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1025
1022화. 서쪽에서 뜨는 해
감정은 천천히 고개를 숙이고 가슴에 난 큰 구멍을 쳐다보았다.
안에 심장이 사라져 텅 비어 있었다.
‘그가 병이 난 틈을 타 그의 목숨을 앗아야겠군…….’
흑련의 눈에서 흉악한 눈빛이 발사되었다. 양신은 즉시 4등분으로 분열되었는데 네 양신의 모습이 각기 다 달랐다.
한 구는 먹처럼 까맣고, 머리카락은 흔들리는 수초 같았다. 온몸에는 수령의 힘이 변한 옅은 안개가 감돌고 있었다.
한 구는 몸 전체가 붉고 미간에 화염 자국이 새겨져 있었는데, 머리카락은 아예 활활 타오르는 화염이었다.
한 구는 마치 기류로 조성된 듯 그다지 안정적이지 않았다. 때로는 몸이 기울기도, 늘어나기도 하며 언제든 광풍이 되어 갈 것만 같았다.
마지막 한 구는 온몸이 돌 갑옷으로 뒤덮여 있고, 장대한 체격에 황토색 잔잔한 물결이 원을 그리며 넘실대고 있었다.
도문의 ‘지풍수화(地風水火)’ 4대 법상이었다.
3품 도겁기에 수련하는 것이 바로 이 4대 법상이었다.
2품 대원만에 이른 뒤 4대 법상은 하나로 융합된 뒤 천겁을 맞이했다.
천겁을 견뎌내면 법상과 육신이 완전히 일치하여 육지신선의 위격을 성취할 수 있게 되었다.
흑련은 본래 2품 대원만이었어야 했다. 그러나 어찌하다 금련이 몸을 떠나 가버리면서 그는 ‘불완전한 몸’이 되었다. 도겁에 가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전력조차 한 단계 낮아져버렸다.
4대 법상은 영지가 없어 전부 흑련의 조종에 의지했다. 말하자면 그냥 꼭두각시라, 유성의 위압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때, 감정이 허리춤에 건 물건 수납 주머니에서 저절로 도자기 병이 날아왔다. 나무 마개가 튕겨 나가고, 금빛 찬란한 단환이 한 알씩 그의 입 속으로 날아 들어갔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 그의 가슴 혈육이 꿈틀거리며 심장이 재생했다.
술사는 무사의 자가 치유 능력은 없지만, 스스로 충전할 수 있었다. 감정은 살과 뼈를 살리고 죽이는 단약을 언제나 휴대하고 다녔다.
‘조용히 때를 기다려야겠군…….’
흑련은 관망을 택하곤 묵묵히 법상을 도로 불러들였다.
“자네 역시 문지기군!”
백제가 웃기 시작했다. 아직 복부의 상처는 아물지 못해서 조각칼의 힘이 백제의 생기를 갉아먹고 있었다.
그러나 단약을 먹은 감정은 다시 목숨을 부여받은 듯 전봉으로 돌아왔다.
“움직이지 말게!”
감정이 손을 들어 유관을 튕겼다.
이번에도 유가 성인의 허영은 같은 행동을 취했다.
백제는 몸이 무거워지면서 그대로 제자리에 굳었다.
감정은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뎌 수수하고 질박하게 유성 조각칼을 찔렀다. 방금 가나수 보살을 상대했던 것처럼.
칙! 칙! 칙!
본디 백제 머리 위의 뿔 하나에선 전기 불꽃이 튀고, 하나엔 검은 빛덩이가 응집되어 있었다.
뿔 사이에서 뇌전과 수령이 합쳐져 내핵은 새까맣고, 외층에는 전광이 둘러싸인 역량 덩어리로 응결되었다.
그리고 유성 조각칼이 찌르는 순간, 백제는 모든 힘을 다해 신체의 일부 장악권을 회복했다. 이후엔 머리를 젖혀 뿔로 조각칼을 맞이했다.
이글이글한 빛이 폭발하며 굵고 단단한 전기뱀이 채찍처럼 춤을 추었다.
수령의 힘은 제방이 무너진 댐처럼 사방팔방으로 솟구쳤다.
유성 조각칼은 겹겹이 전진해 두 역량 폭풍우의 충격을 뚫고 마침내 백제의 머리를 찔렀다.
“으르렁……!”
백제는 처참한 포효 소리를 냈다.
설사 신마의 후예라고 해도 유성 영혼에 저항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백제가 가나수 뒤를 밟는 사이, 서쪽에서 갑자기 태양이 떠올랐다.
동쪽과 서쪽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떴다.
그러나 동쪽의 태양은 빛이 미적지근한 반면, 서쪽의 태양은 운해 전체를 찬란한 금빛으로 물들일 만큼 눈부셨다.
