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810
810화. 육박(六博) 도박장
꼬박 두 시진 후, 허칠안이 제안하였다.
“국사, 먼저 점심부터 먹죠.”
“자네와 나의 수련 경지로는 진작부터 밥을 먹을 필요가 없었네.”
“아니요, 저는 그래도 밥을 먹을 거예요. 저는 무사잖아요.”
“안 되겠어?”
낙옥형은 화를 냈다.
“하, 무사의 대단함을 모르시나 보죠.”
* * *
“국, 국사, 해 질 무렵이에요…….”
“수행이 점입가경인데 어찌 중도에 포기할 수 있겠는가?”
“기, 기왕 그렇다면 저는 버젓한 3품 무사니 국사가 얕잡아보게 할 수는 없죠…….”
* * *
“국사, 날이 어두워졌어요. 저 밥 좀 먹게 해주세요.”
“…….”
“국사, 안 힘들어요?”
“헛소리 작작 하고, 수행에 전념하도록.”
* * *
“국사, 날이…… 밝았어요…….”
그는 둘둘 말린 이불에서 머리를 내밀었다. 허칠안은 창밖으로 날이 환하게 밝아오는 걸 보았다.
이 순간 그는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날이 밝은 뒤에는 인격이 바뀌어 ‘욕(欲)’ 인격이 사라질 터였다. 드디어 허칠안은 지독한 늑대 소굴에서 기어 나올 수 있었다.
그는 어제 자시부터 이틀 밤 그리고 반나절 동안 정말 침상에서 내려온 적이 없었다.
‘드디어 끝났다. 오늘은 누구도 나를 붙잡을 수 없어. 예수가 와도 소용없다고, 나 말했어…….’
허칠안은 속으로 분발했다.
낙옥형의 눈에 비친 욕구가 점점 사라진다는 건 인격이 바뀌기 시작한다는 의미였다.
그녀는 이불을 끌어안고 일어나 앉아 난잡하게 어질러진 침상을 바라보았다. 낙옥형은 얼굴이 살짝 붉어지더니 부끄러운 눈빛을 했다.
“국사, 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졸리면 좀 더 쉬셔도 무방해요.”
허칠안은 허리의 통증을 참으며 이불을 젖히더니 침상에서 내려갔다. 그는 몸을 굽혀 바닥에 널브러진 옷을 주우려 했다.
“잠깐.”
낙옥형이 갑자기 그의 손을 잡아당겼다.
허칠안은 굳은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미녀 국사가 아름다운 눈에 두려움을 머금고 있는 게 보였다. 그는 두려워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지금 나는 업화가 몸에 달라붙어 언제 불에 타 죽을지 몰라. 자네 우선 나와 한 번 쌍수하자고. 아니면 나 무섭단 말이야!”
허칠안은 가슴이 철렁해서는, 힘겹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저희는 이미 하루하고도 이틀 밤을 쌍수했으니 별일 없을 겁니다.”
낙옥형은 고개를 살짝 젓더니 입술을 오므린 채 애처롭고 가련한 자태로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업화를 다루지 못할 확률이 있네. 10할의 확신이 있는 게 아닌 이상,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아.”
‘아이고, 내 국사는 정말 너무 힘차…….’
허칠안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휘장이 가볍게 흔들리더니 오랫동안 멈추지 않았다.
* * *
정오가 되어 허칠안은 빈방에 이르러 부도보탑을 꺼냈다. 그는 단숨에 3층으로 올랐다.
모남치는 이 못난 남자가 자신을 달래러 온 줄 알고선 황급히 정색했다. 그녀는 양손을 합장하여 불문에 귀의한 듯한 자세를 취했다.
어찌 예상했겠는가. 허칠안은 그녀를 보지도 않고 곧장 탑령 노승 앞으로 걸어가 바닥에 가부좌를 틀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대사님, 저 깨달았습니다.”
탑령 노승은 어리둥절하다가 매우 기뻐하며 물었다.
“뭘 깨달았는가?”
허칠안의 얼굴에는 기쁨도 슬픔도 없었다.
“색즉시공이요.”
탑령 노승은 의아해하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군!”
모남치는 믿기 어렵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 * *
묘재방은 입에 탕후루를 물고 천천히 옹주성 육박(六博) 도박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는 외모가 평범하고 피부가 까무잡잡하며 두 눈에 생기가 넘쳐 여위었으면서도 총명한 인상을 주었다.
묘재방은 또 시정잡배의 경박함 없이 기질이 세차고 태도가 단정했다.
그는 한 바퀴 둘러본 뒤 주사위를 던지는 탁자로 걸어갔다.
