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851
850화. 천거
류홍은 제각기 한데 모여 귓속말을 주고받는 모든 관원들을 쳐다보더니 말했다.
“어쩌면 회경 마마께서는 차가운 눈으로 방관하시는 중이실지도 모르네. 어떤 자들이 기부에 찬성하는지, 어떤 자들이 속으로는 찬성하나 감히 대중의 분노를 살 엄두를 내지 못하는지, 어떤 자들이 돈 한 푼 토해내려 하지 않을 정도로 인색한지 말일세.”
장항영이 문득 깨닫고 말했다.
“그녀가 이 계책이 실행 불가능한 걸 아는가?”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허신년을 해치는 일 아닌가.”
류홍이 웃으며 말했다.
“그 정도는 아니지. 그에게는 뒤를 봐주는 왕 재상이 있으니 기껏해야 몇 년 동안 푸대접을 받겠지.”
장항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탄식하였다.
“본관은 그래도 이 일을 성사시킬 수 있길 바라네. 국고에 정말 은자가 떨어졌어. 지금 유랑민들이 도처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어 이미 천하에 대란이 일어날 조짐이 생겼네. 빨리 불을 끄지 않으면 조만간 대란이 일어날 걸세.”
류홍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이때, 먼 곳에서의 소동이 두 사람의 주의를 끌어당겼다.
류홍과 장항영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조망하였으나 청포를 입은 젊은 관원만 보일 뿐이었다. 그는 역시나 청포를 입은 허신년 앞에 기세등등하게 서서 침을 사방으로 튀기며 욕을 퍼붓고 있었다.
류홍은 눈이 그다지 좋지 않아 한참을 바라보더니 물었다.
“저자는 누군가?”
장항영이 웃으며 말했다.
“이번 과거의 탐화, 전목(錢穆)일세.”
류홍이 따라 웃기 시작했다.
“바로 이부 시랑의 횡령과 뇌물 수수를 고발하는 접본을 써서 이부 모든 관원까지 연루시킨 덜렁이? 푸대접을 오래 받았나 보군. 찬밥 신세를 견디지 못하고 이곳에 충성심을 증명하러 왔구먼.”
장항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용당하는 걸세. 단기간 내에는 확실히 이득이 있겠으나 장기적으로 보자면, 허, 폐하를 노하게 했는데 그도 무슨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겠나.”
류홍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괜찮네. 충성심을 증명하여 청당(靑黨)에 들어갔으니 마찬가지로 벼슬을 잘 살 수 있지. 앞으로 좀 겸손하기만 하면 폐하께서 그를 주시하며 놓아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쪽에서는 이야기꽃이 폈으나 다른 한편은 일촉즉발의 형세였다.
전목이 허신년을 가리키며 살기 등등하게 말했다.
“올해는 극한 추위로 조정에 청렴한 자들은 쌀과 숯이 부족하지! 모두가 허 대인처럼 집에 천금만냥(千金萬兩)이 있어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다. 석 달 치 봉록이야. 청렴결백한 동료들더러 이 겨울을 어떻게 보내라는 말이지?”
그는 허신년이 말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냉소를 짓더니 풍자하였다.
“폐하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이렇게 황당한 계책을 생각해 내다니. 소인배 같으니라고. 본관은 너와 동기로 체면이 서지 않는구나!”
관원들이 옆에서 둘러싸고 구경하던 중 잇따라 맞장구쳤다.
허신년은 무표정으로 말했다.
“본관은 백성을 위하는 것이니 양심에 물어 부끄러운 바가 없다.”
“양심에 물어 부끄러운 바가 없기는!”
전목이 세 차례 크게 웃더니 소리 높여 말했다.
“본관은 가산을 다 나누어 국고를 메우고 이재민을 구휼하길 원한다. 허 대인, 네가 기왕 양심에 물어 부끄러운 바가 없고, 백성을 위한다면 너도 본관처럼 가산을 모조리 기부할 엄두가 나는가?”
그가 이 말을 마치자 사방에서 갈채를 보냈다.
“전 대인, 기개가 드높으십니다.”
“전 대인, 대의를 잘 아시는군요.”
간사한 시선들이 허신년을 향했다.
허신년은 눈살을 찌푸렸다. 전목의 말은 확실히 막무가내였다. 허가에는 여러 점포와 양전(良田) 그리고 큰형이 남긴 치킨스톡 이익 배당이 있는데 상대는 뭐가 있단 말인가?
비록 아주 가난한 정도는 아니지만, 이렇게 오래 푸대접을 받았으니 집에 아마 쌀 몇 말과 은자 몇 냥뿐일 테다.
