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713
713화. 대기연(大機緣)
스무 살의 딸이 고작 하룻밤 사이에 많이 초췌해졌다. 그녀는 낯빛은 창백하고 눈빛은 피로하여 예전의 빛나는 눈동자와 또렷한 정신을 되찾지 못한 상태였다.
“소녀가 기혈이 많이 빠졌습니다. 한동안 수양하면 회복될 거예요.”
공손수가 말했다.
공손향양은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딸을 위아래로 살폈다. 그는 그녀가 다치지 않은 걸 확인하자 약간은 안도하며 한숨을 내쉬고 목소리를 낮추었다.
“무덤 안은 무슨 상황이니? 사상자는 어떠하고?”
“소녀가 돌아온 게 바로 이 일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기 편치 않으니 아버지, 서재로 가요.”
공손수가 말했다.
공손향양은 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서서 처마 아래 여종을 향해 분부했다.
“아가씨에게 줄 약재를 넣은 음식을 준비하라고 부엌에 이르거라. 원기를 돋울수록 좋다.”
* * *
부녀 둘은 서재로 들어갔다. 공손향양은 책장 뒤의 숨겨진 책장을 열더니 나무 상자를 꺼내 공손수 앞에서 열었다.
노란 비단 천이 깔린 상자 내부에는 보기 흉하고 쭈글쭈글한 자삼(紫參)이 놓여 있었다. 그건 가운뎃손가락만 한 길이였지만, 수염뿌리가 빽빽하여 마치 한데 엉킨 선 같았다.
이런 모양은 인삼 중에서도 극히 보기 드물었다.
“이 옥삼왕(玉參王)은 아버지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소장품 중 하나다. 60년에 무처럼 크게 자라고 다시 60년 뒤에…….”
공손향양은 상자를 가리키더니 말했다.
“이렇게 변했다. 정수를 농축시킨 거라 최고의 보약이다. 아버지가 앞으로 나이가 들면 전부 이것에 의지할 게야.”
공손수는 옥삼왕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기왕 아버지께서 나이 든 뒤에 장수하실 거라면 저는 원치 않습니다. 이런 걸 꼭 먹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공손향양은 넉살을 부리며 ‘헤헤’ 소리를 냈다.
“이걸로 어떻게 장수할 수 있단 말이냐! 이건 이 애비가 나중에 나이 먹으면 네 동생들 낳을 때 쓰려는 거다. 그래서 보약인 게지. 80세 먹은 노인네도 위풍을 떨칠 수 있단다.”
“…….”
공손수는 언짢아했다.
“아버지가 아무리 아들을 많이 낳으셔도 저만큼 잘 싸울 수는 없어요. 가주 자리는 분명히 제 것이에요.”
공손향양이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알지. 그래도 낳아야 한다. 천재를 하나 낳아야 너한테 부담을 줄 수 있겠지. 아무리 모자라도 네게 어느 정도는 보탬이 될 수 있단다.”
공손수는 눈을 희번덕이더니 부친이 잡아뗀 수염뿌리 몇 개를 받아 몇 입 음미하더니 삼켰다.
가주 공손향양은 젊을 때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먹고 마시고 계집질하고 도박하는 데 정통하지 않은 것이 어느 하나 없었다. 만약 천부적인 자질이 정말 너무 강한 게 아니었다면, 가주의 자리는 근본적으로 그가 앉을 차례가 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여러 해 동안 가주를 했으나 성격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물론 시시덕거릴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소위 상급자의 존엄은 그한테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부녀 둘은 가주 후계자의 일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오히려 더 솔직하고 거리낌 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공손향양은 딸이 얼굴에 홍조를 띠며 기색이 많이 호전된 걸 보자 속으로 조용히 긴장을 풀었다.
“약 기운을 연화하려고 노력해보거라, 낭비하지 말고……. 너희들 무덤에서 위험에 처했다고?”
공손수는 의자에 앉아 뜨거운 열기를 연화했다.
“제 판단이 맞았어요. 무덤에서 죽은 자들은 진법에 죽은 게 아니라 강대한 음물의 손에 죽었습니다. 어젯밤 저희가 성공적으로 낚아내어 고전을 치른 끝에 죽였는데 만약 지하에서 맞닥뜨렸다면 아마 적잖은 사람이 죽어야만 죽일 수 있었을 거예요.”
