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1053
1046화. 반란 (1)
역참.
희원이 전음 소라를 쥔 채 말했다.
“재미없습니다! 대봉의 황제도, 조당 제공들 역시 재미없습니다. 국자감 서생은 더욱이 재미없고요. 제가 듣기로 당시 진북왕의 시체를 경성으로 운구해왔을 때 원경이 궁을 닫고 백관을 만나지 않았는데 허신년이라는 서길사가 오문을 막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욕설을 퍼부어 원경이 타협하고 문을 열었다지요.
애석하게도 조당에서 그자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담판 중에도 만나지 못했고요. 아마도 지위가 낮아 저와 같은 안건으로 논쟁할 자격이 없겠지요.”
희원은 요 며칠 담판 도중, 이따금 누군가 사적으로 중얼대는 걸 들었다.
“운주에서 온 놈이 말을 참 신랄하게 하더군. 한림원 허 대인이 올 수 있다면 분명 그 자식도 대성통곡하며 얌전히 운주로 썩 꺼졌을 텐데.”
희원도 바로 소리를 듣고 허신년을 알게 된 것이었다.
곧 전음 소라에서 갈문선의 웃음소리가 전해졌다.
“만날 기회가 없었던 것이지. 허신년은 허칠안의 사촌 동생일세. 원상과 원괴의 사촌 형이고. 그는 경성에 없네. 대봉군을 따라 청주에서 싸우고 있었는데 청주가 함락당한 뒤에는 탁호연의 칼에 맞아 지금 생사가 묘연하네.”
희원은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일개 서생이 탁 장군의 칼을 억지로 막았으니 치명적이겠군요. 더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갈 장군님, 그 허씨가 지금까지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잠시간 침음 후, 갈문선이 말했다.
“보아하니 우리가 전에 예측한 것과 비슷하구먼. 허씨의 쥐꼬리만 한 재간이 바닥난 것이지. 평화 협상을 묵인하고 한겨울을 버텨낼 시간을 번 뒤에 남강으로 가 지원을 요청하겠지.”
이는 아주 쉽게 추리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대봉은 초범 전력이 빠듯했다. 전부 3품급이라 1품, 2품 강자와 절대 맞붙을 수 없었다.
초범경에 이르러 3품부터는 승직이 매우 어려웠다. 자질이 부족하면 더욱 그랬다. 무림맹 구양주도 500년 만에 겨우 승직해 2품 무사가 되지 않았나.
허평봉, 낙옥형 부류처럼 자질이 뛰어난 자들도 젊어서는 2품이라도 2품경에 꼬박 20년은 정체돼 있었다.
그러니 허칠안의 답은 뻔했다. 단기간 내 승직은 꿈처럼 요원했고, 다른 곳에 지원 요청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희원이 한번 비웃음을 흘렸다.
“남강 고족은 고신의 힘에 제약을 받아 1품 탄생이 어렵습니다. 7개 부족 중 천고 할머니만 2품이지만 전투에 능하지 않지요. 남요의 초범 강자는 더욱이 가련할 정도로 희소하고, 그 무시무시한 잔시(殘尸)는 절대 남강을 떠날 수 없습니다.
구미천호가 중원 싸움에 개입할 가능성도 있지만, 만약 중원에 온다면 서역은 견제가 없어질 테고 일부 병력을 나눠 중원을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유일한 변수는 무신교지요. 납란천록이 곤경에서 벗어난 뒤, 무신교에는 대주술사와 우사가 생겼습니다. 그들이 만약 대봉과 동맹을 맺는다면, 약간은 골치가 아프지요.”
갈문선이 웃으며 말했다.
“구공자, 총명하군. 나도 그리 생각하네. 하지만 스승님께서 말씀하시길 당분간은 무신교를 상대할 필요가 없다더군. 그 연유라면 나도 모르네.”
잠시 멈칫하던 그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허칠안이 기꺼이 겁쟁이가 되길 원하니 내버려 두게. 3품 무사는 어떠한 풍랑도 일으킬 수 없네. 내일 경성을 떠나는가?”
희원이 말했다.
“내일 조회에서 문서를 교환한 후에는 운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는 반드시 필요한 절차로, 담판이 끝난 뒤에는 양측이 문서를 교환했다. 그 후에야 조회 같은 공공장소에서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이내 전음을 마친 희원은 전음 소라를 허원상에게 돌려주고, 옆에 있는 허원괴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원괴, 경성 교방사 기녀들은 하나같이 뛰어난 미인이라지? 오늘 경성을 떠나니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즐겨보겠느냐? 널 데리고 가주마.”
허원괴는 그를 전혀 상대도 하지 않았다.
희원 역시 조금도 개의치 않고 쥘부채를 만지작거리며 문을 나섰다.
그도 아무렇게나 내던진 말이었다. 사실 정말 교방사에 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만일 암살당하기라도 하면 어떡하는가.
* * *
이튿날, 묘시(*卯時: 오전 5~7시).
