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173
173화. 신분 노출 위기
새 저택에 살기 시작한 뒤로는 아침에 좀 더 늦게 일어나도 됐다. 게다가 말을 타고 30분만 가면 되니 아주 편리했다.
허칠안은 관아에 도착하여 관례대로 이옥춘의 춘풍당에 가서 점호했다. 그런 뒤 그는 오늘 안배된 임무가 없는 걸 확인한 후 송정풍과 주광효를 데리고 밖으로 순찰 나갔다.
시정에는 백성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행상인이 여기저기 돌아다녔으며 점포에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내성은 외성보다 압도적으로 번화했다.
허칠안은 송정풍과 주광효를 데리고 다시 양생당에 가려 했다. 하지만 두 동생은 한사코 가지 않으려 했다.
그는 홀로 가서 육호 항원과 ‘검둥개’를 만났다. 허칠안은 가엾은 아이의 몸 상태가 호전됐다는 사실을 듣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마음속의 큰 돌을 내려놓은 듯 한결 홀가분해졌다.
“허 대인, 빈승이 여쭤보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항원이 합장하며 말했다.
“대사께서 말씀하시죠.”
허칠안이 한결 가벼워진 기분에 웃으며 말했다.
“허 대인께서 처음 저 아이를 만났을 때 했던 말이 있으시죠…….”
항원이 그를 응시했다.
“허 대인께서 ‘이게 그 아이입니까’라고 하셨죠. 허 대인께서는 그를 아는 듯한데 빈승이 기억하기로 둘은 어떠한 접점이 없습니다.”
‘……씨, 그날 받은 충격이 너무 커서 순간적으로 입을 잘못 놀렸다.’
허칠안은 웃었다. 하지만 이내 그는 나이 든 개처럼 표정이 굳어지면서 차츰 당황하였다.
‘육호가 내가 삼호라고 의심하는 건 아니겠지……. 그나저나 그날 내가 그의 눈앞에서 돈까지 주웠네……. 음, 단순히 돈을 주운 건 별 거 아니야. 누구나 개똥 같은 행운을 잡을 때는 있으니깐…… 하지만 육호는 분명히 짐작할 것이다.
내가 좀 정상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며, 이미 내가 삼호라고 확신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만든 유가 서생의 이미지는 이미 천지회 구성원들의 마음속에 뿌리내렸다. 첫인상은 언제나 가장 중요하고 가장 바뀌기 어렵다. 그러니 육호도 기껏해야 의심이겠지…….’
허칠안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탄식하며 말했다.
“저는 삼호에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불필요한 설명은 하지 않았고, 나머지는 항원이 살을 붙이게끔 맡겼다. 우선 항원은 이른바 ‘상, 하급’ 관계에 의문을 품을 것이 분명했다. 천지회가 은밀한 세력은 아니지만, 외부의 천지회는 금련 도사를 대표로 하는 지종 도사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지서 파편 소지자로 구성된 또 다른 천지회야말로 진정한 비밀 세력이었다. 삼호가 어떻게 이 일을 부하에게 함부로 알릴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육호 항원은 이런 의혹을 품고 그를 조사했을 터였다. 조사하다가 알고 보니 허 대인의 사촌 동생이 유가 서원의 서생인 걸 알아냈을 것이고.
이때 그는 자신이 사소한 부분을 발견했다고 생각할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항원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사실 신분을 폭로하든 폭로하지 않든 문제가 크지 않다. 육호 항원은 좋은 사람이니까. 음, 중요한 건 내가 인터넷에서 너무 허풍을 떨었다는 거지……. 신분이 드러나면 매우 부끄러울 것 같다…….’
허칠안은 작별을 고하고 떠났다.
* * *
허칠안은 관아에 돌아온 후 사천감의 백의가 전해 온 편지지를 받았다. 송경은 저채미의 연금술이 중대한 돌파를 했으니 사천감에서 상의하자면서 그를 호출했다.
‘……이렇게나 빨리?’
* * *
허칠안은 말을 몰아 관성루에 이르렀다.
그는 7층의 연단실에서 송경과 저채미를 만났다. 동시에 그는 두 사람에게 드리워진, 같은 모델의 다크서클도 보았다.
“채미 소저, 휴식을 충분히 취하셔야 하오.”
허칠안은 속으로 말했다.
‘설마 시간 관리 대사가 되고 싶은 거야?’
저채미는 짙은 다크서클에 생기 없는 눈빛을 한 상태였다. 그녀는 평소보다 훨씬 더 허당미가 풍겼고, 완전히 지쳐서 말했다.
