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844
843화. 충격
초원진은 답답한 마음으로 방을 나섰다. 그를 막는 이도 없었다.
밤이 되자 바깥에서 활동하던 술사의 수가 줄어들었다. 그는 재빨리 복도를 지나쳤고, 창문 하나를 골라 검을 부려 떠날 참이었다.
이때 갑자기 발소리가 들려와 그가 고개를 돌려 보니 난데없이 묘재방과 이영소 그리고 계단을 거꾸로 오르는 양천환이 보였다.
“초 형, 듣자 하니 대봉의 공주가 왔다고요. 빈도는 이름을 들은 지 이미 오래라 가서 만나 뵙고 싶습니다.”
이영소가 웃으며 말했다.
“그들은 어느 층에 있습니까?”
초원진이 무표정으로 말했다.
“복도 끝 두 번째 방이네. 하지만 나는 자네들이 가지 않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라 권하고 싶네.”
이영소가 반문했다.
“왜요?”
청삼 검객이 탄식하더니 말했다.
“알고 보니 국사께서 허칠안의 쌍수 도려라더군. 방 안의 분위기가 매우 긴박하네.”
“!!!”
이영소와 양천환은 순간 얼굴이 빨개졌다.
“인과응보입니다, 양 형!”
“그렇군, 이 형!”
두 사람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들은 마치 원수가 보복당하는 걸 보고 억울한 죄를 설욕한 듯했다.
이영소는 공수하더니 황급히 초원진을 지나쳐 방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그는 가는 도중에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그 두 분 공주께서는 자색이 평범하여 국사께 세차게 제압당한 것 같은데, 허씨가 어떻게 처리하는지 좀 봐야겠습니다. 양형께서는 모르시지요. 앞서 옹주에 있을 때, 국사께서도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그녀의 상대는 왕비였지요……. 에휴, 왕비의 자태는 정말이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납니다.”
그는 얘기하면서 걷다 보니 빠르게 방 밖에 이르렀다. 이영소는 의관을 바로잡고 방문을 두드렸다.
방문이 저절로 활짝 열리면서 차디찬 시선이 쏟아졌다. 그들은 감히 이 시기에 고배를 마실 불청객을 쳐다보았다.
이영소 역시 이 순간 방 안에 있는 여인들을 똑똑히 보았다.
우선 방문에서 가장 가까이 있고,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선 사람은 허칠안과 낙옥형이었다.
두 사람의 맞은편 원탁 위에는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각각 사매 이묘진, 산발 한 예언사 종리가 있었다.
종리 곁에는 붉은색의 화려한 긴 치마를 입고, 머리에는 소봉관을 쓴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새하얀 달걀형 얼굴에, 어여쁘고 다정다감한 도화안을 지녔다. 그 여인이 사람을 볼 때의 어슴푸레한 눈길은 애정을 듬뿍 머금은 것처럼 보였다.
긴 치마는 고우면서도 화려했다. 황금으로 만든 소봉관 외에도 진귀한 머리 장식이 여러가지 있었다.
그녀는 아주 아름답게 치장하였다.
성자는 본래 이렇게 과하게 치장하는 여인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들이 자신의 미모에 자신이 없기에 옷차림과 장신구로 보완한다고 여겼다.
그런 장신구는 사실 그녀들의 저속함만 부각할 뿐이었다.
그러나 눈앞에 이 붉은 치마 여인의 미모와 기질은 화려하고 진귀한 머리 장식품을 완벽하게 지배했다.
심지어 그는 이렇게 치장해야만 그녀의 아름다움을 부각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마저 했다.
화려하고 진귀한 이 여인 곁에는 흰색 긴 치마를 입고 간단하게 머리를 묶은 여인이 있었다.
전자와는 다르게 그녀의 옷차림과 치장은 우아하면서도 단순했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한 옷차림일지라도 그녀의 도도하고 교만한 기질과 어우러지니 귀티를 부각시켰다.
눈동자는 가을 호수처럼 차갑고 입술은 연지처럼 붉었다.
‘타고난 미인이구나…….’
이영소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단아한 이 미인 옆에는 꼬마 미인이 있었다. 노란색 치마와 크고 둥근 눈은 그녀의 달걀형 얼굴과 어우러져 활기차고 매력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십여 초 뒤, 이영소는 녹이 슨 듯한 목을 움직여 오른쪽에 있는 양천환을 쳐다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전음하였다.