하지만 그는 하필 시비를 논할 수 없었다. 전목이든 그의 배후에 있는 자든 또는 주위의 관원들이든 전부 그와 이치를 논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트집을 잡으러 왔을 뿐이었다.
만약 허신년이 그들을 상대하지 않는다면, 조회 이후 그에게는 ‘위선자’라는 오명이 하나 더 늘지도 몰랐다.
바로 이때, 왕 재상이 걸어오더니 조용히 주위의 관원들을 냉담하게 힐끗 보았다.
모든 관원들은 즉시 입을 다물었다.
전목은 웃었다. 허신년이 응하든 응하지 않든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이미 전달되었다.
이후에 더는 기척이 없었다. 곧 묘시가 임박하자 북소리가 울렸다.
문무백관은 침묵을 유지한 채 오문을 지나 금수교를 건너 품급의 높낮이에 따라 차례대로 섰다.
소수의 사람만이 금란전에 들어갈 수 있었다.
허신년은 명색이 이번 풍파의 핵심 인물 중 하나로, 입전(入殿)을 허가받았으나 대전문 앞자리에 서야 했다.
제공들이 입전함에 따라 몇 분 뒤, 영흥제가 도착했다.
그는 용의에 높이 앉아 신하들을 내려다보며 소리 높여 말했다.
“각지의 피해 상황이 심각하다. 짐은 명색이 한 나라의 군주로서 매우 가슴이 아프구나. 여러 경들은 이재민을 구휼할 좋은 대책이 있는가?”
아래에 있는 제공, 훈귀들은 ‘진작에 이럴 줄 알았다’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이도 저도 아니게 몇 가지 제안을 하였다. 예를 들자면 세금 감면, 향신에게 기부 호소 등등이었다.
영흥제가 말했다.
“기부하려면 응당 조정에서 모범을 보여야 하며 모든 경들이 귀감이 되어야 하는 법. 짐의 말대로 하면 향신들이 기꺼이 기부할 수 있고, 또한 일을 처리하는 관원들에게 중간에서 재물을 가로채지 않도록 경고할 수 있다.”
향신의 기부를 호소하기만 한다면, 이변이 없는 한 아마 각계각층에서 그 은자들을 착취할 터였다.
몇몇 당파의 당 우두머리와 훈귀는 약속이나 한 듯 앞뒤로 대열에서 나와 “안 됩니다”라고 외쳤다.
이때 대리사경이 나와 나지막이 말했다.
“폐하, 조정의 풍조가 부패하고 횡령의 바람이 불어 국고가 텅 비었습니다. 기부는 일시적이며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닙니다. 이재민을 구휼하려거든 우선은 반드시 옳지 않은 풍조를 숙청해야 합니다.”
그가 이 말을 내뱉자마자 호전적인 분자인 호부 급사중이 대열에서 나와 소리 높여 말했다.
“폐하, 신은 한림원 서길사 허신년을 뇌물 수수 혐의로 탄핵하고자 합니다!”
금란전 내에는 말하는 이가 없었다. 한림원의 서길사가 무슨 뇌물을 수수할 수 있는지 질의하는 이도 없었다. 그들은 마치 진작에 이런 일을 예측한 듯했다.
이부 급사중이 대열에서 나와 소리 높여 말했다.
“폐하, 신은 한림원 서길사 허신년을 탄핵하고자 합니다. 왕 재상의 기치를 내걸고 뇌물을 수수했습니다.”
뒤이어 육부 급사중이 잇따라 대열에서 나와 허신년을 탄핵했다.
금란전 안에 설 수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경력직이었다. 때문에 다들 즉시 이 자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지 이해했다.
이건 그들의 반격이었다.
그들은 허신년을 제물 삼아 영흥제와 왕 재상에게 반항했다.
이렇게 하면 그들은 영흥제와 왕 재상을 전혀 화나게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태도를 드러낼 수 있었다. 우리가 네 앞잡이를 해치우려고 하는데 올 때마다 하나씩 해치우겠다고 말이다.
동시에 그들은 비록 왕당의 세력이 크지만, 아직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릴 정도에 이르지는 않았다고 왕 재상에게 완곡하게 경고하였다. 게다가 왕당에서도 이 일을 찬성하지 않는 목소리가 있었다.
허신년이 뇌물을 받았다고?
답은 ‘그렇다’였다.
그는 왕 재상의 미래 사위였으므로, 왕당 구성원 중에 그에게 선물을 보낸 이가 적지 않았다. 그리고 관리 사회에서는 선물을 받아야만 자기 식구라 할 수 있었다.
운록서원 서생의 신분으로 왕당에 녹아들고 싶으면 너무 청렴해서도 안 됐다.
