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1045
1038화. 승직 (2)
사천감, 침실.
고요한 방에 콩알 같은 촛불이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다.
그때, 원형 탁자의 그림자가 팽창하더니 허칠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남치는 두껍고 부드러운 솜이불 아래 모로 누워 단잠에 빠져 있었다.
백희도 그녀 옆에서 자고 있었는데 딱 두 손바닥 크기만 한 몸은 두꺼운 솜이불 밑에 깔려 있었다. 이불 모서리에 삐죽 튀어나온 흰 털이 아니었다면 백희가 있는지도 몰랐을 것 같았다.
“2품으로 승직할 때가 됐군. 음, 우선 목욕하고…….”
허칠안은 중얼거리며 병풍 뒤로 향했다.
모남치는 역시 목욕물을 버리지 않았다.
허칠안은 빠르게 옷을 벗고 목욕통으로 들어갔다. 수면에 꽃잎이 동동 떠 있어 은은한 향기를 풍겼다.
화신은 1년 내내 기이한 화초를 키우는데 바싹 말리거나 분말로 제조해 목욕할 때 조금 뿌리곤 했다.
‘향기롭긴 한데, 앞으론 집에 청귤을 상비해야겠네…….”
허칠안은 빠른 속도로 목욕을 마치고 물통에서 나왔다. 그리곤 모남치가 병풍 위에 걸어놓은 옷을 내키는 대로 집어 몸의 물기를 깨끗이 닦았다.
뒤이어 그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침상 옆으로 걸어가 허리를 굽혀 백희에게 숨을 내뱉었다.
이는 독소로 만든 마취약으로, 백희는 내일 아침까지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숙면을 취할 것이었다. 설령 허칠안이 침상을 무너뜨린다고 해도 절대로 깨어날 일은 없었다.
허칠안은 이내 조그만 백희를 들어 침상 맡에 베개처럼 두고는, 이불을 젖혀 안으로 들어갔다.
모남치는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 자신의 옷을 벗기는 손길을 느꼈다.
“음…….”
그녀가 눈살을 찌푸리며 깨어났다.
한 마디 말도 없이 민감한 부위를 습격한 손길에 모남치는 그만 머리가 멍해졌다. 동시에 몸은 본능적으로 미리 반항하고 있었다.
그녀는 다리를 꼬아 엉덩이를 낮춘 뒤 양손으로 비단 바지를 눌렀다.
뒤이어 모남치는 아름다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부라렸다. 손길의 주인공이 허칠안임을 제대로 본 후에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벌컥 성을 냈다.
“자네 뭐하는 건가!”
다만 말투에 너무 큰 반감과 분노는 없었다. 그저 허칠안이 무덕(武德)을 중시하지 않고 한밤중에 기습했다는 데에 화가 나는 것이었다.
허칠안이 조용히 웃었다.
“헤헤, 2품으로 승직하려고요.”
잠시 어리둥절했다가 말뜻을 이해한 모남치는 뺨에 살짝 홍조가 올랐다. 그러다 문득 허칠안이 지금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모남치는 바로 몸을 틀며 꾸짖었다.
“자네, 우선 봉마정을 풀고 다시 얘기하지!”
말을 끝냈는데, 조금 전 허칠안이 떠나기 전에 했던 행동이 생각났다.
“그 강, 강아지 노릇도 하지 마.”
모남치는 방금 실수로 마음을 드러냈지만, 그 감동은 이미 다 지나갔다. 단시간 내 화신이 허칠안을 좋아한다는 걸 인정하고 그와 진정으로 처음을 함께하길 바라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었다.
‘아, 이럴 줄 알았어. 쇠뿔도 단김에 뺐어야 했는데. 우선 최대한 기분이고 비위고 다 맞춰 줘야지. 다른 생각은 못 하게. 이게 다 아소라 때문이야.’
이내 허칠안은 모남치의 귀에 부드러운 입김과 함께 속삭였다.
“저 마지막 봉마정을 뽑아냈습니다.”
이는 즉, 드디어 우리의 처음이 다가왔다는 소리였다. 마침내 두 사람의 관계가 실질적으로 발전할 참이었다.
모남치가 홱 몸을 틀고 허칠안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야 허칠안의 그 건장한 신체가 자신에게 꼭 닿아있음을 알아차렸다.
모남치는 가슴이 미친 듯 쿵쿵 뛰었다. 결국 그녀는 두 손으로 허칠안의 가슴팍을 확 밀쳐냈다.
“자, 자네 좀 물러나……. 남녀는 유별한 법이라고. 나를 만지지 마, 내가 어떤 사람인데…….”
그녀는 바로 솜이불을 덮고 안으로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그녀가 움츠러들 때마다 허칠안이 더 딱 붙었고 급기야 그녀는 벽 가장자리까지 몰렸다.
