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788
788화. 두려움이 솟구치다
“헛소리!”
시현은 분노와 원한을 거두더니 청수한 얼굴에 경멸을 드러내며 담담하게 말했다.
“칼자루를 그쪽이 쥐었으니 나는 당할 수밖에 없겠군. 이미 네 손에 들어갔으니 때리든 죽이든 마음대로 해라. 하지만 나를 헐뜯고 싶겠다만 그만 힘 빼는 게 좋을걸.”
‘기억의 선택적 망각이군. 어쩐지 그 시현이 이 시현은 겁쟁이라 자신을 마주하기 두려워한다고 했더라니…….’
허칠안은 시건원의 산송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의식을 잃기 전에 뭘 보았는지 잊었습니까?”
시현은 그의 시선을 따라 쳐다보았다. 시건원은 여전히 의자 위에 앉아 있었는데 왼발에는 신발을 신지 않아 여섯 개 발가락이 눈에 띄었다.
시현은 이 광경을 보더니 표정이 갑자기 석화처럼 굳어서는, 시건원의 발가락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모든 이가 허칠안이 살기등등하게 시현을 압박한다고 생각했을 때, 그는 도리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매우 뜻밖이라고 여길 만한 말 한마디를 내뱉었다.
“이 사건은 사실 아직 끝날 때가 아닙니다. 그렇지요, 시행?”
시행은 무고하면서도 망연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서 선배께서는 무슨 말씀이신지요?”
“무슨 말씀이냐고?”
허칠안은 빙그레 웃으며 반문했다.
“이 모든 배후의 검은손이 당신 아닙니까?”
이영소는 안색이 살짝 변했다.
정심 등 승려 역시 의아해하며 쳐다봤다. 이미 깨어나 창백한 얼굴을 한 정연도 포함해서 말이다.
시행이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선배님, 저를 오해하셨습니다.”
이 여인은 역시 광대다웠다. 그녀는 눈빛과 어조가 모두 진지하면서도 무고했으며 조금도 제 발 저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네가 버젓한 대봉 허 은라 앞에서 거드름을 피운다니…….’
허칠안은 ‘허’하고 소리를 내더니 말했다.
“우선은 부인하느라 급급해하지 말고 제 말을 끝까지 들어보시지요. 그동안 저는 시건원의 사건을 그래도 꽤 깊이 조사했거든요. 저희 처음부터 사건을 정리하자고요. 우선, 당신의 말에 따르면 시건원은 서재에서 시현에게 죽임당했습니다. 시간은 밤이었는데 당신들은 도착했을 때 방 안에 시현과 시건원이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죠. 그리고 후자는 이미 죽어 있었고요. 맞습니까?”
시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시부의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일입니다. 선배님께서는 설마 제가 거짓말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당연히 거짓말하지 않았지요. 당신이 본 건 전부 진짜니까요. 하지만 꼭 사실이라고 할 수는 없지요.”
허칠안이 말했다.
“시건원과 시현 모두 5품 화경으로 동피철골의 방어는 굉장합니다. 설령 시현이 불의에 습격했다고 해도 단기간 내에 시건원이 죽길 바라는 일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당신들이 도착했을 때 시건원은 이미 죽었고 시부는 이렇게 컸죠.”
이영소는 눈을 살짝 반짝였으며, 허칠안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중독이네, 시건원은 사전에 중독됐어.”
정심은 고개를 살짝 끄덕여 이영소의 말을 인정했다.
다른 승려는 묵묵히 들었다.
허칠안이 말을 이어갔다.
“이 때문에 제가 일부러 지하실에 잠입하여 시건원의 시체를 해부했습니다. 확실히 중독됐던 흔적을 발견했고요.”
그는 말을 하는 동시에 시건원 옆으로 걸어가 가슴팍의 옷을 찢었다. 그러자 그 안에 잘 봉합된 ‘상처’가 드러났다.
시행은 안색이 복잡해지더니 말했다.
“그랬군요. 그날 밤 지하실에 잠입한 사람이 선배님이었군요…….”
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보아하니 시현이 일찌감치 음모를 꾸며 암암리에 큰 오라버니에게 독을 넣은 듯합니다만.”
사람들의 시선이 즉시 인생을 의심하는 시현에게로 향했다. 그는 주위 일에 전혀 개의치 않으며 고개를 숙인 채 뭐라고 중얼거렸다.
‘자폐다…….’
“아미타불.”
정심은 고개를 젓더니 목소리를 낮추고 불호를 외웠다.
“아니, 독을 넣은 사람은 시현이 아니라 당신 시행이지요.”