사방을 비추는 빛과 열, 거기에 더할 나위 없이 무시무시한 위압을 동반한 기운에 절로 경외와 복종심이 솟았다. 덧붙여 중상을 입은 백제도, 허평봉과 흑련도 허황되면서도 방대한 범창을 들었다.
가나수 보살이 현화해낸 ‘불동명왕법상’과 ‘금강법상’과 비교하자면 이 태양은 완전히 다른 차원에 있었다. 마치 천지의 힘이 현화된 것처럼 절대 막을 수 없는 힘을 동반하고 있는 듯했다.
“아……!”
흑련이 먼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금빛 아래, 검은색 걸쭉한 액체가 흐르는 몸에선 간간이 푸른 연기가 피어올랐다.
연이어 ‘지풍수화’ 4대 법상이 잇따라 녹으면서 텅 비어버렸다.
불광이 두루 비추는 곳에는 같은 속성이 아닌 힘은 용납지 않는 듯했다.
“대일여래법상…….”
허평봉이 조용히 중얼거리다 갑자기 시선을 거뒀다.
그의 눈가에서 핏물 두 줄기가 흘러내렸다.
저것은 바로 9대 법상의 우두머리, 대일여래법상이었다.
흑련 도사는 깜짝 놀란 나머지 날아오르는 검은색 물줄기가 되어 허평봉의 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허평봉은 방어 진법과 대량의 최상급 법기를 받친 채 불광의 불길을 어렵사리 막아냈다.
“물러나, 얼른 물러나……!”
허평봉의 머릿속에서 공포에 질린 다급한 흑련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내 허평봉은 옆으로 고개를 돌려 감정과 그의 뒤에 있는 유가 성인의 영혼을 쳐다보았다.
초품을 상대할 수 있는 건, 초품뿐이었다.
대일여래법상은 불문이 전문적으로 유성 영혼을 억누르려 쓴 것이었다.
정산성에서 위연이 무신을 봉인한 장거를 겪었는데, 그들이 어찌 유가의 조각칼과 유관을 계산에 넣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그때의 위연과 다른 점은, 위연은 어쨌거나 2품 무사로 육신과 영혼의 힘을 천명사와 비교할 순 없었다.
이제 유성 영혼이 더해졌으니 지금 감정이 받는 압박은 당연히 위연보다 더 무거울 것이었다.
‘감정을 압박해 유성 영혼을 불러냈으니 반쯤은 이겼군…….’
허평봉은 뺨에 피눈물이 흘렀으나 입가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곧 그는 대일여래법상의 빛에 필사적으로 버티지 않고 멀리 물러났다.
슉! 슉…….
백제의 비늘이 빠른 속도로 까맣게 탔다. 백제는 그대로 푸른 연기를 내뿜더니 다시금 고통의 포효를 내질렀다.
다음 순간, 감정이 조각칼을 끄집어냈다.
슉!
백제의 두개골이 솟아오르며 비명이 뚝 그쳤다.
백제는 가나수처럼 나른해져선 창망한 대지를 향해 추락했다.
이 모든 걸 끝낸 감정은 천천히 옆으로 돌아 강렬한 태양을 바라보았다. 뒤에 있는 유성 영혼 역시 같은 동작을 취했다.
감정의 시선에 대일여래법상의 윤곽이 비쳤다. 타오르는 빛은 그의 눈동자를 태웠다. 이에 따라 유성 영혼의 청광이 일더니 대일여래법상의 빛을 3장(丈) 밖에서 막았다.
“부처…….”
감정은 허평봉처럼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숨을 깊이 들이쉰 그는 유관을 튕겨 더는 유성 영혼의 힘을 억누르지 않았다.
삽시간에 유성 영혼의 형태가 불어났다.
유성 영혼은 무려 6장(丈)이 넘는 높이에서 20장(丈)의 거인이 되었다.
천지가 별안간 탄생한 두 힘에 의해 경계가 뚜렷한 두 부분으로 분할됐다. 일부는 천지에 청기가 가득했고, 일부는 타오르는 금빛이 뒤덮고 있었다.
‘이건…….’
유성 영혼의 기세가 치솟는 걸 보고 허평봉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감정은 유성 영혼의 위력을 일부러 억눌러 전력으로 폭발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의 진정한 목표는 부처인가?!’
허평봉은 이 생각이 스침과 동시에 시력을 회복했다.
허평봉의 시야에, 한 발 앞으로 나아가 불광이 두루 비추는 영역에 침입한 감정의 모습이 비쳤다.
대일여래법상은 자극에 반응하며 더 이글이글하고 눈부신 빛을 폭발해냈다. 금빛은 하얗게 타오르는 빛으로 변해 유성 영혼을 삼켰다.
동시에 범창 소리가 점점 더 조밀해지고 쟁쟁해졌다. 마치 수천, 수백의 승려가 동시에 경서를 읽어 온 천지에 불음(佛音)이 울려 퍼지는 듯했다.
