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821
821화. 불생과위(不生果位)
오른손에 칼을 든 그는 찬바람에 옷자락을 펄럭인 채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이렇게 일행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표정은 평온했으며, 두 눈은 마치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심연과도 같았다.
‘서겸…….’
정심과 정연은 복잡한 표정으로 양손을 합장하더니 목소리를 낮춰 불호를 외웠다.
희현은 무의식적으로 눈을 가늘게 뜨고 남색 장포의 남자를 자세히 살폈다.
류홍면은 맨 처음에 굳고 놀라더니 아름다운 얼굴로 회복하였다. 나한, 금강, 창룡칠숙이 선두에 섰기에 그녀는 가뿐한 저력을 보였다.
그리하여 그녀는 소문 속의 이 서겸을 여인의 시각으로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류홍면은 기질과 기개 등 방면으로 봤을 때 이 자는 의심할 여지 없이 뭇사람보다 뛰어나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처럼 겉모습을 숭배하는 사람도 방금 그 순간 좀 놀랐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애석하게도 그는 외모가 너무 평범했다.
희현과 허원괴 두 사람의 외모가 매우 뛰어난 건 둘째치고, 묘재방이라고 해도 어쨌거나 이목구비가 단정하고 어느 정도 준수했다.
이 사람들 중에 가장 흥분한 건 역시나 걸환단향이었다. 그는 허칠안이 연속으로 여러 가지 고술을 시전한 행동을 항상 마음에 두고 새기며 진실을 향한 갈증에 목말라 했다.
“아미타불, 서 시주님, 결국에는 그래도 오셨군요.”
정심은 양손을 합장하고 사람들 틈에서 벗어나 홀로 앞으로 나왔다. 그는 차분하게 허칠안을 쳐다보며 말했다.
“서 시주님, 불문에 귀의하십시오. 시주님의 자질 및 불문과의 인과로 장차 가나수 보살과 동등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가나수 보살은 부처 아래 중에 제일이었다.
희현 등은 이 말을 듣더니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깜짝 놀라 정심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그가 뭐라는 거야…….’
불문이 서겸을 끌어들이고 싶은 마음은 이해할 수 있었다. 승려들은 자주 사람들을 억지로 출가시키곤 했다.
하지만 정심 승려의 방금 그 말은 이미 설명 가능한 끌어들임이 아니라 그야말로 대역무도한 발언이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류홍면은 한 마디 중얼거리더니 희현을 쳐다보았다.
희현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다가 이내 폈다. 그는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정연에게 물었다.
“정연 대사, 정심 선사가 한 말이 무슨 뜻이지요?”
정연은 냉담한 표정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희현은 더는 묻지 않고 대오끼리 서로 전음하였다.
“불문이 우리를 속이고 있는 일이 있어.”
“가나수와 동등한 자격으로 대한다니, 동등한 자격으로 대한다라……. 정말이지 가소롭군. 가나수는 1품 중에서도 무적에 가까운 존재이거늘.”
“하지만 이유가 없다면 정심이 이런 말을 내뱉지 않을 거라고.”
일곱 사람은 전음으로 교류하였다. 류홍면, 걸환단향, 허원괴 세 사람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허원상은 무언가 파악한 듯 고운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
초엽 도사도 마찬가지였다.
유일하게 희현과 백호 두 사람의 눈에는 말 못 할 충격이 번뜩였다. 그들은 마침내 어떠한 진상을 깨달았다.
명색이 잠룡성주의 아들, 이십팔성숙 중 하나인 백호, 그들이 아는 정보는 류홍면 등보다 더 상세하고 더 많았다.
“쓸데없는 소리 작작 하시고, 그 자식을 내게 넘기지. 그러면 너희 목숨은 살려주겠다.”
허칠안의 시선은 정심을 스쳐 사람들 틈에서 보호받는 묘재방을 바라보았다.
‘그 역시 나 때문에 왔나 보군…….’
순간 묘재방은 안색이 변했다.
정심은 실망하여 고개를 가로저었다.
“서 시주님께서 줄곧 잘못하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이상 그럼 불광의 세례를 받아들이도록 할 수밖에요……. 나한을 삼가 청합니다!”
그는 마지막 말을 내뱉을 때 표정이 경건했으며 목소리는 우렁찼다.
쪽빛 하늘에서 밝고 투명한 불광이 빛나기 시작했다. 수천수만이 도달한 광속의 중심에는 연화대에 단정하게 앉은 여윈 노승이 있었다. 그는 흰 눈썹이 볼 양쪽까지 늘어졌으며 눈은 반쯤 감았고 양손은 염화(拈花)했다.
“불자여, 본좌를 따라 아란타로 돌아가게.”
노승은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목소리는 천자의 위엄을 머금은 세찬 천둥소리 같았다.
