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512
512화. 분노 (1)
허칠안은 크게 상심하지 않았다. 허칠안은 그저 그가 이렇게 간 것 역시 일종의 해탈이라는 생각만 했다.
그는 초주에서 경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 지식인의 등이 조금씩 구부러지면서 점점 곱사등이가 되어가는 걸 보았다.
그는 너무 지쳐서 38만 백성의 목숨을 등에 진 채 매일 자신을 한가롭게 내버려 둘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한가해지기만 하면 숨 막힘이 해수처럼 그를 쫓아왔기 때문이다.
“구태여 이럴 필요가 있습니까? 대인께서는 그저 약하디약한 문관일 뿐이라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십니다. 38만의 백성도 대인께 원수를 갚아달라고 하지 않았잖습니까.”
허칠안은 정흥회의 죽은 뒤 모습을 정리했다. 허칠안은 그의 눈을 감겨 주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다. 툭 튀어나온 두 눈은 여전히 혼탁한 인간 세상을 뚫어지게 주시했다.
“대인께서 매일 그렇게 열심히 유세하러 갔으나 그들은 항상 본체만체했지요. 저는 그때 대인께 한마디 드리고 싶었습니다. 인류의 비환은 결코 서로 통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저 당신이 시끄럽다고 생각할 뿐이지요. 정 대인, 경성의 제공들은 대인과 저처럼 초주 백성 대량 학살 사건을 겪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대인처럼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매년 재해가 발생하고, 매년 수많은 사람이 아사하거나 동사하지요. 직접 목격한 것과 접본에서 본 건 전혀 같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렵사리 초주 대량 학살에서 살아남아 단숨에 경성에 이르렀습니다. 본래는 조정에서 38만 백성을 위해, 또 대인을 위해 정의를 구현해줄 줄 알았지만, 뜻밖에도 자신의 생명을 밑지셨군요. 허, 서생은 아무 쓸모가 없다는 말이 전혀 틀리지 않습니다. 제가 그날 장 순무를 위해 목숨을 내던질 수 있었기에 이번에도 대인을 위해 목숨을 내던지고 싶었습니다. 그저 저는 아직 방법을 찾지 못했을 뿐인데 이미 가버리셨네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인생은 비참하고 고통스럽지요. 대인의 일생은 정말 그럭저럭이었습니다.”
허칠안은 정리를 마친 뒤 일어서서 뒤로 몇 걸음 물러나, 가엾고 존경스러운 이 지식인을 향해 깊이 읍하였다.
* * *
지하 감옥 밖에는 무장한 병사들이 모여 있었다.
대리사승이 외부인을 데리고 관아로 들어오는 건 본래 큰일이 아니었지만, 지하 감옥은 요지였다. 어느 누구도 시경이나 소경 등 고관의 친서를 얻지 못하는 이상, 제멋대로 지하 감옥에 들어갈 수 없었다.
옥졸들은 당연히 막아섰지만 허칠안에게 바로 발길질을 당해 더는 달걀로 돌을 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들은 곧장 달려가 대리사경에게 통보하였다.
대리사경은 뒷짐을 진 채 앞에 서 있었고, 뒤에는 관아의 수위가 있었다.
그는 뚱한 얼굴로 반각은 족히 기다렸고, 그제야 허칠안이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이 젊은이는 예상 밖으로 차분했으며 그의 얼굴에는 기쁨도 슬픔도 없었다.
“허칠안, 제멋대로 대리사 감옥에 난입하다니. 본관이 너를 이 자리에서 죽인다고 해도 위 공께서 뭐라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대리사경은 기선을 제압하며 소리쳤다.
칼을 든 젊은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떠났다.
그는 본래 짐승을 죽이려고 했지만, 그저 조금 늦은 나머지 사냥감을 놓쳐 버렸다. 만약 그 칼끝을 맛보고 싶은 자가 있다면 허칠안은 거절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대인…….”
시위장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대리사경이 마침 시위들에게 체포하라고 분부하려던 참에, 갑자기 누군가 소매를 잡아끌었다. 그가 고개를 돌리니 대리사승이 보였다.
대리사승이 그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대인 역시 목숨이 하나뿐인데 왜 소중히 여기지 않습니까.”
