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835
835화. 경성의 모든 일
‘나는 그자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잊었는데…….’
임안은 속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그녀는 동글반반한 얼굴을 굳히더니 불쾌해했다.
“오라버니가 어머니더러 설득하라고 했어요?”
“그건 아니란다.”
진 귀비가 웃으며 말했다.
“그는 그저 명군이 되고 싶은 마음뿐인데 너를 신경 쓸 정력이 어디 있겠니? 어미 혼자만의 뜻이란다.”
임안은 아주 배짱 있게 아래턱을 치켜들었다.
“그럼 어머니가 황제 오라버니한테 말씀하세요.”
황제는 그녀가 그 동라한테 진작에 남몰래 마음을 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조정에서 이를 아는 자는 거의 없었다. 예컨대 정국공 같은 훈귀들 말이다. 그렇지 않고선 그의 부인을 궁으로 보내 떠볼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진 귀비는 얼굴의 웃음이 점점 사라졌다. 그녀는 임안을 무심하게 쳐다보며 잠시 침음하더니 말했다.
“너 속으로 아직도 그를 생각하고 있니?”
임안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누, 누구요…….”
진 귀비는 탄식하더니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는 네 좋은 배필이 아니야. 끝이 좋을 리 없단다.”
“어머니, 무슨 뜻이에요?”
임안은 정교하게 다듬은 눈썹을 찌푸렸다.
이때, 궁녀들이 산해진미를 받치고 한 사람씩 줄지어 들어와 탁자 위에 차례대로 늘어놓았다.
진 귀비는 때맞춰 화제를 돌렸다.
“음식도 다 나왔는데 폐하께서는 어째 아직도 오지 않는 거지?”
임안도 마침 좀 배고파져 도화안으로 음식을 애타게 바라보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황제 오라버니께서는 일이 많으시니 아마 시간을 놓쳤을지도 몰라요. 제가 사람을 보내 물어볼게요.”
진 귀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른 갔다가 얼른 돌아오라 해라.”
* * *
안신전(安神殿).
영흥제는 황포를 입고 어서방의 큰 의자에 앉아 무거운 표정으로 당 안의 제공들을 훑어보았다.
영흥제는 황위를 계승한 뒤, 원경제의 건청궁에 들어가지 않고 서쪽의 안신전으로 옮겨왔다.
그는 건청궁을 좋아하지 않았다. 도를 닦는 데 깊이 빠진 선황을 싫어하는 것과 같았다. 이는 그가 시시때때로 선황의 얼굴을 떠올리게 하고 선황의 진짜 신분을 떠올리게 하였다.
“북경에 설해가 심각하여 이미 유랑민이 대량으로 남하하여 나머지 각 주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다. 이 밖에도 청주, 우주, 상주 등 지역에서도 설해를 입어 백성들이 끊임없이 소란을 피우고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영흥제가 나지막이 말했다.
“각 경들은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가?”
* * *
이번 소조회에서 상의할 주제는 ‘설해’였다. 겨울에 들어선 이래로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본래 허리띠를 졸라매고 가까스로 생계를 이을 수 있던 집안이 한파의 영향을 받아 어쩔 수 없이 더 많은 은자를 써서 숯불, 솜옷 등의 물자를 추가로 구입해야 했다.
하지만 농업에 종사하는 가난한 집안은 일 년 수입이 조금밖에 되지 않았기에 먹고 입는 데 쓸 돈은 바짝 죄어 계산해야 했다.
그런 집안이 돈을 써서 숯을 사고 솜옷을 추가로 구입하면 쌀을 살 은자가 부족해질 터였다.
많은 빈곤한 백성들이 이 겨울을 견디지 못했다. 배고픔과 추위에 시달리다가 무수한 손실을 입었다.
조정은 각지 관아의 접본을 잇따라 받았다. 그들은 ‘마을 10곳에 한 가구도 남지 않았다’라는 말로 이 피해 상황의 무시무시함을 형용하였다.
대리사승이 즉시 대열에서 나와 읍하며 말했다.
“폐하, 호부에게 지세를 모아 이재민을 구휼하게 하셔도 됩니다. 백성들은 옷과 식량이 부족하여 겨울을 견딜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틀림없이 유랑민이 되어 각 주에 화를 초래할 것입니다. 유랑민에게 약탈당한 백성 역시 유랑민으로 변할 겁니다. 하루빨리 피해 상황을 잠재우지 못한다면, 큰 화를 초래할 겁니다.”
