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1042
1035화. 화신의 영온 (2)
모남치가 침상 옆에 앉아 있었다.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뒷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어느새 옷을 벗어버리고 흰색 내의만 입고 있었다.
여인의 자태는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완벽한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미인은 그대로 등을 보인 채,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난 13살에 부모에게 버려졌네. 하늘의 부귀와 맞바꾸었지. 본래는 평생 궁에서 보낼 줄 알았는데 결국 또 원경이 회왕에게 보냈네. 나는 내가 물건이라 여기저기 팔린다고 생각하며 내 자신을 탓하고 원망했어.
그 후에는 낙옥형 그 여인을 알게 됐지. 낙옥형은 내가 화신전세로 몸에 영온을 짊어진 회왕의 향로라더군. 언젠가 회왕이 내 영온을 빼앗아가길 기다리고 있다면서.
나는 영온을 뺏기면 어떻게 되는지 묻기가 너무 무서웠네. 낙옥형은 내가 당연히 죽을 거라 알려줬지. 나는 또 내가 물건보다 못하단 생각이 들더군. 회왕부에서 기르는 언젠가 도살당할 날만 기다리는 가축 같은…….”
‘모남치가 본인 신분이 밝혀질까 그렇게 전전긍긍하고, 내가 화신전세란 걸 알까봐 두려워했던 게 전부 국사가 겁을 줘서 그랬구나.’
허칠안은 이제야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난 줄곧 내 신분이 폭로될까 두려웠고, 누구에게나 경계심을 갖고 있었네. 거기에는 자네도 포함돼.”
모남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지만, 허칠안은 그녀가 웃었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요 며칠, 나는 스스로에게 반복해서 물었네. 만약 허씨가 내 영온을 빼앗으려 한다면 내가 동의할까? 내가 자네를 위해 죽길 원할까? 자네가 방에 들어올 때까지도 나는 여전히 답을 내리지 못했어.”
순간 멈칫한 모남치는 저도 모르게 탁자 위 그 간식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방금 난 문득 답을 알았네. 나는 원해.”
말을 마친 모남치는 몸을 팽팽하게 조이고 뻣뻣하게 앉았다. 마치 당장이라도 무시무시한 괴물이 언제라도 덮쳐와 그녀를 물기라도 할 것처럼.
한참을 기다렸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모남치도 오랜 기다림 끝에 결국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허칠안은 옆으로 가로누워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빙그레 웃으며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백희 역시 허칠안과 같은 자세였다. 고 짧은 몸을 옆으로 기울이고 한 발로 머리를 받친 채 그녀를 묵묵히 쳐다보고 있었다.
“…….”
모남치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머리 꼭대기에서도 꼭 보이지 않는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너희……!”
그녀는 부끄럽고 분한 나머지 성을 내며 백희를 잡고 허칠안의 머리를 내리쳤다. 허칠안은 아무 일이 없었지만, 백희는 고통에 낑낑댔다.
“놀린 거예요, 화내지 마요.”
허칠안은 백희를 옆으로 떼어 구해주고, 모남치가 빠져나가기 전에 그녀를 침상 위로 끌어올렸다.
모남치는 그 두려움을 뚫고 어렵게 용기를 내어 허칠안이 2품으로 승직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며 손을 내밀었다.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다음은 또 언제가 될지 알 수가 없었다.
“마마는 불사수(不死樹)예요. 전 마마의 영온을 빼앗아 갈 수 없어요. 기껏해야 좀 흡수하는 것뿐이니 절대 죽지 않아요. 거기다 제 몸엔 봉마정이 있으니 설령 마마와 잠자리를 해도 2품으로 승직하지 못합니다.
먼저 전 마마의 개(*舔狗: tiǎn gǒu. 직역하면 개가 핥는다.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자존심도 버리고 다 맞춰주는 것을 비유. 중국 신조어)가 되겠습니다. 영온을 흡수하는 일은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
허칠안은 그대로 모남치를 안고 주르륵 미끄러져…….
그가 갑자기 굳어버렸다. 순간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지서 파편에 평범한 전서가 아닌 1:1 대화 요청이 왔다.
다른 때라면 허칠안도 지서 파편이고 뭐고 마음껏 아양을 떨었겠지만, 지금은 비상 시기였다. 천지회 구성원 중 누구라도 사적인 대화를 걸어왔다는 건 틀림없이 무슨 일이 있는 것이었다.
몹시 아쉬워하며 고개를 든 허칠안은 새빨개진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잠시 그가 멈칫했다.
