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578
578화. 매신(賣身) 계약서
매아는 씩씩거리며 잡일 여종의 방으로 쳐들어갔다. 그녀는 침상에 누워 편안하게 늦잠을 자고 있었다.
“일어나, 일어나라고!”
매아는 냉담한 얼굴을 하고 그녀를 침상에서 잡아끌더니 큰 소리로 다그쳤다.
“낭자가 잘 나갈 때 너희에게 모든 성의를 다했잖아. 다른 뜰보다 은자를 두둑하게 주지 않은 적이 언제 있었니? 그녀가 지금 병이 났는데 따뜻한 죽을 한 입 먹고 싶어도 없다니! 네 양심은 개나 줘버렸니?”
잡일 여종이 양 허리춤에 손을 얹고 그녀에게 맞받아쳤다.
“전부 예전 일이잖아, 예전에 낭자께서는 잘 나갔지. 우리가 옆에서 시중들 때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일하길 나도 원했어. 하지만 지금은 그녀가 곧 죽을 마당인데 내가 뭐하러 그녀를 시중들어야 하지?”
매아는 크게 화를 냈다.
“낭자는 그저 병에 걸리신 거야. 좋아지실 거라고! 병이 호전되면 낭자께서 널 어떻게 혼낼지 보자고!”
잡일 여종은 비난을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상대를 비난하였다.
“됐거든. 그녀가 곧 죽을 거라는 걸 교방사에서 누가 몰라! 무릇 조금의 가능성이 있다면, 어머니도 사람을 내보내지 않았을 거야!”
그녀는 여기까지 말한 뒤 냉소를 지었다.
“매아 언니, 편히 쉬지 못하고 낭자를 시중드는 거, 사실 낭자가 저축한 돈 때문이지?
언니도 괜히 성내지 마. 교방사에 무슨 그럴듯한 우정이 있겠어?
언니, 동생들도 적당히 맞장구치며 분위기 맞추고 있는 거잖아?
남자들이 그저 우리의 몸을 원할 뿐이라는 걸 알잖아.
정말 그 오입쟁이들에게 진심이 있을 줄 안다면 바보지.
부향 낭자가 바로 이런 바보야. 애당초 허 은라는 밤새 영매소각에 머물면서 동전 하나 쓰지 않았잖아.
낭자는 그를 위해 손님조차 접대하지 않았는데! 게다가 직접 돈을 보태서 교방사에 냈어.
다른 사람이 그녀를 몇 마디 치켜세워도 그녀는 자신과 허 은라가 진짜 사랑인 줄 알더라. 웃기지 않아?
지금 그녀가 병들어서 곧 죽을 판인데 그자가 그녀를 보러 온 적 있어?”
이 말은 매아의 아픈 곳을 찔렀다. 그녀는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나쁜 계집애, 내가 네 입을 찢어버리겠어!”
두 사람은 서로 뒤엉켜서 때리기 시작했다.
“멈춰!”
이때 문밖에 부향이 나타났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에 흰 홑옷을 입었다. 그녀는 제대로 서 있지 못할 정도로 허약한 상태였다.
잡일 여종은 싸움을 멈추고 고개를 숙인 채 한 마디도 내뱉지 않았다. 이 여인은 지금 바람이 불면 쓰러질 듯 비실비실해도,
과거에 지나치게 잘 나갔기 때문에 이전에 남긴 인상이 너무 깊었다.
“돌아가…….”
부향은 막 두 글자를 내뱉었을 때 휘청거리더니 바닥에 쓰러졌다.
부향은 단향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안방에서 깨어났을 때, 침상 옆에 앉아 있는 연로한 의원을 보았다. 의원은 방금 그녀의 맥을 다 짚은 듯 매아에게 말했다.
“기가 약하고 오장이 쇠약하군. 약물은 이미 쓸모가 없으니 뒷일을 준비하시게.”
매아는 고개를 숙인 채 목소리를 낮추고 훌쩍였다.
경성 제일 명기 부향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이 소식은 순식간에 교방사에 퍼졌다.
어떤 이는 은근슬쩍 기뻐했으며 또 어떤 이는 탄식하였다.
예상(霓裳) 우의를 입은 기녀들이 점심 식사 후, 비단과 이끼가 깔린 청지원 응접실 안에서 탁자에 앉아 차를 마셨다.
탁자 위에는 과일 및 얼음, 매실주 등의 먹을거리가 놓여 있었다.
정교하게 화장한 명연 낭자는 자리에 있는 자매들을 훑어보았다. 그녀를 포함해 총 아홉 명의 기녀는 모두 허 은라와 침상에서 뒤엉킨 적이 있었다.