칠흑 같은 어둠 속, 문무백관이 정연히 동서 옆문을 지나 금수교를 건넜다. 이후 경관은 단폐, 계단, 광장에서 대기하고 제공들은 금란전으로 향했다.
오늘 조회는 운주 사절단을 위해서 거행되는 것이었다.
주인공은 희원과 수행자들이었다.
운주 관포를 입은 이십여 명의 ‘협상단’도 금란전에 발을 들였다. 하나같이 거만하고 우쭐한 모습에 승리자의 강세와 꼿꼿함이 배어 있었다.
영흥제는 이도 저도 아닌 몇 마디를 나누고, 바로 문서를 교환했다.
“폐하와 여러 대인의 환대를 받아 본관은 이번 행이 정말로 기쁩니다.”
희원은 만면에 미소를 띄우고 영흥제와 제공들을 향해 읍하였다.
금란전에 있는 모든 신하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희원의 얼굴에 가득한 조롱의 빛도, 멋대로 날뛰는 위세도 눈 뜨고 봐주기 어려웠다.
“참, 최근 경성 백성들 원성이 극에 달해 공연히 조정과 폐하를 모욕하더군요. 소생이 제안 드립니다. 죽여야 할 건 죽여서 일벌백계하시옵소서.”
희원이 웃으며 말했다.
옆에서 허원상은 그가 요 며칠 시시때때로 민간의 소식을 알아보던 게 떠올랐다. 희원은 매일같이 경성 백성, 국자감 서생이 운주 사절단과 잠룡성 혈통을 욕하는 걸 듣고 있었다.
당시에만 해도 희원은 그저 부채만 살랑살랑 흔들며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으나, 이제 보니 남몰래 마음속에 새겨두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영흥제는 어서 이 운주 사절단을 보내고 싶은 생각뿐이라 대충 응했다.
“희 사절은 걱정하지 마시오. 짐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오. 그리고 은량과 견직물은 이미 알맞게 준비하였으니 가지고 가시오.”
영토 할양이라면 후속 업무가 산더미였다. 예를 들어 현지 관아에 통지하고 향신 귀족과 현지 군대를 철수시켜야 하는 등등의 일들이 있었다.
당장 완성하기는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폐하께 감사드립…….”
우르르……, 쾅!
희원이 말하던 도중 갑자기 엄청난 화포소리가 들렸다. 연이어 빽빽한 고(鼓) 소리도 동시에 전해졌다. 방향은 궁문 쪽이었다.
금란전 내 모든 사람이 아연실색했다. 그중에는 희원을 대표로 하는 운주 사절단도 포함이었다.
하필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일이 났다고?
영흥제의 눈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으나 애써 침착한 척 조현진을 보았다.
“가서 어떻게 된 일인지 보거라.”
조현진은 명령을 받들고 물러났다.
금란전 바깥 광장은 혼란 그 자체였다. 아래쪽 관원은 두렵고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고, 궁중 금위 일부는 궁문으로 몰려간 상태였다. 또 일부는 급히 금란전으로 달려와 황제와 제공을 보호했다.
희원은 금란전 안에서 부채를 꼭 쥔 채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허원상 역시 인상을 쓰고 있었고, 허원괴는 계속해서 바깥을 내다보았다.
문무백관과 황족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음 순간, 조현진이 미친 듯이 달려 들어왔다. 옷자락 아랫단을 든 그는 마치 집을 잃은 강아지처럼 달려와 날카롭게 소리 질렀다.
“폐하! 큰일 났습니다! 심상치 않습니다! 반란군이 쳐들어왔습니다!”
금란전 내 사람들은 안색이 급변해 무의식적으로 희원을 쳐다보았다.
운주가 거사한 때부터 ‘반란군’이란 단어는 모두 운주와 결부됐다. 그것도 2달이 넘었으니 반란군이란 말에 전부 본능적으로 운주 반란군을 떠올렸다.
그러나 희원 일행 역시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잠깐 숨을 돌린 조현진이 급하게 말을 이어갔다.
“간신을 척결하라고 외칩니다!”
다시 금란전이 떠들썩해졌다.
영흥제는 문득 황족이 있는 곳을 쳐다봤다가 어리둥절한 얼굴이 됐다. 염친왕이 거기에 있었다. 이치대로면 지금 염친왕은 이곳에 없어야 했다.
친왕과 군왕들도 불가사의하단 빛으로 염친왕을 보고 있었다.
훈귀(*勳貴: 공훈 귀족) 중, 수련 경지가 있는 몇몇이 아무 내색하지 않고 염친왕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만약 조정에 감히 누군가 반란을 일으킬 엄두를 낼 수 있다면, 그건 태후의 적자인 이 염친왕밖에 없었다. 자고로 악을 없애려면 근원부터 제거해야 한다는 이치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염친왕은 시종일관 멍하니 있었다.
“쳐들어왔다는 게 무슨 말인가? 궁문을 뚫었단 건가? 말을 똑바로 해라!”
훈귀 중, 국공이 대열을 성큼 나와 조현진을 표독스럽게 노려보았다.