아래쪽에 있는 사람들의 머릿속이 ‘쿵’하고 흔들렸다. 다들 잠시 청각을 잃어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불문에 귀의하고 싶다는 충동만 남았다.
그리고 모든 불문 승려들은 무의식적으로 양손을 합장하더니 경건하게 불호를 외웠다.
이때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그들을 경건한 상태와 불문에 귀의하는 상태에서 깨어나게 했다.
곧이어 서겸이 소리높여 대답하였다.
“대봉 무사는 불문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는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고 칼을 짚은 채 우뚝 섰다.
희현, 허원괴, 백호 그리고 류홍면, 무도를 수행한 이 몇몇 사람의 가슴 속에 복잡한 감정이 떠올랐다.
그들은 마찬가지로 명색이 무사였으나, 방금 자신이 불문에 귀의하겠다는 충동을 통제할 수 없었다.
무사는 심성을 중시하나 거칠고 버릇이 없으며 힘으로 금기를 범했다. 그들은 사람과 싸우고 하늘과 싸우고 자신과 싸웠다.
무사는 신념이 순수할수록 무도의 길을 용맹하게 정진할 수 있었다.
“서겸이 뜻밖에도 2품 나한의 위압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을 수 있다니…….”
류홍면은 입을 오므리더니 쪽빛 장포의 남자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다른 한편, 도정 나한이 손을 내밀자 거대한 불장(佛掌)이 하늘에 응집되더니 하늘에서 내려와 서겸을 잡아가려 했다.
그때 하늘가에서 유성이 하늘을 가로지르는 듯 찬란한 검광이 스쳤다.
검기 아래, 금빛의 거대한 손바닥이 와르르 부서졌다.
사람들은 검기가 스쳐 간 방향을 따라 쳐다보았다. 우의를 입고 머리에 연화관을 쓴 여인이 검을 부리며 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선녀처럼 아름다웠으며 미간의 주사는 눈에 띄게 반짝였다.
낙옥형, 인종 도사, 2품 전봉. 이는 진정으로 구주 대륙의 금자탑(金字塔)에 서 있는 듯한 인물이었다.
모든 세력을 통틀어 여인 중에 현재 세 명이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전봉 강자였다. 그녀들은 각각 불문의 유리 보살, 만요국 망국 공주 구미천호 그리고 인종 도사 낙옥형이었다.
류홍면과 허원상은 용모가 아름답다고 자부하는 여인이었다. 하지만 그녀들이 선녀 같은 여국사를 봤을 때는, 뜻밖에도 남보다 못함을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감정이 솟구쳤다.
도정 나한은 하늘 높이 우뚝 솟은 낙옥형을 마주한 일을 조금도 뜻밖이라 여기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그녀가 나타나기를 기다린 듯했다.
나한은 천천히 말했다.
“낙옥형, 자네 천겁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업화가 몸에 감긴 기분이 좋지는 않겠군. 경성에 있을 때 자네가 흑련과 싸웠지. 업화가 이미 통제 불능의 위기에 처했더군. 불문은 도문과 끝없이 다투는 걸 원치 않네. 만약 자네 눈치가 있다면 물러나게. 그러지 않으면…….”
아래에 있는 자들은 도정 나한이 내뱉는 금시초문인 비밀을 들으며 각기 다른 생각을 했다.
‘인종이 수행하는 공법이 업화가 몸에 감기는 거라고?’
‘흑련이 누군데 낙옥형과 격전할 수 있지?’
‘낙옥형의 업화가 이미 통제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니?’
‘낙옥형의 업화가 통제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불문 승려들은 희색을 보였으며 희현 등도 흥분하기 시작했다.
낙옥형은 설령 그쪽에 나한과 창룡칠숙, 금강이 있다는 걸 안다고 해도 자신감이 넘쳤다.
일단 나한이 막아내지 못하면 이런 최강자는 정세를 바꾸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그들은 낙옥형을 줄곧 두려워했다. 사람들의 계획에는 나한이 낙옥형을 꼼짝 못 하게 하고 나머지 사람들이 속전속결로 처리하면 될 듯했다.
서겸을 제압한 뒤에 금강과 창룡칠숙이 나서서 낙옥형을 상대하는 도정 나한을 도우면 되었다. 이렇게 하면 만에 하나 실수가 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들이 지금 보아하니 그렇게 신중할 필요가 전혀 없는 듯했다.
낙옥형의 상태가 정말 도정 나한이 말한 것처럼 그렇게 엉망이라면, 나한이 나서기만 해도 낙옥형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
“아니면 어떻고?”
여국사는 정교하고 보기 좋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어쩌면 인종이 도사를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군.”
도정 나한이 담담하게 말했다.
낙옥형은 냉소를 띠면서 허공에서 얼룩덜룩 녹이 슨 철검을 한 자루 쥐더니 도정 나한을 향해 내던졌다.