허칠안이 음흉하게 웃으며 물었다.
“마마가 어떤 사람인데요? 말해봐요.”
모남치는 다급히 요리조리 눈동자를 굴렸다.
“나, 나는 자네 손윗사람이지!”
나이로 논하자면, 허칠안은 엄연히 그녀를 이모라 불러야 했다.
“…….”
김이 팍 새버린 허칠안은 살짝 몸에 힘을 풀고 불평했다.
“어렵게 분위기를 띄워놨는데 마마께서 다 망쳤네요.”
허칠안은 침상에 바로 누워 말없이 천장을 쳐다보았다.
이 순간, 그는 저도 모르게 낙옥형이 떠올랐다. 역시 모남치와 낙옥형은 절친이 맞았다. 사랑하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또 두려워하는 그 도도함이 그야말로 쌍둥이처럼 닮아있었다.
애초에 낙옥형은 쌍수하자고 자발적으로 찾아왔었다. 허칠안도 못 이기는 척 그냥 침상에 올랐는데, 막상 일이 눈앞에 닥치자 낙옥형이 또 번복했다. 허칠안이 그녀의 옷을 벗기려 했을 때는 따귀도 몇 대 맞았다.
사실 방금 아소라에게 한 말은 반은 진실이고 반은 거짓이었다. 낙옥형과는 2번(2달)밖에 쌍수하지 않았다. 본래 기간은 전에 말했듯 짧게는 석 달, 길게는 반년이었다.
낙옥형이야말로 업화를 완전히 잠재워야만 걱정 없이 도겁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낙옥형이란 패가 제대로 역할을 발휘하려면 최소한 한 달 뒤여야 했다. 지금의 그녀는 전력을 다할 수 없었다. 자칫하다간 낙옥형 몸속의 업화가 통제를 잃어 바로 천겁을 불러들여, 죽음의 길로 내몰릴 것이었다.
낙옥형 외에 다른 이들은 전부 3품이었다. 당시 감정의 그 전투에 참여하는 건 너무 무리였다. 1품이 3품을 치면 단 10수 만에 끝장날지도 몰랐다.
‘조위의 태도가 좀 애매해. 그 사람 끌어들이는 건 좀 어렵겠어. 그것도 난제구나. 어쨌든 나는 빨리 2품으로 승직해야 해.’
생각이 쏟아지는 사이, 허칠안은 모남치가 슬그머니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그녀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으로 그의 가슴을 더듬다가 깜짝 놀랐다.
“어? 봉마정이 정말로 없어졌네!”
허칠안은 언짢은 얼굴을 했다.
“제가 마마를 뭐 하러 속이겠어요?”
다시 이불 속에 움츠린 모남치는 그를 힐끔 쳐다보다가 다시 묵묵히 벽 가장자리로 물러났다.
침묵 속에 시간은 빠르게 지났다. 촛불은 이제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허칠안은 다시금 모남치에게 다가가 굵고 단단한 팔로 가느다란 허리를 감쌌다. 순간, 여리고 연약한 모남치의 등이 움찔하며 굳어버렸다.
허칠안은 조심히 옷을 벗기려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녀는 옷깃을 꼭 잡아당긴 채 몸을 움츠렸다. 무언으로 온 힘을 다해 거부하는 듯했다.
살짝 어리둥절해진 허칠안은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모남치는 붉어진 눈시울로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부끄러워하거나 긴장한 게 아니었다. 그 눈빛이 많이 아프고 억울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순간, 허칠안은 모든 힘을 잃은 듯 허리를 감싼 팔을 풀었다.
“……미안해요.”
모남치는 어리둥절했지만, 아무 대답 없이 침묵으로 응했다.
허칠안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실 마마의 신분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북경에서 경성으로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요. 그때 전 마마에 대한 감정이 복잡했습니다. 마마의 영온을 강점하고 싶으면서도 마마의 진짜 모습을 보니 동정하는 마음과 흠모를 주체하기 어려웠지요. 그대로 마마와 별가에 함께하며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갔으면 했어요.
나중에 마마께선 저를 따라 강호를 거닐며 오랫동안 함께 지내게 됐지요.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으나 저는 더 이상 마마의 영온을 강점하고 싶지 않아졌어요. 제 생각에 구양주가 연뿌리에 의지해 2품으로 승직할 수 있었으니 틀림없이 저도 그럴 수 있을 겁니다.”
용기 수집 후반기엔 그는 정말 왕비의 영온을 빼앗겠단 생각을 접었었다.
모남치는 코가 시큰해졌지만, 최대한 침착하려 일부러 차갑게 말했다.