창백하게 질린 조현진이 말을 하려던 찰나, 금란전 밖에서 갑자기 고함 소리,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 처참한 비명이 들려왔다.
이제는 따로 설명이 필요가 없었다.
‘반란군이 내통했다. 규모도 작지 않아……!’
금란전 내 사람들은 즉시 판단을 내렸다.
궁문을 지키는 건 금군, 황성을 지키는 건 12위였다. 이렇게 단기간 내에 황성과 궁성을 연속으로 공격할 수 있는 군대는 없다. 반란군이 12위와 금군이지 않은 이상은…….
감히 어떤 인간이 금군과 경성 12위를 책동해 반란을 일으킨단 말인가!
모두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가는 사이, 고함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다음 순간, 궁중 시위가 처참하게 비명을 지르며 금란전 안으로 떨어졌다.
금란전 밖에서는 사람 형체가 번쩍이더니 말 한 마리가 쳐들어왔다. 야경꾼 차복을 입은 금라 2명과 경갑을 차림에 긴 창을 든, 양연이었다.
그 뒤로 은라, 동라, 우림위, 어도위 등이 있었다.
구성원이 매우 복잡하나 다들 팔에 붉은 비단이 감겨 있었다. 그들은 피 묻은 칼을 들고서 금란전 내 제공, 종실, 훈귀를 겹겹이 에워쌌다.
그때, 한 군왕이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분개했다.
“양연? 이 역신 같으니! 자네가 감히 반역을 꾀한 것이냐! 네놈의 구족을 멸할까 두렵지도 않더냐!”
영흥제는 그래도 감정을 추스르고 침착한 모습으로 탁자를 받치고 일어났다. 그는 먼저 염친왕을 쳐다보고, 다시 뒤돌아 양연과 몇몇 금라를 바라보고는 겨우 냉정한 척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너희들 주인이 누구냐.”
이와 동시에 훈귀 2명이 좌우에서 염친왕을 견제했다.
양연과 몇몇 금라의 등장에 식견 있는 자들을 그 배후를 단번에 짐작했다. 이 위연의 패거리들은 원래부터 사황자를 지지했다.
만약 위연이 일찍 죽지 않았더라면 허칠안이 정덕을 죽인 뒤 황위에 오를 자는 태자가 아닌 4황자였을 것이었다.
이 순간, 희원은 결정적인 순간에 몸을 사릴 줄 알았기에 부채만 살짝살짝 흔들며 수수방관했다.
“구공자, 대봉 조정에 내란이 일어났습니다.”
뒤에선 비포를 입은 관원이 반쯤은 기뻐하고 반쯤은 걱정하며 말했다.
이는 그들의 목표와 일치했다. 만약 평화 협상으로 조정 내부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면, 성공하든 실패하든 상관없었다. 심지어 그건 평화 협상을 이루는 것보다 효과는 훨씬 더 좋았다.
일단 중심이 흐트러지면, 대봉 조정은 빠르게 붕괴되고 와해될 터였다. 하지만 그리되면 사절단의 안위를 보장할 수 없기에 약간 걱정도 되었다.
이에 다른 비포의 관원도 목소리를 낮췄다.
“변화를 냉정하게 봐야 합니다. 누가 이기든 지든 관계없이 나라가 망하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싶지 않으면 분명 우리에게 예를 차릴 겁니다.”
현재 대봉의 정세로 따지자면, 운주와 관계를 끝내는 건 죽는 길이었다. 반란을 일으킨 자가 이 사실을 보지 못할 리는 없었다.
“이, 이건 저와 상관없습니다!”
염친왕은 그저 연기경 수련 경지라, 수련 경지가 높은 두 훈귀에게 제압당하니 반항할 힘이 조금도 없었다.
이때, 금란전 밖에 서로 싸우고 죽이는 소리가 멈췄다.
뭔가 승패가 갈린 듯했다.
물론 먼 곳에선 여전히 화포와 고(鼓) 소리가 이어졌다. 다른 곳의 전투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넷째 오라버니를 난처하게 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 일은 넷째 오라버니와 전혀 무관한 일입니다.”
장내에 도도하면서도 듣기 좋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금란전 내 사람들은 일제히 소리의 방향을 쫓아 고개를 돌렸다.
금란전 밖에서 하얗고 긴 치마를 입은 아리따운 미인이 높은 문턱을 넘어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치마는 그녀를 뒤따르는 장병들처럼 걸음마다 바닥을 길게 쓸며 따라왔다.
‘장공주?’
진상을 모르는 자들은 경악한 얼굴이 됐다.
영흥제 역시 넋을 잃고 말았다. 후보에도 없던 전혀 생각지 못한 인물의 등장이었다. 하지만 가녀린 여인을 보니 못난 황제의 기세는 순식간에 드높아졌다. 그는 탁자를 있는 힘껏 치며 삿대질했다.
“회경! 너 뭘 하고 싶은 게냐? 짐에게 답해라, 대체 뭘 원하는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