묘재방이 도박장에 온 이유는 두 가지 일 때문이었다. 첫째, 그는 도박장 사장 류랑(柳浪)을 보러 왔다. 둘째, 그는 가진 돈이 곧 떨어질 참이라 이곳에 와서 여비를 좀 벌려 했다.
주사위를 헤프게 굴리는 자가 ‘매정리수(*買定離手: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손을 뗀다는 의미)’라고 외쳤다.
탁자 옆의 도박꾼들이 잇따라 돈을 걸었다. 그들의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이 주사위 굴림통을 쫓아다녔다. 도박꾼들은 흥분한 상태로 ‘대(大)’ 혹은 ‘소(小)’를 외쳤다.
묘재방은 귓바퀴를 살짝 움직여서는, 누군가 굴림통 속의 주사위로 잔꾀를 부린 소리를 들었다.
도박장은 다 이러했다. 그들도 나름 문을 열고 장사하는데 어찌 전부 운에 맡길 수 있겠는가? 도박장은 대체로 어느 정도는 농간을 부리곤 했다.
하지만 묘재방에게는 상관없었다. 그는 도박장에서 아무리 많은 사기꾼이 나온다 한들 지지 않았다.
이는 그가 예전에 여러 차례 경험을 통해 결론을 내린 바였다.
묘재방은 대략 한 달여 전쯤, 자신의 운이 갑자기 좋아졌음을 알아차렸다.
그가 어디를 가든 항상 좋은 기회가 있었다. 맨 처음에는 고향 마을의 부잣집 아가씨가 영문도 모른 채 그를 흠모하였더랬다.
하지만 묘재방은 이성적인 젊은이였기에 부잣집 소저의 사랑 고백을 아무런 망설임 없이 거절했다. 그는 계속해서 강호를 떠도는 여정을 이어갔다.
그는 강호를 누비는 과정에 시시때때로 강호 협객과 친분을 나누고, 인정이 두터운 선배에 가르침을 받았으며 각지 선녀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한 번은 그가 소협들과 주색에 빠져 방탕한 연회를 즐기던 중, 순간 해이해져 기녀에게 동정남의 몸을 빼앗긴 적이 있었다. 묘재방은 수치와 분노를 금할 길이 없었다. 그의 동정은 미래의 아내에게 주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기로 맹세했다.
그런 뒤, 이튿날 그는 또 기녀와 침대보를 뒹굴었다.
좋은 날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묘재방이 청주를 누빌 때 고수 한 무리를 마주쳤는데 예전에 만난 고수와 확실히 친분을 맺을 수 있었던 것과는 달랐다. 이번에 만난 그 무리는 성격이 괴팍하여 대화가 되지 않으면 대판 싸움을 벌였다.
다행히 그 당시 그의 몇몇 벗이 지나가다가 나서서 도와줬다. 게다가 묘재방 자신에게도 능력과 수단이 있었기에 그는 가까스로 도망칠 수 있었다.
그런 뒤 그는 갖가지 우연의 일치와 행운으로 추격을 성공적으로 피해 옹주에 이르렀다.
묘재방은 도박장에서 고작 양주향의 시간을 보냈을 뿐이었지만, 벌써 은자 사백 냥을 따 눈앞에 가득 쌓아 두었다.
그가 육백 냥을 땄을 때, 도박장에서 구경하던 한 건장한 사내가 걸어오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형씨, 저희 사장님께서 보자고 하오.”
‘왔구먼…….’
묘재방은 그를 쳐다보더니 무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앞에 있는 부스러기 은전과 은괴를 챙기고 불룩한 지갑을 손에 들더니 말했다.
“안내하시오!”
묘재방은 건장한 사내를 따라 도박장 대청 우측의 계단 앞에 이르렀다. 그들은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랐다.
건장한 사내는 한 별실 입구에 멈추고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게!”
안에서 중년 남자의 중후한 목소리가 전해졌다.
* * *
건장한 사내는 문을 열고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청하는’ 손짓으로 묘재방에게 방 안으로 들어가라는 의사를 표했다.
방 내부는 장식이 우아했다. 동쪽에 놓인 박고가(*博古架: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진열장) 위에는 도자기 병, 옥기, 골동품이 진열되어 있었다. 남쪽 벽에는 명인의 서화가 가득 걸려 있었다.
동쪽에 있는 부드러운 평상 가운데에 찻상이 놓여 있었다. 튼실한 체격의 중년 남자가 그 찻상 옆에 앉아 있었다. 그는 구름무늬가 수 놓인 푸른색 장포를 입었으며, 기품 있는 부잣집 차림이었으나 기질은 거칠고 강해 보였다. 중년 남자는 무예를 익힌 자의 몸집이었다.
그는 좀 이도 저도 아닌 모습으로 보였다.