검광이 반짝였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았다. 그들은 눈동자가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미친 듯이 흘러내렸다.
철검은 도정 나한을 관통하였다. 그의 가슴에는 큰 구멍이 뚫렸으나 피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다음 순간, 도정 나한의 가슴이 ‘상처’가 회복되었다.
도정 나한은 염화하며 미소를 지었다.
“본좌가 수련하는 것은 불생과위네.”
낙옥형은 ‘흥’하고 소리를 내더니 비검이 왔다 갔다 하며 도정 나한을 관통하게끔 조종하였다. 그의 몸에 무시무시하고 흉악한 검상이 하나씩 생겨났다.
그러나 도정 나한이 미소를 짓는 사이 ‘상처’가 전부 사라졌다.
불생과위, 이 열매를 수련해내는 자는 불생불멸로 영원히 공양받았다.
“줄곧 잘못하면서도 깨닫지 못하는구나.”
도정 나한은 고개를 젓더니 인내심을 갖고 계속 공격하는 철검을 무시하곤, 손가락을 구부려 금광을 튕겨냈다.
두루 비추는 금광 아래, 낙옥형의 몸에 말문이 막힐 정도의 변화가 나타났다. 그녀는 빠르게 늙었다. 낙옥형의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더니 새까만 머리카락이 변했다.
절세미인이 눈 깜짝할 사이에 백발 성성한 노인으로 변했다.
그리고 또 그녀의 몸속에서 생기가 돌더니 키가 줄어들고 주름살이 전부 사라졌다. 그녀는 아기로 변했다가 여자아이로 변했다가 소녀로 변했다가 성숙하고 어여쁜 여인으로 변했다.
그런 뒤 또다시 백발이 성성해졌다.
낙옥형은 몇 번 숨 쉴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한 번의 윤회를 겪었다.
그녀는 이런 윤회에 빠져 헤어 나오기 어려운 듯했다.
“이게 바로 불문의 불생과위구나. 살적과위에 버금하는 불생과위…….”
희현은 목소리를 낮추었다.
“빈도가 강호를 수십 년 떠돌았으나 이번에야말로 견문을 넓힌 셈입니다.”
초엽 도사는 개탄했다.
다른 이들은 경외하면서도 감정이 고조되었다.
그때 철검이 낙옥형의 손으로 돌아갔다. 이때의 그녀는 보드랍고 귀여운 여자아이였다.
낙옥형이 철검을 쥔 찰나, 끝없는 윤회가 사라졌다. 그녀는 늘씬한 몸매의 절세미인 형상을 회복하였다.
“내가 네 불생과위를 깨트렸다.”
그녀는 맨손으로 철검을 높이 들었고, 연꽃 한 잎이 그녀의 뒤에서 떠올랐다. 뒤이어 두 잎, 세 잎, 네 잎…… 무려 연꽃 아홉 잎이 그녀를 가운데로 빼곡히 둘러쌌다.
모든 연꽃잎은 무시무시한 검세를 품고 있었다.
아홉 잎의 연꽃이 한데 합쳐져 검기가 되더니 철검 가운데로 모였다.
인종 검기 중 가장 최상급 검법인 연화(蓮華)였다!
둘러싼 모든 이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들은 연화 검법을 목격했을 뿐인데 솟구치는 절망을 억제할 수 없었다.
“가라!”
낙옥형은 철검을 내던졌다.
철검은 유광이 되어 하늘을 거슬러 올라가더니 순식간에 도정 나한과 충돌하였다.
하늘에서 우렁찬 천둥이 울리더니 검기가 마치 폭우처럼 무시무시하게 쏟아졌다.
아래쪽에 있는 희현 일행과 불문 승려들은 겁에 질려 도망쳤으나 미처 피하지 못했다.
푹푹!
선사 세 명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느리게 도망치자 바로 비명횡사하였다. 그들은 검기에 찔려 다진 고기가 되었다.
이 폭발은 오래가지 못했다. 무승 정연은 금강신공을 믿고 뿔뿔이 흩어지는 검기 몇 가닥을 억지로 버텼다. 그는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공중의 상황을 살폈다.
공중에 검기의 여파가 남아 눈을 자극하자, 정연은 미친 듯이 눈물을 흘렸다.
몇 초 뒤, 그는 마침내 공중의 상황을 똑똑히 보았다.
정연은 눈동자가 격하게 수축되더니 안색이 창백해졌다. 쪽빛 하늘 아래, 연화대 위 불완전한 몸 하나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머리는 가슴 절반과 함께 검에 의해 훼손되었다. 훼손된 가슴 쪽에서는 어두운 금빛 선혈이 흘러나왔으며 안의 내장도 어렴풋이 보였다.
불생과위는 상처를 입지 않았다.
설마, 설마 도정 나한의 불생과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