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517
517화. 잘못을 인정하다 (2)
이내 금군 한 대오가 말을 채찍질하여 허부에 왔다.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금군들은 대문을 박차고 허부에 쳐들어갔으나 진작에 사람은 빠져나갔기에 그곳은 이미 빈집이었다. 가구용품은 모두 갖춰져 있었지만 값비싼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이 금군은 정예 중에도 정예였으므로 분풀이하듯 한바탕 깨부수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세히 수색한 뒤 신속하게 벗어나 궁으로 돌아가 보고했다.
다른 한편으로 늙은 태감은 직접 사람을 데리고 내각으로 왔다. 대청 내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왕 재상이 보였다.
“폐하께서 속히 포고를 입안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은라 허칠안은 무신교 간첩으로 정흥회 사건을 빌어 소동을 일으켜 우리 대봉 황실의 명성을 해쳤다.”
늙은 태감은 아주 빠른 속도로 원경제의 말을 있는 그대로 전달했다.
왕 재상은 진지하게 다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봉환(封還)!”
이 두 글자의 의미는 ‘동의하지 않는다!’였다.
내각은 봉박(封駁)할 권리가 있었다. 소위 봉박은 좋지 않은, 옳지 않은 황제의 명령을 되돌리는 것이었다.
“뭐라고요?”
늙은 태감은 자신이 잘못 들었다는 의심이 들어 귀를 후벼판 뒤 물었다.
“재상 대인, 다시 한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왕 재상은 차분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봉환한다.”
늙은 태감은 어두운 표정을 한 채, 은연중에 위협을 내포한 목소리로 말했다.
“재상 대인, 지금은 비상시기입니다. 대인께서는 왜 하필 이 시기에 폐하의 심기를 건드리십니까? 대인의 자리는 수많은 사람이 눈 빠지게 지켜보는 위치입니다.”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부드러운 어조로 바꾸었다.
“천하에 폐하의 영토가 아닌 곳이 없지요. 이 천하는 폐하의 천하입니다. 저희는 신하로서 가슴속에 의견이 있다고 해도 거두면 됩니다. 왜 굳이 폐하를 괴롭히시려는 겁니까?”
왕 재상은 무표정으로 일어서서 밖으로 걸어갔다.
늙은 태감은 은혜를 모르는 그를 보면서 화를 내려 했다. 그때 노인의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들렸다.
“본관이 몸이 좋지 않으니 먼저 저택으로 돌아가겠네. 만약 폐하께서 호출하실 일이 있다면, 내일 다시 얘기하게.”
‘담이 크군…….’
늙은 태감은 화가 난 나머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즉시 가마를 탔고, 시위들이 든 채 황궁으로 돌아가 바로 침전으로 향했다.
* * *
단향목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침전 안에서. 원경제는 부들방석에 가부좌를 틀고 아무 일 없는 사람인 듯 평화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귓바퀴를 움직이더니 쌀쌀맞게 입을 뗐다.
“책임을 완수했는가?”
“네…….”
늙은 태감은 우물거리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왕 재상께서 폐하의 명령을 거절하셨습니다.”
원경제는 몇 초간 침묵하더니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그에게 짐을 만나러 오라고 호출하거라.”
늙은 태감은 침을 삼키더니 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왕 재상께서 몸이 좋지 않아 저택에 쉬러 돌아가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폐하께서 만약 무슨 일이 있다면, 내일 그를 찾으라고도 하셨습니다.”
원경제는 눈을 떴다. 그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오히려 웃었다.
“늙은이, 정말 짐이 그를 파면하지 못할 줄 아는군. 기왕 몸이 좋지 않다고 하니 자리를 차지하지 말라고 하게. 문무백관에게 내일 조회를 연다고 통지하라.”
최근에는 조회가 매일 열렸다. 경찰 때보다 더 빈번했다. 황제가 도를 닦은 이래로 지금껏 이렇게 촘촘한 조회는 없었다.
이때 금군 통솔자 한 명이 침전 밖에 와서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늙은 태감이 예를 갖추고, 황급히 나가 금군 통솔자와 몇 마디 귓속말을 나누더니 좋지 않은 얼굴로 돌아와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폐하, 허칠안의 가족이 이미 몰래 도망가서 어디로 향했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사천감 쪽은 관성루 주위 백 장(丈)까지 진법이 뒤덮고 있어 금군들이 들어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원경제는 냉소를 지었다.
“역시 미리 사전 모의했군.”
잠시 멈칫하더니 그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감정은 뭐라고 했다던가?”
늙은 태감이 대답했다.
“감정이 아닙니다. 양천환이 나서서 금군을 신랄하게 풍자하였다고 합니다.”
원경제는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더 말하는 대신 국면을 어떻게 만회할지 생각했다.
허칠안은 필경 일개 은라이니 조정을 대표할 수 없었다. 이런 행위는 무사가 금령을 범했다고 규정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했다. 그가 백성들이 믿고 복종하게 하려면 허칠안의 죄명을 날조해야 했다. 그는 허칠안을 무신교 간첩으로 만들 셈이었다.