호부상서는 영흥제가 말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황급히 대열에서 나와 소리 높여 말했다.
“폐하, 국고가 텅 비어 정말 이재민을 구휼할 여분의 지세를 내놓을 수 없습니다. 폐하께서는 심사숙고해주십시오.”
매년 이재민을 구제하는 시기는 이 호부상서인 그한테 항상 관모를 흔들리게 하는 풍파와도 같았다.
역시나 호부 급사중이 황급히 나서서 결정타를 날렸다.
“폐하, 신은 권력으로 사욕을 도모하고 뇌물을 받아먹음으로써 규율을 어긴 호부상서를 탄핵하려 합니다. 도당이 조정의 골수를 빨아먹어 국고가 텅 빈 겁니다.”
호부상서는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말했다.
“소신 사직을 청합니다!”
영흥제는 매섭게 입가를 실룩이더니 무표정으로 모든 신하들을 내려다보았다.
당쟁, 당쟁!
그들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당쟁을 벌이고 있었다!
‘바로 내부 분쟁을 할 줄만 아는 너희 같은 지식인 무리가 선황과 연합하여 대봉에서 백성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없게끔 화를 입힌 거구나…….’
영흥제는 소매 속에 다문 손을 꽉 쥐고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
“짐이 어제 피해 상황이 심각하니 조정 위아래로 군신이 한마음 되어 함께 대책을 논하자고 말했다. 여러 경들은 좀 멈추게.”
호부상서 등은 바로 휴전하였다.
영흥제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각지의 의창 비축은 어떠한가?”
호부상서가 말했다.
“모두 이미 창고를 열어 이재민을 구원했습니다. 다만, 다만 추수 때 조정에서 무신교와 한바탕 싸워 원기가 크게 손상됐습니다. 그날 군량과 마초는 각지에서 조달해온 것이지요. 이러한 이유로 각지 의창에 비축분이 부족합니다.”
영흥제는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럼 관창(官倉)은?”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당 내부 제공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우도어사 류홍이 대열에서 나와 말했다.
“폐하, 안 됩니다. 만약 각지 정세를 안정시키고 하급 관리, 관원이 정상적으로 행동하게 하려면 관창은 건드려서는 안 됩니다.”
의창은 오로지 흉년에 이재민을 구휼하기 위한 용도였다.
관창은 관원에게 봉록을 지급하기 위한 용도였다.
관창을 건드려 조정에서 만약 봉록을 지급하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천하 대란이 될 터였다.
영흥제는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류 경은 무슨 좋은 방책이 있는가?”
류홍은 침음하더니 말했다.
“북방 요족과 오랑캐가 아직 조정에 무수한 모피, 소금, 철광을 빚졌으니 폐하께서는 사절단을 북경으로 파견해 받아내실 수 있습니다.”
영흥제는 눈이 반짝였다. 아래의 제공들 역시 의견이 분분하였으나 왕 재상이 대형에서 걸어 나와 읍하며 말했다.
“이 일은 불가합니다!”
제공들은 바로 반박했다.
“왜 안 된단 말입니까?”
“본관은 류 대인의 이 계략이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렇습니다. 요족과 오랑캐가 사는 곳에는 소와 양이 떼를 지어 사니 모피가 무수히 많고, 마침 추위를 막아주니 조정의 초미지급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왕 재상은 인내심 있게 제공들이 말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제야 입을 뗐다.
“서약서의 초안을 세운 그날, 한림원 서길사 허신년이 집필하고, 신이 직접 감독하였습니다. 요족과 오랑캐가 대봉에 보내는 모피, 소와 양 등의 물자는 3년 후라고 확실히 적혀 있지요. 이제 전쟁이 잠잠해진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요족 및 오랑캐 역시 방치된 일을 다시 시행하려 하고 있어 물자가 빠듯하지요. 이 시기에 그들에게 계약을 이행하라고 하면…….”
왕 재상은 말을 잇지 못했으나 제공들은 이해했다.
요족 및 오랑캐와 대봉의 사이가 틀어지라고 압박하는 꼴이었다.
영흥제는 다소 초조해하며 물었다.
“재상 대인께서는 무슨 좋은 계책이 있소?”
왕 재상은 속으로 탄식하였다. 그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어도 뒤에서 따가운 시선들이 자신을 주시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도 명색이 재상인 입장으로서 어떤 일들은 피할 수 없기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국고가 비록 텅 비어 있으나 경성 내외 나아가 중원 각지에는 부유한 상인이 넘쳐흐릅니다. 폐하께서는 천하의 의인에게 기부하라고 호소하실 수 있습니다.”
