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854
853화. 시를 음미하다
본래 군중의 관심사여야 하는 허칠안은 이 순간 암말을 이끌고 경성 밖의 관도 위를 걷고 있었다.
말 등 위에는 평범한 자색의 왕비가 앉아 있었다. 말의 움직임에 따라 몸이 가볍게 흔들렸다.
며칠 동안 찬밥 신세였던 모남치는 드디어 자유를 되찾았다.
“너무 힘들어요. 앞에 저를 불편하게 하는 게 있어요……. 호연정기예요.”
흰 여우가 그녀 품에서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 백희 역시 자유를 되찾았다.
“남치…….”
모남치는 양손을 합장하고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어투로 말했다.
“허 시주님, 승려는 이름을 말하지 않고, 도는 목숨을 논하지 않지요. 빈승은 이미 불문에 귀의하였으니 더는 과거의 이름으로 빈승을 칭해서는 안 됩니다.”
허칠안이 바로잡았다.
“아마 스스로를 비구니라고 칭하셔야 할 텐데요.”
‘네가 뭔 상관이야!’
모남치는 하마터면 공을 무너뜨릴 뻔했다.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시주님 마음대로 하시지요.”
그녀는 부도보탑에서 나온 뒤부터 이런 모습이었다.
모남치는 걸핏하면 양손을 합장하고 불호를 외워 자신이 출가했음을 나타냈다. 그녀는 이로써 아내의 절친을 훔친 어느 쓰레기 같은 남자와 단호하게 관계를 끊었다.
“남치, 어렵사리 경성으로 돌아왔으니 저희 화본을 좀 많이 사서 가져가요. 여행 도중에 지루하면 뒤적이세요. 이 화본은 경성에서 제일 재미있다고요.”
허칠안이 제안하였다.
모남치는 불호를 외더니 말했다.
“비구니는 그런 세속적인 욕망이 없습니다.”
그녀는 아주 빨리 배워 자칭을 바꾸었다.
“그런 세속적인 욕망이 없습니다.”
백희가 한 마디 덧붙였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어항이 터졌다. 모든 물고기가 나와 사이가 틀어져 분명하게 선을 그으려는 상태에 놓였어……. 국사여, 국사. 당신도 내가 며칠 전에 당신을 그렇게 농락했다고 탓하지 마세요. 당신에게 그렇게 수치스러운 자세를 취하라고 했다고 탓하지 마시고요. 아이고. 전부 인과응보구나……. 참, 나 내일이 되기 전에 경성을 빠져나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롭다고!’
그들이 잠시 걸으니 청운산이 보였다.
그가 이번에 운록서원에 온 건 원장 조위를 찾아가 위연이 죽음을 무릅쓰고 무신을 봉인하려 했던 진상을 묻기 위함이었다.
내친김에 유가의 ‘언출법수’ 법술을 기록한 종이 몇 장도 구걸하고 말이다.
“백희, 부도보탑에 들어갈 거니?”
허칠안은 암말을 이끌고 산기슭 패방 아래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암말을 기둥 옆에 묶은 뒤 흰 여우의 의견을 물었다.
“안 가요! 제가 이번에 나온 건 경험을 쌓고 견문을 넓히기 위함이라고 마마가 말했어요.”
흰 여우는 앳된 아이 목소리로 진지하게 말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허칠안은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흰 여우와 콩알이를 한데 두면 어떠한 불꽃이 일지 모르겠군. 아마 흰 여우가 처참하게 얻어맞겠지…….’
“너희 마마는 예쁘시니?”
허칠안은 말에서 내리는 왕비를 부축했다.
“완전 예쁘죠.”
백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허칠안은 모남치가 차가운 눈으로 자신을 곁눈질했다는 걸 눈치챘다.
‘너 역시 정말 색즉시공한 건 아니구나…….’
그는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두 사람과 여우 한 마리는 암말을 산기슭에 둔 채 계단을 올라갔다. 초목이 우거진 청운산은 설령 이렇게 추운 겨울철이라도 드넓은 녹색을 볼 수 있었다.
허칠안은 그녀가 신나게 길가의 풍경을 감상하는 걸 보자 말했다.
“이곳의 화초와 수목은 일 년 내내 호연 정기를 받아 영양분을 공급해요. 바깥에 있는 식물과 달리 약간의 변이가 생긴 거죠. 겨울이라고 해도…….”
모남치는 냉담한 어조로 말을 끊었다.
“나한테 자네 설명이 필요하겠나?”
‘……잊을 뻔했네. 너는 화신이지!’
