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1039
1032화. 경성에 입성한 사절단 (1)
금란전 내 제공들은 이미 소식을 접한 터라 전혀 놀란 기색이 없었다.
제일 먼저 재상 전청서가 발 벗고 나서서 생각을 밝혔다.
“폐하! 그건 아마 반란군이 시간을 벌기 위한 계책일 겁니다. 폐하께서는 부디 심사숙고해주십시오.”
영흥제의 대답이 있기도 전, 즉시 누군가 나서서 반박했다.
“전 재상께서는 언제부터 양 포정사와 그리 호흡이 잘 맞았습니까?”
그는 병부 도급사중으로, 불평론자 선도자 중 한 명이었다.
전청서는 눈살을 찌푸린 채 병부 도급사중을 담담히 쳐다보았다.
“엄 대인께서는 무슨 고견이 있소?”
병부 도급사중이 소리를 높였다.
“폐하, 추수 이래로 10만 대군이 위연에 의해 정산성에 매장되었고 겨울에 들어선 후로 청주에서 또 근 6만 정예병을 잃었습니다. 계속 이렇게 싸우다가는 저희 대봉 장병들을 거의 다 잃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게다가 각지 유랑민이 재해를 일으키면서 병력이 빠듯합니다. 병부는 이미 옹주를 지원할 병마를 뽑을 수가 없습니다. 신은 평화 협정이 정말 옳은 일이며 조정의 초미지급을 해결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병부상서가 입술을 달싹이다 탄식하였다. 그는 끝내 침묵을 택했다.
그 틈에 우도어사 장항영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초미지급을 해결한다고요? 평화 협정을 한다면 반란군은 분명 터무니없는 요구를 할 겁니다. 앞으로 더욱 조정이 필적할 여력이 없을까 두려울 뿐이지요. 엄 대인께선 무딘 칼로 살을 베는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겠습니까?”
이때, 호부상서가 대열에서 나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 어사께서 그리 예리하게 정세를 통찰하시니 저 호부상서의 자리를 장 어사에게 내어드리는 게 낫겠습니다.”
그는 냉소를 짓곤, 다시 영흥제를 향해 읍하며 큰 소리로 말했다.
“폐하! 국고가 텅 비었습니다. 조정이 계속 운주 반란군과 교전한다면, 조만간 전쟁에서 패할 겁니다. 곧 춘제가 오고 대지에 봄이 옵니다. 저희가 필요한 건 시간입니다. 평화 협정은 마침 시간을 벌 수 있으니 저희도 그 사이에 한재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전쟁을 주장하는 파와 평화를 주장하는 파가 바로 싸우기 시작했다.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매번 이처럼 통제 불능의 사태가 올 때면 조현진이 나서서 채찍을 후려치며 정숙하라 외쳤다. 하지만 의견은 더더욱 물밀 듯 빗발쳤다.
영흥제는 제공들의 논쟁을 잠자코 방관했다. 그러다 평화 주장 파가 대세를 이룰 때쯤, 황제는 조현진에게 눈빛으로 의사를 표했다.
탁!
조현진이 다시 채찍을 후려쳤다.
사람이 비칠 정도로 광택이 나는 바닥에서 낭랑한 소리가 났다.
금란전 내의 논쟁 소리도 마침내 잠잠해졌다.
곧 영흥제가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천천히 말했다.
“짐은 장병과 백성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니 더는 차마 경솔하게 행동하지 못하겠구나. 평화 협정의 일은 이렇게 정하겠다.”
* * *
황성, 왕부.
문 밖에 호화로운 마차가 멈췄다. 전청서는 하인의 부축을 받아 걸상을 밟고 마차에서 내렸다. 왕부 밖의 시위도 그를 막지 않았다.
저택으로 들어와 내청에서 잠시 기다리니 집사가 그를 안마당까지 안내했다. 전청서는 그렇게 왕 재상의 침실에 이르렀다.
왕 재상처럼 체면 있는 사람이 서재가 아닌 침실에서 손님을 만난다는 건 현재 그의 병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었다.
침실엔 수금탄(兽金炭)이 활활 타오르며 온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문과 창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외실과 내실에는 각각 여자 하인이 2명 서 있었다.
왕 재상은 허리에 푹신한 베개를 깔고, 거기에 기대앉아 있었다. 그는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마르고 힘이 하나도 없어 보였으나 눈빛만은 여전히 생기 있게 빛나고 있었다.
전청서는 깊은 탄식과 함께 손짓으로 하인들을 물렸다.
“에휴, 자네 병은 어째 좋아지지 않는 건가?”
