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604
604화. 대(大)주술사
해가 지기 전, 숙모는 왕사모에게 답례품을 잔뜩 주었고, 자신이 수년간 꼈던 옥팔찌도 선물하였다.
왕사모는 여종을 데리고 나섰다. 그녀가 고개를 돌렸을 때 허 부인이 두 딸을 데리고 배웅하는 모습이 보였다. 허영음은 기쁘게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시선이 세 사람을 스쳐 처마 위로 향했다. 허칠안은 높은 곳에 서서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이묘진과 머리를 산발한 소저가 그의 양옆에 있었다.
그녀는 왠지 모르겠으나 오늘 좌절했어도 이 집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들은 이런 편안함 속에서 사는 듯했다.
그녀는 평안하고 평온한 기분이 되어 마음이 몹시 가뿐했다.
* * *
황혼 후, 진수성찬이 가득 차려진 왕부의 식탁. 왕 재상이 딸을 쳐다보더니 말했다.
“걱정이 태산이구나, 뭘 생각하고 있니? 참, 오늘 허부에 간 건 어땠니?”
둘째 오라버니가 참견하였다.
“허씨 집안은 막 출세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여러 방면에서 만족할 수 없었겠지.”
첫째 오라버니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러면 장차 네가 정말 허신년에게 시집가게 되면 혼수는 좀 넉넉하게 해야겠구나.”
올케 둘은 이 말을 듣더니 갑자기 마음속에 우월감이 생겼다.
“그들은 집에서 술을 마시는데 용혈 유리잔을 쓰고, 음식을 담을 때는 진귀한 골동품을 쓰더라. 저택을 지키는 건 전부 4품 고수야. 조정의 모든 치킨스톡 생산 시설에서 매년 1할의 이윤을 허부에 나눠주고 있고.”
왕사모는 담담하게 말했다.
“뭐라고? 조정의 모든 치킨스톡 생산 시설에서 1할을 나눠준다고?”
장사하는 둘째 오라버니는 깜짝 놀랐다. 이건 상상하기 어려운 거액의 재산이었다.
“용혈 유리잔을 술잔으로 쓰다니…….”
첫째 오라버니의 표정이 굳었다.
올케 둘은 매우 부러워했다.
왕 부인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더니 물었다.
“허 부인은 어떻든? 사모의 능력으로 그녀를 제압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지?”
재상 왕정문은 고개를 살짝 끄덕여 부인의 말에 동조했다. 그는 자기 딸이 어떤 수준인지 잘 알았다.
그러나 왕사모는 약하게 말했다.
“허 부인은…… 깊이를 헤아릴 수 없더라고요.”
왕씨 집안 사람들은 어리둥절하여 서로 쳐다만 보았다.
첫째 오라버니가 탄식했다.
“허씨 집안이 단순하지 않구먼. 참, 아버지, 담판은 어떻게 되어 가나요?”
그는 부친의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난 며칠 동안 그가 같은 질문을 했지만, 이번 일은 조정 기밀과 연관된 문제였기에 왕정문은 친아들에게조차 털어놓지 않았다.
“기껏해야 사흘이면 결과가 나올 것이다.”
왕정문이 담담하게 말했다.
대봉과 요족 및 오랑캐의 담판은 단지 눈앞의 이익과 앞으로의 이익에 지나지 않았다. 앞으로의 이익은 덤인 셈이었기에 눈앞의 이익이 가장 중요했다.
그리고 요족과 오랑캐 쪽에서 제시할 수 있는 건 군마, 철광, 모피, 할양한 영토였다.
* * *
한밤중, 서재에서 허칠안은 선황 기거록을 다 들은 뒤 겸사겸사 허신년의 ‘원고’를 들었다. 그는 이것이 정국 정예병을 겨냥하는 책략임을 알았다.
허신년은 차를 마셨다.
“이건 저 혼자 되는대로 추측한 거예요.”
신년은 역시 병법 전공자다웠다. 문장 하나하나가 다 사리에 들어맞고, 사고의 방향이 또렷했다. 다만 탁상공론인지 정말 실효성이 있는지는 몰랐다.
허칠안은 다 본 뒤 ‘원고’를 신년에게 돌려주었다.
* * *
동북 깊은 곳, 바다를 등지고 있는 어느 칠흑같은 산골짜기.
파도가 석탄과 절벽에 부딪히며 철썩철썩 거대한 소리를 내더니 사자와 용의 형상을 한 거품을 튀겼다.
산골짜기 중앙에는 백 장(丈) 높이의 제단이 있었는데 제단 위에 거대한 석상이 두 개 세워져 있었다.
한 석상은 유포 차림에 유관을 썼으며, 가슴까지 긴 수염을 늘어뜨린 연로한 유학자의 모습이었다.
