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831
831화. 적과의 상봉
허칠안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사실은 반드시 드러나게 마련이지요. 성자는 조만간 제 신분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이 점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갈피를 잡지 못했는데 여러분께서 무슨 제안 있으실까요?”
이묘진은 얼른 손을 들고 제안하였다.
“왜 그에게 알리려 하지? 쌍방이 어색할 바에는 차라리 계속 숨기는 게 낫지. 숨길 수 있을 만큼 숨기게.”
초원진은 자신이 일전에 북방 황야 모닥불 옆에서 발바닥으로 파헤친 거실 하나에 방 두 개짜리 집을 떠올리며 진지하게 말했다.
“묘진의 말이 맞네.”
‘성자가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길 바라는 거야? 다 같이 그가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장면을 볼 작정인가? 이 못된 사람들 같으니라고…….’
허칠안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성자한테 너무 불공평해요. 그는 온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업신여기고 기만한다고 생각할 겁니다.”
초원진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칠안, 이는 자네의 단편적인 생각이야. 우선 자네는 이유가 있으니 신분을 숨겼겠지. 그다음으로 성자는 도량이 넓은 사람이니 이 일로 우리가 그를 업신여긴다고 생각하지 않을 걸세.”
‘그를 알지도 못하면서…….’
허칠안이 안 된다고 안 된다고 하며 이렇게 하는 건 부도덕하다고 말했다.
이묘진은 된다고 된다고 하며 이렇게 하는 편이 좋다고 말했다.
허칠안은 나는 이렇게 악취미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초원진은 우리 모두 아니라고 말했다.
결국에 허칠안은 마지못해 두 동료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하시지요! 여러분께서는 제 신분이 까발려지지 않도록 저한테 협조해주십시오.”
초원진과 이묘진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미타불!”
항원 대사는 이 모든 걸 목격하니, 자신은 마음이 선량해 그들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만 들었다.
“참, 국사께서는 왜 옹주에 계시지?”
이묘진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줄곧 신경 쓰였던 의혹을 꺼냈다.
‘아, 이건…….’
허칠안은 갑자기 가슴이 철렁했다. 그는 문득 이 문제를 깨달았다.
인종의 수행법에 업화의 후유증이 있다는 점은 명색이 천종 성녀인 이묘진, 인종의 기명 제자인 초원진 모두 잘 아는 바였다.
원경제가 낙옥형과의 쌍수를 염두에 둔 건 기운이 업화를 잠재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더 치명적이게도, 지서 파편 소지자들 역시 지금은 이미 그가 몸에 기운을 품고 있다는 걸 알았다.
허칠안은 큰 사발을 받치고 술을 한 모금 마시더니, 고개를 숙일 때 곁눈질하며 초원진과 이묘진을 재빠르게 훑어보았다.
초원진은 큰 사발을 만지작거리며 술을 가볍게 흔들었다. 홀가분하고 여유로운 표정이었지만, 허칠안이 잘못 본 게 아니라면 그는 방금 슬그머니 등허리를 곧게 폈다.
이묘진은 몸을 앞으로 기울이더니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그를 주시했다.
‘역시나 그들이 좀 의심하는군…….’
허칠안이 생각하며 구실을 찾는 사이 객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쿵쿵 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문을 열러 가겠습니다!”
허칠안은 후다닥 일어나 방문으로 걸어갔다. 그는 빗장을 잡아당겨 열었다.
예상대로 문 앞에는 꽃처럼 웃는 얼굴을 한 절세미인이 서 있었다. 그녀는 바로 어젯밤에 그와 침상 위를 뒹군 국사 어르신이었다.
‘그녀가 뭐 하러 온 거지. 제발 말끝마다 허랑이라고 하지 마.’
허칠안은 약간 두피가 저렸기에 물러서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국사, 들어오십시오.”
낙옥형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문턱을 넘어 방으로 들어왔다.
“국사!”
이묘진 및 세 사람은 황급히 일어나 도례를 갖추었다.
낙옥형은 아름답게 웃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초원진을 쳐다보았다.
“훌륭하군. 수련 경지가 또 향상되었어. 4품 이후에 어떻게 승직할 건지 생각해두었는가?”
초원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는 뒤이어 이묘진을 쳐다보았다.
“4품 중기군. 1년 내에 4품 전봉에 발을 들일 수 있겠어. 이미 자네 사형 이영소를 뛰어넘었네.”
이묘진과 초원진은 오늘 국사가 좀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예전의 도도함이 사라진 듯했다.
낙옥형은 허칠안을 쳐다보더니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이번에 옹주에 온 건 옹주성 밖 지하 궁전의 진위를 알아보러 가기 위함일세. 허 은라가 하는 말을 들으니 지하 궁전의 주인이 원고 시대의 인종 도사라더군.”
