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828
828화. 힐링
허칠안은 즉시 먼 곳에 있는 부도보탑을 불러내 묘재방과 이영소 그리고 정심과 정연을 그 안에 거두었다.
이 망할 보탑은 불문 제자를 공격하길 원치 않았기에 옆에서 한참을 구경했다. 그러다 지금 대세가 이미 결정되자 보탑도 더는 고집스럽게 굴지 않았다.
나한은 부도보탑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낙옥형은 소매를 휘둘러 허칠안과 도정 나한을 감싼 채 바람을 타고 갔다.
불과 2~3분 만에 대지가 요란하게 울리면서 두 금광이 아주 꼿꼿하게 땅에 바짝 붙어 발사되었다.
이는 두 금강이 미친 듯이 질주하면서 생긴 이상 현상이었다.
두 금강의 후방에서는 천종의 빙이원군, 현성 도사가 비검을 밟고 바람처럼 휙휙 소리를 내며 바짝 추격해 왔다.
하지만 두 천종 양신은 주 전장에서 승패가 가려지고 사람이 다 떠난 걸 본 뒤에 즉시 속도를 늦추었다.
그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비검을 90도로 꺾어 하늘 끝으로 곧장 솟구치더니 망망한 구름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도정 나한이 패했구나.”
위용 넘치는 신체와 영혼을 지닌 도난 금강은 냉담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더니 금사발의 남은 기운을 감지했다.
이 자는 500년 전, 갑자탕요에서 살아남은 호교금강(護敎金剛)으로 얼굴이 분노로 가득했다.
수라 금강 도범은 미간을 문지르더니 마음의 조급함을 가라앉힌 다음 천천히 말했다.
“아마 봉인되었을 뿐이겠지. 같은 경지에서 도정 나한을 죽일 수 있는 자는 없네. 낙옥형의 현재 상태가 아주 좋은 건 아니니 우리 제각기 옹주, 청행원에 가서 수색하자고. 해가 지기 전에 여기서 모이는 걸세.”
도난 금강은 ‘응’하고 소리 내더니 말했다.
“나는 이 일을 가나수 보살에게 아뢸 것이네.”
그는 말을 하면서 바닥에 널린 승려의 시체 위로 시선을 옮기고 한참 동안 침묵하였다.
“아미타불!”
도범은 양손을 합장하고 고개를 떨군 채 불호를 나지막이 외웠다. 그는 모든 승려의 시체를 보관 법기로 말없이 거두었다.
* * *
옹주 어느 곳, 거친 들판에 광풍이 한차례 휘몰아치더니 몸길이가 2장에 앞발 하나가 잘린 백호로 변했다.
백호는 바람을 타고 내려와 등에 있는 사람들을 털어낸 뒤 옆으로 포복하여 오른쪽 앞발의 검붉게 잘린 면을 핥았다.
사람들은 허둥대며 떨어졌다.
희현이 한 손으로 가슴을 가린 채 다른 한 손으로는 초엽 도사의 몸을 잡아끌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내게 약을 줘. 원상, 빨리 내게 약을 줘…….”
허원상은 잠자코 있었다. 그녀가 죽음을 보고도 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몸에 지녔던 비단 주머니를 허칠안에게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그는 주머니 안에 있는 법기와 단약까지 함께 가져갔다.
“소주, 단약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초엽 도사는 손을 내저으며 고개를 숙이고 자기 가슴의 큰 구멍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실소하였다.
“이렇게 심하게 다쳤으니 이번에는 딱 죽게 생겼습니다.”
사람들은 말없이 묵묵히 있었다.
희현은 눈에 비통한 기색을 내비치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제가 죽게 놔두지 않을 겁니다.”
늙은 도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소주, 말하지 마십시오. 시간을 전부 도사에게 남겨주세요.”
그는 피거품을 삼키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나지막이 말했다.
“이번에 강호행은 소주의 시련으로 잠룡성의 많은 이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성주는 서자인 소주를 결코 좋아하지 않아요. 하지만 그는 재능과 지혜 그리고 책략이 뛰어난 군주입니다. 개인의 취향으로 소주를 냉대하거나 싫어할 리는 없습니다. 만약 소주께서 용기를 수집하거나 3품으로 승직할 수 있다면 미래의 성주가 되실 수 있을 겁니다. 기억하십시오. 반드시 모든 용기를 다 모으지 않아도 됩니다.