대리사경은 깜짝 놀라 소름이 돋았고, 등 뒤의 솜털이 곤두섰다.
* * *
호국공과 조국공은 황궁의 어서방으로 돌아와 복명하였다.
“폐하, 정흥회는 이미 죽었으니 이 사건을 결정 지을 수 있게 됐습니다.”
조국공이 공손하게 말했다.
“다만 제공들 쪽은 어떻게 상대하지요?”
궐영수는 그래도 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제공들이 진북왕을 용서할 수 있는 건 그가 몰락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상처 없이 온전하게 경성으로 돌아왔다. 위연과 왕 재상은 결코 그를 가만두지 않을 터였다.
원경제가 담담하게 말했다.
“짐이 금군을 호국공 저택에 파견하여 그대의 안전을 보호할 테니 암살당할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 또한 그대를 따라 돌아온 진북왕의 밀정들은 당분간 그대가 관리하면서 그대 국공부(國公府)에 남겨 두어라.”
궐영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삼엄한 호위라면 그를 무사히 보호하는 데 충분했으니 그는 혹여나 암살당할까 봐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조당의 살기등등한 기세에 숨는다면 다투지 않고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할 수 있었다. 또한 폐하가 비호한다면 위연과 왕 재상의 술수가 아무리 탁월하다고 해도 그를 불사를 수는 없을 터였다.
이 시기만 버텨내면 그의 앞날은 여전히 아름다우리라.
궐영수는 걱정거리를 덜어내자, 무거운 짐을 벗어 버렸다는 듯이 진심으로 웃기 시작했다.
“폐하께서는 영명하고 위대하십니다. 상대의 공격을 막는 동시에 반격하여 문관들을 쉽게 뒤흔드셨습니다. 게다가 그들이 주저하는 틈을 타 문제를 명쾌하게 처리하여 정흥회가 형벌이 두려운 나머지 자살하게 한 데다 제공들에게도 달리 여지를 주지 않으셨지요. 이번에는 그들도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인정할 겁니다.”
하지만 원경제 역시 충분히 많이 양보하였고, 일부 사람들의 입맛을 만족시켰다. 그렇지 않았다면 설령 원경제라고 해도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웠으리라.
궐영수는 원경제에게 진심으로 충심으로 탄복하였다.
“비록 사절단이 진국검을 가지고 경성으로 돌아왔지만, 그 신비로운 고수는 행방이 묘연합니다. 만약 그를 다시 찾아서 군사를 파견해 그를 토벌하여 회왕의 원수를 갚을 수 있다면, 이 일은 완벽해질 겁니다.”
조국공이 탄식했다.
원경제는 이 말을 듣자 표정이 다소 어두워졌고, 그는 몇 초간 멈칫하더니 천천히 말했다.
“내일 조회를 열어 초주 사건에 대한 최종 평가를 내린다. 그 전에 그대는 정흥회가 형벌이 두려워 자살했다는 소식을 퍼뜨리거라.”
조국공이 웃으며 답했다.
“네!”
* * *
내각에서 어서방의 소조회가 끝난 후, 왕 재상은 대학사 다섯 명을 소집해 정흥회가 투옥된 후의 일을 함께 토의했다.
“회왕은 이미 죽었으니 그뿐입니다. 하지만 이 궐영수는 백성을 대량 학살한 망나니 중 하나인데 폐하의 이번 거취는 정말이지…….”
무영전 대학사 전청서는 참더니 이어 탄식했다.
“정 대인을 어떻게 구할지 좀 생각해봅시다. 이런 충신이 억울한 누명을 써서는 안 되지요.”
건극전(建極殿) 대학사는 다소 조급해하며 화를 냈다.
“정흥회는 고집불통입니다. 벼슬아치로서 한 방면은 가능하지만 조당에서 그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대학사의 어조에는 그의 불행을 가엾이 여기고, 이러한 상황에 맞서 싸우지 않는 태도를 원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바로 이렇기에 존경할 만합니다. 아닌가요?”
동각 대학사 조정방이 한숨을 내쉬더니 침음했다.
“폐하께서는 진북왕의 명예를 회복하고 싶으신 거 아닙니까? 황실의 체면을 유지하고 싶으시지요? 그럼 저희는 그에게 응합시다. 조건은 정흥회의 무죄와 맞바꾸는 겁니다.”
