직한 타격을 주어 우세를 넓히려는 목적이었다.
거기에 허평봉 발밑에 진법이 펼쳐지면서 감정을 그 안에 가두었다.
속박하고, 공격하고, 방해하는……. 평소엔 당연히 감정에게 이러한 진법이 통할 리 없었다. 하지만 지금, 뇌구의 공세와 겹치며 놀라운 효과가 났다.
다음 순간, 백제와 가나수는 감정의 좌우에 각각 나타났다.
백제는 입을 크게 벌려 감정을 통째로 삼키려는 듯했다. 가나수는 허리를 비튼 채 팔을 흔들었고, 온몸의 근육이 터지며 들끓는 힘이 가득 찼다.
그때, 감정의 눈에서 정광(精光)이 번쩍였다.
펑!
감정은 폭력으로 뇌구를 무참히 눌러 꺾어버렸다. 이후 초연을 내뿜는 오른손을 허리춤에 누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확 빼냈다.
탁! 탁!
맑고 깨끗한 파열음 사이로 백제는 그대로 뽑혀 날아갔다. 새하얀 비늘 갑옷이 파열되고 피가 튀었다.
가나수 보살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고, 어두운 금빛 몸뚱이에 옅은 채찍 자국이 생겼다.
감정의 손에는 양몰이 채찍이 하나 늘어나 있었다.
대주술사 살륜아고의 법보는 무신교 제일 신기로, 그것에는 이름이 하나 더 있었다. ‘타신편(打神鞭)’이라는 이름이었다.
당초 정덕을 벨 때, 살륜아고와 감정은 관성루에서 다투고 있었다. 양측은 천기반과 타신편을 노름 돈 삼아 허칠안의 생사를 걸고 도박을 했다.
결과는 뭐, 허칠안은 죽지 않았고, 승기는 자연스레 감정이 거머쥐었다.
“이 망할 채찍은 별 쓸모가 없군. 나부랭이 둘쯤 치는 건 겸사겸사고.”
감정은 냉소를 짓더니 손을 털어 채찍을 휘둘렀다.
탁! 탁! 탁!
채찍은 잔영이 되어 거리를 무시한 채 다시 한번 허평봉과 가나수 보살, 백제를 후려쳤다.
허평봉, 가나수 보살은 말없이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감정 역시 침착한 얼굴로 바둑판 앞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 겉으로만 보면 기쁜 것인지, 분노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방금 말했듯 문지기는 쉽게 죽을 리가 없는데 자네는 또 초대 감정을 죽였지. 그래서 또 생각했네. 처음부터 초대가 문지기가 아니었다면?
진정으로 하늘의 보살핌을 받은 건 초대가 아니라 술사 체계네. 술사 체계를 세운 뒤에 그는 사명을 완수했고, 그런 뒤 진정한 문지기, 다시 말해 자네가 직접 등장한 것이지. 그렇다면 자네의 진짜 정체는 꽤 비밀스럽겠고.”
백제는 말을 마치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감정을 바라보았다.
감정은 드디어 백제를 돌아보더니 빙그레 웃음을 그렸다.
“알고 싶으면 직접 와서 시험해보지.”
백제의 세로 눈동자에 매서운 기색이 스쳤다.
우르르……, 쾅! 쾅!
구름층에서 번개가 번쩍였다. 뒤이어 허공에서도 엄청난 소리가 울렸다.
와르르!
감정의 뒤에서 100장(丈) 높이에 달하는 허황된 검은 파도가 솟구쳐 올라, 감정을 향해 세차게 내리쳤다.
이는 순전히 수령(水靈)의 힘으로 응집돼 이루어진 것으로, 백제의 이 일격은 사방 100리 수령(水靈)의 힘을 거의 다 뽑아냈다.
감정은 천천히 일어나 우뚝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거대한 파도가 닥쳐올 때, 오른손만 뒤로 내밀어 허황된 검은 파도에 맞섰다.
그 순간, 그의 뒤에서 검은 파도가 붕괴되면서 무너졌다.
이것이 바로 연금술사의 위력이었다.
평범한 연금술사가 제련하는 것이 강철과 기구라면, 최상급 연금술사가 제련하는 건 법기와 신병이었다. 전봉 연금술사가 제련하는 건 인간과 말의 교배 문제로까지 가는데, 하물며 감정의 경지는 어떠하겠는가.
감정의 경지에서는 천지 원소와 미시적 차원의 배열과 재편성에 관해 제련했다. 그가 원한다면 점철성금(*點鐵成金: 쇠를 달구어 황금을 만든다. 나쁜 것을 고쳐 좋은 것을 만듦)쯤은 아주 손쉬웠다.
또한 상대가 응집하여 온 수령의 힘으로 수령(水靈)검을 만들어 내는 것 역시 당연히 연금술사의 영역 안이었다.
“네게 돌려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