“왜 미안하다고 하는 거지? 왜 나한테 이런 얘기를 하는 거야? 왜 내 영온을 강점하겠다는 생각을 접은 거지?”
허칠안은 잠시 침묵하더니 사실대로 말했다.
“미안해요, 제가 마마를 만지고 마마를 얻겠다는 초심은 분명 이기적인 거니까요. 정덕보다 고상할 게 없어요. 이 사실을 외면한다면 저는 근본적으로 마마를 가질 자격이 없는 사람이지요.
왜 이 얘기를 하느냐면, 저희는 이 길을 걸으며 너무 많은 일을 가슴에 억눌러왔어요. 그 수많은 감정을 제대로 털어놓은 적이 없었으니까요. 이 기회에 제 마음을 마마께 솔직하게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그가 살짝 멈칫하며 말을 멈췄다. 그러다 다시 마지막 질문에 답을 했다.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저는 마마에게 점점 더 매혹됐어요. 지금껏 그 마음을 드러낸 적은 없지만. 저도 영온을 억지로 차지하는 게 마마한테 어떤 해를 끼칠지 모릅니다. 더욱이 우리가 정말 처음으로 잠자리한 뒤에, 마마께서 후회하고 괴로워하고, 제가 화신의 영온만을 위해 마마를 가졌다 여기는 건 바라지 않아요.”
허칠안이 이제껏 참아온 말들이었다.
전에는 굳이 말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었다. 그냥 둘의 관계가 서서히 달아올라 자연스레 침상으로 오를 때를 기다리면 되지 않은가. 그러면 허칠안이 용의주도하게 화신의 영온을 노린 것처럼 보일 리도 없었다.
하지만 본디 세상사라는 건 예측이 어려웠다. 사람이란 영원히 대세에 떠밀려 가기 마련이었다.
지금의 그는 모남치의 영온으로 2품으로 승직하는 게 시급했다.
모남치는 과거의 경험 때문에 이 점에 더욱이 민감했다. 그녀가 방금 속마음을 고백한 것도 평생 사내에게 처음으로 진심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러나 돌아온 건 사내의 다급한 기색뿐이었다. 모남치는 이런 걸 바라지 않았다. 평생 처음 한 고백이 그대로 무참히 외면당한 것이라 여겼다. 그렇게 마음속에선 걷잡을 수 없는 억울함이 솟구쳤다.
허칠안은 바로 그 마음을 정확히 알아챈 것이었다.
그는 곧 모남치의 목에 천천히 고개를 파묻고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그윽한 향기를 맡았다.
“전 이 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 마마께서 앞으로 후회하는 걸 원치 않고, 우리 사이에 응어리가 남는 건 더더욱 바라지 않아요.”
허칠안의 매혹적인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려 퍼졌다.
모남치 얼굴은 이미 눈물범벅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코를 한번 훌쩍이고는 도도하게 한 마디 했다.
“어쨌든 별거 아니야. 나, 나는 딱히 영온이 부족한 것도 아니니까.”
억울한 감정이 풀리니, 금세 달콤한 행복감이 서서히 밀려들어왔다.
모남치가 막 말을 마치자, 허칠안이 그녀 손목의 팔찌를 가볍게 풀었다.
이후 모남치는 넋을 잃고 멍해진 그의 눈빛을 보았다.
그녀는 약간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붉히고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슴푸레한 촛불, 침상 위의 미인은 수줍은 마음에 부끄러워하여 입술을 오므렸다. 긴장한 탓에 긴 속눈썹도 파르르 떨고 있었다.
세상에 이보다 더 감동적인 그림이 있을까.
허칠안은 그 갸름한 아래턱을 잡고 경국지색의 얼굴을 마주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숙여 붉은 입술을 머금었다.
모남치는 눈을 꼭 감고 양손을 그의 가슴에 댔다.
점차 호흡 소리가 점점 격해지고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가빠진 숨소리를 듣고 허칠안이 고개를 들었다. 모남치는 산소가 부족한 듯 크게 숨을 헐떡였다. 그리고 붉은 입술이 약간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홱……!
허칠안은 돌연 솜이불을 힘껏 젖히고 굵직한 팔로 침상을 짚었다. 그의 품 아래 모남치가 있었다. 허칠안은 잠시 가만히 품 안의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잠시 후, 허칠안이 속옷의 아랫자락부터 천천히 걷어 올렸다.
하얗고 보드라운 피부는 꼭 응고된 기름 같기도 하고, 세상 가장 무결한 옥 같기도 했다.
이윽고 허칠안은 몸을 붙인 채 그녀의 아랫배에 입맞춤했다. 정말 천하에 제일로 귀중한 옥을 대하듯, 그의 몸짓은 아주 정성스럽고 열정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