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1033
1026화. 대 환란의 시작 (2)
감정을 찌른 구불구불한 창은 순수한 검은색이 되어 빛, 감정을 포함한 주변의 모든 것을 탐욕스럽게 흡수하고 있었다.
결국 감정의 몸은 조금씩 융해되다 부스러기 빛이 되어 창에 녹아들었다.
“문지기의 영온은 사양하지 않겠네.”
양 몸에 사람 얼굴을 한 그 괴물이 긴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감정을 찌른 창은 사실 이 괴물의 6개 뿔 중 하나로, 그것엔 대황의 천부적인 신통력이 응집되어 있어 만물을 삼킬 수 있었다.
상고 시대에선 가장 강대한 신마라도 그 앞에선 전부 애송이였다.
그는 ‘백제’의 몸으로 구주 대륙에 다시 돌아왔다.
본래는 가짜 몸으로 도존을 알아보고 싶어 진짜 신분을 숨겼었다.
그 후로 다방면으로 알아보면서 도존이 몰락했으리란 것도 예상했지만, 그는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고 백제의 몸으로 문지기를 계속 찾았다.
어쨌거나 그것의 진짜 몸이 구주 대륙으로 다시 돌아온다면, 부수적인 변수를 끌어들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예컨대 도존의 후수나 서쪽의 그분이 전혀 나서지 않을지도 모른다거나.
“하하!”
허평봉이 웃기 시작했다.
흑련 도사 역시 몸이 타는 고통에도 득의양양해서 난폭하게 웃었다.
“헤헤헤……. 오늘 너를 없앴으니 대봉은 틀림없이 멸망하겠구나! 탓하려거든 허칠안을 탓해라. 처음부터 허칠안이 쓸데없이 참견하지 않았다면 나도 이 전투에 개입하지 않았을 테지.”
가나수 보살은 숨을 내뱉고 양손을 합장했다.
“아미타불, 500년 전 불문은 그대의 천명사 승직을 도왔고, 500년 뒤 불문은 그대의 제자가 천명사가 되도록 도왔다. 이것이 인과의 순환이로다.”
그는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저 좀 감개무량할 뿐이었다.
감정은 천천히 고개를 숙이고 인간 세상을 바라보았다.
불바다가 된 송산현, 완군 성벽 위에 꽂힌 운주 깃발, 포대를 지배하는 손현기, 바람 같은 소리를 내며 강적의 추격에 힘들게 버티고 있는 모습…….
그는 다시 시선을 돌려 세 사람과 짐승 한 마리를 훑더니 눈을 감았다.
마침내 감정의 몸뚱이가 철저하게 와해되었다.
그의 육신이 구불구불한 긴 창에 거의 다 흡수되었다.
감정이 사라짐에 따라 청주 전체에 갑자기 먹장구름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먹구름이 짙게 깔리고 구름층 사이로 번개가 교차했다.
자연적으로 이상 현상이 나타나고, 어둠이 찾아왔다.
대낮이 어느새 시커먼 어둠으로 뒤덮였다.
‘백제’는 이빨이 뒤엉킨 입을 벌린 채 구불구불한 창을 삼켰다.
“엇? 연화할 수가 없다니…….”
허평봉이 웃으며 말했다.
“대봉을 멸하지 않으면 감정은 죽지 않네.”
가나수 보살이 덧붙여 말했다.
“그해 우리가 막심한 대가를 치르고 초대 감정을 봉인했지. 이후 무종이 황위에 올라 강산에 주인이 바뀌자 그는 기세를 몰아 기운을 연화해 천명사로 승직했네. 그 뒤에야 초대를 연화해 죽이고 혼백은 어지러이 흩어졌지.”
허평봉의 웃음기는 더 짙어졌다.
“자네 당분간 감정 스승님을 창에 봉인하게. 우리가 대봉을 뒤집으면 저절로 연화될 게야. 하지만 귀하께서 많은 도움을 주어야 하네.”
기왕 배에 올랐으면, 내려올 생각을 하지 말아야 했다.
‘백제’는 잠시 침음하더니 말했다.
“좋네. 단, 내가 이 물건을 해외로 돌려보낼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야.”
백제는 문지기를 구주에 남겨 두는 것이 영 찝찝했다. 변고가 생길까 두려웠다. 반드시 본체의 곁으로 돌려보내야만 실수가 없을 것 같았다.
* * *
포정사사.