“그, 그녀들 모두 허칠안의 홍안지기입니까?”
여기에는 그녀의 사매 이묘진은 포함하지 않았다.
양천환은 그녀들을 하찮게 여겼다.
“평범한 여인들일 뿐이네.”
‘내가 그를 믿었다니…….’
이영소는 비틀거리며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는 깊이 충격받은 듯했다.
이때 낙옥형이 차갑게 말했다.
“일 있는가?”
이영소는 입을 벌리고 곤란해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없, 없습니다…….”
그는 갑자기 구경하고 싶은 흥미가 사라졌다. 이렇게 많은 미인이 허칠안 때문에 질투하고 다투는 모습을 봤다가는, 마음이 더 괴롭고 더욱 달갑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일 없으면 당장 꺼져!”
이묘진이 버럭 화를 냈다.
탁!
방문이 닫혔다.
‘가, 가지 마…….’
허칠안은 힘없이 오른손을 뻗더니 몇 차례 헛되이 쥐었다.
이영소는 벽을 짚은 채 천천히 복도를 걸어가며 가냘프게 말했다.
“내가 졌다, 철저하게 졌어……. 양 형, 저는 이미 양 형의 절망을 충분히 체감했습니다.”
묘재방이 입을 벌렸다.
“진짜 너무 예쁘다. 내가 본 모든 기녀들보다 예쁘네요. 게다가, 게다가 다른 느낌을 줘요.”
이영소는 그를 가르칠 기분이 아니었다. 무엇이 기질인지 무엇이 우아한 맛인지 무엇이 금의옥식을 누리며 자란 미인인지 말이다.
* * *
세 사람은 계단 입구에 다다랐다. 그때 그들은 계단 창밖을 마주했는데, 밖에서 처참한 울부짖음이 전해졌다.
검광 한 줄기가 창문을 스치고 들어와 그들 앞에 조용히 멈추었다.
갔다가 다시 돌아온 초원진이었다.
그의 뒤에는 청색 상의를 입고, 같은 색의 풍성한 긴 치마를 입은 소녀가 있었다.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그녀는 차림새가 소박하였다. 두 눈은 촉촉하고 맑았으며, 이목구비엔 중원 여인에게서 보기 드문 입체감이 있었다.
‘청아하고 속되지 않은 백련화 한 송이 같구나…….’
성자의 암담하고 무관심한 눈이 순간 반짝이더니, 그는 어느 정도 활력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는 백련화가 그를 쓱 훑어보더니 조금도 미련을 두지 않고 그의 더할 나위 없이 준수한 얼굴을 비켜 갔다는 점에는 실망했다.
이영소는 종종걸음으로 초원진을 따라 복도 깊은 곳에 있는 방으로 갔다.
“…….”
그는 절망으로 가득한 얼굴을 하고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양 형, 저희 동맹 맺읍시다.”
“동맹?”
“허칠안에 맞서자!”
양천환은 몇 초 동안 침묵하더니 뒤로 손을 뻗었고 이영소 역시 손을 뻗었다.
그들은 두 손을 한데 맞잡았다.
“형제여!”
허칠안은 솔직하게 말해서 이 순간 이 장면에 조금은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는 전혀 어찌할 바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우선 그가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상황은 조만간 올 것이었다.
대봉의 제도는 일부일처다첩제(一夫一妻多妾制)였으며, 허칠안은 남의 비판을 잘 수용하는 남자로서 자신이 그 나라의 풍속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제도는 제도고, 사람은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제도가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면, 부잣집 대저택에서 어디 아귀다툼을 벌이겠는가?
게다가 연못 안의 물고기 중에 상대하기 좋은 여인은 하나도 없었다.
그다음으로 낙옥형의 ‘애’ 인격과 성격으로는 아수라장이 앞당겨서 벌어질 가능성이 컸다.
옹주에서 국사가 그에게 다른 여인과 경계를 명확히 구분하라고 요구했을 때 허칠안은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는 자신의 우세와 열세에 대해 어느 정도 분석을 마쳤다.
허칠안의 우세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모든 물고기와 그의 관계는 혼사를 논할 정도까지 가지는 않았다. 이는 아수라장의 격렬한 정도를 떨어뜨리고 모두가 정당한 명분으로 조리 있게 그를 찢지 못 하게 했다.
둘째, 그는 컨셉이 좋았다.
모두가 알다시피 허 은라는 교방사 단골손님으로, 교방사의 스물네 명 기녀 중 그와 침대를 구른 여인은 절반이 넘었다.
