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770
770화. 지하실 깊은 곳
이영소는 이 두견이라는 여종을 배웅한 뒤, 방으로 돌아와 침상 위로 쓰러졌다. 그는 혼란스러운 농무 속에서 사건의 진상을 잡고자 했다.
‘시람이 황보가에게 시집가기를 원치 않았다. 만약 내가 시현이었다면, 바로 상대방을 데리고 사랑의 도피를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시행의 전 남편은 어떻게 죽은 거지? 보아하니 시건원과 관련이 있는 듯한데? 아니면 두 사람이 왜 대판 싸웠을까……. 가장 큰 수혜자라는 것 외에 그녀에게 또 살인 동기가 늘었다.’
이영소는 탄식하더니 몸을 뒤집어 앉았고, 객잔에 가서 알아낸 정보를 서겸에게 알리려 했다.
“참 나, 나는 완전히 스스로 조사할 수 있다고. 서겸이 비록 수련 경지가 높지만, 그가 사건을 조사할 줄 아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지. 그는 그가 누구인 줄 아는 거야? 허칠안이야?”
이영소는 중얼거렸지만, 늙다리에게 소식을 보고해야겠다는 생각을 꺾지는 않았다.
* * *
숙모는 경성 허부의 숯불이 타오르는 내청에서 손으로 귤을 까며 말했다.
“며칠 뒤에 너희들 왕부에 가면, 반드시 예의를 알고 분수를 지켜야 한다. 왕 부인과 안식구들이 무시하게 해서는 안 돼. 알겠니?”
그녀는 말을 하는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시선은 귤을 떠나, 곁에서 눈이 빠지게 귤을 기다리는 어린 딸에게로 향했다.
“너 얘기하잖니!”
숙모는 언짢아했다.
“매일 먹을 줄만 알지. 조만간 너를 사천감으로 보내 기예를 배우게 하겠다.”
그녀는 오늘 구름무늬가 수 놓인 유오(*襦襖: 짧은 상의)를 입고 하의는 짙은 색의 주름진 긴 치마를 입었다. 옥잠과 금보요를 장식하여 단정하고 아리따웠다. 그녀는 얼핏 권세가 대단한 집안의 귀부인처럼 기품 있어 보였다.
물론 숙모를 잘 아는 자들은 그녀가 겉보기에만 화려한 자수 베개라는 걸 알았다.
“좋아요, 좋아요. 그렇게 되면 채미 언니를 따라 놀 수 있겠네요.”
허영음은 즐거워하며 말했다.
그녀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은, 채미 언니는 은자를 한 줌 가득 갖고 있어서 언제나 각종 맛있는 음식을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예전의 허영음이 아니었다. 지금, 지금은…….
“어머니, 저 지금 몇 살이에요?”
허영음이 큰 소리로 물었다.
숙모는 그녀를 상대하는 대신 고개를 돌려 허영월에게 말했다.
“하지만 무시당해서도 안 된다. 알겠니? 왕부처럼 훌륭한 가문에 있는 부인들은 어울리기 쉬운 여인이 한 명도 없단다. 너는 성격이 부드럽고 약해서 무시당해도 끽소리도 하지 않을 거잖니.”
허영월이 대답했다.
“알겠어요, 어머니.”
허신년과 왕 소저가 약혼하려면 양가 사이에 의례적인 움직임이 필요했다. 숙모는 한 집안의 대부인이었으므로 분명히 아무렇게나 얼굴을 내밀 수는 없었다. 그녀의 신분이 이에 적합하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숙모는 안식구들의 왕래를 영월과 영음 자매 둘에게 맡겼다.
하지만 숙모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녀는 미모와 지혜를 두루 갖춘 기이한 여인으로서, 그런대로 출중한 아들을 낳은 걸 제외했을 때 나머지 두 딸에 관해서 논하고자 한다면, 이 아이들을 대체로 마음에 들어 했다.
다만 지나치게 연약한 허영월은 의기소침한 목소리로 말대꾸 하는 천덕꾸러기였다. 허영음은 그다지 똑똑하지 않은 백치미 있는 어리석은 계집애였다.
숙모는 그녀들이 왕부에 가서 왕부 사람에게 무시당할까 봐 두려웠다.
이는 숙모의 쓸데없는 걱정이 아니었다. 왕부처럼 훌륭한 가문은 우월감이 강했다. 왕 소저가 신년에게 시집오는 건 신분이 낮은 집안에 시집오는 격이었으니, 왕가 안식구가 허가를 얼마나 존중할 수 있겠는가?
