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1038
1031화. 평화 협정
[삼: 저도 문지기의 구체적인 개념은 모릅니다. 제대로 조사한 뒤에 다시 말씀드리지요. 이 전쟁의 경과는 대략 갈피가 잡히니 알려드리겠습니다.]모든 구성원은 정신이 번쩍 들어, 지서 파편을 뚫어지게 주시했다.
허칠안은 전에 조위에게 말한 시가와 초대 감정에 관한 일을 얘기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금련 도사는 개탄해 마지않았다.
[구: 복잡하고 불가사의하구먼. 초대 감정이 죽은 지 500년이 됐는데 아직도 지금 형세를 좌우할 수 있다니. 역시 술사 체계의 창시자답군.]‘어쩐지 감정이 패했더라니. 진정으로 그를 제압한 건 허평봉이 아니라 초대가 남긴 수단이었군…….’
회경도 이제는 어쩔 수 없이 감정이 봉인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래도 유일하게 좋은 일은 감정이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봉인된 것과 살해당한 건 차이가 크지. 하지만 지금 대봉의 국면으로는 패망은 이미 운명으로 정해졌다. 그때 가면 감정도 죽겠지…….’
초원진은 속으로 묵묵히 탄식했다.
[칠: 이, 이건 싸울 가치가 없겠는데요. 저희는 감정을 잃었고, 적은 1품이 늘어났으니…….]‘대봉 멸망은 필연적이다.’
성자는 끝내 이 말은 내뱉지 않았다. 그처럼 대봉에 귀속감이 없는 천종 제자도 무거운 절망을 느끼는데, 다른 사람은 어떤 심정이겠는가.
[육: 빈승은 허 대인이 몸에 국운을 짊어지고 있어 대봉과 갈라질 수 없다고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대봉이 멸망한다면, 허 대인도 순국할 겁니다.]비교적 말이 없던 항원이 갑자기 구성원들 앞에 참혹한 현실을 까발렸다.
결국 이묘진이 벌컥 화를 냈다.
[이: 못난 승려, 그런 말은 왜 하는 거지? 일부러 아픈 곳을 건드리는 것도 아니고.]허칠안은 잠시 생각한 후에 전서를 보냈다.
[삼: 솔직히 저는 국면을 타개할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했습니다. 지금 상황은 저와 대봉한테는 확실히 만회할 수 없는 국면이지요. 하지만 회경공주마마 외에 여러분들은 대봉 조정과 큰 관계는 없으니 괜찮을 겁니다.]비연 협객은 마음속으로만 조용히 반박했다.
‘하지만 우리는 너와 관계가 있잖아…….’
그때, 항원의 전서가 도착했다.
[육: 빈승의 목숨은 허 대인이 준 겁니다. 빈승이 말했었지요. 기회가 있으면 반드시 허 대인의 은혜에 보답하겠노라고. 아미타불, 출가인에게 인과를 마무리 지을 기회가 생겼다는 건 실로 행복한 일입니다.]‘……항원 대사, 또 결투 신청이야?’
순간 가슴이 뜨거워진 허칠안은 괜스레 빈정대며 감동을 감췄다.
[칠: 대사께선 각오가 남다르시군요. 전 목숨을 걸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강호를 함께 거닌 정이 있으니 인생의 마지막 여정도 같이 걸어보려고요.]이영소는 습관처럼 삐딱하게 나왔으나 본질은 허칠안을 위해 절대로 물러나지 않겠다는 소리였다.
[사: 난 유사시를 위해 오랜 기간 준비했네. 그리 오랫동안 훈련하였으니 끄집어내서 단련해야 할 때가 오지 않았는가.]회경과 이묘진은 말이 없었다. 그녀들은 태도를 밝힐 필요도 없어서였다.
회경은 자신이 곧 황실이니 책임을 져야 했다. 그리고 정의를 위해 목숨도 불사한다는 건 비연 협객이 가장 바라고 추구하는 길이었다.
[오: 아버지께서 나더러 북상해 싸우라 하셨어요.]마지막 리나의 전서가 왔을 땐, 결국 허칠안도 동요를 보였다.
‘막상이 이미 중원에 있는데……. 용도는 아들딸 모두 한꺼번에 죽일 작정인가……. 하, 역시 천지회는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믿을 수 있는 동료들이야. 어장남 이영소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감동을 주네…….’
지서 파편을 꾹 쥔 허칠안은 미지근한 햇빛을 보며 깊이 숨을 뱉었다.
* * *
검주와 상주의 경계, 어느 산채.
이영소는 지서 파편을 거두고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가 가볍게 탄식한 후, 방을 나섰다.
울타리 뜰을 나온 그는 곧장 연무장으로 향했다.
소위 연무장은 사실 수하 병사들이 개척하고 기초를 다지는 공터로, 무술을 연마하고 진을 치며 때로는 함께 회식하고 여인들과 수다를 떠는 데 쓰였다.
