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1031
1028화. 두려움
깊은 밤, 사천감.
송경은 탁자에 엎드려 깊이 잠들었다. 탁자에는 각종 연금 기구가 놓여 있었고 단로 안의 숯불은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어느 순간, 송경은 갑자기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시야로 옆에 서 있는 백의 하나가 잡혔다.
정신을 집중해 보니 정체는 손현기였다. 그는 매우 어두운 얼굴로 송경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더불어 그 곁에 흰 원숭이 한 마리가 있었다.
“손 사형, 어째 돌아오셨습니까? 청주에서 떨고 계신 거 아니었습니까? 또 장비를 구하러 오신 건 아니겠지요? 저 좀 놓아주세요. 얼마 전에도 사형에게 장비를 드리지 않았습니까. 사제는 매일 한 시진밖에 못 잡니다. 철인도 그 정도면 쉬어야 해요.”
송경은 늘어지게 하품하며 투덜투덜 불평을 늘어놓았다.
손현기는 역시나 말이 없었다.
잠시 후, 흰 원숭이가 조금 망설이다가 조용하게 말했다.
“감정 스승님께서 몰락하신 것 같네.”
“…….”
불평하던 소리가 뚝 그쳤고, 송경은 멍하니 넋을 잃었다.
쿵!
손현기가 돌연 바닥에 쓰러졌다. 동시에 몸에 있는 모든 구멍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생명의 기운이 빠른 속도로 유실되고 있었다.
가슴이 철렁한 송경은 허둥지둥 수납 주머니에서 단약을 꺼냈다.
“어, 어떻게 된 일이지. 손 사형…….”
송경의 목소리가 심히 떨리고 있었다.
옆에 있던 원호법이 손현기를 한번 본 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감정이 몰락한 진상을 제대로 조사하고자 직접 전장에 가셨습니다.”
송경은 맥을 짚은 뒤, 마음이 저 깊숙한 곳으로 가라앉았다.
손현기는 근본에 상처를 입었다. 경맥이 전부 끊기고, 오장육부가 쇠약해지며 원신 역시 극도로 약해졌다. 술사의 몸에는 치명적인 상처였다. 이런 몸으로 사천감까지 돌아왔다는 건……. 그만큼 엄청난 집념이 있었으리라.
원호법은 이번에 송경의 생각을 읽고, 희미하게 말했다.
“복수의 들불입니다. 일단 부축해 사천감으로 돌아가시지요.”
* * *
관성루, 지하.
종리가 송경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헝클어진 그녀의 검은 머리 아래로 눈이 반짝였다. 꼭 물빛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감정 스승님께서 죽었다고?”
“응……. 허평봉, 지종 도사, 가나수 보살 그리고 백제, 운주의 그 백제네. 손 사형이 그들을 보았다더군. 그들이 감정 스승님을 죽였네.”
송경의 목소리는 한껏 가라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슬픔이 보이지 않았지만, 외려 무감각한 그 모습이 더 슬퍼 보였다.
종리가 한참 말이 없자 송경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황궁에 다녀오겠네. 황제께 알려야겠어.”
그가 떠난 뒤, 지하는 헤어 나올 수 없는 적막에 빠졌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종리는 옆에 있는 나무 상자를 들고 가볍게 상자 표면을 어루만졌다. 그녀의 눈에선 조용히 눈물이 차올랐다.
“복수할 것이다, 내가 감정 스승님을 대신해 복수할 것이야…….”
* * *
동틀 무렵, 경성 성벽 위.
타는 횃불도 엄동설한의 한기를 내쫓지는 못했다.
성벽 표면에 스며든 이슬도 간밤에 얼음이 되었다. 성벽 전체가 마치 강철처럼 단단하게 얼어 있었다.
당직 서는 병사들도 온통 얼어붙어 버렸다. 창을 쥔 손은 이미 동상을 입었다. 뜨거운 입김과 횃불에 의지했지만, 혹한의 밤이 너무 가혹했다.
다그닥! 다그닥!
갑자기 말발굽 소리가 가까워졌다.
밤새 내내 엄청난 속도로 달려온 듯한 말이 성벽 아래에 멈춰 섰다.
이내 성벽 위 수비병이 주시하는 가운데, 잔뜩 쉰 목소리가 전해졌다.
“문을 열어라! 8백리 급보다!”
* * *
침전 안.
조현진이 깊이 잠든 황제를 깨웠다.
영흥제는 피곤한 얼굴로 미간을 문지르고 간신히 성질을 억눌렀다.
“무슨 일인데 한밤중에 짐을 불러 깨우는 것이냐.”
