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1052
1045화. 평화 협상의 대단원 (2)
왕정문은 바로 침상 옆에 앉은 허칠안을 쳐다보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평화 협상하는 일에 관해서 자네도 들은 바가 있겠지. 자네, 이 노인네에게 솔직히 말해보게. 무슨 계획이 있는가?”
마치 궁지에 몰린 사람이 마지막 희망을 찾듯 그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내가 만약 여기서 아무 방법도 없다고 말한다면 이 어르신의 숨이 그대로 끊어질 수도 있겠지…….’
이 순간, 허칠안은 이곳에 늦게 방문한 게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날 회경과 상의를 마치자마자 왕부로 와서 아무 방법이 없다고 말했더라면, 아마 왕정문은 간신히 버티고 있던 삶의 끈을 놓쳐버렸을지도 몰랐다.
허칠안은 왕정문을 정면으로 쳐다보고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말했다.
“저, 2품에 들어섰습니다.”
왕정문은 침상 깔개를 힘껏 움켜쥐었다. 손등 핏줄이 도드라질 정도였다. 그는 그렇게 허칠안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호방하고 시원시원한 웃음소리는 단숨에 어두운 그늘을 쓸어갔다.
그는 허칠안에게서 강한 자신감을 느꼈다. 이제는 안심할 수 있었다.
허칠안은 묵묵히 앉아 노인이 울분을 다 토해낼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잠시 후, 왕정문은 감정을 추스르고 노련한 재상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자네, 무슨 계획이 있는가?”
허칠안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저는 황제를 바꿀 겁니다.”
이상한 건 왕정문의 표정이 참 차분했다는 것이었다. 전혀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곧 늙은 재상이 탄식과 함께 말했다.
“영흥은 수성 군주일세. 이렇게 곧 무너질 것 같은 강산은 감당하지 못해. 설령 이번 평화 협상을 순조롭게 해결한다 해도 만약 두 번째, 세 번째로 불리한 국면이 닥친다면 그는 어김없이 중도에 뒷걸음칠 걸세. 때로는 후방에서 비롯되는 문제가 가장 치명적인 법이지. 조정이 운주와 국운을 필사적으로 다투려거든 반드시 안정적인 후방이 있어야 하네.”
잠시 멈칫하던 그가 허칠안을 쳐다보았다.
“자네는 누구를 세우고 싶은가?”
“염친왕입니다.”
허칠안의 대답은 망설임이 없었다.
왕정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좋네, 그리 되면 좋지. 염친왕은 적자로 태후의 출생이니 황위에 오르는 것도 확실히 명분이 들어서네.”
두 사람의 상의가 끝난 후, 늙은 재상은 침상 맡의 방울을 쥐고 흔들었다.
즉각 문 밖의 집사가 들자, 왕정문이 분부를 내렸다.
“가서 전 재상, 손 상서, 조 시랑……. 이들을 다 모셔오게.”
그는 연달아 예닐곱의 이름을 불렀다. 전부 왕당의 핵심 인물이었다.
허칠안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배는 먼저 물러나겠습니다.”
* * *
려왕부(厲王府).
“영흥은 실로 멍청하구나!”
연로한 려왕은 소식을 들은 뒤, 지팡이를 짚은 채 비틀거리며 일어나 탁자를 연신 두드렸다.
당 내에는 친왕, 군왕들이 있었다.
“역신이 정통이면 우리는 뭐란 말인가? 선조들은 뭐란 말이더냐!”
예왕이 나지막한 어조로 말했다.
“폐하께선 너무 겁이 많으시네. 운주가 원하는 건 전량과 토지인데 설령 우리가 물고 늘어져도 본 왕은 희원이 감히 경성을 떠날 거라 보진 않네.”
이때, 누군가 끼어들었다.
“누가 그를 황제라고 했는가.”
친왕, 군왕들이 고개를 돌렸다. 발언한 이는 바로 염친왕이었다.
려왕은 염친왕을 한번 보고, 분노로 가득한 군왕, 친왕들의 얼굴을 훑고는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됐네. 운주가 세력으로 사람을 억누르니 폐하께서도 무슨 방법이 있겠나. 지금은 겉으로만 추종하며 봄이 오길 기다리는 시기네. 조정이 이번에 숨을 고르기만 하면 뭐든 얘기하기 쉬워질 걸세. 우리 이 혈통이 강산에 듬직하게 앉아 있기만 하다면, 그가 까맣다면 까만 거고 하얗다면 하얀 것이지.”