양공이 대당에서 성큼성큼 뛰쳐나와 마당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둥근 지붕 위, 보이는 건 짙게 깔린 먹구름과 천둥 번개뿐이었다.
유가 4품의 눈에, 뿔뿔이 흩어져 사라지는 기운이 보였다.
양공은 무려 한 주(州)의 포정사였음에도, 뼈에 사무치는 공포를 느꼈다.
그의 눈동자가 수축했다.
불현듯 마음에 떠오른 한 가지 추측에 몸과 영혼이 전율했다.
“하늘이 바뀌었구나…….”
* * *
송산현.
성 곳곳에 화학 연기가 타올랐다. 수비군과 운주군은 온 거리를 누비며 서로 싸우고 죽였다.
심고 비수의 시체는 성벽 위, 용마루, 거리 등지에 나뒹굴고 있었다.
얼마 전, 송산현은 주작군 주력을 맞닥뜨렸다.
선두에 선 건 4품 대요 주작이었다.
심고부 비수군은 이 차원의 고수를 막을 수 없었다. 비수군 3백이 순식간에 절반 이상 도살당하고, 거대한 검은 비늘 짐승이 성 안에 떨어졌다.
제공권을 잃은 송산현 수비군은 고공에서 비롯된 공격을 견디지 못했다. 결국 성문이 함락되고 수비군은 시가전으로 전환했다.
양군이 서로 싸우고 죽이니 성 내 백성에게까지 영향이 미쳤다. 화학 연기는 끊임없이 성 곳곳에서 타올랐다.
그때였다. 하늘이 심상치 않은 속도로 어두워졌다. 먹구름이 머리 위를 짓누를 듯 숨 막히는 압박감까지 느껴졌다.
양쪽 수비군은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교전을 늦추고 서로 경계하면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묘재방 역시 눈앞의 적을 단칼에 베어 죽인 뒤, 뒤로 물러나는 허신년을 보호하며 고개를 들었다.
“비가 오려나?”
그는 어느새 저도 모르게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허신년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멍하니 말이 없어졌다.
그 시각, 성 밖엔 송하가 세차게 굽이쳤다. 물은 기슭에 거세게 부딪히며 사나운 물보라를 일으켰다.
물길은 또 방향을 돌려 동남쪽을 향해 드센 기세로 나아갔다.
슬퍼 우는 듯, 울부짖는 듯 정처 없는 행렬이었다.
* * *
‘감정 스승님……!’
포대 위, 손현기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는 온몸이 굳어 숨을 쉬는 것도 잊었다.
멍하니 어두운 하늘을 응시하던 그는 갑자기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건 당혹스러움을 넘은, 뼈까지 날카롭게 파고든 공포였다.
* * *
경성, 황궁.
비단 평상 위, 마침 점심 후 휴식을 취하던 영흥제는 갑자기 놀라 잠에서 깼다. 그는 돌연 오른손으로 가슴을 세게 감싼 채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일그러진 얼굴엔 핏기 하나 없었다.
“아파 죽겠구나……!”
침전 안에서 시중들던 조현진이 허둥대며 달려왔다.
“폐하, 무슨 일이십니까! 어, 어서 태의를 모시러 가겠습니다!”
영흥제는 힘껏 그를 밀쳤다.
“꺼지거라! 감, 감정을 찾으러 갈 것이다, 감정을!”
그는 왜 감정을 찾아야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본능이 감정을 만나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나라의 재난이 눈앞에 닥쳤다. 이는 기운이 경고하는 것이었다.
이 순간, 경성의 모든 황족과 종사(宗師)는 동시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기운의 강약이 달라, 제각기 느끼는 정도는 다 달랐다.
* * *
부도보탑 안.
청주로 날아온 허칠안은 갑자기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는 가슴을 감싼 채 천천히 생기를 잃고 웅크렸다.
고통스러운 통증이 온몸에 퍼지고, 영혼을 관통했다. 거의 숨을 쉴 수 없었다. 식은땀은 홍수가 터진 것처럼 순식간에 그의 옷을 흠뻑 적셨다.
“허, 허칠안……! 자네 왜 그러는가?”
곁에 있던 모남치가 깜짝 놀라 허둥댔다.
한참 뒤, 허칠안은 고통이 다소 호전되었으나 안색이 매우 좋지 않았다.
그가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힘을 실어 말했다.
“감정, 감정이 사라졌습니다…….”
