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792
792화. 수금탄
첫째 새언니 이향함이 말했다.
“사모야, 지난번에 네가 허부에 갔을 때 그 허씨 집안 마님이 네게 규칙을 세웠니?”
왕사모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둘째 새언니 조어용이 그녀를 쳐다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생각하면 있을 거야. 너 그 허씨 집안 마님의 술책이 뛰어나다고 하지 않았었니? 사모야, 난감해하지 말렴. 새 며느리가 집에 들어오면 시어머니는 항상 규칙을 세우는 법이거든.
나와 형님이 시집온 그해에도 어머니께서 일깨워주셨잖니. 하지만 너는 우리랑 달라. 너는 왕가의 소저고, 장차 허신년과 결혼하면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 시집가는 셈이잖니.
허신년은 우리 왕가에 의지해야만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어. 그러니 앞으로 네가 허씨 집안에 가면 정말이지 권세를 부릴 수 있겠지. 우리 이번에는 허씨 집안 아가씨에게도 규칙을 정해주자고. 그녀가 허씨 집안과 왕가의 차이를 알게 해주는 거야.”
‘누가 누구에게 규칙을 세울지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데. 언니들이 허영월 그 계집애와 팔씨름한다고 생각하면…….’
왕사모는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영월 동생은 총명하다고요. 그녀를 건드릴 수 없을 거예요.”
첫째 새언니 이향함은 경험자다운 태도로 우월감 넘치는 미소를 드러냈다.
“사모 네가 경험이 없어서 그래. 결혼하기 전에 두 안식구가 왕래하고 감정을 교류하는 건 그저 하나의 일일 뿐이야. 더 중요한 건 서로 알아보는 거란다. 네가 시어머니가 되면 속에 이런 생각이 없겠니?
그 허씨 집안 아가씨가 오늘 이곳에서 보고 듣는 걸 전부 돌아가서 허씨 집안 부인에게 알릴 거란다. 우리가 그녀에게 약간 알아듣게 말해서 허씨 집안 부인에게 앞으로 너를 괴롭히지 말라고 경고하는 거지.”
자고로 고부 관계는 ‘아귀다툼’이라는 네 글자로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었다.
그들은 집안을 관리하는 대권을 놓고 다퉜다.
호족일수록 재정, 가사 관리 대권 다툼이 더 치열했다.
“이거 별로인데요…….”
왕사모는 입꼬리를 치켜올리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첫째 새언니가 웃으며 말했다.
“안심하렴. 언니들은 분수를 안단다.”
왕사모는 어쩔 수 없이 말했다.
“좋아요. 기왕 오랜 세월에 걸쳐 일반화된 규칙이라면 새언니 둘의 뜻을 따를게요.”
그녀는 말을 하면서 찻잔을 받치고 차를 마시는 자세를 취해 살짝 치켜올린 입꼬리를 가렸다.
두 집안의 혼사에는 남녀 쌍방의 감정이 어떻든지 간에 언제나 집안과 집안 사이의 ‘게임’이 존재했다.
시어머니는 아직 시집오지 않은 며느리에게 규칙을 세우면서, 친정은 충분히 깊고 두터운 교양을 드러내야 하며, 반대로 자신의 딸이 시집가는 시댁에서는 자신의 딸을 잘 대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전부 인지상정인데 말이다.
왕사모는 두 새언니가 이렇게 열정적인 걸 보고 갑자기 마음이 놓였다.
지난번에 그녀가 허씨 집안에 손님으로 갔을 때 허영월 이 죽일 계집애가 중간에서 수시로 방해하였더랬다. 왕사모도 그녀가 하는 대로 따라 할 작정이었다.
마침 그녀들이 얘기를 나누던 중에 내청 밖에서 자매가 걸어왔다. 여동생의 키는 아직 언니 허리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녀는 언니한테 작은 손이 이끌린 채 따라온, 약간 어리바리한 계집애였다.
언니 쪽은 두 새언니로 하여금 눈을 반짝이게 했다. 그녀는 털을 덧댄 비단 피풍의를 걸치고 양가죽 장화를 신었다. 단정하게 다듬은 앞머리는 작은 얼굴을 청아하고 호감 있게 꾸며주었다.
그녀는 여리여리하면서도 부드러운, 가난한 집 고운 딸이었다.
왕가 두 새언니는 허영월을 본 순간 그녀를 인정했다. 이렇게 규방에서 길러져 딱히 세상 물정을 모르는 가난한 집 고운 딸은 아마 자신이 조금이라도 불쾌함을 보이면 몸 둘 바를 모르고 쩔쩔맬 터였다.
그녀들이 교활한 질문을 좀 하면 허영월은 얼굴이 빨개지고 두 손은 둘 곳을 찾지 못할 것이다.
