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689
689화. 반전
눈에 띄는 진홍색 글자가 허평지의 눈동자에 비쳤다. 그 순간 그의 눈동자는 마치 강한 빛을 쏘인 듯 갑자기 움츠러들었다.
그는 볼 근육이 약간 경련을 일으켰으며, 이마에는 콩알만 한 땀방울이 맺혔다.
허평지는 머리를 감싸 안고 고통에 울부짖기 시작했으며 이마에는 핏줄이 섰다. 그는 말 등에서 뛰어 내려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그리고 너무 아픈 나머지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끊임없이 포효하였다.
조위는 나지막이 말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
언출법수.
아니나 다를까 허평지는 두통이 많이 좋아졌다. 그는 숨을 크게 헐떡였으며, 고통스럽고 흉악한 표정도 사라졌다. 더는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지 않았다. 그는 마치 물속에서 막 건져낸 사람 같았다.
허평지는 천천히 일어났고, 입술이 떨렸다. 그의 거칠고 난폭한 얼굴은 어느새 이미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보아하니 자네 무언가 떠오른 듯하군.”
조위의 목소리는 온화하였다. 이어 그는 세 번째 종이를 펼쳤고 내용은 이러했다.
* * *
견융산, 돌문 안에 꿈틀거리는 살덩어리들이 종이 조각을 감싼 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종이에는 한 행이 쓰여 있었다.
“중요한 일은 세 번 말해야지.”
어두컴컴한 석굴 안, 나이 든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왜 종이가 이곳에 있는 거지? 내가 마치 무언갈 잊은 듯하군. 나는 여러 해 동안 폐관하였는데 어찌 쉽사리 관문을 나올 수 있겠는가. 이건 얼마 남지 않은 내 수명을 소모할 게야. 잠깐…….”
그중에 살덩어리 하나가 꿈틀거리더니 구석에서 서신 한 통을 말아올렸다. 서신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석굴 안, 나이 든 목소리가 다시 메아리쳤다.
“누구의 서신인가, 누구의 서신이지?”
목소리가 좀 격앙되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서신을 내가 소장할 수 있었다는 건 문제를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내가 마치 뭘 잊은 듯해. 참, 조위, 조위를 기다려야지…….”
나이 든 목소리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 *
백의 술사가 웃으며 말했다.
“아주 재미있군. 자네가 이런 문제를 생각해낼 수 있다는 게 좀 놀랍고 의아하네. 하지만 이는 중요하지 않아. 자네 몸속의 기운을 뽑아내는 일은 반각이면 되네. 설령 이 순간 감정이 살륜아고를 격퇴하고 이곳에 달려온다고 해도 그가 반각 안에 내가 30여 년을 들여 새긴 진법을 무너뜨릴 수 없네. 게다가 이곳에 천고 노인이 남긴 수단은 알려지지 않은 특성을 지녔네.”
‘알려지지 않은 특성이라……. 이게 바로 20년 동안 내 몸 속에 기운이 숨겨져 있었다는 게 발각되지 않은 이유인가?’
허칠안은 문득 깨달았고,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정말 조금도 빈틈이 없군요.”
백의 술사는 더는 말하지 않고 가볍게 발을 내디뎠다. 청광이 그의 발밑에서 반짝이더니 순식간에 대진 전체를 ‘점화’하였다. 청광은 물결처럼 퍼지더니 주문을 밝게 비추었다.
이 순간 허칠안은 엄청한 위기감을 느꼈다. 그의 솜털과 모든 신경이 ‘위험’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이는 위기에 관한 연신경 무사의 경고가 보내는 피드백이었다.
하지만 그는 머릿속에 상응하는 화면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 위기는 매우 현묘하고 이해하기 어려워서 이미지를 포착할 수 없는 듯했다.
어둠 속, 그의 몸속에서 무언가가 멀어져가더니 조금씩 위로 떠올라 머리 위에서 나오는 듯했다.
‘진법이 내 기운을 뽑아낸다…….’
허칠안은 운이 트이고 생각이 영민해진 것처럼 깨달음을 얻었다.
이때 기운 뽑아내기가 멈췄다. 마치 뛰어넘기 어려운 난관을 맞닥뜨린 듯했다.
