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294
294화. 제가 또 공을 세웠습니다
“위 공, 왜 지금 머리를 빗고 계십니까?”
허칠안이 머리를 쥐고 아래로 빗질하니 뭉친 곳이 없었다. 그는 머리카락을 끝까지 빗어 내리면서 속으로 참 찰랑찰랑하다고 생각했다.
“불문에서 두발은 고민거리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지.”
위연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일광욕을 하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머리를 좀 빗어 지난 일을 싹 청산하려 하네.”
‘무슨 뜻이지? 오늘 위연이 좀 이상하다. 무슨 지난 일을 싹 청산한다는 거야?’
“머리 빗는 건 별로 재미없으니 소직이 위 공께 머리 지압을 해 드리겠습니다.”
허칠안이 말했다.
위연이 웃었다.
“해 보게!”
허칠안은 빗을 품에 넣고, 다섯 손가락을 쫙 펴서 위연의 머리를 누르며 혈을 가볍고 부드럽게 지압했다.
위연의 숨소리가 점차 편안해졌다. 따스한 햇살이 두 사람에게 쏟아졌다. 이곳에 올라서서 멀리 바라보니 경치가 아주 아름다웠다. 허칠안이 눈을 가늘게 뜨고 조망하자니 궁 안의 암투에서 벗어나 인간 세상에 돌아온 듯했다.
“괜찮군.”
위연이 웃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이건 미용실 신기거든. 나중에 샴푸 의자 하나 마련해 줄게…….’
허칠안은 기침 소리를 내더니 말했다.
“소직,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
“말하게.”
“소직 이미 배후의 그자가 누구인지 밝혀냈습니다.”
위연은 눈을 뜨고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진 귀비였습니다!”
허칠안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오늘 경수궁에 사건을 수사하러 갔는데 그녀 곁에 있는 궁녀 랑아가 어약방의 장부를 훼손시킨 자더군요…….”
그는 즉시 자신의 발견과 진 귀비의 꼬드김을 위연에게 낱낱이 말했다.
위연은 그의 손을 치며 멈추라는 의사를 보이더니 일어서서 요망대 가장자리로 걸어가 두 손으로 난간을 누르고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는 진 귀비 배후의 세력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내가 어떻게 알아…….’
허칠안이 고개를 저었다.
“아마 사천감과 관련 있겠지요.”
이건 그가 망기술의 존재로부터 생각해 낸 것이다.
“사천감이 아니네.”
위연이 고개를 저으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사천감이 아니다…….’
허칠안은 몇 초 지난 뒤에야 반응이 왔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
“위 공, 진 귀비가 황후와 위 공을 음해하고 있다는 건 아십니까?”
“처음에는 생각하지 못했네. 그녀는 참 모질군, 태자를 수렁에 빠트리다니……. 이 사건을 자네에게 맡긴 후로 나는 계속 관심을 두지는 않았네. 오늘 아침에 황후께서 죄를 인정하셨다는 걸 알고, 자네가 얘기한 사건의 전말을 듣고 나서야 진 귀비임을 짐작했네.”
허칠안은 그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주시했다. 예전에 그는 위연과 금련도사가 똑같이 약삭빠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금련도사는 위연만큼 그렇게 음침하지 않으며 아주 선량했다.
‘사천감이 아닌데 그럼 진 귀비는 어떻게 망기술을 시전한 거지? 사천감 말고 누가 망기술을 할 줄 아는 거지?’
허칠안은 마음이 동요했다.
“위 공, 저 한 가지 일이 떠올랐습니다.”
“운주 사건 때 나타난 3품 술사 말인가?”
위연이 반문했다.
“위 공, 참으로 지혜로우십니다…….”
허칠안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나도 이 사람을 조사해 봤네. 하지만 알아 내지 못했지. 자네 사천감의 3품 술사를 뭐라고 하는지 아는가?”
위연이 물었다.
“천기사입니다.”
허칠안은 허세왕이 알려 준 대로 말했다.
“천기사는 천기를 차단하여 자신의 존재와 남은 흔적을 모두 지워 버릴 수 있네. 그의 부모가 그를 잊고, 처자식이 그를 잊고, 그가 남긴 모든 문자 기록 역시 사라지지. 이게 바로 천기사네. 이밖에도 천기사는 그에 대한 다른 사람의 인상을 조작할 수 있네. 마음속에 남겨진 어렴풋한 기억도 철저하게 회상해낼 수 없지.”
위연이 시선을 멀리 두고 조망했다.