비록 허신년이 귀중한 선물을 많이 반납했다고 해도 이는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관리 사회에 있으면서 몸을 깨끗이 하면 아무 일도 성사시키지 못하고, 물 흘러가는 대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 또 첨예하게 투쟁할 때 정적이 공격할 약점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핵심 문제는 여전히 세력이 충분히 크지 않다는 것이다. 여전히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여야 한다.’
허신년은 문득 내심 깨달았다.
금란전 내의 제공들 중, 어떤 이는 영흥제의 표정을 관찰했으며 어떤 이는 왕 재상을 자세히 살폈다.
제공들은 그들이 어떻게 수를 이어받는지 보았다.
영흥제가 만약 허신년을 비호한다면 그들에게는 후수가 더 있었다. 만약 왕 재상이 나선다고 해도 역시 후수가 있었다. 예컨대 그를 끌어들여 함께 탄핵하는 방법을 들 수 있었다.
지금은 그들이야말로 대세를 차지한 쪽이었다.
누구도 주의하지 않을 때, 류홍이 태연자약하게 대열에서 나와 읍하며 말했다.
“폐하, 신은 대리사경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고가 텅 비었으나 세금을 거두기 어려운 건 모두 누군가 횡령하고 뇌물을 수수하는 부정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하여 신은 폐하께서 백관을 엄격하게 조사하시어 기풍을 바로잡아주시길 청하는 바입니다.”
‘재미있군…….’
금란전 내의 모든 신하, 훈귀가 일제히 류홍을 쳐다보았다.
이는 혼란한 틈을 타 한몫 챙기려는 수작이었다. 류홍은 조당에서 위연의 ‘계승자’로 간주되어 위연의 하부 조직을 인수하였다. 새로운 군주가 자리에 앉은 뒤, 전 위당에 적잖은 이가 좌천당하고 파면당해 세력이 거의 5할 정도 깎였다.
빈자리는 왕당과 각 당파가 나눠 가졌다.
관리 사회에서 이는 적절한 양보였다.
지금 이 류홍이 나선 건 어사대와 야경꾼을 관장하는 전 위당이 기회를 틈타 어부지리를 얻기 위함이 분명했다.
영흥제가 웃었다.
“류 경의 말에 일리가 있군. 계속 말해보거라.”
류홍은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위 공께서 돌아가신 뒤 야경꾼은 쇠퇴하였습니다. 신의 능력이 위 공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해 심혈을 기울여도 쓸모가 없더군요. 신을 대체해 야경꾼 관아를 관장할 사람을 폐하께 천거하고자 합니다. 백관을 더 잘 감독하고 관찰하기 위함이지요.”
제공들은 어리둥절했다. 이는 그들이 상상한 대사가 아니었다. 류홍이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일을 내팽개치고 야경꾼의 직위를 남에게 내어준다니?
영흥제는 의아한 척 물었다.
“류 경은 누구를 천거하고 싶은가?”
류홍은 의심하거나 경계하는 제공, 훈귀들을 훑어보더니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전 야경꾼 은라, 허칠안입니다!”
허칠안?!
군신들은 이 이름이 머릿속에 메아리치자, 걷잡을 수 없이 표정이 변하면서 좋지 않은 기억이 많이 떠올랐다.
오문을 막고 군신들을 비웃고, 오문을 막고 국공을 죽였으며, 선황을 벤…….
그들은 그가 여기저기서 날뛰며 거들먹거리는 걸 보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예전에는 이 자를 비호하는 위연이 있기에 그가 이렇게 제멋대로 방자하게 굴었다. 나중에 위연이 죽자 당시 조당에 많은 이들이 원경제가 이자를 숙청하기만을 기다렸다.
그의 온 집안이 가산을 몰수당하고 참수되길 앉아서 기다렸다.
순간 소란스러운 아우성이 일었다. 제공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어찌할 바를 몰랐고, 서로 목소리를 낮추고 무언가를 물었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신은 상응하는 소식을 접하지 못했음을 드러냈다.
허신년은 대오 끝에 서 있었기에 기껏해야 ‘그는 경성을 떠난 거 아닌가?’, ‘언제 돌아왔지?’, ‘이 천하에 죽일 개자식이 돌아와서 뭐 하려고’ 같은 말만 들을 수 있었다.
대리사경 등의 당 우두머리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장항영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고 류홍을 쳐다보았다. 전 위당의 몇몇 구성원들 역시 그러했다.
‘허칠안이 돌아왔다고?’
그들은 조금도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
‘그 자식이 경성에 돌아왔군. 경성에 돌아왔으니 됐군…….’
이 순간 전 위당 구성원들의 마음속이 뜻밖에도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