다른 석상은 긴 장포 차림에 가시나무 왕관을 썼는데 미남형 얼굴에 풍채가 늠름하였다.
이른 아침의 첫 번째 햇살이 제단을 비추자 가시나무 왕관을 쓴 조각상이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했다.
제단 너머에는 규모가 방대한 도시국가가 있었는데, 이 도시국가가 바로 무신교의 본부였다.
이 도시국가는 ‘정산(靖山)’이라고 불렸는데 산 이름이 바로 도시 명칭이었다. 정국의 국가명 역시 제단이 곧추선 높은 산에서 유래되었다.
무신은 인간 세상의 현세에 드러나지 않았다. 대주술사가 바로 무신교의 가장 높은 지도자로, 주술사 체계의 1품 대주술사였다!
당대 대주술사는 살륜아고(薩倫阿古)라고 하는데 먼 옛날 고대부터 존재하던 최강자였다. 초대 감정도 그의 제자였다.
살륜아고의 이미지는 피풍을 걸치고 모자를 쓴 노인이었다. 그는 정산 성안에 높이 솟은 거대한 궁전 안에 살지 않았다.
그는 정산 산기슭에 초가집을 짓고 양 떼를 기르고 있었다. 매일 이른 아침, 정산성(靖山城)의 주술사들은 아침 해가 막 떠오르는 배경 아래에서 가곡을 부르며 양 떼를 산 몰고 산을 오르는 위대한 지도자를 보곤 했다.
살륜아고는 허리춤의 술주전자를 집어 삼주(參酒)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만족스럽게 입맛을 다셨다. 그런 뒤 양을 모는 나뭇가지를 쥐고 바닥에 가볍게 두드렸다.
“이이포(伊爾布), 이리 오거라!”
마찬가지로 장포를 두르고 모자를 쓴 주술사가 나뭇가지를 찍은 곳에서 나타났다.
“대주술사님!”
이이포라는 이름을 가진 주술사가 몸을 굽혔다.
“상처는 회복됐는가?”
살륜아고가 빙그레 웃었다.
이이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대주술사님, 초주에 나타난 그 신비로운 강자가 도대체 누구입니까? 저는 그자의 내력을 알아내지 못하겠습니다.”
“자네가 알아낼 수 있으면 자네가 대주술사겠지.”
살륜아고는 인자한 얼굴로 말했다.
“그를 상대할 필요 없다. 그자는 불문이 골머리 썩혀야 하는 인물이니까.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건 위연이다. 방금 무신께서 신의 뜻을 전하셨다.”
“무신께서 드디어 역량을 발휘해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 겁니까?”
살륜아고가 대답하지 않고 손바닥을 펼치니 어느새 옥가락지 하나가 생겼다. 그가 말했다.
“가서 정국의 그 자식에게 알리거라. 3개월 내로 북경을 평정한다.”
이이포가 떠난 뒤 살륜아고는 요원한 제단 방향을 바라보더니 중얼거렸다.
“나더러 대봉 경성에 가서 그 손제자(*孫弟子: 제자의 제자)를 귀찮게 하라니……. 대봉 관내에서 나는 그를 이길 수 없단 말이지. 골치 아프네.”
살륜아고는 탄식하였다.
그가 한숨을 내뱉자 햇빛 찬란한 정산성이 순식간에 검은 구름으로 뒤덮였다. 그러면서 광풍이 불기 시작하고 천둥 번개가 쳤다.
* * *
마찬가지로 이러한 이른 아침, 황선아와 배만서루는 마차를 타고 약속한 대로 허부 문밖에 이르렀다.
조각처럼 정교한 얼굴에 나긋나긋하고 사랑스러운 황선아가 입술을 핥더니 흥분하여 말했다.
“전설 속의 허 은라를 만나보고 싶어 근질근질했다고.”
배만서루는 손에 책 한 권을 쥐고 웃었다.
“담판은 이미 끝났으니 우리 허칠안을 만난 뒤에 경성을 떠나자고. 정국 정예 기병은 더할 나위 없이 조화롭고 전술이 강하지만 나는 그에게 가르침을 청하고 싶은 문제가 몇 개 있거든. 너는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하는 꽃병처럼 굴어. 그를 침상 위로 꾀어낼 수 있는지 없는지는 네 능력에 달렸어.”
황선아는 요염한 붉은 입술을 핥더니 웃었다.
“여색을 좋아하지 않는 남자는 드물어. 누군가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는 건 통상적으로 여인이 충분히 예쁘지 않아서야. 그리고 여색을 좋아하는 남자일수록 내게 상대할 수법이 있지. 그를 위풍당당하게만 보지 마. 만약 정말 잠자리를 하게 된다면, 울면서 용서를 빌며 나를 마님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을 거야.”