비록 성주와 국사가 소주에게 맡긴 임무가 용기를 수집하는 거라 한들, 허, 잠룡성은 최강 전력이 부족합니다. 소주께서 만약 3품에 발을 들여놓으실 수 있다면 이 미래 후계자 자리는 그들이 어찌 되었든 줘야 합니다. 이 늙은이는 본래 소주께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걸 보고 싶었는데 애석하게도 그날까지 기다릴 수 없겠군요.”
그는 이렇게 심한 부상을 입었는데도 또렷하게 사고할 수 있었기에, 조금도 멈추지 않고 이 말들을 다 내뱉었다. 아마도 늙은 도사는 죽기 전에 잠시 정신이 맑아진 듯했다.
초엽 도사가 숨을 들이쉬더니 약간 멈칫하였다.
“오늘 이 전투는 저희가 완패했습니다. 소주께서는 오늘 이 교훈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앞으로 허칠안을 피하려면 다른 곳으로 흩어진 용기를 수집하셔야 해요. 도정 나한이 사로잡혔으니 불문은 그냥 그대로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무신교는 아직 나서지도 않았고요. 이것들 모두 이용할 수 있는 세력입니다. 또한, 온갖 방법을 동원해 창룡칠숙을 곁에 남겨두셔야 합니다. 국사께서 그들을 도로 불러들이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요 며칠간, 이 늙은이가 시시때때로 생각하면서 국사의 다음 계획을 어느 정도 짐작하였습니다.”
그는 말을 바로 이어가는 대신 온화한 눈빛으로 희현을 바라보았다.
“소주, 소주와 제가 처음 만났을 때의 장면을 기억하십니까?”
희현은 비음이 많이 섞인 목소리로 “응” 하고 소리 냈다.
“화염은 황폐한 수풀 더미에서 타오르고 모든 부패를 다 태워버릴 것이라 저는 늘 믿어왔습니다.”
초엽 도사는 희현의 손을 꽉 쥐었다.
“그런 날이 있을 겁니다.”
희현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초엽 도사는 숨을 내뱉더니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그의 웃음은 영원히 굳어졌다.
류홍면은 잠시 침묵하더니 초엽 도사를 향해 도례를 갖추었다.
들어보니 이 늙은 도사는 사연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깊이 파고들 생각은 없었다. 잠룡성을 떠도는 자들 중에 사연 없는 자가 누가 있겠는가.
* * *
옹주성 서남쪽의 수수진(秀水鎭). 모자를 쓰고 두봉을 걸친 4품 밀정 ‘진’이 속도를 내어 마을에 이르더니 물가 가까이 지은 저택 앞에서 멈추었다.
그는 어떤 리듬에 따라 저택 문을 두드렸다.
나긋나긋한 발소리가 전해졌다. 문을 연 사람은 바로 이목구비가 수려하고 기질이 도도한 매화 빛깔의 유군을 입은 허원상이었다.
그녀는 그다지 좋지 않은 안색을 띤 채 진 밀정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진 밀정은 허원상을 따라 저택 안으로 들어와 나지막이 말했다.
“아가씨의 전서를 받고 왔습니다.”
진 밀정은 마당을 지나 청 내부에 이르렀을 때, 희현 일행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는 자신이 사람을 잘못 알아본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우선 본래 온화하고 함축적인 대오의 핵심 희현은, 가슴에 두꺼운 면포를 둘둘 감은 채 핏기 없는 얼굴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본래 생기 있게 밝게 빛나던 두 눈은 다소 공허해 보였다.
그는 멍하니 바닥을 바라보았다. 뭘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기척조차 들은 체 만 체하였다.
그의 왼쪽에는 역시나 풀이 죽어 말이 없는 걸환단향이 있었다. 성격이 과격한 이 심고사는 마치 패배한 개처럼 알록달록한 긴 장포를 꼭 감쌌다.
심고사 곁에는 체구가 우람한 사내 백호가 있었다. 그의 오른팔은 팔꿈치 아래부터 결함이 있었고, 두꺼운 면포를 둘둘 감고 있어 검붉은 피가 희미하게 배어 나왔다.
유일하게 정상에 가까운 사람은 류홍면뿐이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이 분위기에 젖은 탓에 사랑스러운 인상이 사라졌다.
“원괴 공자님은?”
진 밀정은 가슴이 철렁하였다.
“그는 팔뼈, 무릎뼈가 부서져 방 안에 누워 있네.”
허원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진 밀정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고 물었다.
“창룡칠숙은요?”