왕정문이 웃으며 말했다.
“죽을 때가 됐나보지. 사람이 본래 나이가 들면 산이 무너지듯 갑자기 병에 걸리네. 신선도 살리기 어렵지. 소위 쉰에 천명을 안다고 하지 않는가. 기왕 천명이라면, 흘러가는 대로 둘 수밖에.”
잠시 고심하던 전청서가 결국 입을 뗐다.
“원래 자네를 찾아오면 안 됐네. 자네가 안심하고 요양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네만…….”
왕정문이 중간에 손을 들어 말을 끊더니 창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먼저 창문 좀 열어주게.”
전청서가 눈살을 찌푸렸다.
“날이 무척 춥네! 문을 열면 자네 몸으로 버틸 수 있겠는가?”
왕정문은 손사래를 쳤다.
“이 방의 무기력한 공기가 나를 괴롭게 하는데 그것이 더 병나기 쉬운 환경 아닌가? 흰소리 말고 얼른 창 좀 열어주게나.”
전청서는 약간 망설였으나 창가로 걸어가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게 틈만 살짝 열었다. 금세 살을 에듯 차갑지만 신선한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전청서는 다시 침상 옆 원형 의자에 앉아, 신중히 말을 골랐다.
“청주가 함락되었네.”
왕정문은 말이 없었다. 이에 전청서도 침묵을 지켰다.
한참 뒤, 왕정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계속하게…….”
“감정이 청주에서 전사하고, 현재 반란군이 청주를 점거했네. 양공과 옹주 변방에서 대치 중이야……. 어제 옹주 포정사 요홍이 접본을 보내왔는데 운주가 사절단을 파견해 평화 협정을 하려 한다더군…….”
왕정문은 그대로 굳어버린 듯 미동도 없이 경청했다.
전청서가 말을 다 마치자, 왕정문은 그제야 눈동자를 조금씩 움직였다.
“폐하께서 응하셨는가?”
그의 어조에는 짙은 실망감이 배어 있었다.
전청서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네. 대봉은 감정을 잃었네. 초범 전력에 공백이 생겼으니 양떼가 지도자를 잃은 격이지. 조만간 인심이 흩어질 걸세. 계속 싸워봤자 무슨 소용이겠나. 입장을 바꿔 봐도 나 역시 같은 선택을 했을 걸세…….”
문득 그는 불경한 말을 했음을 깨닫고 탄식하며 말을 바꾸었다.
“다른 황자였다고 해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왕정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이 이걸 확신하고 승리에 대한 자신이 있을 때, 자발적으로 사절단을 파견해 평화 회담을 하는 걸세.”
전청서가 쓴웃음을 지었다.
“천하에 똑똑한 자가 참 많네, 다들 바보인 척하는 것뿐이지. 이 이치를 누가 모르겠는가. 그렇다고 또 무슨 방법이 있고? 근래 경성 인심이 흉흉하네. 제공들은 애써 침착한 척하지만, 사실은 다 겁에 질렸네. 심지어는 대봉의 멸망이 시간문제라고 생각하지. 다른 출로를 꾀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성이 갸륵한 셈이네.
폐하께서도 평화 협정이 문제 해결 방법이 아님을 알고 계시네. 하지만 뭘 하실 수 있는가. 평화 협정은 폐하의 유일한 희망일세.
폐하께선 모든 걸 고려하지 않고 끈을 붙잡은 뒤 스스로에게 말하겠지. 이 모든 건 시간을 벌어 한재가 지나감을 기다리기 위함이라고.”
왕정문은 한참을 침묵한 후에 입을 열었다.
“그 얘기는 관두고, 허칠안이 나를 만나러 올 방법 좀 생각해보게.”
전청서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가 그 나리를 붙잡아둘 수 있겠는가. 나조차 행방을 모르는데.”
“경성에 있네, 분명 지금 경성에 있어. 감정이 죽었으니 분명히 돌아올 걸세. 운주 반란군이 평화 협정을 하려거든 허칠안의 동의를 구해야지.”
왕정문은 입을 가리고 격하게 기침했다. 이에 전청서가 즉각 창가로 성큼성큼 다가가 창문을 닫고 뒤돌아섰다.
“자네는 허 은라가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오랜 침묵이 이어지던 끝에, 왕정문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설령 위연이 다시 살아나도 이 판을 되살릴 수는 없네.”
* * *
사천감, 7층 연단실.
허칠안은 집에도 돌아가지 않고 곧장 송경을 찾아왔다.