“대장, 안녕하십니까!”
길가에서 마주친 부하가 공손히 안부 인사를 건넸지만, 이영소는 계속 무표정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연무장에선 한창 양천환이 얼굴을 가리는 유모를 쓰고 장내 오합지졸에게 큰 소리로 훈계 중이었다.
“지금 열심히 연마하지 않으면 장차 전장에 나갔을 때 온 마을이 전부 너희 집으로 몰려가 잔치판이 벌어지길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영소는 유랑민으로 구성된 대오를 한번 훑어보았다. 그런데 정말 터무니없게도 그 안에 예닐곱 살의 어린이가 있었다.
“…….”
“전투는 어려서부터 익혀야 한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후회해도 늦지. 지금 온 마을이 전부 너희 집으로 몰려가 식사하길 기다리고 있다.”
계속 이어지는 양천환의 꾸지람을 들으며 이영소는 긴 숨을 내뱉었다.
‘나도 가끔 양 형 머리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양 형!”
양천환은 진작에 이영소를 보았다. 어쨌거나 그는 사람들을 등지고 있으니 때마침 이영소가 걸어오는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이 형!”
곧이어 양천환은 훈계를 멈추고 성큼성큼 걸어와 이영소 앞으로 와선, 또 자연스럽게 뒤돌아 등을 보였다.
“무슨 일인가?”
이영소는 한참을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청주 쪽에서 소식을 전해왔는데 청주가 함락되었답니다.”
양천환은 순간 깜짝 놀랐지만 허둥대지 않고 분명히 말했다.
“그래, 정세가 위급해야만 나의 중요성을 두각 시킬 수 있지! 내가 훈련을 마치고 위급한 국면을 되돌리겠네. 운주 그 역신들이 머리를 숙이고 찾아와 목숨을 살려달라고 간청하는 걸 보라고.”
다시 이영소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감정께서 봉인되셨습니다…….”
살짝 굳었던 양천환이 짧게 헛웃음을 지었다.
“허, 그 역시 매우 좋은 일이지. 감정 스…… 승님께서 날 여러 해 동안 오해하셨거든. 그 억압이 사라졌으니 나도 비로소 두각을 보이겠군.”
이영소는 양천환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느리게 고개를 내저었다.
“……양 형, 저 농담하는 거 아닙니다.”
그는 곧바로 허칠안에게 들은 이야기를 양천환에게 다 전해주었다.
“…….”
이야기는 끝났지만 양천환은 말이 없었다. 그대로 굳어버린 조각상처럼 오랜 시간 아무런 미동조차 보이질 않았다.
한참 후, 드디어 나지막한 목소리가 전해졌다.
“알겠네…….”
이영소가 여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목소리였다. 지금 양천환에게는 허풍도, 자신감도 없었다. 양천환의 것이었지만 마치 그가 아닌 것처럼 너무도 낯선 목소리였다. 어쩌면 이 음성이야말로 그의 진짜 목소리인지도 몰랐다.
“채미에게는 알리지 말게.”
* * *
청주, 갈문선 거처.
희현이 왼손에 칼자루를, 오른손에는 술병을 들고 문을 밀었다.
술사 표준의 백의를 입은 갈문선은 한창 탁자에서 병서 연구 중이었다. 그러다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그가 빙그레 웃음을 보였다.
“희현 소주, 정사에 바쁠 텐데 군사력 확충에 군량, 마초 준비에 서두르지 않고 여기까진 어찌 왔는가?”
희현은 술과 칼을 탁자에 두고 눈을 가늘게 떴다.
“평화 협정 사절이 내 동생이더군. 듣자 하니 자네가 추천했다지. 그리하여 갈 장군님의 의견을 들으러 왔네만. 자네의 말을 다 듣고 난 뒤에 술을 마실지, 칼을 뽑을지 결정하겠네.”
희현과 갈문선은 운주군 청장년파의 두 축이었다. 실권 인물로서 이들의 관계는 줄곧 미묘했었다.
때로는 함께 앉아 술을 마시며 담소를 나눴지만, 때로는 자원 쟁탈 문제로 탁자를 치고 서로를 눈을 부릅뜨기도 했다.
말하자면 둘은 좋은 벗이자 경쟁 관계였다.
척광백 역시 군대를 엄격하게 다스리고 상과 벌이 분명하기에 희현의 신분을 두고 어떠한 편애도 하지 않았다.
먼저, 갈문선이 입을 뗐다.
“희원(姬遠) 공자께서는 재능이 넘쳐나지. 언변이 날카롭고 훌륭하며 성주의 아들이기도 하고. 희원 공자가 사자를 맡아 대봉과 평화 협정하는 건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결정이네.”
희원은 희현과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희현의 친동생이었다. 고로, 희원 역시 희현과 같은 서출이었다.
모든 형제 중, 출생으로 따지면 9번째인 희원은 강건하면서도 온화한 희현과는 달랐다. 9공자는 수행을 좋아하지 않았고 취미는 독서였다.