비록 대놓고 떫은 표정을 지을 정도는 아니더라도, 겉으로는 부드러운 척하되 속으로는 악랄하게 굴며 자극하는 이가 적지 않을 터였다.
허영월의 나약한 성격으로는…….
“에휴!”
숙모는 한스럽게 생각하며 탄식했다.
그녀는 이런 쓸데없는 일을 더는 생각하지 않고 불평했다.
“그 양천환이 어쨌거나 너희 큰 오라버니와 안면이 있으니 내가 그에게 서신을 써서 사천감이 영음을 제자로 받아주길 부탁한다고 했는데 뜻밖에도 꾸물거리며 대답을 주지 않는구나.”
허영월이 귤을 까며 말했다.
“어머니, 사천감이 이미 답을 줬어요. 제가 어제 서신을 받았는데 어머니께 말씀드린다는 걸 잊었네요.”
숙모는 깜짝 놀라 눈을 반짝이더니 기뻐하며 말했다.
“사천감이 뭐라고 하디?”
허영월이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양 대인이 말씀하시길 영음의 천부적인 자질이 비범하여 그가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래요. 그가 영음을 감정에게 추천했지만, 감정이 그를 상대하지 않았고, 심지어 그를 팔괘대에 올라오지도 못하게 했대요.”
‘알고 보니 영음의 천부적인 자질이 비범하구나!’
숙모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래도 우선은 영음더러 리나를 따라 수행하라고 하는 게 나을 듯했다.
이제 숙모는 대갓집 규수를 어릴 때부터 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렸다. 그녀는 신년과 왕 소저가 하루빨리 혼사를 치러 손녀를 낳아주길 기대했다.
그녀가 기른 아이가 재능이 없으니, 아들이 낳은 작은 아이를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숙모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약간 흐뭇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사모 소저는 재주가 좋더구나. 총명하고 지혜로워. 비록 경서를 많이 읽었지만 말이야. 신년은 더욱이 독서가니 장차 그들의 아이는 틀림없이 똑똑할 게야.”
그녀는 말을 하면서 손을 치켜들었다. 숙모의 하얗고 가는 손목에는 청록색 팔찌가 한 쌍 있었다.
“이 팔찌는 내가 그해 네 아버지에게 시집올 때 그가 내게 선물한 것이다. 너희 할머니께서 물려주신 거라 했지. 시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단다. 직접 며느리에게 전하지 못하셨기에 팔찌를 그에게 부탁하며 그가 장차 혼사를 치를 때 직접 아내에게 건네라고 하셨단다.”
숙모는 자신의 청춘을 추억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내가 사모에게 전해줘야겠구나. 음, 하나밖에 줄 수 없겠어. 나머지 하나는 칠안의 아내에게 줘야지.”
“와, 정말 예뻐요.”
허영음은 통통한 손을 뻗으며 말했다.
“어머니, 저 보여주세요, 저 보여주세요.”
숙모는 그래도 어린 딸을 아주 예뻐했기에 팔찌를 벗어 건네며 당부했다.
“조심하렴. 깨뜨리지 말고.”
숙모가 마침 말을 하고 있을 때, 허평지가 투구와 갑옷을 안고 장검을 허리에 찬 채 안방으로 들어왔다.
허평지는 현재 어도위 백호로, 세 경성 오위 중 신임 관리가 되었다. 비록 그는 작위가 없긴 했으나 일반적인 훈귀는 허평지를 만나면 공손하게 굴어야 했다.
숙모는 냄새를 맡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어째 또 청귤을 사셨어요? 집에 단 귤이 있는데.”
“요즘 신 걸 먹는 게 좋소.”
허평지는 조카와 아들이 없으니 안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눈을 똑바로 뜨고 거짓말을 했다.
이때 그는 어린 딸 허영음 손목의 팔찌를 보고 깜짝 놀랐다.
“당신 어찌 집안 대대로 전해지는 팔찌를 저 아이에게 준 것이오. 깨뜨리면 어떡하려고.”
허영음은 통통한 손을 치켜들고 자랑했다.
“아버지, 얼른 보세요, 제가 뭐처럼 보여요?”
“뭐 같다니?”
허평지는 무의식적으로 반문했다.
허영음은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같지 않아요?”