“처음에 그녀가 얼마나 잘 나갔는지 생각해봐. 허 은라가 매화로 노래한 시 덕에 그녀가 경성 제일 명기가 되었잖아.
바깥 나리들은 그녀를 만나기 위해 큰돈을 쾌척하고, 외지의 풍류가가 먼 길을 달려 경성에 왔었지.
승승장구하다가 반년도 지나지 않아 이미 재만 남았네.”
짙은남색의 비단 치마를입고옥잠을 꽂은 우아한 기질을 지 닌 소아 낭자가 개탄하였다.
소아 낭자는 경서를 두루 읽어 지식인들이 아주 열광적으로 사랑했다.
“미인박명이라는 말이 딱 부향 얘기인가 봐. 정말 딱해.”
노란색 치마를 입은 달걀형 얼굴의 미인이 말했다. 그녀는 화명(花名)은 동설 (冬雪)이었으며 목소리가 꾀꼬리처럼 듣기 좋았고, 노랫소리는 교방사 제일이었다.
“애당초 허 은라의 총애를 독점하는 그녀를 질투했었는데 지금 그녀의 이런 처지를 보니까 마음이 아파서 입맛도 떨어지더라.”
또 다른 미인이 개탄하였다.
“얘기하다 보니 허 은라가 이미 오랫동안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네.”
“내 기억에 허 은라가 3월에 초주에 간 뒤로는 교방사에 오지 않았고, 영매소각에 가지 않았어.”
“곰곰이 따져보니 허 은라가 초주에서 경성으로 돌아와 있던 동안 마침 부향이 앓아누웠네……”
기녀들은 탄식하였다. 부향이 자리에 누워 오랫동안 차도를 보이지 않으니 허 은라는 당연히 올 리가 없었다.
남자들이 그녀들을 찾아오는 건 향락을 찾기 위함이었다. 그런 놈들이 매일 병상 앞에서 간호할 수는 없지 않은가. 허 은라 역시 그저 향락을 찾는 남자였다.
명연 낭자가 가볍게 탄식했다.
“부향 언니는 허 은라한테 정이 아주 깊었는데……”
그녀는 돌아서 곁에 있는 여종을 쳐다보더니 분부하였다.
“사람을 보내 허부에 통지하거라. 허부는 교방사에서 멀지 않으니 속히 갔다 속히 돌아오거라.”
여종이 종종걸음으로 나갔다.
명연은 곁눈질로 기녀들을 훑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우리 부향언니를 보러 가자.”
그녀들에게도 정이 있었다.
“너와 나는 주인과 종으로 지내왔잖니. 내가 떠나면 궤짝 안에 있는 은표를 네가 가져가서 속신하는 데 쓰렴.
그리고 좋은 사람을 찾아 시집가거라. 교방사는 결국 여인의 종착역이 아니니까.
내가 남긴 물건을 허 은라에게 전해줘야 한다. 잊으면 안돼.”
부향은 침상에 기대어 뒷일을 당부했다.
매아는 원형 의자에 앉아 훌쩍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사뿐사뿐하면서도 난잡한 발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 명연, 소아 등의 기녀들이 천천히 방으로 들어와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부향언니, 언니 보러 왔어.”
부향은 백지장처럼 창백한 얼굴에 웃음을 끄집어냈다. 그녀가 매아에게 쉰 목소리로 말했다.
“얼른 찾아.”
기녀들은 자리에 앉아 차분하게 한담을 나누었다. 그러던 중 명연이 갑자기 입을 가리고 흐느껴 울었다.
“우린 언니 몸 상태를 이미 알았어……,
부향은 소탈하게 웃더니 말했다.
“나는 그저 인생의 한 여정을 끝내는 것뿐이야. 다만 나는 아주 일찍, 아주 일찍 이곳을 떠나는 거야.”
모든 기녀들은 이 말이 아주 마음에 와닿았다. 방 안이 슬픈 분위기로 가득 찼다.
명연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나쁘게 생각하지 마. 내가 제멋대로 허 은라에게 통지하러 가라고 했어.”
부향은 눈살을 찌푸리더 니 다소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그를 불러서 뭐 하려고? 나는 그를 전혀 보고 싶지 않아. 이 시기에 그를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매아가 침상 옆에 서서 울었다.
“양심 없는 자예요. 초주에 간 후로 한 번도 온 적이 없어요. 틀림없이 낭자의 병세가 심하다는 걸 듣고 우리 낭자가 싫어진 거예요.
그가 은라일 때 동료들을 데리고 교방사에 자주 와서 술을 마시게 되면 낭자가 극진히 대접하지 않은 적이 있었나요……? 엉엉엉.”