“삼일 내내 눈을 감지 않았어…….”
송경은 소매에서 도자기 병을 꺼내 허칠안에게 건넸다.
“자네 좀 보게.”
허칠안이 나무 마개를 열어 손바닥에 살짝 부었다. 표고버섯 분말에 미세한 결정 입자가 섞여 있는 게 보였다. 그가 핥으니 강렬한 맛이 혀끝에 만연하고 혀가 얼얼했다.
“어떻게 만들어 냈어요?”
허칠안은 놀랐다.
“곡물을 발효하고 벌꿀을 첨가하여…….”
송경이 손을 내저으며 자세한 설명하기를 거부했다.
“자네가 정 과정을 알고 싶으면 이따가 채미에게 써 주라고 이르겠네. 자네는 우선 이게 맞는지 좀 봐주게.”
허칠안이 잠시 망설이더니 말했다.
“맛이 비슷한데 독이 들었나요?”
“독 없네.”
“그럼 맞습니다.”
송경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이건 소금보다 더 귀해서 널리 보급된다면 조정에서 분명 독점하려 할 거야. 과거에 사천감에서 출품했던 것들도 모두 조정에서 운영을 책임지고 있네. 매년 사천감은 수익 중 3할을 차지하지. 나와 양 사형이 상의한 결과 자네에게 1할을 나눠 주기로 했네.”
1할만 나눠주는 이유는 허칠안이 조미료의 개념과 이론적인 절차만 제시했기 때문이다. 또 그 절차 중에 어떤 건 맞는 공정이었지만, 어떤 건 송경과 저채미에게 많은 시행착오를 안겨주었다.
그러니 이 새로운 형태의 연금술에 저채미와 송형이 들인 공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었다.
“아주 공평한 분배군요.”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떠봤다.
“그렇다면 제가 매년 은자를 얼마나 받을 수 있나요? 음, 평가하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으니 송 사형께서 대략적으로 추산해주시죠.”
“이건 조정에서 어떻게 파는지 봐야 하네.”
송경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1할이면 은자 수천수만 냥? 내가 말하는 건 경성 관내일세.”
그는 말을 마친 순간, 자신의 손을 꽉 잡고 있는 허칠안을 발견했다. 이 동라는 의미심장하고 깊은 정을 천천히 내비치며 말했다.
“저희의 우정이 영원히 변치 않고 오랜 세월 함께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과, 과분하네.”
* * *
황궁의 어화원에서 위연은 원경제를 모시고 햇볕이 따사로운 정원을 한가롭게 거닐고 있었다. 20묘에 이르는 이 황가 화원 부지에는 각종 진귀한 꽃과 나무가 심겨 있어 겨울과 봄의 풍경이 완전히 달랐다.
“서리가 풀을 다 죽이고, 꽃과 나무가 시드는 것이 마치 쓸쓸한 정경 같기도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또 다른 흥취가 엿보이는구나.”
원경제가 뒷짐 지고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는 듯 개탄하였다.
위연이 그의 뒤에서 반쯤 뒤처진 상태로 읊조리며 말했다.
“폐하, 쓸쓸함은 예나 지금이나 풍경이 아니옵니다.”
원경제는 청의 대환관의 반박에 웃기만 할 뿐, 그다지 개의치 않으며 말했다.
“내년 봄이면 자연스레 꽃이 만발할 것이야.”
위연은 마치 말다툼하는 것 같았다.
“내년 봄이 오기까지는 아직 이르며, 이 쓸쓸함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모릅니다.”
원경제는 그를 흘겨보며 물었다.
“그럼 위 경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위연은 온화하게 말했다.
“꽃이 만발한 정경도 물론 아름답지만 봄이 가고 겨울이 오면 화려함도 다 떨어지는 걸 어찌하겠습니까……. 폐하께서는 사철 내내 푸르른 수목을 보십시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막론하고 언제나 존재하죠. 번잡하고 다양한 화초를 뽑고 사계절 내내 푸르른 수목을 남기는 것이 오래 갈 수 있는 길입니다.”
원경제가 웃음을 거두고 차가운 눈으로 그를 흘겨보았다. 하지만 위연은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눈빛으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임금과 신하가 서로 한참을 쳐다보았다. 결국 원경제가 담담하게 말했다.
“황후가 며칠 전에 고뿔에 걸렸다가 몸이 완쾌했는데도 식욕이 좋지 않네. 며칠 동안이나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어.”
위연이 드디어 시선을 옮겨 몸을 굽히고 읍을 올렸다.