허칠안은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들은 문득 시선을 돌려 시행을 쳐다보았다.
이영소는 눈을 크게 떴다.
시현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멈췄다.
시행의 아름다운 얼굴이 다소 굳었다.
“선배님께서는 여전히 저를 믿지 않는군요?”
허칠안은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고 차분하게 말했다.
“여러분, 아직 기억하십니까? 왜 시건원이 시현 그의 출생을 알리지 않았지요? 고작 그가 충격을 받을까 봐서요? 5품 화경까지 수련할 수 있는데 내면이 단단하고 질기지 않은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 충격이 뭐라고요? 처음에는 저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시현의 이혼증을 봤을 때 갑자기 왜 시건원이 그의 출생을 숨겼는지 깨달았지요. 이렇게 되면 그의 병세만 악화되고 심지어는 좋지 않은 일들이 발생할 테니까요. 예컨대 저희가 지금 본 결말처럼요.”
사람들은 생각에 잠겼다.
이영소는 문득 깨달았다. 그는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하지만 이게 행아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허칠안은 청아하고 수려한 유부녀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시행의 전남편이 시건원 때문에 죽었습니다. 시행은 마음에 원한을 품었고 그래서 부자 둘이 시람의 혼사로 갈등이 생겼다는 것을 이용했지요. 암암리에 시현이 그의 출생을 알게 하여 이혼증이 악화되도록 자극했습니다. 동시에 시건원에게도 독을 주입해 그가 시현의 손에 합리적으로 죽도록 했지요. 시현은 어릴 때부터 과격하였고, 그의 다른 면은 더욱이 과격하고 악랄하지요. 시건원이 바로 그의 어린 시절을 비참하게 만든 원흉이었고, 이게 바로 시건원이 그가 사랑하는 소저를 다른 사람에게 시집 보내려 한다는 이유인 걸 알게 되었으니 그가 어떤 반응을 했을까요?”
내청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시행은 그 시선들이 이 순간 전부 자신에게 집중되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녀는 그저 이영소를 쓱 쳐다보더니 말했다.
“서 선배님, 이건 전부 선배님의 추측이지 증거가 없습니다. 게다가 시람은 지금까지 행방불명이지요. 그녀는 시현과 가까운 사이니 시현의 신분을 알지 못했을 거란 보장은 없습니다. 어쩌면 그의 여섯 발가락을 이미 보았을지도 몰라요. 이렇기에 그녀는 시현을 사랑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 점은 여러분이 시현에게 그의 왼발에 발가락이 여섯 개 있다는 걸 알았는지 몰랐는지 물어보면 알게 되겠죠.”
시행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녀는 황보가에게 시집가기를 원치 않아서 큰 오라버니에게 독을 주입했고, 암암리에 시현의 진짜 신분을 까발린 뒤에 도망쳤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녀는 행방불명이지요. 선배님, 제 이 추측이 합리적이지 않나요?”
‘아직도 인정하지 않는다니!’
“고작 시집가길 원치 않기 때문에?”
한 젊은 승려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어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렇다면 시행 역시 시건원이 전 남편을 철시로 단련했다고 해서 자신의 친 오라버니를 죽이지는 않았겠죠.”
이영소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선배님, 시건원은 부득이하게 시행의 전남편을 철시로 단련한 겁니다. 결코, 고의가 아니에요. 시행이 설령 마음속에 원한이 있다고 해도 그저 원한일 뿐입니다.”
허칠안은 그를 상대하지 않고 웃더니 말했다.
“당신의 동기는 내가 확실히 잘 알지 못하지만 이건 뒷이야기입니다. 시행, 사당 아래 밀실에 갇혀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제가 말해야겠습니까?”
시행은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허칠안은 사람들을 둘러본 뒤 시현을 쳐다보았다.
“시람은 시행이 사당 밀실 안에 가두어두었습니다. 제가 이미 그녀를 찾았어요.”
시현은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입술을 떨었다.
“그, 그녀는 괜찮습니까…….”
“이영소, 자네가 가서 사람을 데려오게.”
허칠안은 입구를 향해 아래턱을 치켜올렸다.
“제가요?”
이영소는 자신을 가리켰다.
“그럼 내가 하겠나?”
허칠안이 반문했다.
‘하지만 나는 밀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이영소는 본능적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그는 진상을 맞닥뜨릴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그는 문 앞에 서서 불쾌하게 발을 들고 문턱을 툭툭 치는 황갈색 고양이 한 마리를 보았다.