속으로는 영흥제가 매우 못마땅하다고 해도 려왕은 대세를 중시해 종실의 정서를 안정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국가 대사는 황제가 결정권을 가질 수 있지만, 선조의 일은 황제 홀로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결국 영흥의 방법은 모두의 조상을 불의로 내몰고 있었다.
* * *
3일 후, 조정과 운주의 평화 협정도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중하층 경관이 무슨 태도이든 경성 백성, 경성 서생이 무슨 태도이든지 상관없었다. 모든 이가 보기에 이번 협정은 이미 확고부동했다.
* * *
어서방.
영흥제는 문서를 펼치고 양측의 ‘협의’를 자세히 읽고 있었다. 협의 내용은 번잡했고, 관련된 세칙이 너무 많았다.
첫 번째 조건은 변치 않았다. 영흥 1년부터 대봉은 매년 운주에 백은 50만 냥과 견직물 60만 필을 공물로 바친다.
그 세칙은 의미가 확대되고 바뀌었다.
첫해에는 50만 냥과 견직물 30만 필을 바치기만 하면 되고, 내년에는 반드시 말끔히 다 갚아야 했다.
두 번째 조건도 변치 않았다. 평화 협상이 끝난 뒤, 대봉 조정은 즉시 각지 관아에 관보를 보내 운주 혈통이 중원 정통임을 인정하고 포고문을 붙여 천하에 명명백백히 알려야 했다.
세 번째 조건은 가장 오래 옥신각신했다. 운주 측은 옹주, 우주, 장주를 할양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옹주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경성 관내였다. 옹주는 절대로 할양할 수 없었다. 이건 원칙적인 문제였다.
담판 과정 중 희원은 다시 또 운주 초범 강자로 압력을 넣었으나 이번에는 소용없었다. 예부상서와 홍려사경이 끝끝내 뜻을 꺾지 않았다.
또한 우주는 철광 자원이 풍부하고, 장주는 대봉 3대 곡창 중 하나였다. 이곳이 운주 반란군 쪽으로 가면 어떤 결과가 있을지 충분히 예상되었다.
하지만 옹주를 지키기 위해 결국 우주와 장주를 내놓았다. 이 2주는 경성과 거리가 요원한 편이었이라 옹주처럼 그리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네 번째 조건, 감정의 법기 정제 친필 서신.
영흥제는 어제 이미 사람을 보내 사천감에서 그 서신을 가져왔다. 뜻밖인 것은 사천감의 송경이 아주 흔쾌히 내어줬다는 것이었다. 마치 그것이 죽은 스승의 유품도 아닌 것처럼 매우 시원시원했다.
“폐하, 비록 평화 협상이 순조롭게 달성됐다고는 하나, 운주 반란군은 본성이 흉폭하고 길들이기 힘들어 절대 가볍게 믿어서는 안 됩니다.”
려왕은 이 순간에도 어서방에 유일하게 자리를 하사받은 사람이었다.
영흥제는 비로소 얼굴에 미소를 되찾고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숙공(叔公), 안심하시지요! 이 일은 짐이 이미 제공들과 상의했습니다. 운주 사절단을 보내고 난 뒤에 짐이 직접 허 은라를 찾아가 남강의 지원군을 데려오도록 할 겁니다.
고족과 요족에 초범 강자가 적잖게 있지요. 허 은라가 그들을 모셔오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한 달만 더 있으면 춘제입니다. 춘제 후에 대지에 봄이 돌아오니 한재가 풀릴 테고 정세는 반드시 좋아질 겁니다.”
려왕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런데 며칠 전 폐하와 허 은라 사이에 불쾌한 일이 있었다고요?”
영흥제가 손사래를 쳤다.
“사소한 일입니다. 짐도 평소 그를 어느 정도 존경하나, 국가 대사는 짐이 알아서 결정할 일이지요. 필부의 용기를 과시하는 건 용납지 않습니다.”