통상적으로 감히 이 시간에 황제의 휴식을 방해한다는 건, 하늘 정도는 무너져 내려야 했다. 그것이 아니면 그냥 살고 싶지 않다는 얘기였다.
영흥제도 조현진이 갑자기 사는 것에 진절머리가 났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렇다면 답은 아마 전자일 것이었다.
황제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 있었다.
곧 조현진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폐하! 내각에서 급보를 전해왔는데 청주가 함락되었답니다……!”
영흥제는 그대로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폐하! 폐하!”
거듭 부르는 목소리에, 영흥제도 그제야 꿈에서 깬 듯 소리를 냈다.
“아.”
“접본은 어서방에 있습니다…….”
말을 다 마치기도 전, 영흥제는 이불을 젖히고 달려 나갔다. 맨발에 흰 내의 차림 그대로였다.
* * *
어서방은 침전과 안팎으로 연결되어 있어 이동이 아주 빨랐다.
영흥제는 빠르게 탁자 앞으로 가, 그곳에 놓인 접본을 들었다. 내용은 총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하나는 청주 수비군의 사상자 상황이었다. 청주 30개 위소에 경성, 각지에서 동원된 병마를 더하면 총 9만 대군의 6할을 잃었다. 남은 3만 대군은 옹주로 물러난 상태였다.
둘째는 감정에 관한 소식이었다. 양공은 감정에게 큰일이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며 조정이 최대한 빨리 감정의 상황을 확인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끝으로는 양공의 서술이 있었다. 대략적인 의미는 황제에게 부끄럽고, 사직에 부끄럽지만 죽음으로써 천하에 감사할 수 있도록 청한다는 것이었다.
접본을 든 영흥제의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허튼소리! 감정은 대봉의 수호신이고, 제일인데 대봉 경내에 누가 그의 상대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이 양공이 요괴의 말로 짐을 홀리고 있구나. 그래, 직접 그의 머리를 베어 소원을 성취하게 해주지!”
영흥제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탁자를 힘껏 쳤다.
지금 누구도 감히 그의 앞에서 감정에게 일이 생겼다고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천자의 노여움이 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때, 밖에서 당직을 서던 금군 통솔자가 황급히 들어와 아뢰었다.
“폐하! 사천감 송경이 만나 뵙길 청합니다!”
‘송경이 왔군! 분명히 감정의 소식일 것이다. 감정이 그에게 말을 전하라 한 것이야……!’
영흥제는 정신이 번쩍 들어 소리를 높였다.
“어서, 어서 그에게 들어오라 하거라!”
동시에 그는 즉시 환관에게 어패를 하사하라 명했다.
* * *
일각(*一刻: 15분) 뒤, 금군 통솔자는 송경을 데리고 돌아왔다.
금군 통솔자는 어서방 밖에 섰고, 송경은 어서방 안으로 들어왔다.
동시에 영흥제가 성큼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
“송경! 감정에게 소식이 왔는가?”
황제의 눈에는 희망의 빛이 가득했다.
그러나 송경의 안색은 몹시 창백하고, 눈그늘도 짙었다.
“폐하, 감정 스승님께서 몰락하셨습니다…….”
영흥제는 마치 그 자리에서 뼈라도 뽑힌 듯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참 후, 영흥제는 반쯤 미쳐서 일어나 송경에게 삿대질하며 포효했다.
“헛소리! 헛소리를 하는구나! 송경! 지금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긴 하나? 감정이 자네 스승인데 감히 스승을 저주해? 대봉 경내에 누가 감정의 상대란 말이냐! 말해보거라. 누가 그의 상대가 될 수 있느냐!”
송경이 착 가라앉은 얼굴로 말했다.
“손 사형이 이미 살피고 왔사옵니다. 감정 스승님께선 확실히 몰락하신 것 같습니다. 그날 운주에 자연적으로 이상 현상이 나타나고, 기운이 유실됐습니다. 감정 스승님의 기운이 사라진 뒤……. 더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영흥제는 의자 위에 천천히 미끄러지듯 내려앉았다.
“감정 그가 어떻게, 누가 그를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송경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운주 반란군 초범 고수의 수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영흥제는 그대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거기다 마치 심한 감기에 걸린 듯 몸도 살짝 떨기 시작했다.
엄청난 공포가 그를 덮치고 있었다.
* * *
이튿날, 청주가 함락되고 감정이 몰락했다는 소식이 경성 관리 사회 전체에 퍼졌다. 그야말로 엄청난 파문이 일었다.
군신은 오문에 모여 황제를 만나겠다고 요구했지만, 밖에서 가로막혔다.
영흥제가 병이 나버렸다. 공포에 병이 들어버린 것이다.