허칠안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모남치의 단수로는 아마 첫 번째로 단서를 알아봤을 것이다.
허칠안은 화신의 신분을 줄곧 언급하지 않으며 모르는 척했다.
모남치 역시 그가 모르는 셈 쳤다.
두 사람은 과도할 정도로 찰떡궁합이었기에, 마치 여러 해 동안 함께 생활한 노부부와도 같이 너무 많이 교류하지 않아도 서로 이해할 수 있었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산 계단을 따라 서원에 이르렀다. 허칠안은 먼저 명목상 그의 스승인 대유 셋을 만나러 갔다.
대유 셋은 수려하고 고상한 각루에서 허칠안을 대접했다.
“칠안, 오랜만이구나. 무탈한 게냐?”
허신년의 학업 은사인 대유 장진이 웃으며 안부를 묻더니 돌아서서 모남치를 쳐다보았다.
“이분은…….”
“이 여인은 아직 시집오지 않은 제 아내입니다.”
허칠안은 이렇게 소개했다.
대유 셋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모남치조차 경악하며 옆으로 고개를 돌려 허칠안을 주시하였다.
모남치는 얼른 양손을 합장하고 반격을 펼쳤다.
“비구니는 출가인입니다. 허 시주님께서는 쓸데없는 소리로 비구니의 평판을 더럽히지 마십시오.”
흰 여우는 찻상 위에 웅크리고 앉아 얼굴을 치켜들더니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모, 출가인에게 어디 평판이 있겠어요. 이모는 비구니의 수행을 망치지 말라고 말해야 해요.”
모남치는 손을 뒤집어 폭력을 휘두르더니, 부끄럽고 분하여 성을 냈다.
“너만 아는 게 많지. 너한테 연극 무대를 마련해주면 3박 3일 동안 과시해 볼 테냐?”
백희는 마침 어려서 빈 수레가 요란한 상태였기에,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넘쳤다. 흰 여우는 스스로 그런 의식이 없긴 했지만 그 탓에 모남치를 궁지에 빠트린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모남치는 네 남자가 전부 자신을 주시하는 걸 깨닫자, 약간 창피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씩씩거리며 일어나 가버렸다.
“이모, 기다려요…….”
흰 여우는 얼른 탁자에서 뛰어내리더니, 덥수룩한 꼬리를 흔들면서 주인에게 버림받은 고양이처럼 안달 내며 쫓아갔다.
허칠안은 사람 한 명과 여우 한 마리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탄식했다.
“제 아내는 시집간 적이 있고 성격이 좋지 않습니다. 나이가 제 숙모랑 비슷해요……. 휴, 스승님들께서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시집간 적도 있다고?! 나이가 그의 어머니뻘이라고?!’
대유 셋이 허칠안을 쳐다보는 눈빛에 무언가 더해진 듯했다.
“이번에 스승님 세 분을 만나러 온 건 ‘언출법수’의 법술 몇 장을 구하고 싶어서입니다.”
허칠안은 자신의 무임승차가 미안해져서 손을 비볐다.
그가 조위가 아니라 대유 셋의 법술을 달라고 한 이유는, 4품 ‘언출법수’의 부작용이라면 견딜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장 조위는 3품 전봉으로 진정한 ‘대유’경에 들어서기까지 고작 한 발 모자랐다. 이 단계의 법술 부작용은 허칠안이 감당할 수 없었다.
“법술!”
“그렇구나!”
“별일 아니네, 별일 아니야!”
대유 셋은 차례대로 다정하고 상냥한 웃음을 짓더니 손을 비비고 말했다.
“칠안, 최근에 신작 없는가?”
“없습니다!”
허칠안은 아주 유감스럽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몇 마디 해명하고 싶었다.
대유 셋이 순간 다정하고 상냥한 웃음을 거두며 ‘모두가 우연히 만났다’는 표정을 지을 줄 어찌 알았겠는가. 그들이 말했다.
“유가의 법술은 외부인에게 전하지 않네. 허 은라, 돌아가시게. 우리를 곤란하게 하면 안 되네.”
‘이, 이렇게 허 은라가 된다고? 너무 진실한 거 아니냐. 너희 내 시에 무임승차하고 싶은 거잖아…….’
허칠안은 속으로 빈정대더니 즉시 자신도 다른 사람을 비방할 자격이 없다고 반성했다.
그는 침음하더니 말했다.
“문득 영감이 샘솟듯 떠올랐습니다.”
대유 셋의 눈빛이 갑자기 반짝이더니 허리를 꼿꼿하게 펴 진지하게 경청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허칠안이 천천히 말했다.