“초혼번의 재료를 다 모았습니다. 거기에 보조 재료도 더 있어요.”
허칠안이 지서 파편을 꺼내 음침한 기운의 옥병 2개를 나눠주었다. 벌집 모양 구멍이 가득한 먹처럼 새까만 돌로, 맹독 기체를 내뿜는 잠사였다.
송경은 얼른 벽독단을 삼키고, 약수를 적신 비단으로 입과 코를 막은 뒤, 도자기 병의 나무 마개를 뽑아 재료를 확인했다.
도자기 병 안에는 옛 시체의 손톱, 경부 동맥에서 추출한 칠흑같이 까만 시체 물이 들어 있었다.
명금석과 맹독 기체를 내뿜는 잠사까지 확인한 뒤, 송경이 말했다.
“마지막 재료는 위연 원래 몸의 살갗과 피부로 위치를 특정 하는데 쓰이네. 하지만 위연의 육신은 정산성에서 훼손됐으니 분명히 되찾았을 걸세.”
사실 위연의 육신은 정덕이 삼켰다. 송경은 그 속의 내막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요?”
허칠안이 물었다.
“자식의 혈육이 대체할 수 있네.”
송경의 답에, 허칠안은 속으로 탄식을 했다.
‘위 공은 일찌감치 대가 끊어졌는데…….’
이윽고 허칠안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분명히 대체할 다른 방법이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고선 감정께서도 저더러 초혼번을 정제할 법기를 찾으라고 하지 않았겠지요.”
송경이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위연은 아들이 없네. 하지만 자네는 그의 혈단으로 3품까지 승직했지. 어떤 의미로 보면 자네가 바로 그의 아들일세. 그러니 이제 자네가 혈단 한 알을 제련해내게. 많을 필요 없네. 손톱 크기면 돼. 자네의 수련 경지에는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을 걸세. 그런 뒤, 나를 도와 유명잠사가 지닌 독성을 제거해줘야 하네. 신마 후예의 독은 내가 제거할 방법이 없거든.”
허칠안은 눈빛으로 조용히 유명잠사를 훑었다.
“혈단을 제련하고 독성을 제거하는데 아무리 해도 3일은 걸립니다. 물론 그것이 큰 문제는 아니지요. 진정한 문제는 초혼번처럼 강대한 법기를 정녕 사형이 조제할 수 있겠습니까?”
감정은 이미 없고, 손현기는 부상 치료 중이었다. 이 순간 양천환도 경성에 없으니 현재 사천감에서 지위가 가장 높은 자는 송경이었다.
그러나 송경은 그저 6품 연금술사에 불과했다.
송경은 잠시 침묵했다. 그는 연금술 영역의 대빵으로서, 스스로를 아주 잘 알았다. 연금술에 대해 숭고한 경의를 품은 자가 감히 분수를 넘어 본인을 뽐내고 다닐 리는 없었다.
이내 송경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되네! 명금석 같은 금속은 평범한 불로 융해할 수 없네. 화행진(火行陳)으로 화령(火靈)을 응집해야만 융해할 수 있지. 음, 난 연소를 돕는 재료를 써서 화염 온도를 높일 수는 있네. 그러나 새로운 화로를 만들어야 하네. 또한 연소를 돕는 재료는 내가 혼자 만든 것이라 사천감에는 비축되어 있지 않아. 이것만으로도 보름 정도 걸리네.”
송경은 여러 해 동안 품계가 정체돼 있었다. 연금술에 스며들어 진법을 대체할 많은 방법을 모색했지만, 분명 직접 포진의 편리함만은 못할 것이었다.
“그러니 자네가 기기로 연소를 돕는 재료를 대체해 명금석을 융해하고 초혼번의 막대를 제련해내야 하네. 초혼번의 천이라면, 손 사형이 완쾌되고 나서 얘기할 수밖에 없네. 짜는 과정에 계속 진법을 녹아들게 해야 하거든.”
허칠안은 인내심을 갖고 다 들은 뒤에 말했다.
“초혼번을 다 정제하면 위 공을 깨울 수 있습니까?”
송경은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다음으로는 취음대진(聚陰大陳)을 새기고 1년 중 음기가 가장 왕성한 3번의 순간 중 한 번을 기다렸다가 자네가 위연의 영혼을 소환하는 것이네.”
허칠안이 미간을 찌푸렸다.
“가장 가까운 한 번이 언제입니까?”
송경의 답이 즉각 튀어나왔다.
“춘제 날일세!”
‘한 달 정도…….’
허칠안은 숨을 뱉었다. 그 정도면 제법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