그날 황혼 무렵, 제공들은 그제야 어서방에서 황제를 만났다. 영흥제는 하룻밤 새 마치 넋이라도 뽑힌 것처럼 눈에 초점이 없고 안색이 창백했다.
제공들 모두가 깜짝 놀랐다.
“폐하, 옥체를 보존하십시오!”
재상 전청서의 애달픈 목소리에, 영흥제가 쓴웃음을 지었다.
“옥체? 이 순간에도 짐이 이 몸뚱이에 신경 써야겠는가? 제공들, 감정이 죽었네. 어찌하면 좋은가! 청주가 함락되고 반란군이 양공과 옹주 변방에서 대치 중이네. 그들이 청주를 안정시키기만 하면, 반드시 세력을 회복하여 조만간 경성까지 쳐들어올 것이야.”
감정은 대봉의 마지막 중추였다.
좌도어사 류홍이 말했다.
“폐하, 대봉에는 아직 허 은라가 있습니다. 저희는 결코 전투를 치를 힘이 없는 게 아닙니다.”
영흥제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비록 짐의 수련 경지가 미천하나 3품 무사가 뭘 할 수 있겠는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감정조차 반란군의 속에 죽었는데 허 은라가 뭘 어찌 할 수 있단 말인가?”
류홍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어서방 내의 분위기는 무거웠고 침묵이 감돌았다.
한참 뒤, 대리사경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폐하, 화의를 청하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화의를 청한다라…….’
영흥제의 눈이 반짝였다가 즉시 고개를 가로젓고 쓴웃음을 지었다.
“반란군이 기세등등하게 우리 대봉 강산을 빼앗으려 하고 있다. 어찌 화의에 동의하겠는가.”
“폐하, 시도해보지 않고 어찌 안단 말입니까.”
누군가 말했다.
“짐은 지쳤다. 고려하도록 하겠다.”
영흥제의 목소리에 더 이상 희망은 없었다.
* * *
황성, 회경부.
수수하고 질박한 마차 한 대가 저택 밖에 멈췄다. 곧이어 위연의 자리를 이어받아 전 위당 우두머리가 된 류홍이 마차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갔다.
류홍은 빠르게 앞마당을 지나 응접실에 이르렀다.
널찍하고 고상한 응접실엔 매화 궁장을 입은 도도한 장공주가 앉아 있었다. 이미 기다림의 시간이 길었던 듯했다.
“본 공주, 이미 사천감에 가서 송경과 손현기를 만났네. 감정의 상태가 정말 절망적인 것 같더구나. 폐하와 제공들의 태도는 어떠한가.”
장공주는 보기 드물게 굳은 얼굴로 막 응접실로 들어온 류홍에게 말했다.
류홍은 깊이 탄식을 했다.
“감정이 사라졌으니 폐하와 제공들의 중추도 끊어지고, 담도 없어졌지요. 대리사경이 평화 협정을 제안했는데 폐하께서는 동의하지 않으셨으나 반대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저 고려해보겠다고만 말씀하셨습니다.”
“평화 협정이라…….”
조용히 중얼거리던 회경이 잠시 후 고개를 가로저었다.
“반란군은 중원과 황위에 뜻을 두고 있는데 어찌 평화 협정에 동의하겠는가. 설령 동의한다 해도 터무니없는 요구겠지. 우선 이점을 얻어내고 당분간 평화를 주겠지. 무딘 칼로 살을 베는 듯 좀 더 천천히 죽을 뿐일세.”
류홍이 쓴웃음을 지었다.
“공주마마께선 분명히 보실 줄 아는 방관자시군요. 폐하께선 오늘 조회하지 않으셨습니다. 병이 나셨어요, 두려움에 병이 나신 게지요. 지금 만약 반란군이 평화 협정을 제안하면 모든 걸 고려치 않고 승낙하실 겁니다. 곧 익사할 사람이 목숨을 구해줄 지푸라기를 잡는 것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폐하께서 두려워하시는 데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감정도 죽었는데 누가 운주에 맞설 수 있단 말입니까? 허 은라는 3품 무사일 뿐입니다. 국사께서는 2품이지만, 국사께서 정말 대봉을 위해 죽음까지 불사하실까요? 설령 그리 하신다고 해도 마음만 있을 뿐, 힘은 부족할 것입니다. 공주마마, 마마께서는 언제나 지혜와 계책이 다채로우시지 않습니까. 어떻게 국면을 타개해야 할지 알려주십시오…….”
류홍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앞서 어서방에서 공무를 논할 때, 그는 평화 협정에 반대하지 않았다. 아니, 그 역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한참의 정적 끝에, 회경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목숨을 버릴지언정 구차히 삶을 꾀하지는 않을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