“상백 사건 때 자네가 초대 감정의 정보를 조사한 적이 있었지. 하지만 어떠한 사료(史料)든 한 마디조차 기재돼 있지 않았지. 무종 황제가 역사를 바꿀 수는 있지만, 후손의 입을 막을 수는 없고 더욱이 야사(野史)를 막을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하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감정이 초대 감정의 모든 정보를 지워 버렸네. 나조차도 감정이 사천감의 창시자이자 술사 체계를 일으킨 사람이라고 착각할 때가 자주 있지. 그 후에 역사의 공백이 빚어낸 단절로 문득 떠오른 것이네. 초대 감정이 있다는 사실이.”
“그건 또 어떻게 밝히죠?”
허칠안은 얼이 빠졌다.
그는 이 세계에서 가장 꼭대기 층에 있는 강자가 이렇게나 무섭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조사하려면 감정에게 접근해야 하네.”
위연이 말했다.
‘일리 있다. 마법만이 마법을 물리칠 수 있지. 위 아빠의 사고방식은 틀리지 않았어…….’
허칠안이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감정이 거절했네.”
위연이 탄식했다.
‘이건 정말 예상했던 답이다. 사천감에는 비밀이 많고, 감정은 마치 그 비밀을 지키는 늙은이 같다…….’
허칠안은 입을 오므리더니 호기심 어린 어조로 물었다.
“위 공께서는 술사 1품과 2품을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위 공은 고개를 저었다.
“나와 감정은 항상 마음이 맞지 않았네. 대봉을 하나의 바둑판이라고 한다면 그는 바둑을 두는 사람이고 나 역시 바둑을 두는 사람이지. 우리는 사고방식이 달라 종종 갈등이 생기곤 하네.”
위연이 허칠안에게 이렇게 ‘수준 높은’ 내용을 꺼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쩌면 위연의 마음속에 감정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정적 아닐까?’
허칠안은 슬쩍 상대방을 떠 보았다.
“위 공께서는 황후를 어떻게 구할 생각이십니까?”
“국구를 밀어내 죗값을 치르게 해야지. 가능 여부는 여러모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네만. 폐하께서는 서로 견제하며 평형을 유지하는 걸 좋아하시니 황후를 폐위하면 태자의 적수가 없어진다는 점도 생각하셨을 것이네. 다만, 폐하께서 불쾌한 일들을 떠올리셨으니 냉정하지 않으실 수도 있네. 폐하가 진 귀비를 의심할 수 있게 하지 않는 이상……. 황후께서는 마음이 너무 무르시네. 이 지경까지 왔는데 나와 미리 상의하지도 않으시다니.”
위연의 목소리에 유감스러움이 배어 있었다.
위 공의 속뜻은 ‘황후, 네가 바로 X맨이야?’이었다.
허칠안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자신이 궁에서 나오기 전에 깔아 둔 멍석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았다. 어쩌면 공을 세운 걸 수도 있다.
“위 공, 죄송합니다. 소직이 방금 독단적으로 결정했습니다.”
위 공이 고개를 돌리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무슨 일인가?”
“소직이 궁을 나오기 전에 필요 이상의 짓을 좀 했습니다. 폐하께서 저를 감독하라고 파견한 환관에게…….”
허칠안은 자신이 환관에게 가르쳐준 ‘문건’을 있는 그대로 위연에게 들려주었다.
위연이 생각에 잠기자 허칠안이 황급히 말했다.
“소직이 허락도 없이 독단적으로 결정했습니다. 위 공께서 대략적으로 분석해 주시길 바랍니다.”
위연이 이 말을 듣자 미소를 띠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독단적으로 결정하기는 했으나 잘했네. 폐하께서는 의심이 많으시고, 상호 견제를 잘하시니 자네의 말이 그의 귀에 들어가면 진 귀비에게 의구심이 생길 걸세. 그러면 복비 사건을 전체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고 여러 방면의 이해득실과 그가 애써 유지해온 균형을 고려해 보시겠지.”
허칠안은 여전히 못마땅하고 자신감 없는 말투로 말했다.
“폐하께서 알아채지는 않으시겠죠? 혹은 그 환관이 제게 은자를 받고 대신 말을 전해 달라고 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을까요?”
“자네의 말에는 오류가 없네. 모두 틀림없이 발생한 일이지.”
위연이 웃으며 말했다.
“두 번째 문제에 관해서 얘기해보자면, 폐하께 솔직하게 털어놓아 봤자 자신이 뇌물을 받고 공을 세우지 못했다는 사실만 까발리는 꼴이네. 누가 제 발등을 찍겠는가. 폐하의 침전에서 당차를 할 수 있는 자라면 아주 똑똑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을 걸세.”
‘헤헤, 나도 알지…….’
허칠안은 탄복했다.
“위 공께서는 최고로 현명하십니다. 감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위연은 그를 빤히 쳐다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실소를 터뜨렸다.
* * *
이어 그는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다실로 돌아와 직접 차 두 잔을 따른 뒤 말했다.