그리고 사람을 파견해 경성에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조정의 포고와 협력한다면, 이 자식이 채시구에서 한 호언장담보다 훨씬 더 믿을 만한 형세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전에 그는 우선 문관 집단을 가라앉혀야 했다. 지금 사건에 반전이 생겼으니 속으로 분노하면서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던 수많은 문관이 흐름에 따를 가능성이 농후했다. 따라서 그는 내일 조회에서 본보기를 삼고자 했다.
왕 재상은 바로 그가 본보기로 삼을 대상이었다.
* * *
감정은 사천감 팔괘대 지붕에 서서 뒷짐을 진 채 흰옷을 펄럭였다. 그의 모습은 마치 신선처럼 멋스러웠다.
그는 집중해서 경성을 내려다보다가 순간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대세가 이미 기울었군!”
이때 백의 형체가 나타나 감정을 등진 채 뒷짐을 지고 섰다. 그는 가장 시건방진 말투로 가장 공손한 말을 내뱉었다.
“스승님, 성사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편안하네요. 음, 도대체 무슨 일이 발생했답니까? 왜 금군이 허칠안을 체포하려고 하죠? 스승님께서는 왜 또 제게 가서 막으라고 하시는 거고요?”
감정은 기분이 아주 유쾌했다.
“허칠안이 오문에서 백관을 가로막고 호국공과 조국공을 납치해 가 채시구에서 참수했네. 백성들의 추대와 존경을 얻었지만 이 역시 앞날을 스스로 해친 셈이야.”
그는 말을 마치면서, 자신의 제자가 신중하지 못하며 지나치게 경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마침 이 기회에 허칠안은 죽음의 길을 걷고 있다는 걸 제자가 깨닫도록 자극했다.
“자네라면 할 수 있겠는가?”n
양천환은 몸이 굳었다가 이내 회복하더니, 무미건조한 말투로 말했다.
“그랬군요. 음, 스승님, 저는 수련하러 돌아가겠습니다.”
‘이렇게 무미건조하다고? 그래도 경중을 분간할 수는 있나 보군…….’
감정은 흐뭇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양천환의 형체가 반짝이더니 사라졌다.
그런 뒤 감정은 양천환의 기운이 재빠르게 황궁을 향해 도망치기 시작했다는 걸 감지했다.
……감정은 피부에 경련이 나는 듯 발을 동동 굴렀다.
그는 관성루 지하에서 양천환의 고통스러운 포효를 어렴풋이 들었다.
“감정 스…… 승님, 저한테 이렇게 대하시면 안 되죠, 안 되죠!!”
* * *
오늘 이른 아침, 채시구에서 발생한 사건이 막을 틈도 없이 퍼져나갔다. 한가할 때 꺼내어 얘기하는 이야깃거리와는 차원이 달랐다.
허칠안이 조국공과 호국공을 참수한 사건은 당시 현장에 있던 백성들이 바삐 돌아다니며 서로에게 알렸다.
점심시간이 됐을 때 내성에 소식이 퍼지고, 또 내성에서 확산되면, 해 질 무렵이면 외성 백성들도 이 일을 알 수 있을 터였다.
조이(趙二)는 한량이었다. 그는 매일 하는 일 없이 빈둥거렸으므로 주머니에는 늘 은자가 부족했다. 노름판에 가서 손맛을 보거나 기루 여인의 뱃속에 은자를 채워 주기 바빴기 때문이었다.
요 며칠 그는 아주 윤택하게 보냈다. 일을 받았기 때문이었는데, 그는 입만 놀리면 은자 일 전(錢)을 보상받았다. 이는 넝쿨째 굴러들어온 호박처럼 좋은 일이었다.
이 건은 청수방(靑手幇)이라고 하는 패거리에서 퍼진 것으로, 특별히 조이 같은 한량에게 주어지는 일이었다. 상대의 요구 사항은 간단했다. 운주 포정사 정흥회가 요족, 오랑캐와 결탁했다고 유언비어를 퍼뜨리기만 하면 됐다.
오늘 청수방에서 또 새로운 임무를 발표했다. 유언비어와 비슷했지만 주인공은 은라 허칠안으로 바뀌었다.
조이는 업무를 받은 후, 즉시 일을 시작하는 대신 기루에 가서 한 번 돈을 뿌렸다. 점심이 됐을 때 그는 잘 아는 길을 따라 큰 주루에 도착했다.
그는 이 주루에 이미 두 번 온 적 있었다. 두 번 모두 포정사 정흥회가 요족 및 오랑캐와 결탁했다는 유언비어를 뿌리기 위함이었다.
‘일을 하기’에 주루보다 더 적합한 곳은 없었다. 기루는 당연히 적합한 장소였지만, 조이는 향락을 즐기는 한량이라 기루에서는 그저…….
그리고 또 다른 주요 이유가 있었으니, 이 주루에는 선녀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머물렀다. 또 그녀 곁에는 항상 평범한 자태의 부인이 따라다니고 있었다.