기녀들은 어 리둥절하여 서로 쳐다보더 니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명연이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또 무슨 해결하지 못한 걱정거리가 있어?”
부향은 말을 하지 않은 채 창밖의 광활한 천지를 바라보았다.
교방사 여인의 가장 큰 소원은 단지 천민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이 기생의 땅에서 벗어나 고개를 들고 사람 노릇을 할 수 있기만을 바랐다.
기녀들은 그녀의 뜻을 이해했으나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부향의 속신 가격은 무려 팔천 냥에 달했다.
영매소각은 아주 오랫동안 이렇게 떠들썩한 적이 없었다. 부향은 말하는 재주가 아주 좋았지 만,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점점 마음이 딴 데 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문밖을 빈번하게 쳐 다보았다.
기녀들은 그녀가 누구를 기다리는지 알았다.
부향은 날마다 그를 생각하나 만날 길이 없었다.
명연 낭자는 방 안의 해시계를 쳐 다보았다. 가을 물결 같은 아름다운 눈동자에 분노와 비통함이 스쳤다. 그 남자는 결국 오지 않을 것이었다.
“시간이 늦었네. 우리 먼, 먼저갈게……”
하마터면 그녀는 눈시울을 붉힐 뻔했다.
“부향언니, 몸조심해.”
눈물을 머금은 명연은 문득 문밖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부향을 발견했다. 그녀의 창백한 얼굴에 취한 듯한 홍조가 떠올랐다.
갑자기 명연의 몸이 굳었다.
소아 낭자는 입을 오므렸다.
다른 기녀 역시 부향의 이상함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보았다.
문 입구에 젊은이가 서 있었다. 그는 옅은 남색의 유포를 입고 허 리춤에는 재질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청록색 비취를 걸고 있었다.
“유포가 몸에 맞지 않아 내가 저택의 여종에게 고치라고 했소.”
그의 목소리는 온화하였다.
부향은 눈물이 쏟아졌다. 그의 차림새는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와 같았다.
작년 10월, 옅은 남색의 유포를 입은 한 젊은이가 영매소각에 왔다가 그녀의 삶에 뛰어들었다.
인생이 첫 만남과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허칠안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교방사에 도착한 뒤, 바로 일을 처리하러 갔소.”
그는 탁자 옆으로 걸어가 물건 하나를 탁자 위에 살포시 놓았다.
기녀들의 시선이 탁자 위로 향했고, 모두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거기에 놓인 물건은 바로 매신 계약서였다.
‘팔천 냥 가치의 매신 계약서라니
명연 낭자의 눈빛이 굳어지면서 기쁨. 안도, 질투 등의 감정이 저도 모르게 한데 뒤섞여들었다.
모든 기녀들의 감정 역시 마찬가지로 복잡했다. 팔천 냥이면 내성에서 호화로운 지역에 화려한 저택을 한 채 사기에 충분했다.
교방사는 소금굴 (銷金窟: 돈 잡아먹는소굴)이라고 불리지만, 무려 팔천 냥을 써서 명기를 속신했던 사례는 정말 드물었다.
관리 나리들은 엄두를 내지 못했으며, 부자 상인은 은자를 대단히 아까워했다.
하지 만 허 은라가 해냈다. 그는 무려 팔천 냥 백은을 이렇게 대충 두었다.
기녀 낭자들이 가장 염려하는 것은 부향 낭자가 병이 깊어 나을 가망이 없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러므로 이 팔천 냥 백은으로 산 건 그저 불쌍한 기녀의 염원이었다.
세상에 어느 남자가 그녀들 같은 여인을 위해 이렇게까지 할 수 있겠는가?
‘허 은라는 다른 남자들과 다르구나……’
기 녀들은 마음이 곧 누그러들 기세였다. 그녀들은 유포를 입은 젊은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허랑”
부향은 탁자 위의 매신 계약서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얼굴이 온통 눈물 자국으로 가득했다.
‘본래 빚진 거야…….’
허칠안은 침상 옆에 앉아 탄식하였다.
부향은 나긋나긋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빨개진 갸름한 얼굴로 오열하며 말했다.
“올 필요 없었어요. 제, 제 지금 모습은 보기 좋지 않다고요.”
허칠안은 다소 복잡한 표정으로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매만졌다.
“저 소원이 더 있어요.”
부향은 고개를 돌리고 모든 기녀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나 마지막으로허랑을위해 춤을 보여드리고 싶으니 동생들이 반주해주길 바라.”
기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향은 미소를 지은 뒤 허칠안을 쳐다보았다.
“허랑. 바깥 대청에 가서 잠시만 기다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