라는 느낌을 줄 수 있었다.
이렇기에 예법에 구애되지 않고 여색을 좋아하는 측면에서는 모두가 그에 관한 관용도가 높았다.
다만 역으로 문제는 물고기와 그의 관계가 혼사를 논할 정도까지 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들이 어장에서 뛰쳐나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녀들이 그의 컨셉을 안 뒤에도 호감을 품을 수 있다면 어항에서 뛰쳐나갈 가능성은 결코 크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가 지금 해야 할 건 낙옥형의 화력을 옮기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만이 허칠안을 그녀의 남자라고 선포하면서 다른 요염한 여우들한테는 꺼지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물고기는 관계가 그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살기등등한 일을 하지 않을 터였다.
허칠안이 판단하기에는 한 번의 고생으로 오랫동안 편안해지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시간이야말로 가장 좋은 갈등 조율자였다.
그가 하려는 건 한 번씩 유사한 갈등과 충돌 속에서 우세를 기반으로 한 행동으로 사건을 수습하는 일이었다.
현재로서 허 은라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허영월 소환이었다!
그녀는 흙탕물 역할을 맡기에 아주 적합했다.
여동생은 매를 벌지 않을 터였다. 반면 명색이 폭풍우의 중심의 자신은 무슨 말을 해도 글렀다.
살기가 사방에 깔리고 암류가 용솟음치는 분위기 속에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후…….’
허칠안은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단호하게 문 옆으로 걸어가 방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청아하고 호감이 가는 여동생이 서 있었다. 그리고 초원진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아주 눈치껏 이 폭풍우에서 벗어났다.
“영월, 왜 온 거니?”
허칠안은 오라버니다운 웃음을 지었다.
허영월은 복잡하게 그를 쳐다보더니 나긋나긋한 눈길로 안을 한 바퀴 훑었다.
먼저 그녀가 본 건 낙옥형의 뒷모습이었다. 낙옥형은 우의를 입고 명주 끈으로 가느다란 허리를 묶었다.
국사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탁자 곁의 여인들을 차갑게 살폈다. 그녀는 마치 누구든 감히 굴복하지 않으면 바로 나서 제압할 것만 같았다.
허영월의 시선은 국사를 스쳐 다른 여인에게로 향했다. 서리처럼 냉담한 회경공주마마는 찻잔을 쥔 채 시선을 약간 내리깔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정 있고 의리 있는 비연 여협객은 시선을 옆으로 향해 한쪽을 쳐다보면서 때로 이를 갈았다. 아름답게 치장한 임안 마마는 눈시울을 붉힌 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국사를 노려보았다.
활발하고 명랑한 저채미는 보기 드물게 눈썹을 찡그리며 침묵을 유지했다.
“큰오라버니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께서 조바심 내며 기다렸는데 오라버니가 집에 돌아오지 않자 안심되지 않아 저더러 보고 오라고 했어요.”
허영월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숙모, 한 번만 제 호구가 되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허칠안은 문득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알겠다. 내가 경성을 떠난 지도 수일이 됐으니 확실히 뵈러 돌아가야겠구나. 음, 음…… 여러분,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가면 안 돼!”
“갈 수 없어.”
“한 번 감히 가보시지.”
“……”
방 안 여인들은 잇따라 강경한 태도를 표명했다.
‘역시나, 국사가 내게 그녀들과 선을 그으라고 압박하고, 그녀들 역시 내가 태도를 표명하길 바란다. 이런 시기에 나는 확실히 침묵을 유지하는 게 가장 좋아. 사적으로 하나씩 격파하겠어.’
……허칠안은 허영월을 쳐다보았으나, 그녀는 그를 상대하지 않은 채 침묵을 유지했다.
낙옥형은 차가운 눈빛을 하고 입가에 위험한 호도를 그리더니 말했다.
“허랑, 계속 여러 핑계를 대면서 회피하면 나 화낼 거야.”
임안 등은 눈빛이 순식간에 날카로워져 허칠안을 빤히 주시하였다.
‘에휴, 국사야, 국사야. 내가 이 일을 피하는 주된 이유는 철저하게 네가 사회적 매장을 당하지 않길 바라서야!’
허칠안은 속으로 탄식하고선 막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는데 허영월이 먼저 입을 뗐다.
“허랑?”
그녀는 아주 충격받은 모습이었다.
“국, 국사, 국사께서 제 큰오라버니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