그녀는 승리할 거란 확신이 있었기에 굳게 맹세하였다.
“네게 능력이 있으면 그를 북방으로 납치해서 돌아가도 너를 따르겠지. 하지만 그전에 내 일을 방해하지 말아라.”
배만서루가 담담하게 말했다.
“네 일은…….”
황선아는 요염한 자태를 거두고 손톱을 만지작거리면서 쯧쯧거렸다.
“내가 말했잖아. 너처럼 자존심이 센 사람이 어떻게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한테 지도록 상황을 내버려뒀겠어? 요 며칠 내가 알아봤는데 허칠안이 비록 세상에 둘도 없는 시재지만 지금껏 병법 방면에서는 공을 세운 적이 없더라고. 나는 그 병서를 위연이 쓴 게 아닌가 의심돼. 그래서 내가 그를 찾아가서 좀 떠보고 싶은 거야. 물론, 만약 정말 그가 그 병서의 저자라면…….”
배만서루가 멈칫하더니 주먹을 살짝 쥐고 다소 흥분했으면서도 갈망하는 어조로 말했다.
“나는 그에게 몇 가지 가르침을 청하고 싶어. 북방 전쟁을 어떻게 타개할지 말이야. 이런 병법대가는 흔히 구상을 하거든. 어쩌면 전쟁 승패의 핵심일지도 몰라.”
황선아가 입을 삐죽였다.
“그렇게 과장스러울 리가.”
마차가 멈추자 두 사람은 발을 젖혀 뛰어내렸다.
* * *
황선아는 문지기 장씨의 안내를 받아 허부에 들어서더니 좌우를 둘러보곤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런대로 괜찮네!”
그동안 그녀는 배만서루를 따라 온 경성 관아를 휘젓고 다녔다. 그녀는 접대하면서 호화 저택을 아주 많이 보았다. 허부 저택의 규모와 건축 양식은 대체로 중간 정도였다.
그들이 청석이 깔린 도로를 지나니 앞쪽에는 기품 있는 외관에, 양쪽 처마가 휘날리는 건물이 있었다. 바로 손님을 응대하는 허부의 외청이었다.
황선아의 눈이 갑자기 반짝였다. 그녀는 검은색 바탕에 금실과 은실이 휘감긴 긴 장포를 입고 화려한 장신구를 단 한 남자를 보았다. 그는 외청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마침 빙그레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 자의 조각 같은 이목구비는 남성적인 기질이 충만하면서도 거칠어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남자를 자세히 보면 그가 사실 아주 준수하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다만 그는 날카로운 눈동자와 건장한 몸, 밀색 피부 때문에 그는 준수한 사촌 동생과 사뭇 달라 보였다.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군. 이 몸뚱이만으로도 이 몸이 아주 어여삐 여길 가치가 있어…….’
황선아는 저도 모르게 미소가 고와졌다.
허칠안은 이미 문회에서 그들을 본 적이 있었으므로, 그저 한 번 훑어보고 더는 관찰하지 않았다.
‘음, 황선아 이 요녀는 여전히 나처럼 음탕하군!’
그는 속으로 중얼거리면서도 겉으로는 온화하게 웃었다.
“두 분, 안으로 드시지요!”
‘그가 그저 나를 가볍게 보았다. 남자들에게 흔히 있는 욕심과 흠모를 드러내지 않았어. 하지만 나와 그는 분명히 처음 본 건데……. 이건 틀림없이 내 매력이 부족한 게 아니야. 허 은라라는 자가 미색에 아주 저항력이 강한 거다. 아니면 경성에 퍼진 그와 교방사 기녀에 관한 뜬소문이 사실은 그가 일부러 위장한 결과였거나…….’
황선아는 지혜롭고 교활한 살수였기에 이 세부 사항을 관심을 가지고 묵묵히 가슴에 새겼다.
그녀는 어떠한 가능성이든, 허 은라는 평범한 남자가 아니라서 꼬시기에 아주 난도가 높으리라 직감했다.
‘훗, 이 몸은 경성에서 가장 뛰어난 젊은이와 잠자리를 가질 거라고! 경성의 수많은 여인이 자나 깨나 바라는 남자를 꼬셔 잠자리를 가질 거라고!’
대봉에서 가장 뛰어난 젊은이, 명성이 자자한 허 은라는 경성의 수많은 여인이 자나 깨나 바라는 대상이다. 그런 그가 다른 민족인 그녀한테 꾀임을 당해 잠자리를 가진다고 생각해봐라. 이게 얼마나 분이 풀리며, 또 얼마나 통쾌한 일인가!
이는 경성 사람들을 심리적으로 밟는 일이기도 했다. 또한 그녀는 회족 자매들 앞에서 허풍을 떨며 그들을 부러워하게 할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