그녀는 즉시 음물을 포위하여 죽인 경위를 부친에게 말했다.
“잘했구나.”
공손향양은 다 듣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런 뒤에 저희는 대오 18명을 조직하여 무덤에 내려갔습니다. 무덤은 일찍이 대규모 붕괴가 발생하여 엉망진창이었습니다. 근본적으로 가치 있는 물건을 파낼 수 없었어요. 그리고 주묘에 들어갔습니다…….”
공손수가 여기까지 말을 마친 순간 눈에 공포의 감정이 스쳤다.
공손향양은 가슴이 철렁하여 캐물었다.
“주묘 안에 무엇이 있었니?”
공손수가 숨을 들이쉬었다.
“지하 무덤 안에 연대는 확실하지 않은 강시가 한 구 있었습니다. 저희가 무덤에 내려갔을 때 맞닥뜨렸지요. 매우 강대합니다. 입을 벌려 공기를 빨아들이니 회오리바람이 생겼어요…….”
그녀는 강시, 즉 미라의 무시무시함에 18명이 전혀 반항할 힘이 없었다는 점에 치중하여 얘기하였다.
공손향양은 ‘탁’ 튀어 오르더니 두 손으로 탁자를 받치고 눈을 크게 뜨고서 말했다.
“옹주에 그렇게 무시무시한 괴물이 있단 말인가? 그럴 리가, 그럴 리가. 만약 그렇다면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아무런 기척이 없기란 불가능해. 네 말뜻을 들어보니 극도로 정혈을 갈구하는 듯한데.”
공손 가주는 놀라우면서도 두려웠다. 옹주는 공손 세가의 본거지였다. 그런데 지하에 정말 이렇게 무시무시한 게 있다면 옹주 입장에서는 대재앙이 아닐 수 없었다.
공손향양이 보인 첫 번째 반응은 관아에 통지하여 옹주 포정사가 조정에 상소를 올리게 하라는 것이었다. 조정에서 고수를 파견해 이 일을 처리하게끔 말이다.
‘그 강시가 4품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기괴하고 무시무시한 게 어쩌면, 어쩌면 3품일지도 모른다. 조정에는 3품 무사가 없지만, 사천감 술사는 해결할 수 있다. 어쨌든 이 일을 보고하는 게 맞아…….’
황조는 중원을 통치할 수 있었다. 설령 지금 국력이 매우 쇠약해졌다고 해도 강호 세력과 비교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잠깐!’
공손향양은 생각이 급선회한 순간, 갑자기 무언가 깨닫더니 눈을 크게 뜨고 딸을 쳐다보며 말했다.
“너, 너희들은 어떻게 돌아온 거니?”
만약 강시가 정말 그녀의 묘사처럼 그렇게 기괴하고 무시무시하다면 지금 자신 앞에 서 있는 상대는 딸의 망령이어야 했다. 아니, 아마 망령조차도 없을 것이었다.
“저희가 고수를 만났기 때문이에요.”
“고수?”
공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어제 정오 때부터 얘기해야 합니다. 제가 양백호에 협객을 몇 분 모셨다가 왕기어방 2층 배에서 어떤 아이가 부주의로 호수에 떨어진 걸 보았습니다……. 청곡 도사께서 말씀하시길 그건 암고부의 수법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그에게 같이 무덤을 탐색하자고 요청하고 싶었습니다. 기이한 수법을 가지고 있는 이런 사람은 무덤에서 맡을 수 있는 역할이 무사를 초월할 테니까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가기 전에 저희에게 두 마디를 남겼어요.”
공송향양은 충격을 받은 듯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그는 인내심을 가진 채 말참견하지 않고 딸의 얘기를 들었다.
“한 마디는 만약 무덤에서 위기를 맞닥뜨린다면 ‘그자와의 약속을 잊었는가?’라고 말하면 된다는 것이었고, 다른 한 마디는 ‘오늘 밤에 비가 내릴 것이니 꼭 우비를 챙기시오’ 였어요.”
공손향양은 바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이 가을비는 그 고수가 천기를 예측하는 능력을 지녔음을 증명하였다.
“첫 번째로 한 말은 무슨 뜻이니?”
그는 진지한 표정이었으나 또 호기심을 참기 어려워했다.
공손수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어젯밤에 무덤에 들어간 뒤에 저희는 주묘실에서 강시를 만났습니다. 본래는 의심할 여지 없이 죽는 길이었으니 저는 이 말을 내뱉어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큰소리로 말했지요. 결과는…….”