“사천감 술사는 뭐라고 합니까?”
“식욕이 좋지 않지만, 몸은 건강하니 안정을 취하라고 하더군.”
원경제가 말했다.
“하지만 짐이 보기에 황후가 많이 여위었네. 위연, 자네가 짐 대신 그녀를 봐주게.”
“네!”
원경제는 위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차갑고 딱딱한 조각상처럼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황궁 내정에는 원경제의 비빈과 자제가 사는 궁궐 24채가 있었다. 원경제의 내궁은 조금도 떠들썩하지 않았다. 저수궁(儲秀宮)이 십여 년 동안 젊고 아름다운 여자를 거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 * *
위연은 막힘없이 후궁의 지주인 황후의 궁전 밖에 이르러 통지한 후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 연탑(軟榻)에 앉은 황후가 보였다.
모의천하(母儀天下)의 황후는 몸이 많이 여위어 홀쭉해진 상태였다. 매끄럽고 단정한 얼굴 또한 날카로워졌다.
그녀는 아주 아리따운 여자로, 마흔 가까이 되었으나 그 풍채는 여전했다. 물론 소녀 시절의 생기 넘치고 매력적인 모습은 없어진 뒤였다. 하지만 세월이 심혈을 기울여 그녀의 내실을 다졌기에, 성숙하고 우아한 자태는 평범한 부인과 비할 수 없었다.
“위 공이 어찌 오셨습니까?”
황후는 미소를 머금고 위연의 얼굴을 주시했다. 억센 얼굴선, 오뚝한 코, 얇은 입술, 깊은 두 눈. 그의 얼굴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상의 온갖 풍파를 다 거친 얼굴이었다.
희끗희끗한 귀밑머리가 그를 더 성숙하면서도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다.
위연은 우선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황후마마께서 병이 나셨다고 들었습니다.”
황후는 웃으며 말했다.
“이미 완쾌했습니다.”
“폐하께서 말씀하시길 황후마마께서 근래에 식욕이 부진하시니 소신에게 한번 살펴보라 이르셨습니다.”
황후는 얼굴에 웃음기를 거두고 차분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폐하께서 가보라 하셨습니까? 위 공께서는 본궁이 병에 걸린 일을 모르셨습니까?”
위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최근에 공무가 바쁜 탓에 황후마마께서 병이 나셨는지 몰랐습니다.”
황후는 얼굴을 옆으로 돌리고 무미건조한 어조로 말했다.
“본궁은 피곤합니다.”
“차를 좀 적게 마시십시오. 위와 장에 좋지 않습니다…….”
황후가 견디지 못하는 듯 보이자 위연은 몸을 숙이고 읍을 올렸다.
“소신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위연!”
황후가 갑자기 그를 불러 세웠다.
위연은 등을 진 채로 돌아보지 않았다.
“…….”
황후는 입을 벌리고 무슨 말을 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러 가지 걱정 때문에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주 많은 말이 그녀의 아름다운 눈에 담겨 있었지만, 위연은 보지 못했다.
* * *
이내 위연은 황후의 궁전을 나섰다. 신선한 바람이 스쳐 지나가 청의가 바람에 펄럭였다.
그는 황후가 병에 걸렸는지 정말 몰랐다. 황후 근처에 심어 놓은 첩자가 얼마 전에 원경제에게 제거당했고 황후도 이 일을 몰랐다.
이런 일은 모두의 앞에서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그러니 그는 황후가 오해하도록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마침 전방에서 회경공주가 궁녀와 시위를 이끌고 걸어왔다.
그녀는 아름다운 매화가 수놓아진 흰색 치마 차림이었으며, 겉에는 추위를 가려 주는 외투를 덧입었다. 그 자태가 냉염하면서도 화려했고 청아하면서도 속되지 않았다.
모친이 젊었을 때와는 판이했다.
“위 공!”
회경공주는 예를 갖췄다.
“마마.”
위연은 읍을 올려 답례를 한 뒤, 입에서 나오는 대로 설명했다.
“폐하께 듣자 하니 황후마마께서 식욕이 없고 몸에 탈이 나셨다고 합니다. 하여 제게 병문안을 가보라 하셨습니다.”
회경공주가 ‘그렇소’라고 대답했다. 아바마마께서는 진작 내궁에 발을 끊고, 매일 도를 닦으며 장생만 바랄 뿐이었다. 그는 궁의 어느 여인이 아프다고 하면 그제야 관심을 보였지만, 보통은 사람을 보내 상황을 살피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