하얗게 타오르는 무궁무진한 불광 바다에서 감정의 백의에 불꽃이 타올랐다. 피부에도 검붉게 그을린 자국이 생겼다.
유성의 영혼 역시 어느 정도는 녹아있었고, 감정이 손에 쥔 조각칼도 다 타서 새빨간 빛을 발했다.
그래도 이것이 감정과 유성 영혼의 걸음을 막을 순 없었다. 기운을 근간으로 하는 두 인족 강자는 확고부동하게 앞으로 힘차게 나아갔다.
감정과 유성 영혼이 앞으로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온 하늘에 가득 찬 청기가 불광 영역을 한 점씩 침식했다.
20장, 15장, 10장, 5장…….
그런데 감정과 유성 영혼이 ‘강렬한 태양’의 3장(丈)까지 돌진했을 때, 이미 하얗게 타오르는 대일여래법상은 별안간 금신으로 현화한 뒤였다.
금신은 얼굴이 흐릿하고 체형은 약간 통통해 보였다. 그리고 두 손에는 꽃을 든 채 조용히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뒤통수의 강렬한 태양은 방금 빛과 열을 내뿜던 대일여래법상이었다.
그 법상이 천천히 눈을 떴다.
쿵……!
법상의 주시를 직면한 감정은 머릿속에 천둥이 쳤다. 마치 영혼이 수많은 파편으로 쪼개지는 듯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대일여래법상, 9대 법상 우두머리, 부처 득도의 근간이었다.
이때, 유성이 손을 뻗어 조각칼을 쥔 감정의 손을 잡아 가볍게 앞으로 내밀었다. 인두를 붉게 달군 조각칼은 금신법상의 미간을 찔렀다.
철컥…….
얼굴이 흐릿한 금신법상의 이마가 쪼개지면서 균열이 생겼고, 균열은 빠른 속도로 퍼져 삽시간에 온몸을 덮었다.
다음 순간, 대일여래법상이 붕괴했다. 안으로 붕괴한 법상은 금빛 강렬한 태양으로 잠시 멈췄다가 일순간에 터졌다.
지표면에서 보면 운해 위의 금빛 파도가 겹겹이 퍼지며, 하늘 절반을 가득 뒤덮고 뻗어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허평봉은 문득 눈을 감고 영혼으로부터 비롯된 전율을 느꼈다. 호신 진법, 최상급 법기가 잇따라 산산이 부서졌다. 유리보다 나약한 수준이었다.
모든 방호가 산산이 부서지는 사이, 그는 더 먼 곳으로 이동했다.
* * *
아란타.
이 불문 성산 깊은 곳에서 기진맥진한 포효가 전해졌다. 분노인지 고통인지 분간할 수 없는 울음소리였다.
뒤이어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산맥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산꼭대기 눈이 무너지고 휩쓸며 작지 않은 규모의 눈사태를 빚었다.
세찬 기세의 눈사태가 막 일자마자 무형의 공기 벽에 가로막혔다. 수만 톤의 적설이 공기 벽 위를 내리쳤다.
우르르……. 쾅! 쾅!
공기 벽 아래는 불문 승려들 거주 구역으로 전당과 선원(禪院)이 즐비했다.
보리수 아래 가부좌를 튼 광현 보살은 안색이 변해 고개를 홱 돌렸다. 그의 시선은 아란타 깊은 곳을 향했다.
유리 보살 역시 얼굴이 창백해져선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더는 평상시처럼 무심하지도, 차분하지도 않았다.
* * *
찬 연못가, 연화대 위에 가부좌를 튼 도액 나한과 연못 옆에 서 있는 아소라도 동시에 고개를 돌려 아란타 깊은 곳을 쳐다보았다.
“자네는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도액 나한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가 묻는 건 방금 그 포효소리였다.
부처? 신수? 아니면 존재할지도 모르는 그 초품일까?
아소라는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이번에 혹 떼려다 혹 붙였다는 건 알 수 있겠군요. 어쩌면 감정의 마음에 딱 들었을 지도요.”
얼마 전 솟아오른 그 강렬한 태양은 허공을 따라 사라졌다. 사전에 통보가 없어도 두 사람도 감정을 상대하러 떠난 것임은 짐작할 수 있었다.
도액 나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항상 감정을 얕잡아 봐서는 안 되네. 1품 술사의 진정한 강대함은 전투가 아니라 모략이니.”
잠시 멈칫하며 침음하던 노승이 다시금 이야기했다.
“다만 이번에 어느 정도까지 손해 봤는지는 모르겠군.”
아소라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미 대일여래법상이 출동한 이상, 청주 쪽 전쟁은 곧 결과가 나올 겁니다. 그리고 500년 전에 대일여래법상을 드러나게 한 건 신수가 아닙니다.”
드디어 이 의문점이 오늘에야 풀린 셈이었다.
도액 나한은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