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123
123화. 숙모, 황금이 좋으세요? 비단이 좋으세요?
“관상의 법상(法相)은 무사의 심경에 영향을 줄 수 있네. 이런 정신을 화가가 그림 속에 낙인찍은 것이지. 내가 오랫동안 고르면서 자네에게는 이 법상이 가장 적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네.”
위연은 허칠안에게 지식을 주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허칠안은 진귀한 보물을 얻은 듯 책자와 두루마리 그림을 잘 챙기며, 위연을 떠보았다.
“위 공, 제가 다른 사람과 함께 관상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음, 그는 제 숙부입니다.”
그는 위연 앞에서는 솔직해야지 잔꾀를 부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지혜로움이 요족에 가까운 환관을 속일 운명은 못 되기 때문이었다.
“자네가 3개월 뒤에만 두루마리 그림을 돌려주면 문제는 없네. 그 기간 동안에는 자네가 그걸로 뭘 하든, 누구에게 선물하든 나는 신경 쓰지 않겠네.”
위연은 말을 마친 후 상기시켰다.
“모든 법상도(法上圖)는 값진 법이네. 만약 훼손시킨다면 자네 반평생의 녹봉이 날아갈 것이야.”
순간 허칠안은 이 두루마리 그림이 유난히 뜨겁다고 느꼈다.
그때 웬 발소리가 계단 어귀에서 들려오더니, 남궁천유가 어두운 얼굴을 하고 들어왔다. 그는 허칠안의 손에 들린 관상도에 잠시 시선을 두더니, 허리를 굽혀 위연의 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무슨 말을 했다.
“알겠네.”
위연은 한숨을 내쉬곤 무표정으로 말했다.
“바둑을 둘 때 그가 내게 귀띔했다. 우리의 황제 폐하께선 탐관오리는 용인할 수는 있지만, 다른 자가 그의 권위에 도전하는 건 절대로 용인하지 못하지.”
그가 황궁에 심어놓은 첩자가 세 명이나 발각된 것이었다.
허칠안은 눈을 내리깔고 못 들은 척했다.
위연이 웃으며 말했다.
“좀 더 기다리시게. 폐하께서 자네에게 하사하신 황금, 비단이 곧 도착할 걸세.”
* * *
황혼이 질 무렵, 궁중 차야가 원경제가 하사한 황금과 비단을 가져왔다. 약 60근 무게인 일천 냥의 황금은 큰 상자에 담긴 채였다.
비단 한 필에 4장(丈)으로, 오백 필의 비단이 마차 두 대에 가득 쌓여 있었다.
이때는 관리가 숙직을 끝내 퇴근이 가까워진 시간이었다. 아직 퇴근하지 않은 관아의 야경꾼들이 마차를 이끌고 관아에 온 궁중 차야들을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보고를 받은 허칠안은 기쁨에 차올라 맞이하러 나왔고, 그에게 인계한 후 궁중 차야는 빈 마차를 이끌고 떠났다.
허칠안은 송정풍 무리를 짐 싣는 걸 도와달라고 불렀다. 그들은 관아에서 빌린 마차에 황금과 비단을 실었다.
“칠안, 자네 이거 완전 대박 났는데?”
송정풍은 기뻐하면서도 눈독을 들이며 허칠안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나는 신경 쓰지 않겠어. 다음 달 교방사 비용은 모두 자네가 내도록 해.”
허칠안이 여청을 한번 쳐다보고선 화를 냈다.
“허튼소리. 난 기생집조차도 가지 않을 걸세.”
말을 마친 허칠안은 상자를 열어 황금 네 덩어리를 꺼내 이옥춘, 민산 그리고 양봉에게 각각 주며 말했다.
“대인들께서는 가져가서 형제들과 나누십시오.”
이어서 한 덩어리는 여청에게 던지며 웃음과 함께 말했다.
“여 포두, 사양하지 마시게.”
여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바로 무예를 연마한 사람의 호쾌함이지!’
허칠안이 웃었다.
“허 대인께 감사드립니다.”
열두 명의 동라, 여섯 명의 부아 쾌수는 미친 듯이 기뻐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멀리서 구경하던 야경꾼 무리는 부러워하며, 허칠안의 대오에 끼지 못하는 것을 한스러워했다. 보아하니 황금 한 덩어리가 5냥, 백은으로 바꾸면 40냥, 손 한 번 흔들면 장려금이 160냥이었다. 어떤 상급자가 이렇게 호사를 부리겠는가?
“이 상금은…….”
이옥춘이 물었다.
“황실에 있을 때 임안공주마마를 구해 폐하께서 하사하신 것입니다. 음, 사건에 대해 말씀드리기는 곤란합니다.”