바로 이 순간 진법 가운데의 그 미라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 눈에는 흰자위만 있고 눈알은 없었다. 무시무시한 소용돌이를 품은 듯했다.
철컥!
허칠안은 칼과 족쇄가 끊어지는 소리를 들은 듯했다. 기운을 그의 몸에 묶어둔 어떤 족쇄가 끊겼으며, 더 이상은 기운의 박리를 막을 수 있는 무언가가 없었다.
백의 술사는 이 모습을 보더니 마침내 웃음을 지었다.
20년의 계략이, 드디어 원만하게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막 웃는 표정을 짓던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끝없이 넓어 보통 사람은 볼 수 없는 방대한 기운이 갑자기 굳더니 천천히 가라앉아 그의 몸속으로 도로 떨어졌다.
“자네 몸에 대봉에 속하지 않은 다른 기운이 있다!”
백의 술사가 말했다.
“보아하니 제가 이긴 쪽에 걸었군요.”
허칠안은 땀을 비 오듯 흘렸다. 체력과 정신을 이중으로 소모한 그런 피로감이 들었다. 그는 분명히 소모할 체력이 없으나 숨을 크게 헐떡였다. 그는 숨을 헐떡이면서 웃으며 말했다.
“저는 지금 두 가지 일을 확신했습니다. 첫째, 당신이 내 몸속에 숨긴 기운은 연기사의 수법으로 연화된 것입니다. 그리고 제 몸속의 또 다른 기운은 당신이 연화하지 않았으니 당신들 것이 아닙니다.
둘째, 당신과 감정은 다릅니다. 감정의 주도면밀함은 그 ‘천명’ 지위에 기인한 수법이지요. 다만 2품 연기사인 당신은 아직 사람의 범위 내에 있습니다. 당신은 결코 모든 걸 다 알지 못합니다. 예컨대 제가 일찍이 뜻밖의 만남을 통해 내력이 불분명한 기운을 얻은 걸 모르지요. 보아하니 두 기운이 융합되어 저에게 속하는 그 기운을 빼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하, 하하, 하하하……!”
그의 웃음은 점점 과장되었고 여기엔 재해 생존자의 통쾌함이 있었다. 죽을 고비에서 놓였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무서웠다.
백의 술사는 반박하지 않았고, 묵인한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저 시간을 좀 많이 썼을 뿐이네. 연기사가 연화하려는 부가적인 기운은 전혀 어렵지 않네. 반대로 내가 자네의 선물에 감사해야겠군. 내가 풍성한 기운을 얻었으니 말이야.”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허칠안은 여전히 그곳에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웃었다.
그는 웃다가 눈물까지 났다.
백의 술사는 미간을 찌푸렸고, 보기 드물게 불쾌한 어조로 말했다.
“왜 웃지?”
허칠안은 눈가의 눈물을 훔치더니 백의 술사를 바라보면서, 슬퍼하면서도 미워하는 마음으로 잇새에서 한 마디 말을 끄집어냈다.
“제가 당신을 감정의 대제자라고 칭해야 할까요, 아니면 허씨 집안의 대문장가 허 대인이라고 칭해야 할까요? 아니면 당신을 아버지라고 부를까요?”
비록 어렴풋한 ‘장벽’이 그를 차단했지만, 허칠안은 백의 술사의 그 얼굴이 조금씩 진지해지면서 조금씩 보기 안 좋아지더니 낯빛이 어두워졌다는 걸 상상할 수 있었다…….
“혹은 제가 당신을 ‘허평봉(許平峰)’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만약 이게 당신의 진짜 이름이라면요.”
백의 술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산골짜기 안이 조용해졌고 부자 둘은 말없이 서로 응시했다.
한 사람은 눈처럼 하얀 옷차림이었으며 한 사람은 피투성이였다.
백의 술사의 옷자락이 바람에 나부꼈다. 그는 낙담하며 탄식하더니 천천히 말했다.
“자네 어떻게 알아낸 건가?”
허칠안은 입을 벌리고 눈을 흘겼다.
“맞혀보십시오.”
그의 얼굴은 창백하고 초췌했으며 땀과 핏물이 남루한 옷을 서서히 물들였다. 하지만 서로의 신분을 밝힌 뒤 미간 사이의 그 오만함이 점점 더 짙어졌다.