사실 영흥제는 지원병을 데려오는 일에 허칠안을 어떻게 청할지, 청하기 어렵진 않은지 전혀 고려한 적이 없었다. 앞서 고족과 요족을 맹우로 만들었듯이, 황제는 마치 모든 걸 허칠안이 해야 한다는 듯 굴었다.
려왕의 안색도 다소 누그러졌다.
“폐하께선 이미 계획이 있으셨군요. 본왕도 그럼 마음을 놓겠습니다.”
영흥제의 생각은 방금 똑똑히 밝혔다. 우선 평화 협정으로 반란군을 안정시키고 허 은라가 목숨 바쳐 남강의 맹우에 지원을 요청한다. 그리고 동시에 봄이 한재를 물리쳐주길 기다린다.
려왕 역시도 이 임무의 난도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 * *
성문 밖.
말 6마리가 미친 듯 질주해 달려왔다. 그 위에는 각각 두봉을 걸친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휙- 휙-
준마는 흡사 바람 같은 소리를 내며 성문을 지나쳤다.
성문에 들어서니, 질주하던 말의 속도도 급히 줄었다.
선두에 선 자는 말고삐를 잡아당긴 후, 고개를 돌려 성벽을 바라보았다.
그는 얼굴이 뻣뻣하게 굳은 것처럼 표정이 부족했다. 마치 돌로 조각하여 만든 표정 같았다.
양연!
초주성 대량 학살 사건 이후, 양연은 그곳에 남았다. 조정은 그를 초주 총병 겸 초주 도지휘사에 임명했었다. 그리고 설령 위연이 죽은 뒤라도 그는 줄곧 초주에 남아 경성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내 양연이 옆으로 고개를 돌려 좌측의 부하를 쳐다보았다.
“경성에 잠복한 모든 형제를 소집하여 명령을 기다린다.”
“네!”
부하는 양손으로 읍하고,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말은 곧 대오와 분리되어 다른 길로 질주했다.
양연은 시선을 옮겨 널찍한 간선도로를 따라 멀리 황궁 방향을 바라봤다.
‘의부님께서 생전에 4황자를 황위에 올리지 못했으니 지금 우리 이 파가 천지를 장악할 차례구나…….’
* * *
야경꾼 관아.
금라 네 명이 당에 일제히 모여 문과 창문을 굳게 닫았다.
금라 조금(趙錦)이 맞은편의 은라 송정풍을 주시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허 은라가 정말 그렇게 얘기했던가?”
허 은라는 관직이 아니라 이미 호칭이 되었다. 대봉에서 ‘허 은라’ 세 글자를 내뱉기만 하면 누구를 가리키는지 모두가 다 알았다.
송정풍이 웃으며 말했다.
“지금 중원이 동요하고 조정 역시 위기에 놓여 있어요. 몇몇 금라가 이 거센 흐름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오늘의 선택에 달려있죠. 칠안은 위 공의 제자입니다. 네 분 역시 칠안과 낯선 사이도 아니고 친분이 있는데 설마 곤경에 빠트릴까 두려워하는 것인가요?
게다가 대역무도한 말을 하자면, 지금 대봉에서 누구에게 충성을 다하는 게 가장 전도유망하겠습니까? 금란전에 앉아 운주 반란군에게 환심을 사는 그분? 아니죠, 답은 뻔하지 않나요. 바로 나의 형제입니다.”
조금과 다른 금라 셋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잠시 침음하다가 말했다.
“왜 허 은라가 직접 오지 않는 거지?”
송정풍은 대답 대신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다 보고 나면 자연스레 알게 될 겁니다.”
조금은 종이를 펼친 후 우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허 은라의 필적이군.”
그리고 점차 조금의 눈빛이 굳어갔다. 그는 한참이나 종이를 주시했다.
이내 조금은 깊이 숨을 들이쉬며 마음속에 솟구치는 흥분을 억눌렀다. 이후 아무 내색 없이 나머지 금라 셋에게 종이를 건넸다.
모두가 다 돌려 읽은 뒤, 조금이 말했다.
“자네, 허 은라에게 회신하게. 나를 속인 것이 아니라면 나 조금, 이 목숨을 그에게 바칠 수 있다고. 다만 우리는 일단 그와 직접 만나봐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