‘아, 팔찌를 깜빡했네. 허칠안, 너 벌써부터 현자 타임에 들어가고 싶었어?’
이내 허칠안은 지서 파편을 꺼내 1:1 채팅을 받아들였다.
‘팔호?’
허칠안은 미간을 찌푸렸다. 최근 금련 도사가 며칠 전 팔호는 이미 관문을 나와 경성으로 올 것이라 말하긴 했었다. 그러나 팔호는 여태껏 계속 잠수를 탔었기에 천지회 구성원 모두 그와 접점이 없었다.
‘날 따로 불러 뭐하려고? 우선 금련 도사한테 물어보자. 팔호가 믿을 만한지 아닌지 봐야지…….’
허칠안은 일단 대답 없이 1:1 채팅을 종료한 뒤, 금련 도사에게 1:1 채팅 요청을 발송했다.
도사는 빠르게 전서를 보냈다.
[구: 무슨 일인가?] [삼: 팔호가 경성에 왔는데 저랑 만나자고 합니다.]허칠안은 단도직입적으로 금련 도사에게 상황을 알렸다.
[구: 빈도는 만나러 가도 무방하다고 말해주겠네.]허칠안도 천지회 규칙을 잘 알고 있었다. 금련 도사가 본인의 허락 없이 파편 소지자의 신분을 자발적으로 밝힐 리는 없었다.
전서를 마치고, 허칠안은 얼른 다시 팔호와 연결했다.
[삼: 좋네!]어쩔 수 없이 일어난 허칠안은 곧 누워 있는 모남치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저 나갔다 올게요. 기다릴 필요 없으니 먼저 주무세요.”
말을 마친 그는 바로 그림자에 몸을 녹여 방에서 사라졌다.
모남치는 힘껏 숨을 내뱉었다. 망연자실한 건지, 홀가분한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한숨이었다.
“이모! 저도 이모의 강아지가 될래요!”
백희는 모남치의 품으로 달려들다가 머리를 가볍게 한 대 쥐어박혔다.
모남치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 그 사람과 너무 오래 있다 보니 색마처럼 변한 거 아니니?”
다음으로 그녀는 백희의 한쪽 뒷다리를 들어보였다.
“넌 암컷이야.”
* * *
허칠안은 그림자 속에서 끊임없이 도약해 몇 분 뒤 서쪽 성문에 이르렀다.
이 순간, 밤은 깊고 사방은 매우 조용했다. 성벽 위 횃불의 희미한 빛이 꼭 반딧불이 같았다.
성문을 나온 뒤, 허칠안은 다시 바닷속을 노니는 검은 물고기처럼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뚫고 나아갔다.
약속 장소는 서쪽 성문 밖 15리였다. 별도의 설명이 없는 건 관도 위에서 보자는 뜻이었다. 허칠안은 계속 관도를 따라 앞으로 향했다.
15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허칠안은 빠르게 목적지에 이르렀다.
어두운 밤 아래, 우뚝 선 커다란 형체가 보였다.
그는 붉은색과 노란색이 뒤섞인 가사를 입고 있었다. 키는 9척에 가까워서 평범한 사람과 비교하자면 거인 같았다.
용모는 추했다. 눈썹 없는 눈썹 뼈는 살짝 돌출돼 있고 그 아래 눈빛은 칼처럼 날카로웠다. 전체적으로 용맹하고 비범한 기운을 풍기는 사내…….
아소라였다.
그의 손이 조용히 옥석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 * *
역참, 수금탄이 타오르는 내청 안.
허원상은 전음 소라를 꺼내 술사 비법으로 법기를 활성화했다.
이 법기 소라는 아주 진귀한 법기였다. 2품 술사인 아버지에게 최상품 법기는 많았지만, 1만 리를 전음할 수 있는 이 법기는 단 한 쌍뿐이었다.
이것의 진귀한 점은 법기를 제련하는 수법이 어려워서도 아니고, 그 속에 녹아든 진법의 품계가 높아서도 아니었다. 가장 기초적인 원재료 문제였다.
전음 소라 같은 생령은 신마 혈통을 구비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그것들은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음파를 낼 수 있어 수천 리 밖의 동족과도 교류할 수 있었다. 다만 그 수가 매우 희박했다. 전음 소라는 이미 멸종 위기였다.
허평봉의 이 전음 소라 한 쌍은 그해 사천감에서 가지고 나온 것이었다. 그 후로 20년 동안 그는 다신 살아 있는 전음 소라를 찾지 못했다.
“갈 사형.”
허원상이 소라 입을 향해 외쳤다.