이런 계집애를 괴롭히는 일은 확실히 재미없었다.
그 어리바리한 아이라면 당연히 두 새언니에게 무시당할 터였다.
“영월 동생, 왔구나.”
왕사모는 일어나서 그녀를 맞이하더니 소개하였다.
“여기는 내 큰 새언니고, 여기는 둘째 새언니야. 영월 동생은 나를 따라서 부르렴.”
허영월은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영월이 형님 두 분을 뵈어요.”
큰 새언니 이향함이 웃으며 말했다.
“정말이지 용모가 빼어난 소저구나. 장차 어느 집 공자님이 우리 영월 여동생에게 장가들 수 있을지 모르겠네.”
허영월은 어색하게 웃더니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영음, 얼른 형님이라고 부르렴.”
허영음은 고개를 들더니 옅은 두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또 형님이에요? 이 언니들도 둘째 오라버니한테 시집와요?”
네 여인은 표정이 순간 굳었다.
둘째 새언니 조어용은 즉시 허영월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허영월이 얼굴이 새빨개져 여동생을 꾸짖는 것도 잊은 걸 보자 할 수 없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철모르고 한 아이의 말이지. 철모르고 한 아이의 말이야.”
왕사모는 허영월을 쳐다보더니 아무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께서 일어나셨을 테니 우리 문안을 드리러 가자꾸나.”
그녀는 허씨 집안 자매를 데리고 부인을 만나러 가려 했다.
* * *
그리하여 일행은 왕사모의 안내를 받아 왕부 더 깊은 곳으로 갔다. 그녀들은 복도를 지나치고 뜰을 지나쳐 큰 방에 이르렀다.
방 안에는 부드러운 평상이 두 개 있었으며, 푹신푹신하고 따뜻한 양털 담요가 깔려 있었다. 평상 위에 놓인 정사각형의 작은 탁자 위에는 말린 과일, 육포, 약과, 떡 등의 먹을거리가 있었다.
좌측 부드러운 평상 위에는 왕정문의 본처인 왕 부인이 앉아 있었다.
왕 부인은 쉰이 넘었으나 잘 관리하여 뚱뚱하지도 마르지도 않았으며 혈색이 좋고 불그스름했다. 눈가의 촘촘한 잔주름은 오랜 세월 축적된 매력이 더해져 있었다.
“어머니!”
“어머니!”
“부인!”
여인들은 잇따라 예를 갖추었다. 허영음만이 이런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아 다소 어색했다.
콩알이는 어려서부터 아무런 구속 없는 환경에서 생활하여 이렇게 많은 규칙에 얽매여 구속받지 않았다.
왕 부인은 인자하게 고개를 끄덕인 뒤 허씨 집안 자매에게 시선을 던졌다.
“허씨 집안 소저인가?”
왕 부인은 허신년의 더할 나위 없이 준수한 자태를 떠올렸다. 그러다 그녀는 허영월의 청아하고 속되지 않은 뛰어난 모습을 보자 침음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자매 둘이 저마다 특색이 있구나.”
그녀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 앉으라고 손짓하여 불렀다.
큰 새언니 이향함은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숨을 내뱉더니 대화를 시작했다.
“날씨가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작년 이맘때 숯불을 밤새 떼면 갑갑해서 괴로웠거든요. 지금은 밤새 떼지 않으면 산 채로 얼어 죽게 생겼어요.”
둘째 새언니 조어용이 말을 이어받았다.
“누가 아니랍니까.”
이때 그녀는 콩알이가 사람 키 반만 한 화로를 주시하며 멍하니 있는 걸 발견하였다. 화로 안에서 타는 건 연기 없는 수금탄이었다.
‘이 아이는 아마 이렇게 연기가 나지 않는 숯을 본 적이 없겠지…….’
둘째 새언니는 이런 생각이 번뜩여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폐하께서 저희 왕부에 수금탄 열 근을 하사하셨지요. 이런 숯은 연기 냄새가 나지 않고, 태우면 상쾌한 향기까지 나더군요.”
둘째 새언니는 우월감 넘치는 눈빛으로 허영월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아무런 반응 없이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설마 수금탄이 뭔지 모르나…….’
둘째 새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
“황제께서 사용하는 거야.”
허영음이 손에 약과를 쥔 채 큰 소리로 말했다.
“저희 집에도 있는데요.”
* * *
왕 재상은 서재 안의 탁자에 앉은 뒤 손에 찻잔을 받치고 차 뚜껑을 잔 가장자리를 가볍게 툭툭 쳤다. 그러면서 그는 미래 사위의 보고를 경청했다.
“재상 대인, 올해 겨울에는 백성들이 분명히 견디기 어려울 겁니다. 더욱이 가뭄과 수해를 겪은 지역은요. 현지 백성이 이 겨울을 어떻게 견디겠습니까?”