조이가 주점 문턱을 넘어서자 대청 안에 말소리가 소란스러웠다. 손님이 아주 많이 앉아 있었다. 그가 한 바퀴 둘러보니 익숙한 탁자에 평범한 자태의 여인만이 앉아 있는 게 보였다.
그녀는 멍하니 미간을 찌푸린 채, 마치 근심거리라도 있는 듯 한참 동안 음식을 한 입도 먹지 않았다.
‘그 미인은 없군…….’
조이는 다소 실망했다. 그는 빈 탁자를 골라 앉아 술과 음식을 시키고 귀를 쫑긋 세운 뒤 대화를 엿들었다.
예상대로 그는 이내 은라 허칠안에 관한 담론을 들을 수 있었다.
“자네들 아는가? 오늘 아침에 허 은라가 채시구에서 국공 둘의 머리를 베었다네. 생각지 못했어, 초주성 백성 대량 학살 사건의 진상이 뜻밖에도…….”
그자는 계속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또 가만히 입 다물고 있는 것도 달갑지 않아 주먹을 쥐고 탁자를 묵직하게 내리쳤다.
갑자기 이야깃거리가 던져지자 손님들은 분개하며 본인의 생각을 밝혔다.
“생각지 못했어. 조당 전체 제공들, 그렇게 많은 벼슬아치들 중에 나서서 얘기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니.”
“허 은라는 영웅일 뿐만 아니라 우리 대봉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양심이네.”
“그러게. 누가 자신의 앞날과 목숨을 걸고 정의를 구현할 수 있겠어? 하필 허 은라같은 사람이 간신과 엮이고…… 모함당하기 가장 쉽지.”
“허칠안은 더 이상 은라가 아닐세. 에휴, 우리 대봉이 이번에 좋은 관리 둘을 손해 보겠군. 초주 포정사 정 대인 역시 충신인데.”
“설마 허 은라…… 머리가 잘리지는 않겠지?”
“흥, 조정에서 감히 허 은라를 죽인다면 우리 황성 문을 막으러 가자고.”
“내 말이, 능력 있으면 우리 모두 죽이라지. 우리 황성 문을 막으러 가세.”
처음에는 한두 탁자의 손님이 담론은 나누고 있었는데 점점 다른 손님들도 담론에 합류하였고, 말하면서 격분하기 시작했다.
이때 갑자기 정답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이가 탁자를 치더니 소리 높여 말했다.
“자네들 전부 간신들에게 눈속임당했네. 사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아.”
정점에 달한 분위기가 순간 끊기면서 방관자의 시선을 아주 쉽게 끌 수 있었다. 이건 조이가 체득한 기술이었다.
그는 자신이 전에 하던 방식을 되살릴 작정이었다. 정흥회의 체면을 구기는 것처럼 허 은라의 체면에 먹칠을 하고자 했다.
역시나 대청 안의 모든 손님들이 그를 돌아보았다.
조이는 관심을 얻자 바로 말했다.
“내게 조정에서 관리로 있는 친척이 하나 있는데 그한테서 비밀을 들었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캐물었다.
“무슨 비밀인가?”
조이는 무슨 큰일을 선포하는 듯, 아주 큰 소리로 말했다.
“허 은라가 사실은 동북 무신교의 간첩이라더군. 줄곧 대봉에 잠입하면서 명성을 얻은 게지. 이번에 마침내 그가 기회를 잡았네. 초주 포정사 정흥회를 이용해 요족 및 오랑캐와 결탁하고 진북왕을 모함한 일일세.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 공작을 죽이고 조당의 체면에 먹칠하였지. 자네들 모두 그에게 속은 것이네. 그의 말은 믿어서는 안 돼. 생각해 보게. 진북왕이 왜 성안의 백성을 도살하려 하겠는가? 폐하께서는 또 어찌 응하시겠는가? 자네들 머리를 좀 굴려보게.”
그의 말은 대청 내 손님들의 격렬한 반박을 불러일으켰다.
“헛소리하는군. 허 은라가 어째서 무신교 간첩인가? 자네 무슨 증거가 있다고 허 은라를 헐뜯는 겐가. 살고 싶지 않은가?”
조이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냉소를 지으며 콧방귀를 뀌었다.
“우리 대봉에서 배출한 호걸이 설마 정말 허 은라 하나뿐인가? 어찌 그럴 리가 있는가. 자네들 다시 생각해 보게. 만약 정말 진북왕이 백성을 대량 학살했다면, 왜 조당 제공이 나서서 정흥회를 위해 발언하지 않겠는가? 옳고 그름은 사실 간단하네. 총명한 자는 한눈에 간파할 수 있지. 자네들은 그저 예전 허 은라의 눈부심에 속은 걸세. 그는 그저 위선적인 간첩일 뿐이야. 모두가 사실임을 맹세하네. 내 친지 중에 조정 관리가 있다고.”
그가 한 말은 아주 테크니컬하고, 이치와 근거가 있으며, 논리에 부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