얼마 뒤, 전음 소라에서 갈문선의 목소리가 울렸다.
“경성에 도착했니? 전음 소라를 희원에게 주렴.”
전음 소라를 법기로 정제했을 때, 특수한 전음 진법을 녹아냈기에 비슷한 진법을 녹인 소라와만 전음할 수 있었다. 간단히 말해, 전음의 촘촘한 기능으로 오직 같은 화로에서 나온 소라끼리만 전음할 수 있었다.
허원상은 옆에 있는 희원에게 전음 소라를 내던졌다.
희원이 허둥지둥 전음 소라를 받으며 불평했다.
“우리 운주 전체에 전음 소라는 2개뿐인데 떨어져 망가지면 어떡하니.”
소라를 귓가에 댄 희원은 바로 웃음기를 거뒀다.
“사절단이 이미 경성에 도착했습니다만, 허칠안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잠시 침음하던 갈문선이 말했다.
“그의 성격으로는, 만약 승리를 확신하고 저력이 충분하다면 오늘 아마 자네에게 초장에 본때를 보여주려 할 거야.”
희원이 웃으며 말했다.
“오늘 한 가지 알아낸 일이 있는데 허칠안과 황제 사이가 썩 좋지 않다고 합니다. 아마 평화 협정에 관한 일 때문이겠지요.”
갈문선이 의아해했다.
“자네는 어떻게 알아냈는가?”
뜻밖에도 처음 경성에 온 희원이 기반이 되는 사람도 없이 황궁의 일을 이토록 빨리 알아냈다. 설마 대봉 조정의 인심이 그만큼 뒤숭숭해서 이미 언제라도 붕괴할 지경까지 이른 것인가?
희원이 말했다.
“해지기 전, 진 귀비가 사적으로 사람을 보내 저와 만났습니다. 자신이 국사의 적이니 옛정을 생각해 평화 협정할 때 관대히 봐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하더군요.”
갈문선은 참시 침묵하더니 개탄하며 말했다.
“국사의 바둑돌이 도처에 널리 깔려 있군. 없는 곳이 없어……. 진 귀비를 안정시키고 진 귀비에게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방법을 생각해야겠네.
그리고 평화 협정은 목적 중 하나고, 다른 목적은 바로 허칠안과 황제의 관계를 틀어지게 해 설상가상으로 혼란을 일으킬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네. 이 과정에 자네는 잊지 말고 기회를 보다가 허칠안을 떠보게. 그에게 무슨 승부수가 있는지 없는지 보는 게지. 감정이 봉인되긴 했지만, 그가 무슨 후수를 남겼을지는 아무도 짐작할 수 없으니.”
“저는 허씨와 만나고 싶은 마음을 한시도 지체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일곱째 형님을 대신해 원한을 풀어줄 겁니다.”
희원의 말에, 갈문선이 여전히 담담하게 평정을 지켰다.
“정도를 주의하게. 큰일이 중요한 법이니.”
희원은 왼손으로 은색 살 부채를 가볍게 부치며 웃었다.
“압니다. 허칠안은 조만간 다 잡은 물고기가 될 겁니다.”
* * *
서쪽 성문, 15리 밖.
‘아소라…….’
허칠안은 붉은색, 노란색이 뒤섞인 가사를 입은 그 거대한 형체를 바라보았다. 머릿속이 뒤엉키고, 영광이 번뜩였다. 많은 것들이 이해가면서도 동시에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더 많았다.
“당신이 팔호……?!”
그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거리를 유지한 채 상대방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소라는 옥석경을 만지작거리며 차분하게 말했다.
“만약 아니라면, 자네가 그날 그렇게 쉽게 신수의 나머지 사지를 빼앗아갈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나? 당초 내가 전력투구했다면, 50수 내에 자네 머리를 땅에 떨어트리고 봉인해 자네를 서서히 갈아 죽일 수 있었겠지.”
그가 가볍게 웃었다.
‘역시! 고의로 져준 거였어…….’
허칠안은 소리 없이 숨을 내뱉었다.
낙옥형이 일깨워준 덕에 그는 일찍이 아소라가 고의로 져줬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눈치챘었다.
그 후, 구미천호와의 토론으로 얻은 결론은 불문이 도끼로 제 발등을 찍는 음모거나 아소라에게 다른 계획이 있다는 것이었다. 예컨대 기회를 틈타 이점을 취해 1품으로의 승직을 노린다거나.
이제야 분명해졌다. 확실히 아소라에게는 다른 계획이 있었다.
채팅방 친구에게 고의로 져주려는 계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