허신년은 격앙된 어조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제가 폐하께 상소를 올렸습니다. 각지 곡물 창고의 실태를 조사하여 사전에 은자 지급으로 규휼할 준비를 해달라고 요청하였사온데 재상께서는 왜 제 상주서를 빼셨습니까.”
왕 재상은 인내심 있게 다 듣더니 차를 홀짝 마시고 말했다.
“신년, 벼슬아치로 큰일을 이루려면 먼저 시야를 넓히고 대국을 보아야만 미리 안배할 수 있네. 자네는 그저 이 겨울에 백성들이 견디기 어려운 것만 볼뿐, 조정의 어려움은 보지 못하지 않는가.”
그는 찻잔을 내려놓고 상주서 한 더미를 허신년 앞으로 밀었다.
“보게, 호부의 상주서이네.”
허신년은 상주서를 펼치고 아주 빠른 속도로 다 읽었다. 그는 안색이 크게 변했다.
왕 재상은 탄식했다.
“조정에는 이미 은자가 없네.”
허신년이 중얼거렸다.
“어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선제께서 20년을 낭비하시는 바람에 국고가 텅 비었네. 실속 없이 겉만 화려하여 대봉의 근간은 이미 흔들리고 있지. 수개월 전, 12만 대군이 요족 및 오랑캐를 지원하였고 위연이 10만 군대를 이끌고 정산성을 함락시켰네.
비록 대승이라고 해도 군량과 마초, 전투마, 장비 중 은자를 소모하지 않은 게 하나라도 있는가? 국력이 쇠약한데 그런 규모의 전쟁을 버티는 데는 소모가 엄청나네. 자네가 상상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왕 재상은 양손을 뻗어 화로에 가까이 가져가 차디찬 손을 쬐면서 말했다.
“본래는 그래도 고생스럽게 버텨 올해만 넘길 수 있었으면 됐네. 다음 해에 추수하면 대국을 안정시킬 수 있었지. 누가 알았겠는가. 인간의 계획은 하늘의 뜻을 벗어나지 못하는 법. 이 늙은이가 수십 년을 살았는데 지금껏 이렇게 혹한 겨울을 겪은 적이 없네.”
‘조정 내부의 고질병은 휩쓸기 어렵고, 천재지변은 끊이지 않고, 국고는 텅 비었고, 수습 곤란이구나…….’
허신년은 마음이 무거워져 물었다.
“벗어날 방법이 있습니까?”
왕 재상은 화로를 주시하면서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시간이네.”
그가 말했다.
한참을 침묵한 왕 재상이 말했다.
“생선을 요리할 때 자꾸 만지면 부서지고, 백성을 다스릴 때 번거롭게 하면 흩어지네. 생선 요리하는 법을 알면 백성을 다스릴 줄도 아는 게지. 만약 외환이 없다면, 시간이 모든 걸 달랠 수 있네.”
허신년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만약 외환이 있다면요?”
‘하늘이 대봉을 멸망시키겠지…….’
왕 재상은 돌아서서 말했다.
“그의 소식이 있는가?”
허신년은 왕 재상이 가리키는 게 누구인지 알았기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금까지 형님은 저택으로 서신을 보내오지 않았습니다.”
“허씨 집안도 그해에는 대부호였지.”
왕 재상은 뜬금없이 개탄하였다.
허신년의 눈꺼풀이 부르르 떨렸고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운주 그쪽 일은 조정에서 어떻게 해결할 생각입니까?”
원경제가 처형당한 뒤 두 권종이 기밀로 분류되어 내각 밀실에 봉해졌다.
그중에 한 부는 정3품 이상의 실권 관원과 대학사만 열람할 수 있었다.
권종 내용은 그해의 탐화랑과 감정의 이제자 허평봉이 500년 전 황실의 후예와 결탁하여 운주에 근거지를 세우고 비밀리에 발전하며 반역을 꾀했다는 것이었다.
옛일로 전 제당(齊黨)이 무신교와 결탁하여 운주 산적을 도운 사건, 원경제가 매관매직하여 벌어진 우주(禹州) 철광을 운주에 밀수한 사건 등이 다시 거론되었다.
오늘날 야경꾼, 어사, 대리사는 모든 경관을 비밀리에 엄중히 조사하여 존재할 수 있는 첩자를 가려냈다.
각지 관원 역시 비밀리에 조사를 받았다.
다른 권종 한 부에 기재된 건 원경제, 진북왕 그리고 정덕제가 한 사람이라는 진상이었다.
이 권종은 공개하지 않은 자료라 아는 자가 극히 드물었다.
태자, 아, 아니, 영흥제는 이 비밀을 가문의 비밀로 전할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