“자네는 이미 연신경에 들어섰으니 원신의 단련을 멈춰서는 안 되네. 14경맥 외의 혈이 부풀어 오를 때까지 말일세. 그럼 자네는 미리 신체와 정신을 단련할 수 있을걸세.”
‘14경맥 외의 혈이라……. 아아, 관자놀이군.’
허칠안은 멍하니 있다가 반응이 왔다. 14경맥 외의 혈은 바로 관자놀이다. 이 세계에는 관자놀이라는 말이 없었다.
‘14경맥 외의 혈은 아주 품격 있게 들리네…….’
허칠안 본인 역시 ‘관자놀이’라는 명칭을 좋아하지 않았다. 꼭 동사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 이야기를 들은 허칠안은 자신이 방금 한 일에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걸 알았다. 기분이 좋은 위연은 공을 세운 동라를 위로할 생각이었다.
위연은 ‘용서를 비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공을 바라는 행위를 한눈에 간파할 수 있겠지만, 지도자는 자신을 이렇게 높이 치켜세우는 부하를 좋아하기 마련이다.
지혜가 뛰어난 위연도 예외는 아니다.
허칠안이 방금 만약 ‘위 공, 제가 또 공을 세웠습니다. 하하하하하.’라고 말했다 치자.
돌아오는 피드백은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위연은 오만함과 성급함을 경계하면서 감정에 사로잡히면 안 된다고 그를 몇 마디 꾸짖었을지도 모른다.
“신체와 정신을 단련한다고요?”
허칠안이 반문했다.
신체와 정신을 단련하는 건 연정경 시기의 주요 과제다. 유산소 운동+무산소 운동으로 차례차례 체력의 한계를 돌파하는 것이다. 3일마다 의사를 찾아가 지친 근육을 풀고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생선과 고기 그리고 몸을 따뜻하게 보양하는 중약(中藥)을 끊임없이 먹어야 했다.
허칠안은 일 년 동안 숙부의 6개월 수입 정도 되는 은자 백 냥을 ‘먹어’ 치웠다.
연신경에 이른 뒤에는 연정경 때의 그 수법이 소용없어졌다. 허칠안은 신체와 정신을 어떻게 단련해야 하는지 몰랐다.
“전에 자네에게 말한 적 있지. 무사 체계는 단번에 이뤄진 게 아니라 선인들이 끊임없이 모색하고 보완한 덕에 오늘의 무사 9품이 생겨난 것이네.”
위연은 차를 마시며 점점 깊은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최초의 동피철골은 한 대 한 대 두드려서 나온 것이네. 마치 대장장이의 쇠망치가 쇳덩어리 하나를 정교한 쇠로 단련한 것처럼 말일세. 이 과정은 매우 길고 시시때때로 중요한 부위를 얻어맞기 때문에 기초가 견고하지 않으면 비명횡사할 것이네.”
‘위 공, 위 공이 말씀하신 중요한 부위가 제가 이해하는 그런 게 맞습니까……? 음, 닭도 날아가고 달걀도 깨지고 그런?!’
“후에 어떤 사람이 약욕(藥浴)을 만들어 냈네. 특수한 효능을 가진 식물이나 광물을 주재료로 하여 사람을 큰 솥에 넣고 끓이지. 무사가 솥 안에서 토납하면서 고온에 대항하며 약효를 흡수함으로써 동피철골경이 되는 것이네.”
“사망률은 어떠한지요?”
허칠안이 물었다.
“마찬가지로 아주 위험하네. 어떤 때는 끓다가 사람이 익기도 하지.”
위연이 대답했다.
“…….”
허칠안의 머릿속에 순간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가 솥 안에 앉아 있고, 곁에는 뜨거운 물이 끓고 있다. 약리학에 정통한 저채미가 솥 안으로 쉴 새 없이 양념을 넣고 있다. 회향, 단콩, 계피, 파…….
옆에 서 있는 허영음은 입에서 눈물을 흘린다.
“더 안전한 방법은 없나요?”
그는 조용히 침을 삼켰다.
“대대로 천재가 탄생하면서 드디어 어떤 자가 연기경을 기반으로 한 신체 단련을 부차적으로 삼는 첫 번째 수련 법문을 만들어 냈네. 이 법문의 핵심은 막힌 기(氣)를 풀어 주는 특수한 방식으로 안부터 바깥까지 신체를 단련하고, 거기에 두드리거나 끓이는 방식을 가미하여 위험성을 대폭 감소시키네.”
위연은 선지 한 장을 펼치고 붓을 들어 ‘혼원공(混元功)’ 세 글자를 쓴 뒤 말했다.
“야경꾼 관아에서 최고 수준의 법문을 혼원공이라고 하네. 모든 금라가 이 법문을 사용하지. 하, 강호에 버려두면 피비린내를 몰고 올 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