‘알고 보니 그랬구나…….’
초원진은 지하 궁전 탐험을 직접 경험한 사람으로서 문득 모든 걸 깨달았다.
그는 그 속의 험난함을 저도 모르게 떠올리더니 탄식했다.
“사실 애당초 칠안이 종 소저를 데리고 무덤에 내려가지 않았다면, 어쩌면 저희가 외곽에 있을 때 바로 리나를 데리고 나왔을 수도 있습니다.”
이묘진은 같이 무덤에 내려간 적이 없지만, 이 일이 전혀 낯설지 않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를 발견하셨는지요?”
그녀는 역시나 도문에 관한 일에 아주 많이 마음을 썼다.
낙옥형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직 미처 가지 못했네만.”
허칠안은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국사가 남의 의중을 잘 헤아린다는 건 그의 예상을 벗어난 상황이었다. 허칠안은 속으로 ‘설마 이게 바로 전설 속에나 나오는, 한 여인이 당신을 사랑하기 시작하면 모든 일에 있어 당신을 위해 움직인다는 상황인가?’라고 말했다.
“왜 우리의 관계를 쉬쉬하려 하지?”
갑자기 허칠안은 낙옥형으로부터의 전음을 받았다.
……그는 아무런 내색하지 않고 국사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깊은 뜻을 내포한 채 그를 쳐다보았다.
‘당신이 상어이기 때문 아니겠어? 만약 당신이 다른 자매들과 잘 지낼 수 있다면 내가 이렇게 쫄겠냐고…….’
허칠안은 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자네가 말하길 원치 않는 이상, 나도 자네를 난처하게 하지 않겠네. 하지만 그만큼 자네 역시 나를 곤란하게 해서는 안 돼. 맞지?”
“국사, 이 말이 무슨 뜻인지요?”
“허랑, 내가 자네에게 하루라는 시간을 줄 테니 모남치와 이묘진과의 관계를 청산하게. 내일 경성으로 돌아가 다른 여인과도 관계를 청산하고. 만약 아직도 다른 여인과 애매한 관계를 유지한다면, 나는…… 아주 고민할 거야.”
“이, 이건…….”
“음, 나는 허랑의 난처함을 이해해.”
낙옥형이 전음하는 어조에는 부드러움과 애정이 충만했다.
“만약 자네가 편치 않다면, 내가 직접 나서서 자네 대신 관계를 청산해주지. 모남치는 앞으로 교방사에서 노후를 보내야 할 거야.”
‘당신 시바 마귀야……? 이 인격은 심리 상태가 건전하지 않구나…….’
허칠안의 이마에 식은땀이 싸악 맺혔다.
이때 낙옥형이 말했다.
“나 먼저 돌아가 호흡을 가다듬을 테니 내일 오후에 함께 옹주성 지하 궁전에 가자고.”
이묘진 등은 도례를 갖추고 말했다.
“네!”
낙옥형이 간 뒤에 이묘진이 말했다.
“부도보탑을 꺼내…… 허칠안, 허칠안? 나 지금 자네한테 말하는데.”
“아.”
허칠안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어 망연자실하게 웅얼거렸다.
이묘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뭘 멍하니 있는가? 나 이영소를 만나야겠네.”
“아아…….”
‘맞다. 얼른 쓰레기 같은 남자를 찾아 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물어봐야겠어…….’
허칠안은 빠르게, 심지어는 다소 다급하게 움직여 부도보탑을 꺼냈다.
고작 손바닥 크기만 한 어두운 금빛의 보탑이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탑문이 갑자기 활짝 열리더니 방 안의 모든 이를 빨아들였다.
* * *
이묘진 등은 탑 안 1층 사방을 둘러보았다. 전방의 금빛 찬란한 부처 금신은 높이가 십여 장에 이르렀다. 부처 양쪽에는 얼굴이 흐릿한 아홉 보살이 있었으며, 그 뒤에는 나한이 있었다.
거대하고 위엄 있는 이 조각상들과 비교하자면 인류는 마치 개미처럼 보잘것없었다.
이묘진과 초원진은 모두 불문 사람이 아니었지만, 이 조각상들을 보니 이유 없이 경외하는 마음이 생겼다.
“아미타불!”
항원은 경건한 표정으로 양손을 합장하였다.
부처 금신으로 통하는 길 위에 네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들은 각각 선사 정심, 두 눈이 이미 먼 정연, 용기 숙주 묘재방 그리고 경건하게 합장한 이영소였다.
이묘진은 ‘헤’하고 소리를 내더니 소리쳤다.