‘시작됐군…….’
제공들은 가슴이 철렁했다.
사실 이미 여러 날 전에 경성에 근거 없는 소문이 퍼진 바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폐하께서 텅 빈 국고를 메우려 기부를 호소하여 그들을 희생시키려 한다고 했다.
영흥제가 기다린 건 바로 이 순간이었기에 그는 이때서야 웃었다.
“이 방법은 아주 훌륭하구먼. 재상 대인께서는 어떻게 호소해야 한다고 생각하시오?”
왕 재상이 말했다.
“제공들이 앞장서서 기부하는 겁니다. 신은 이재민을 구휼하기 위해 가산의 절반을 기부하길 원하는 바입니다.”
왕당과 전 위당의 몇몇 구성원이 즉시 호응하며 왕 재상처럼 가산의 절반을 기부해 국고를 메우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하지만 더 많은 대신은 반대하는 태도를 보였다.
“폐하, 이 일은 안 됩니다.”
“저희는 청렴결백한 관리로 가까스로 살아가고 있는데 가산이 어디서 난답니까?”
“상인은 이익을 추구하는데 그들더러 기부하라고 하는 건 살을 도려내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반드시 소란을 일으킬 겁니다.”
“국고가 텅 비었다는 걸 떠벌려서 무신교가 알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전쟁 피해가 생길까 두렵습니다. 내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조정이 겉으로는 강해 보이나 속은 텅 비었다는 사실을 백성들이 알게 되면, 유랑민은 역적이 되어 재앙이 끝이 없을 겁니다.”
제공들은 황제가 기부를 호소하고, 왕 재상이 앞장서서 가산 절반을 기부한다는 걸 듣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키며 약속이나 한 듯 같은 진영에 섰다.
설령 그들이 평소에는 물과 기름이나 다름없는 사이라고 해도 말이다.
영흥제는 손을 들어 대신들의 소란을 가라앉혔다.
이곳은 금란전이 아니라 어서방이라 채찍을 휘두르며 호통치는 태감이 없었다.
제공들이 조용해지자 그는 대리사승을 쳐다보며 말했다.
“사승 대인, 그대 의향은 어떠한가?”
자리에 있는 제공들 모두 당파의 핵심 인물이었다. 때문에 그들을 해결하면 대부분의 당파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리사승은 지금 제당의 우두머리이자 유일한 지도자였다. 그가 만약 고개를 끄덕인다면 제당을 취할 수 있었다. 적어도 과반수는 취할 수 있었다.
“폐하!”
대리사승이 대열에서 나와 애달픈 목소리로 말했다.
“신은 스무 해 동안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벼슬살이를 하였습니다. 청렴결백한 관리로 혹서에는 얼음이 없고, 엄동설한에는 숯 없이 가까스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을 뿐입니다.”
그가 말을 하면서 손을 털자 널찍한 소매가 미끄러지면서 동상투성이의 손이 드러났다.
“신은 조당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충성을 다 바쳐 죽어서야 그만두길 원합니다. 하지만 신은 처자식이 가엾습니다. 그들이 길거리에서 동사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폐하께서 만약 이렇게 견해를 고집하시겠다면 신은 사직을 청하겠나이다.”
‘늙은 여우…….’
영흥제는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져 왔다. 그는 황급히 손사래 치며 말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이렇게까지는…….”
정말 그런 상황이 된다면, 그는 관원에게 기부하라고 압박하여 대신들을 사직하게 할 정도로 탐욕스러운 황제가 되어 명성이 실추될 것이다. 만일 사서에 이 일이 한 획이라도 기록된다면 말이다.
영흥제는 이 지식인들이 분명히 이렇게 쓸 것이라 믿었다.
왜냐하면, 기부를 강요당한 건 그들이니까.
영흥제는 다시 다른 대신에게 물었으나, 다른 형태로 완곡하게 거절당했다.
그들은 우는소리를 하거나 사직이라는 말을 꺼냈다.
젊은 황제는 안색이 점점 더 안 좋아졌다. 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결국에는 탁자를 툭 쳤다.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조정에서 자네들을 양성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3일 내로 짐은 조금도 빈틈없는 대책을 원한다. 가지고 오지 못하면 전부 썩 꺼져야 할 것이야!”
“폐하, 노여움을 가라앉히십시오!”
제공들은 잇따라 무릎을 꿇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