“거년금일차문중 인면도화상영홍(*去年今日此門中 人面桃花相映紅: 작년 오늘 이 문 앞에서 복숭아꽃 같은 그녀를 바라보았을 때 얼굴이 발개졌네).”
‘칠률…….’
대유 셋은 귀를 기울이며 들었다. 그들은 속으로 첫 두 마디를 음미했다.
이 두 마디 시는 ‘오늘날’까지도 또렷할 정도로 인상 깊은 추억을 돋보이게 했다. 대유 셋은 후반부의 그녀 얼굴과 복숭아꽃이라는 말을 듣자 그가 지으려는 시가 정과 관련 있음을 알았다.
그들은 재능이 비범한 대유로서 시에 관한 감상 및 분석 능력이 아주 뛰어났다.
대유 셋은 이 시가 정취와 정감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암향부동월황혼’ 그 시와는 달랐다.
심지어 대유 셋은 앞 두 마디의 포석에 근거하여 머릿속에서 자발적으로 시를 짓거나 다음 시 구절의 감정 방향을 추측하기도 했다.
허칠안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인면불지하처거 도화의구소춘풍(*人面不知何處去 桃花依舊笑春風: 그 얼굴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구나. 복숭아꽃만이 여전히 봄바람에 미소 짓네)!”
대유 셋은 침묵한 채로 음미하였다. 그들은 가슴 속에 까닭 없이 슬픈 감정이 밀려왔다.
복숭아꽃으로 미인을 두드러지게 하고, ‘작년’이라는 시간으로 밑바탕을 만들었다. 뒤 구절이 나온 뒤에는 ‘물시인비(*物是人非: 풍경은 여전한데 사람은 이미 달라졌다)’라는 울적한 감정이 우러나왔다.
만약 감성적인 사람이라면 들으면서 실의에 빠져 울적해질 것이다.
“좋은 시구먼. 이 시가 전해지면 분명히 교방사 낭자들에게 깊이 사랑받고 추앙받을 것이네.”
장진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개탄하였다.
이렇게 대놓고 사랑의 상처를 다루는 시는 속세 여인의 부드러운 마음을 가장 잘 저격하는 법이었다.
“칠안, 이 시를 구실로 삼아 또 교방사에서 제멋대로 소비해도 한 푼도 쓰지 않을 수 있겠군.”
이모백이 칭찬하였다.
“칠안, 이 시는 부향을 위해 지은 게지? 이 시를 전하면 교방사 낭자들이 모두 자네의 깊은 정에 눈물을 흘릴 걸세.”
진태가 탄식했다.
허칠안은 눈을 굴리며 말했다.
“이 시는 이름이 없으니 번거로우시겠지만 세 분 스승님께서 도와주십시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유 셋의 호흡이 갑자기 거칠어졌다. 그들은 서로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상대를 살폈다. 대유 셋은 지금 불신과 경계로 충만했다.
허칠안은 이 모습을 보자 일어나 읍하였다.
“저는 원장님을 찾아갈 일이 있으니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그는 각루에서 물러났다.
* * *
그가 밖에서 잠시 두리번거렸지만, 모남치를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녀가 청운산에 있다면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기에 그는 굳이 찾으러 가지 않았다.
허칠안은 익숙하게 ‘학구(學區)’와 ‘숙사구(宿舍區)’를 지나, 바람에 대나무 잎이 흔들리는 샤샤샥 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뒷산으로 한참 걸었다.
푸른빛에 누런빛이 뒤섞인 대나무 숲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대나무 숲과 어우러져 돋보이는 각루가 보였다.
원장 조위는 이미 각루 앞의 울타리 마당에 서서 한참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방금 스승님 세 분을 만났습니다.”
허칠안이 읍하였다.
조위는 답례하였다. 지금의 허칠안은 그와 동등하게 앉을 자격이 있었다.
“스승을 존경하고 도리를 중히 여겨야 하지.”
조위가 미소를 지으며 칭찬하였다.
그는 대유 셋이 명목상 허칠안의 스승임을 알았다.
허칠안은 그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그들에게 시를 지어주었는데 시명을 짓지 못했습니다.”
조위의 얼굴에서 미소가 점점 사라졌다.
“됐네. 할 말 있으면 바로 하게. 나를 무슨 일로 찾은 건가.”
조위는 미간을 문질렀다.
“이따가 나는 뒷수습도 해야 하거든.”
“위 공께서 왜 무신을 봉인하려 한 겁니까?”
허칠안은 역시나 할 말을 바로 질렀다.
조위는 ‘청하는’ 손짓을 했다.
“방에 들어가서 얘기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