이 때문에 희원은 잠룡성 주인의 아들 가운데 학문이 가장 뛰어났다. 그는 배운 것을 실제로 활용하며 문사(文思)가 날카로웠다. 결코 기계적으로 암기하는 바보가 아니었다.
“희원 공자는 군을 이끌고 전쟁을 치를 순 없지. 하지만 조당에서 변론하며 유생들과 설전을 벌이는 건 그가 형님보다 훨씬 뛰어나지 않은가? 나조차 희원 공자와 논쟁해 이길 수 없고, 설득할 수도 없네. 아직 난 희원 공자만큼 책을 많이 읽지 않았으니까. 허허, 참 기분 나쁘지 않나?”
갈문선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희현은 그의 농담에도 일말의 웃음기 없이 진지하게 말했다.
“자네는 허칠안과 인사한 적이 없어 모르네. 허씨는 미치광이야.”
갈문선 역시 여전히 차분하게 말했다.
“사절단에 원상 아가씨와 원괴 공자가 있다면?”
순간 멍해진 희현을 두고, 갈문선이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국사의 생각이네. 허칠안이 어떤 인간인지는 우리보다 더 잘 알지. 평화 협정으로 조당 제공들과 황제를 해결할 수 있고, 원상 아가씨와 원괴 공자가 있으면 허칠안이 후환이 두려워 손대지 못하게 할 수 있지 않은가.”
돌연 방 안에 침묵이 흘렀다.
희현은 조용히 눈살을 찌푸리며, 그날 옹주성의 일을 떠올렸다. 허칠안은 허원괴의 손발 근육을 끊어버렸으나 확실히 그의 목숨을 살려주었다.
분명 허칠안은 혈육의 정에 손발이 묶이진 않을 테지만, 결코 냉혈하고 무정한 자는 아니었다. 형제에게 아무 영향도 받지 않을 사람은 못 되었다.
갈문선 역시 얼마 전 허평봉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 아이는 내가 냉혈하고 무정하다 비웃지 않는가. 그럼 동생들을 친히 바로 눈앞에 보내주자고.’
갈문선은 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스승님께서는 천하에 가장 인정 없는 사람입니다.’
* * *
금란전.
영흥제는 점차 조회에 참석하는 게 두려워졌다. 탁자에 쌓인 접본도 두려웠다. 그 안의 내용들이 자꾸만 그를 초조하고 불안하게 만들었다.
유랑민이 재해가 되고, 국고가 텅 비고, 청주가 함락되고, 경성 백관의 인심이 흉흉해졌다. 거기다 각 주 포정사사에서 전해온 접본엔 최근 감정이 이미 죽었으니 대봉이 곧 멸망할 것이란 유언비어가 곳곳에 난무한다고 했다.
민심은 매우 흉흉해졌다. 다들 대봉이 정말 곧 멸망할 것이라 여겼다.
역대 황조에선 보통 이처럼 유언비어를 퍼뜨려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행위를 엄히 처벌했다. 가장 자주 쓰는 방법이 유배와 채시구 참수로, 백성을 공포에 질리도록 만드는 형벌이었다.
하지만 동란 시기에 퍼지는 유언비어는 근본적으로 막을 길이 없었다. 하층 관원들 역시 동일한 마음일 터였다.
게다가 정말로 청주가 함락되면서 전쟁에서 도망친 백성들이 각지로 소식을 전한 통에 흉문은 더 빠른 속도로 퍼졌다. 이 상황에선 조정이 무슨 노력을 한다고 한들 아무런 효과도 없을 것이었다.
영흥제는 지금 마치 온 천하가 귓가에 울부짖는 듯했다. 대봉은 곧 멸망할 것이고, 그는 곧 망국의 군주가 될 것이라고.
그 태평성대에 태어난 영흥제가 언제 이런 정세를 보았겠는가.
하지만 오늘 조회에 참석한 영흥제는 평소와 사뭇 달랐다. 마치 절벽 끝에서 서광(*曙光: 동틀 무렵의 빛)을 본 듯한 얼굴이었다.
어제 옹주 포정사 요홍(姚鴻)이 접본을 한통 보냈다.
운주 반란군이 자발적으로 평화 협정을 제안했다는 내용이었다.
덧붙여 요홍은 접본을 통해 양공을 고발했다. 양공이 평화 협정을 거절하고 이 일을 억누르려 한다는 이유였다.
가히 죽어 마땅한 죄였다.
“정말이지 짐을 잘 보좌하는 신하로다!”
어제 영흥제는 접본을 다 본 뒤,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단, 양공은 당분간 처분할 계획이 없었다. 옹주는 아직 그가 지키고 있어야 했다.
이내 영흥제가 신하들을 둘러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여러 경들, 어제 옹주 포정사 요홍이 접본을 보내왔네. 운주가 우리 조정과 평화 협정해 전쟁을 멈추려고 한다더군. 경들의 의견은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