몸에 국운 절반이 있는 그는 생각이 트인 듯 감정의 상황을 알아차렸다.
* * *
사천감, 지하.
송경이 차단기를 열자 철문이 서서히 올라왔다. 그는 손에 책 한 권을 쥐고 계단을 내려갔다.
이후 그는 어두컴컴하고 긴 복도를 지나 종리가 폐관한 그 방으로 갔다.
“종 사매! 사매가 원하는 책을 찾아냈네.”
송경이 들고 있던 책을 종리 앞에 두었다.
종리는 삼베 장포 아래 희고 부드러운 손을 내밀어 거친 표지의 책을 집었다. 얼굴엔 다소 억울한 표정이 걸렸다.
“왜 이렇게 여러 날이 걸린 건가요.”
송경은 약간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요즘 너무 바쁘지 않았나. 내가 연금 실험을 하기 시작하면 아주 몰두하는 걸 잘 알잖나. 자네 일을 기억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라고.”
“아.”
종리는 거친 표지의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표지에는 이름이 없었다.
이는 감정의 친필 원고로 안에는 그가 법기를 정제하는 과정, 경험, 깨달은 바 그리고 상응하는 법기의 효능이 기록되어 있었다.
제자들은 이 책을 보기를 꺼렸다. 초등학생들이 미적분을 공부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오직 송경만이 이따금 책을 들춰보곤 했다.
종리는 책장을 넘기다가 ‘난명추’의 상세한 내용을 찾았다.
‘……기운이 몸에 더해졌을 때 이걸 두드리면 깨달을 수 있다!’
종리는 마지막 이 말을 응시하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때, 갑자기 종리와 송경은 동시에 가슴에 통증을 느꼈다.
* * *
“콜록콜록…….”
허평봉은 입을 감싼 채 심하게 기침했다. 손가락 사이로도 피가 흘렀다.
몇 초 후에야 기침이 잦아든 그는 가볍게 탄식하며 말했다.
“목숨 절반이 사라졌군. 감정 스승님께서 정말 독하게 손을 쓰셨어.”
그리고 그가 사람들을 둘러보며 제안했다.
“먼저 돌아가서 상처를 치료합시다. 여러분 상처가 가볍지 않지요. 그리고 저 역시 시간을 들여 청주의 기운을 연화해야 합니다.”
허평봉은 자신의 상황을 밝히지 않았다. 하마터면 그는 감정에게 죽을 뻔했다. 목숨 절반이 사라졌다는 건 본인 명예를 지키려는 정성이었다.
가나수 보살은 더는 머리가 재생되지 않았다. 유성 조각칼의 힘이 신체와 영혼에 침식해 힘을 약화시켰기에 연화하고 없앨 시간이 필요했다.
‘백제’의 육신은 가나수보다 나쁘진 않았다. 게다가 문지기를 손에 넣었으니 어서 창을 해외로 돌려보내 안정을 취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흑련 도사라면 감정의 표적이 되지 않아 부상이 가장 가벼웠다.
상황이 이럴진대, 당장 경성으로 죽이러 갈 엄두는 전혀 낼 수 없었다.
“초대가 죽은 뒤 후수를 남겨 감정에게 손해를 입힐 수 있었네. 마찬가지로 천명사인데 누가 감정에게 상응하는 후수가 없다고 보장할 수 있는가? 이 전투로 이미 감정 제거에 성공했으니 급히 이익을 추구할 필요는 없네.”
가나수 보살이 아주 침착하게 말했다.
이에 흑련 도사가 맞장구쳤다.
“허칠안도 무슨 풍랑을 일으킬 수 없을 걸세. 기껏해야 낙옥형과 손현기가 더해지겠지. 음, 금련 그 잡놈도 있군. 아마 3품에 도달했겠어.”
허평봉이 웃으며 말했다.
“구양주도 있다는 걸 잊지 말게.”
하지만 그런들 또 어떠리. 대봉에 초범 고수가 적잖게 있지만, 전부 3품, 2품 나부랭일 뿐이었다. 반면, 여기선 가나수 보살 한 명이 낙옥형, 구양주, 허칠안을 다 제압할 수 있었다. 그들이 반격할 틈 따위는 없었다.
그뿐인가? 백제에, 흑련, 희현, 2품 전봉 술사 허평봉까지 있었다.
이제 청주를 함락해 청주의 기운을 연화하면 허평봉의 실력은 한층 더 향상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