그는 마침 자사호(紫砂壺)를 쥐고 수증기가 모락모락 나는 차를 잔에 따르던 참이었다. 중년 남자가 잔을 받치고 한 모금 마시더니 묘재방을 여유롭게 쳐다보았다.
“귀하께서는 성함이 어찌 되오?”
“묘재방이오.”
중년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이노야라고 부르면 되오. 길에서 만난 벗은 전부 나를 이렇게 부르오.”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물었다.
“옹주 어느 지역 사람이오?”
묘재방은 대답하는 대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노야는 나를 무슨 일로 찾으셨소?”
중년 남자 역시 화를 내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쪽도 적잖이 땄으니 적당한 시기를 봐서 물러나시오. 앞으로는 내 도박장에 오지 마시오. 만약 동의한다면 우리 모두 친구요. 옹주성에서 지내다가 문제가 생겼을 때 내 이름을 대면 되오. 이 정도 체면은 내게 있소만.”
사실 이는 그를 달래는 말이었다. 이노야 같은 인물은 평민들 눈에 확실히 대단해 보일 터였다. 하지만 진짜 파벌과 가문의 눈에는 그저 건달일 뿐이었다.
그는 돈이 좀 있고, 수하에 수십 명을 데리고 있으며 관아의 어떤 관리들과 이익을 주고받는 자였다.
용신보처럼 큰 세력은 하품하기만 해도 육박 도박장을 사라지게 할 수 있었다. 하물며 지금 옹주에서는 무림대회가 열려 각지의 영웅호걸이 죄다 모이지 않았는가.
강호 산인 대부분은 전부 열 걸음 만에 사람을 벨 수 있을 정도로, 천하에 적이 없는 자들이었다.
어디 도박장 사장이 감히 그들을 건드릴 수 있겠는가.
묘재방이 웃으며 말했다.
“벗을 삼는 건 됐소. 내가 가길 바라는 것도 괜찮소. 하지만 이노야에게 묻고 싶은 일이 있소만.”
중년 남자는 담담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묘재방은 까무잡잡한 얼굴을 문지르더니 물었다.
“내가 처음에 옹주성에 온 어제 관아 입구를 지나가다가 관아 입구에서 종이돈을 태우며 곡하고 있는 부인을 마주쳤소. 관아의 하급 벼슬아치가 그녀를 몰아내며 구타하였지.
나는 보고도 지나치지 못해 상황을 제대로 물었소. 그 부인이 말하길 그녀의 남편은 장흑(張黑)이라고 하는데 도박을 좋아한다고 했소. 얼마 전에 장흑이 도박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누군가에게 살해당했고 가지고 있던 돈이 전부 날아갔다더군.”
중년 남자는 표정이 싸늘해졌으며, 눈빛 역시 점점 차가워졌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묘재방이 그를 응시했다.
“부인이 말하길 야경을 돌던 야경꾼들이 범인의 모습을 보았다고 하오. 육박 도박장 사람이 한 짓이라더군. 본래 야경꾼이 법당에 나가 증명하려 했으나 무슨 일인지 생각을 바꾸었소.”
묘재방은 몸을 앞으로 숙이고 중년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오늘 정보들을 좀 알아냈소. 예컨대, 장흑의 도박 기술이 괜찮아 육박 도박장에서 자주 돈을 딴다는 것. 오늘 도박장에서 이백여 냥의 은자를 땄소. 또 예컨대 야경꾼이 생각을 바꾼 이유가 입막음용으로 당신의 은자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
중년 남자는 천천히 일어났다. 그는 묘재방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기에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상대를 하찮게 여기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 자식, 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게냐? 뭘 하고 싶은 거지? 장흑을 대신해 정의를 주장할 셈이냐? 관아에 가서 나를 고발하려고?”
묘재방은 고개를 저었다.
“관아는 이 일을 신경 쓰지 않을 테지. 네가 이미 다 뇌물을 주었을 테니까.”
중년은 경멸과 조소 가득한 얼굴로 크게 웃기 시작했다.
“그걸 아는 이상…….”
그의 눈동자에서 섬뜩한 빛이 비쳤다. 뒤이어 그는 자신의 목덜미에서 분출된 핏빛 안개를 보았다.
중년 남자는 목덜미를 감싼 채 비틀거리며 방 밖으로 뛰어갔으나 몇 걸음 채 걷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는 손발을 몇 차례 미친 듯이 발버둥 치더니 움직임이 사라졌다.
묘재방은 비수를 거두고 자사호를 쥐더니 뜨거운 찻물을 손에 끼얹었다. 그는 흠뻑 젖은 손으로 얼굴의 핏자국을 닦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빚을 졌으면 갚아야 하고, 사람을 죽였으면 목숨으로 대가를 치르는 게 당연한 도리이거늘. 관아가 관여하지 않으면 내가 관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