허칠안이 대답했다.
‘상백 사건이 진척되어 하사하신 것이 아니란 말인가?’
모두 어리둥절해했다. 문득 그들은 은자를 받는 것이 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그들은 폐하께서 상백 사건에 진척이 있음을 기뻐하며 허칠안에게 상을 내리신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허칠안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요 며칠 모두 고생했소. 본관은 동료들을 푸대접하지 않는다오.”
여청은 웃더니 뒤편에 있는 부아의 포졸 및 모든 동라를 힐끗 쳐다봤고, 그들의 표정에 미묘한 변화가 생긴 걸 알아차렸다.
그녀는 기쁘게 웃었다.
허칠안이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저채미 소저는?”
“아마도 사천감으로 돌아간 듯합니다.”
‘아니야, 분명 또 어느 주루에서 풍류를 즐기고 있겠지…….’
허칠안은 속으로 생각했다.
* * *
관리들이 퇴근한 후 동라들은 하사품을 호송하여 허부로 향했다.
허칠안은 말 등에 올라탄 후 생각했다. 이 황금들이 생겼으니 설령 나중에 자신이 경성을 떠난다 해도 집안에 은자가 풍족할 테다. 세은 사건의 손실을 확실히 메웠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숙모가 행복에 겨워 장신구를 사고 새 옷을 입을 수 있겠군. 영음은 계월루에 자주 밥을 먹으러 갈 수 있겠어. 영월의 혼수는……. 음, 영월은 아직 어리니 급하게 시집 보낼 건 없지.
신년이 장차 관직에 진출해도 관계를 쌓을 은자가 없는 정도는 아니다. 가난뱅이 숙부도 모든 돈을 살림살이에 보태지 않아도 되고, 교방사에 몇 번 더 가도 돼.
숙모는 아마 이번 생에 이렇게 많은 비단을 본 적이 없을 테지……. 에이, 손이 좀 근질근질하다. 집에 가면 숙모의 체면을 비단으로 때려볼까, 아니면 황금으로 때려볼까…….’
허칠안의 기분은 그야말로 최고조에 다다랐다.
* * *
경수궁(景秀宫)!
임안공주는 오라버니인 태자의 팔짱을 끼고. 정교하게 수놓은 신발로 부드러운 지의(地衣)를 밟으며 경수궁으로 들어왔다.
난로가 12월의 추위를 몰아내고 있어 실내는 봄처럼 따뜻했다. 화려한 복장의 귀비가 음식을 푸짐하게 차려놓은 채, 탁자에 앉아 미소 띤 얼굴로 아들딸을 기다리고 있었다.
진 귀비는 40대 초반의 나이로, 한창때를 지나 여인으로서 가장 옹골진 단계였다.
그녀의 피부와 근육은 여전히 탱탱했고, 눈은 생기발랄함으로 가득 찼으며, 적절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의 자태에는 세월의 흔적이 묻은 성숙한 여인의 정취가 배어있었다.
경국지색의 황후를 제쳐두면, 미모가 출중한 후궁 중에서는 진 귀비가 최고로 손에 꼽혔다.
그래서 네 명의 황녀 중에 임안공주와 장공주만이 우열을 가릴 수 있었다……. 아니, 승패를 가르는 건가.
“너무 더워. 바깥에 있는 시종에게 불을 좀 내리라고 하거라.”
활력이 넘치는 임안공주가 양미간을 찌푸렸다.
평소 그녀가 느끼기에, 내부는 숯불만 때우면 충분했다. 난로는 너무 더워서 찜통 안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웃는 얼굴이 부드러운 진 귀비가 즉시 분부했다.
“임안의 말대로 불을 좀 내리거라.”
임안공주는 어머니 품으로 파고들어 웃으며 말했다.
“어마마마, 저 오늘 밤은 이곳에서 어마마마랑 같이 자도 되죠?”
진 귀비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규율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비빈들은 저녁에 황제를 모셔야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원경제 황조에 이르러서는 황제가 일 년 내내 도를 닦아 여색을 금한 지 오래였으니, 후궁이 지켜야 하는 많은 규율은 존재하기만 할 뿐,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황제가 여인에 신경을 써야 규율도 엄격해질 터인데, 황제는 후궁들의 아름다움에 관심이 없었고 원칙적인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전제하에는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하지만 원경제의 이러한 태도에 좋은 면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최소한 후궁들 사이가 아주 좋아 비빈들끼리 꼬투리를 잡고 싶어도 잡을 게 없었다.