허평지는 그녀를 쳐다보더니 묵묵히 갑옷과 투구를 내려놓고 칼집을 들었다.
허영음의 통곡하는 소리가 허부에 울려 퍼졌다.
* * *
이영소가 시부의 방을 나와 뜰을 가로지르자 저택 자제들의 엄숙한 얼굴이 보였다. 모두가 패도를 든 채 긴 복도와 정원 등의 입구를 감시했다.
“무슨 일이 났는가?”
그는 한 시부 자제에게 다가가 물었다.
“어젯밤에 도둑이 지하실에 난입했습니다.”
그 시씨 자제가 나지막이 말했다.
‘지하실이라…….’
실의에 빠진 이영소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또 옆에 있는 다른 자제가 설명하는 말을 들었다.
“지하실은 산송장을 보관하는 곳입니다.”
시부의 부업 중에는 시체를 쫓는 업무가 있었으며, 지하실은 바로 시체를 보관하는 데 쓰이는 장소였다. 그밖에 시체들은 다른 용도가 있었다. 예를 들면 시부 자제가 성년이 된 후에 지하실에서 시체 한 구를 받아 꼭두각시로 삼을 수 있었다.
방계 자제는 보통 시체만 받을 수 있었고, 적계는 혈시를 받을 수 있었다. 혈시는 선배들의 제련을 거쳤기에 가장 낮은 것조차도 연정경의 전투력을 보유했다.
만약 혈시를 철시로 제련할 수 있다면, 시체를 다루는 데 있어서 조예가 깊은 셈이었다.
철시의 방어력은 6품 동피철골경 무사와 견줄 만했으나 전투력은 좀 약했다. 어쨌거나 기기와 연신경 때 갈고 닦은 위험에 대한 예지가 없기 때문이었다.
‘서겸이 어젯밤에 시현이 지하실에 침입해서 시람의 시체를 찾았다고 했지……. 시현은 시람이 이미 죽었다고 의심하고.’
이영소는 즉시 생각을 바꿨다. 그는 서겸을 급히 찾으러 가는 대신, 지하실의 위치를 제대로 물어본 뒤에 돌아서서 떠났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안마당에서 뻗어 나온 외진 정원에 이르렀다.
이곳에서 십여 명의 시부 자제들이 그가 가는 길을 가로막았다.
“이 공자님, 이곳은 시부의 금지 구역이니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이영소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불쾌해했다.
“행아의 정인인 내 길도 감히 막는다고?”
그는 모든 이를 밀치고 성큼성큼 정원으로 들어갔다.
시부 자제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
* * *
이영소는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 지하실에 이른 즉시 코를 막으며 말했다.
“냄새가 지독해 죽겠네.”
이내 그는 줄지어 있는 시체를 보았다. 마치 꼼짝하지 않는 조각상 같았다.
“서겸 그 늙은이는 분명히 이곳을 아주 좋아할 거야.”
이영소는 중얼거렸다.
그도 좌우간 남강에 한동안 머무른 적이 있었기에 시고부의 고사가 어떤 꼬락서니인지 알았다.
이영소가 눈썹을 두드리자 눈동자가 순식간에 희미해지면서 시야가 금세 달라졌다. 이 시체들은 순수한 산송장이 아니었다. 그들의 지혼(地魂)은 육신에 단단히 속박되어 있었다.
이곳은 마치 물속에 잠긴 고인 물처럼 소리 없이 고요했다.
하지만 적합한 방법으로 각성시키기만 한다면, 그들은 고통을 모르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날쌘 전사로 변할 것이었다.
남강 고족 중 짐승을 부리는 심고부와 시체를 다루는 시고부, 그리고 무형의 독을 쓰는 독고부는 언제나 가장 골치 아픈 존재였다.
그는 성큼성큼 안으로 걸어갔다. 반 각 뒤, 그는 마침내 산 사람을 만났다. 시가 제자 몇몇이 나무 문 앞을 지켰다.
나무 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안에서 촛불 빛이 새어 나왔다.
‘지하실 속의 지하실? 안에 뭘 보관하고 있는 거지?’
이영소는 가까이 다가갔다가 다시 저지당했다.
“밖에 누가 있느냐?”
시행의 도도한 목소리가 나무 문 안에서 전해졌다.
“나요.”
이영소가 말했다.
문 안에서는 한참 동안 대답이 없었다가 시행이 나지막이 이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더러 들어오라고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