“뒤뜰에서 상처를 싸매고 있지.”
허원상이 말했다.
진 밀정은 그녀의 말을 통해 창룡사숙이 손현기의 수중에서 이익을 얻지 못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내 창룡은 두봉인 7명을 데리고 뒤뜰에서 나왔다. 그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잘못을 따졌다.
“천종의 양신이 왜 이곳에 나타난 거지?”
진 밀정이 고개를 저었다.
“나 역시 그들이 옹주성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네. 천종은 늘 세상일에 상관하지 않고, 문인들은 강호를 거의 거닐지 않으니까. 이 세대에는 성자와 성녀 둘뿐일세.”
창룡이 살기등등하게 말했다.
“이는 자네 정보가 누락된 것이네. 책임져야 할 거야.”
진 밀정은 눈살을 찌푸렸다.
“어느 정보 조직이 초범경 강자의 동향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단 말인가. 더욱이 그들이 조심스럽게 일을 행하는 상황에서 말이야. 우리는 심지어 천종의 양신이 속세에 나와 돌아다니고 있는지도 몰랐네.”
도문 양신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움직인다. 오늘 옹주에 있으면, 내일은 경성에 이르렀을 수도 있다.
어느 조직의 정보가 이렇게 빠를 수 있단 말인가?
하물며 천종의 양신 둘은 일 처리가 겸손하여 한마디 말도 없이 옹주성에 이르렀다.
설령 수하의 첩자가 객잔에서 그들을 보았다고 해도 첩자가 한눈에 이들이 양신 둘이라고 알아볼 수 있겠는가?
창룡이 더는 말하지 않자, 진 밀정은 한숨을 내뱉고 대략적으로 궁리하더니 희현 일행을 쳐다보며 말했다.
“허칠안 역시 조력자를 적잖이 구했나 보군요.”
설사 천종 양신이 돕고, 초범경 고수가 같은 수준이라고 해도 그들에겐 불문의 두 4품 전봉이 있고 희현, 백호 등 4품 고수가 있었다.
초범경이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서라면 거의 무적이었다.
지금 이렇게 낭패를 본 건 허칠안이 충분한 준비를 하여 도와주는 4품 고수를 적잖이 소집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이 말을 내뱉자 류홍면이 복잡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걸환단향과 백호는 입술을 달싹거렸다.
허원상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조력자는 없었습니다. 그 혼자였어요.”
‘그 혼자라니…….’
진 밀정은 유모 아래 감춘 두 눈을 갑자기 크게 뜨더니 황급히 캐물었다.
“그, 그가 3품 수련 경지를 회복했습니까?”
류홍면 등의 표정이 더욱 복잡해졌다.
“아니요. 그는 여전히 4품입니다.”
허원상은 씁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청 내부가 순간 적막에 휩싸였다. 한참 동안 말하는 이가 없었다.
* * *
낙옥형은 허칠안을 데리고 옹주를 떠나 북쪽으로 빠르게 날았다.
창망한 산맥, 평원, 하류를 지나자 아래쪽에 성곽이 나타났다.
낙옥형은 금빛에서 내려 성 밖에 착지하였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상처를 치료해야 하니 우선 객잔을 찾아 잠시 머물자고.”
그녀는 가벼운 목소리로 분부하였다.
그녀가 옹주성으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는, 도난과 도범 두 금강이 분명히 제멋대로 수색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도정 나한은 눈을 감은 채 소리를 죽이고 가부좌를 틀었다. 그는 마치 생기가 없는 조각상 같았다.
도정 나한은 낙옥형 옆 공중에 뜬 채, 그녀의 견인과 통제를 받고 있었다.
그들은 작은 성으로 진입하여 간선도로를 따라 양쪽으로 복(福) 자가 그려진 펄럭이는 깃발을 훑더니 손쉽게 객잔을 한 곳 골랐다.
낙옥형은 한 손으로 결인하여 도정 나한을 이끈 채 허칠안 뒤를 따랐다.
“손님, 쉬면서 요기하실 건가요. 아니면 묵으실 건가요?”
그들이 객잔 대당에 발을 들여놓자 심부름꾼이 정성스럽게 맞이하였다. 심부름꾼은 낙옥형과 머리에 철검이 꽂힌 도정 나한을 보고도 못 본 척했다.
다른 식객들도 낙옥형을 볼 수 없는 듯 깜짝 놀라는 눈빛을 던지지 않았다.
허칠안은 그녀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객실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