“이영소, 능력이 뛰어난 사매님께서 너를 구하러 왔다.”
성자가 귓바퀴를 움직이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약간 동요했다.
그는 즉시 눈을 뜨고 이묘진을 한사코 쳐다보았는데 놀라기도 기쁘기도 했다.
“사매?”
이묘진은 그를 자세히 살피면서 조롱했다.
“1년 동안 보지 못했는데 뜻밖에도 아직 이렇게 원기가 왕성하다니. 나는 네가 여인한테 탈탈 털린 줄 알았지. 바짝 쪼그라들어서 말이야.”
이영소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1년 동안 보지 못했는데 사매는 뜻밖에도 아무런 발전이 없구먼. 아직도 그렇게 가슴이 작다니.”
허칠안은 갑자기 왜 이묘진이 이영소가 그해 위급한 걸 보고도 구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는지 이해했다. 알고 보니 그 속에는 개인적인 원한이 뒤섞여 있었다.
이영소는 즉시 초원진과 항원을 쳐다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두 도우는 뭐라고 불러야 합니까?”
이묘진이 청삼 검객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호!”
또 항원을 가리키며 말했다.
“육호!”
“콜록콜록!”
이영소는 힘껏 기침을 하더니 눈빛으로 사매에게 지서 파편의 일을 누설하지 말라는 의사를 표했다.
동시에 그는 더할 나위 없이 경악하며 초원진과 항원을 살폈다. 이영소는 이곳에서 다른 지서 파편 소지자 두 명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아닌데. 애당초 지서 파편 소지자 사이는 서로 경계하면서도 서로 돕는 관계라고. 어떻게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소지자끼리 이미 벗이 된 거지? 내가 없던 시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발생한 거야? 음, 그저 별칭만 얘기했으니 서겸도 알아듣지 못할 거야.’
이영소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초원진, 항원과 공수하여 안부를 물은 뒤 소개하였다.
“이분은 서겸, 서 선배님으로 덕망이 높고 의협심이 강하며 공명정대하십니다. 대협의 풍격이 있으면서도 명색이 선배로서의 진중함을 잃지 않지요. 제가 여기서 여러분과 만날 수 있는 것도 전부 서 선배님의 도움 덕분입니다…….”
그는 말을 마친 뒤, 초원진, 이묘진, 항원이 바보를 쳐다보는 듯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본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니, 그 눈빛은 바보를 보는 것보다 더 복잡했다. 더욱이 밉살스러운 사매 이묘진은 얼굴이 시뻘게지더니 새하얀 목 역시 따라서 빨개졌다. 게다가 그녀는 목 부위의 근육이 약간 실룩거렸다.
“왜 웃지?”
이영소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나 웃지 않았는데.”
이묘진이 무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했다.
초원진은 제때 말참견하여 성의 있게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저희는 서 선배와 구면입니다. 그의 존재를 아는 자는 경성에 아주 소수지요.”
‘과연 그렇구나. 서겸은 감정과 대련할 수 있는 초범경 강자로서 신분이 은밀하지만, 수준이 높은 자들은 당연히 알겠지…….’
이영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했다는 듯, 진작에 짐작했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여러 도사님들, 제가 비록 서 선배와 함께 지낸 지 이미 오래지만, 처음부터 한결같이 그의 내력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영소는 사적으로 사매 그리고 지서 파편 소지자 둘에게 전음하였다.
“여러분께서는 그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까?”
초원진이 잠시 침음하더니 전음으로 대답했다.
“서겸 이자는 황실과 관련이 좀 있습니다. 구체적인 신분은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황실과 좀 관련이 있다라…….’
이영소는 문득 깨달았다는 기색을 보인 뒤 전음으로 말했다.
“헤, 제 추측이 역시나 틀리지 않았군요. 그는 사천감과 관계가 아주 깊습니다. 또 용기 수집을 책임지고 있으며 진북왕비와도…….”
이영소는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전음으로 말했다.
“설마, 설마 그가 진북왕?! 아니지. 진북왕은 진작에 북경에서 죽지 않았습니까?”
그는 세상 돌아가는 일에 어두웠지만 그래도 진북왕이 죽은 일은 알았다.
이묘진의 볼 근육이 부들부들 떨려서 입술을 꽉 오므렸다. 그녀는 좀 참기 어려웠다.
“왜 웃지?”
이영소가 눈살을 찌푸렸다.
“안 웃었는데.”
이묘진이 부인했다.
“분명히 웃었잖아. 내가 오랫동안 참았다고.”
그는 화를 냈다.
이쪽에서 전음으로 속닥이는 사이, 허칠안은 이미 묘재방 앞으로 와 용기 숙주를 자세히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