그리하여 그는 가지 않으면 서겸 이 죽일 노인네가 화를 낼 걸 알았기에, 눈 딱 감고 발을 내디뎌 문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내청은 조용해졌으며,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불문의 모든 승려의 마음은 기대 반, 두려움 반이었다. 그들은 사건이 진전되기를 기대하는 한편, 이따가 허칠안이 그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했다.
선사들은 아직 싸울 힘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귀신같이 헤아리기 어려운 저 단칼을 마주한다면 조금도 승산이 없을 거라고 스스로 판단했다. 게다가 상대 역시 계율을 시전하고 상쇄할 수 있는 꼭두각시가 있었다.
정심 그는 허칠안의 신분과 수련 경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은 어쩌면 승부를 걸어보자는 생각이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정심은 이런 방면의 요행 심리는 전혀 품지 않았다.
반 각 뒤, 이영소는 머리카락이 흐트러지고 얼굴에 때가 낀 여인을 가로로 안은 채 들어왔다. 방금 함께 나선 황갈색 고양이는 그를 따라오지 않았다.
시행은 안색이 좀 더 창백해졌다.
시현은 여인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는 거리가 가까워지자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여인의 얼굴을 똑똑히 보았다.
“시람…….”
그는 떨면서 울부짖는 듯한 소리를 냈다.
시람은 입을 벌렸다. 그는 감정이 격해져 말을 할 수 없었고, 목 놓아 울었다.
“시람, 시람…….”
시현은 몸을 비틀어 그녀 앞으로 움직였다. 그는 여인을 여러 차례 자세히 살피더니 희비가 교차하는 심정으로 말했다.
“별일 없으면 됐소, 별일 없으면 됐소.”
허칠안은 예쁜 유부녀를 자세히 살피며 물었다.
“또 늘어놓을 궤변이 있습니까?”
시람의 출현은 시행의 죄상을 드러내는 확실한 증거였다. 여기서 억지로 궤변을 늘어놓아도, 계율이 그녀를 기다리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시행도 이 이치를 깨달았다. 그녀는 더는 별다른 말 없이 천천히 이영소에게 걸어가 양손을 들고 성자의 준수한 얼굴을 받치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랑, 나는 이랑이 방탕아인지 진작 알고 있었어요. 저는 우리가 처음 만난 순간부터 이랑이 어떤 사람인지 알았지요.”
그녀는 탄식했다.
“저는 본래 이랑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랑이 굳이 저를 건드리려 했죠. 당신이 천절곡에서 돌아온 뒤에 저는 이랑을 사랑하는 본심을 더는 거스르기에 어려웠어요. 그때 생각한 건 설령 이랑이 방탕아라고 해도 상대를 위해 목숨을 내놓길 원하는 남자라면 괜찮다는 거였어요.”
“행아, 그대, 구태여 왜……”
이영소는 애석해했다.
‘원한 때문에 왜 이렇게까지? 고작 시건원이 죽은 남편을 철시로 단련했다는 이유 때문에?’
이영소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가 막 무언갈 말하려 했을 때, 그의 뺨을 받친 시행이 갑자기 손바닥을 반대로 뒤집어 자신의 미간을 툭 쳤다.
행동이 너무 잽싸 이영소는 미처 막아낼 수 없었다. 그는 눈동자가 격하게 수축하는 동안 기기를 머금은 손바닥이 시행의 미간을 툭툭 치는 걸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한 손이 이영소의 눈동자 앞에 나타나더니 시행의 손목을 잡았다.
“자살하고 싶습니까? 제가 허락했나요?”
허칠안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서 선배님…….”
성자는 순간 놀라면서도 기뻤다.
‘선배는 정말 참 믿음직스럽습니다. 선배는 영원히 제 뒷배예요’.
그러다 이영소는 즉시 두려움이 솟구쳤다. 그는 시행의 양 어깨를 붙잡고 놀라면서도 분노하면서도 애석해했다.
“자살? 말끝마다 나를 사랑한다고 해놓고 이렇게 쉽게 자살하겠다고? 왜?”
시행은 그를 상대하는 대신 옆으로 고개를 돌려 허칠안을 바라보더니 씁쓸하게 말했다.
“선배님, 저는 할 수 있는 말이 더는 없습니다. 죽음으로 사죄할 수밖에 없는데 이 역시 관여하시렵니까?”
“말을 아직 다 마치지 않았는데 지금 죽고 싶다는 건 너무 서두르는 거 아닙니까?”
시행은 웃는 듯 마는 듯한 서겸의 표정과 상대방의 따가운 눈빛을 마주하니, 갑자기 발가벗겨져 어떠한 비밀도 숨길 수 없어진 듯한 기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