백의 술사는 잠시 침음하더니 말했다.
“천기술을 통해…….”
허칠안은 냉소를 짓더니 말했다.
“무릇 지나간 자리에는 반드시 흔적이 남는 법이지요. 제게 천기를 차단하는 법술은 허점이 있기만 하면 무적이 아닙니다.”
백의 술사는 말을 하지 않고 돌판을 조종하였다. 108개의 소진이 합쳐져 만들어진 대진을 허칠안 몸속의 기운으로 연화하였다.
허칠안은 위기에 빠졌지만 침착하게 말했다.
“천기 차단은 어떻게 해야 비로소 천기 차단입니까? 한 사람을 세상에서 철저하게 지워버리는 건가요? 분명히 아닙니다. 그렇다면 초대 감정의 일은 아무도 모를 것이고, 당대 감정이 사람들의 눈에 초대가 되었을 겁니다. 제가 세은 사건 배후의 진상을 알았을 때 당신 같은 대적이 그늘에서 몰래 살피고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줄곧 술사에 어떻게 맞설지 고민했습니다. 특히 너무 신비로워 추측이 불가한 천기 차단술을요. 오늘 당신이 저를 차단하는 이런 상황도 고려해본 적 없는 건 아닙니다. 제가 천천히 천기 차단술의 두 가지 한계를 정리해보겠습니다.
첫째, 천기 차단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습니다. 이 한계는 두 가지 방면으로 나뉩니다. 제가 그걸 영향력과 인과 관계로 나누겠습니다. 소위 영향력이라 하면, 만약 당신이 길가의 돌 한 덩이를 차단해봤자 그것이 사라진 걸 발견하는 이는 없습니다. 세상에서 철저하게 지워지는 것과 다름없는데 그건 본능적인 영향력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은 돌 한 덩이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당신이 황궁 안의 금란전을 차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너무 중요하니까요. 그게 사라지면 세상 사람들의 인식에 문제가 생기고 논리에 이상이 생깁니다. 이런 존재에겐 천기 차단술의 효과가 매우 작아 보잘것없지요.
당대 감정이 초대를 차단하였고, 오백 년 전의 모든 걸 차단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무종 황제가 반역을 꾀해 황위를 찬탈했다는 걸 압니다. 왜냐하면, 이 일은 길가의 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한 사람을 차단하는데 그와 관계가 보통이거나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면, 철저하게 그를 잊을 겁니다. 이 사람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사람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그의 혈육, 그의 친한 벗, 그의 홍안지기에게는 논리가 들어맞지 않습니다. 이치는 아주 간단합니다. 당신이 제 부모님을 차단했어도 저는 여전히 저희 부모님을 잊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무릇 사람에게는 틀림없이 부모가 있기 때문이지요. 누구도 돌에서 튀어나올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 논리가 들어맞게끔 하기 위해 스스로 속이게 됩니다. 자신에게 말하는 겁니다. 부모님은 내가 막 태어났을 때 돌아가셨다고. 이게 바로 인과 관계입니다. 인과가 깊을수록 천기술이 효력을 발휘하기 어려워집니다.”
이는 사실 애당초 옹주 지하 궁전에서 마주친 야생 술사 공양숙이 허칠안에게 알려준 정보였다.
초대 감정에게 전수받은 그 야생 술사는 진작에 천기 차단술을 명명백백하게 말해주었다.
백의 술사는 감개가 깊은 나머지 탄식했다.
“대단하군. 두 번째 한계는 무엇인가.”
허칠안이 나지막이 말했다.
“두 번째 한계는 바로 고품 무사에게 차단은 순간적일 뿐이라는 점입니다.”
위연은 초대 감정의 존재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비슷한 정보를 애써 생각할 때만 역사의 무력함 속에서 사천감에 초대 감정이 있었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백의 술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과를 봐야 하지. 자네와 관계가 깊지 않은 고품이라면 자네라는 사람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네. 하지만 자네와 인과가 아주 깊다면 빠르게 자네를 떠올릴 것이야. 그리고 또 빠르게 잊겠지. 이렇게 순환되네. 예상대로 낙옥형과 조위가 빠르게 자네를 떠올렸으나 그들은 이곳을 찾아올 수 없네. 본래 자네의 천기를 차단한 건 시간을 벌기 위함일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