“정흥회를 단죄하기만 하면, 폐하께 있어서 이 사건은 완벽히 마무리될 텐데 동의하시겠습니까?”
건극전 대학사가 분노에 차 말했다.
“그럼 다시 소란을 피웁시다!”
조정방은 손가락으로 낭랑하고 힘차게 탁자를 두드렸다.
왕 재상이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소용없네. 지금은 전과 달라졌어. 갑자기 흉보를 들으면 문무백관들은 놀라면서도 화가 날 걸세. 지금은 화가 누그러들었고, 이점도 얻었고, 또 성안의 백성 학살 추문이 조정에 명성을 떨치는 대첩으로 변할 수 있으니 어떻게 선택할지는 짐작할 수 있겠지.”
전청서는 탄식하더니 침음했다.
“재상 대인께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왕 재상이 말했다.
“궐영수가 무사히 경성으로 돌아왔으니 반드시 누군가의 분노를 살 걸세. 우리는 암암리에 그들을 설득하여 공동으로 항의할 수 있겠지. 하지만 요구는 좀 낮춰야 할 게야. 궐영수가 오늘 아침에 거리에서 혈서를 받치고 정흥회를 고발했네. 모든 사람이 다 알도록 소란을 피웠지. 이 시기에 정흥회의 무죄를 쟁취해도 양쪽 모두 믿지 못할 것이고 폐하께서도 동의하지 않을 걸세.”
대학사들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사실 갈등이 이 지경까지 격화되었는데 정흥회의 ‘결백을 증명’한다면, 폐하께서 이에 동의하지 않는 문제는 둘째 치더라도 백성들조차 이 일을 터무니없게 생각할 것이다. 그럼 도대체 누가 맞고 누가 틀렸다는 말이 되는가?
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조정은 웃음거리가 된다.
왕 재상이 탄식했다.
“정흥회는 여전히 죄가 있지만, 바꿔치기할 수 있네. 사형수로 역용하여 대체할 수 있지. 폐하께서 동의하시기만 한다면, 이 일은 가능하네.”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그의 목숨을 지켜주는 일뿐입니다.”
대학사들은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하급 관리 하나가 황급히 들어와 종이 한 장을 왕 재상에게 건넨 뒤 다시 물러갔다.
왕 재상은 종이를 펼치고 보더니 갑자기 멍해졌다. 그는 한참 동안 움직임이 없었다.
“정흥회가 옥사했다네…….”
늙은 재상은 종이를 탁자 위에 툭 내려놓고, 완전히 지친 몸을 지탱하며 회의실을 나갔다.
그의 뒷모습은 마치 풍전등화의 노인 같았다.
* * *
남궁천유가 야경꾼 관아에 엄숙한 태도로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그는 한 마디도 내뱉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가 아무리 4품 무사라도 이 순간만큼은 숨이 턱턱 막히는 듯했다.
모든 일은 방금 건네진 그 종이 때문이었다.
위 공은 이 종이를 본 후, 더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조각상처럼 생동감 있는 눈빛조차 내비치지 않았다.
남궁천유는 여러 해 동안 위연을 따랐지만 그가 이렇게 침묵하는 모습은 본 적이 드물었다. 침묵 속에 무시무시한 폭풍우가 도사린 듯했다.
종이 위에 기록된 건 짧고 간단한 소식이었다.
정말 짧고 간단했다. 버젓한 한 주(州)의 포정사이자 2품 고관이 사후에 남긴 정보가 고작 이 종이 쪼가리였다.
사서에는 이 일이 어떻게 기재될까? 아마 글자 수가 좀 더 많아질 것이다. 그는 요족 및 오랑캐와 결탁하여 성 전체 38만 백성을 죽이고 대봉을 지키는 기둥을 죽였다.
천추에 악명을 남기리라.
‘정말 우스운 세상살이다…….’
남궁천유는 마음속으로 냉소를 지었다.
그는 방관자로서 이런 개탄밖에 할 수 없었다. 우스운 건 세상살이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사서에 위인은 넘쳐흐르지만, 그 속에 정흥회 같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억울한 사건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결국 이런 상황에 감히 나설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