“결과가 어떠했느냐?”
공손향양은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였다.
“아니나 다를까 강시가 하던 짓을 멈추고 저희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
공손향양은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살짝 수축해서는 분석했다.
“그 고수와 강시가 접점이 있나? 약속이라…… 그 고수가 존재하였기에 강시가 밖으로 나와 난을 일으키지 않고 줄곧 무덤에 있는 건가?”
공손수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적인 답을 주었다.
“강시는 그 고수에 의해 봉인된 것이었습니다. 무덤의 붕괴도 바로 두 사람이 맞붙어 야기된 것입니다. 이 모든 건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발생하였습니다. 그런 뒤 그 고수가 무덤에 나타나 강시와 깊은 대화를 나눈 것 같았어요. 저는 강시가 그를 아주 두려워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를 아주 두려워한다니. 요사스럽고 무시무시한 강시가 그를 아주 두려워한다니…….’
공손향양은 딸의 눈을 주시하면서 말했다.
“나중에는? 그 고수가 나타났니? 그의 출신을 알았니?”
공손수는 그에 대한 존중을 드러냈다.
“제가 그의 신분을 떠보았는데 그는 솔직히 말하는 대신 시를 한 수 남겼습니다.”
“무슨 시?”
공손향양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졌다.
“득도한 지 800년이 되었는데 비검으로 사람의 머리를 취한 적이 없구나. 옥황상제가 아직 천부(天符)를 소환하지 않았는데 칼을 쥐고 강호를 떠돌며 속세에 섞여들었네.”
‘득도한 지 800년이라…….’
공손향양은 주먹을 꽉 쥐고 살짝 떨었다.
“수, 네가 세상에 숨은 고수를 만났구나. 아니, 인간 세상을 떠도는 고수지. 이건 대기연(大機緣)이다, 진정한 대기연이야. 이 시대에 3품 고수는 매우 드물다. 하지만 이 경지에 발을 들인 고수는 긴 수명을 지니고 있지. 몇천 년 동안 쌓아온 것이다. 이런 고수는 세상에 숨어 나오지 않거나 인간 세상을 떠돌지. 설령 마주친다고 해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이런 고수와 사귈 수 있다는 게 어떠한 인연인지! 아버지는 네가 타고난 복이 있는 아이인 줄 알았다. 너를 가주로 택한 건 가장 옳은 결정이었구나.”
그는 얼굴이 흥분과 설렘으로 가득 찼다.
“아버지, 그 고수가 가기 전에 다시는 무덤에 들어가지 말라고 당부하였고, 저희에게 무덤을 잘 수호하라고 분부하였어요. 다른 사람, 특히 강호 산인을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고요.”
공손향양은 감정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일이다. 강시가 세상에 나오면 옹주는 평안하지 못하고, 우리도 평안할 수 없잖니.”
강호 세력은 본거지 의식이 아주 강하였기에, 안락하게 지내는 동시에 최대한 안정을 지키고자 했다. 이는 그들 자신의 이익을 옹호하는 일이기도 했다.
조정은 강호 패거리를 방임하였다. 왕정문이든 위연이든 모두 애써 억누르고자 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규칙을 지키는 강호 세력은 치안에 사실 건설적인 작용을 했다. 진정한 불안 요소가 무엇일까? 도처를 정처 없이 방랑하는 산인들이었다.
그 자식들은 툭하면 사람을 하나씩 죽였다. 일이 끝났다 싶으면 옷소매를 떨치고 가버렸고, 게다가 신분과 이름을 깊이 감출 수 있었다.
무력으로 금기를 범하는 이들은 대부분 이런 인간들을 가리켰다.
“하지만 완전히 우리 공손가가 짊어질 수는 없다. 내가 조금 이따가 용신보에 방문하여 무덤의 상황을 뢰 보주(堡主)에게 알리겠다. 어찌하든 그들을 끌어들여야겠구나.”
공손향양은 말을 마치고 몇 초간 생각하더니 다시 말했다.
“사람을 보내 왕기어방의 사람에게 물어보거라. 그 고수를 기억하지 못하면 다시 사람을 보내 성안에서 암암리에 알아보거라. 만약 그를 찾을 수 있다면, 아비가 직접 찾아가겠다. 찾지 못하면 어쩔 수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