태자는 진 귀비와 일상적인 얘기를 나누었고, 임안공주도 옆에서 재잘재잘 거리며 말참견을 했다.
“오늘 영룡이 갑자기 발광하여, 임안이 하마터면 다칠 뻔했어요. 아바마마와 시위들이 미처 구하지 못했습니다.”
태자는 오후에 발생했던 일을 꺼냈다.
초연했던 귀비는 아연실색하더니 황급히 임안공주의 손을 잡고 당황한 표정으로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어디 다친 데는 없느냐? 어서 내게 보여주어라.”
애교 부리기 좋아하는 둘째 공주는, 이 틈을 타 한껏 억울하고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임안은 하마터면 어마마마를 만나지 못하게 되는 줄 알았어요.”
귀비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져, 화가 나 말했다.
“이 종놈들이 어찌 된 일이냐, 짐승 한 마리도 처치하지 못하다니. 자칫하다가 우리 공주가 다칠 뻔하지 않았느냐!”
그녀는 양껏 성질을 부린 뒤 임안공주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그 다음에는? 태자께서 너를 구했더냐?”
태자의 지위는 다른 황자들과는 분명히 달랐다. 황후를 제외한 후궁의 나머지 비들은 모두 그를 ‘태자’라고 불러야 했다. ‘내 자식’이나 ‘황아(皇兒)’라고 불러선 안 됐다.
임안은 태자를 향해 코를 찡긋하며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태자 오라버니께 그런 능력이 어딨겠어요. 매번 회경이 저를 무시할 때도 오라버니는 입으로만 말하지, 저 대신 회경을 때려주지도 않는다고요.”
태자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귀비는 점점 더 궁금해졌다. 그녀는 태자를 한번 쳐다보더니, 딸의 손을 잡고선 물었다.
“내게 말해주겠니?”
임안의 고운 눈이 갑자기 반짝반짝 빛났다.
“제가 오늘 동라 하나를 거두었는데요……. 음, 그저께다. 오늘 곁에 데리고 다니면서 차견할 참이었는데, 때마침 공교롭게도 그런 일이 벌어져 그가 저를 구했어요.”
“동라라…….”
진 귀비가 미간을 찌푸리다 물었다.
“야경꾼이니?”
“네. 물론 어마마마께서 위연 그 작자 때문에 야경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그는 제 사람입니다.”
진 귀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께서 상을 내리셨니?”
“당연하지요.”
태자가 대답을 가로챘다.
“본궁도 상을 내려야겠구나. 잠시 후에 사람을 보낼 테니 창고에서 장신구를 챙겨 그 동라에게 보내거라.”
진 귀비가 위엄 넘치게 말했다.
귀비가 상을 하사하려는 대상이 그 동라일 리가 없었다. 아마도 그 동라 집안의 부녀자들에게 상을 내릴 모양이었다.
태자는 여기까지 듣고는 갑자기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 허칠안이라는 자가 언제 네 사람이 된 거지?”
임안공주는 새하얀 턱을 홱 치켜들면서, 자랑스럽다는 듯 말했다.
“제가 회경한테서 뺏어온 거예요.”
“회경이 알아?”
“알죠.”
“그럼 회경이 네게 뭐라고 하지 않더냐?”
“그녀가 감히 저를 타박한다고요……? 저…… 저 나중에 허칠안을 데리고 회경을 만나러 갈래요. 그럼 보호도 받으면서, 회경을 화나게 할 수도 있잖아요.”
이렇게 말하며 임안공주는 스스로 발휘한 기지 덕에 기분이 좋아졌다.
* * *
12월의 계절은 날이 금세 저물었다.
관아에서 출발할 땐 서쪽 하늘에 걸려 있던 태양이, 이내 아름다운 노을빛으로 구름을 물들이고 있었다.
허부에 도착하니 하늘은 완전히 컴컴해져 있었고, 가지런히 매달린 초롱불이 늦게 귀가하는 행인과 누각, 기와집을 비추었다.
캄캄한 하늘, 초롱불 그리고 고풍스러운 건축물……. 허칠안은 매번 이 장면을 볼 때마다 자신이 진작 그림을 배우지 않았다는 게 원망스러워질 지경이었다.
이 시각, 허부의 문은 이미 닫혀 있었다. 문지기 장씨는 큰 공자님이 이 시간에 문을 드나들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때문에 허칠안이 대문을 두드렸을 때, 장씨의 얼굴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저택의 일꾼들을 불러 물건을 옮기거라.”
허칠안이 분부했다.
‘물건을 옮기라고?’
장씨의 눈길이 큰 공자님의 어깨너머로 향했다. 그곳엔 마차 3대와 야경꾼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