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857
856화. 진솔함
이때 침상 안쪽으로 누군가 수건을 건넸다.
임안은 ‘아’하고 소리 내더니 수건을 받아 눈물을 닦았다. 뒤이어 가녀린 몸이 굳었다. 그녀는 이상함을 눈치채고 갑자기 침상에서 튀어 올라 귀청 떨어질 정도로 큰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는 동시에 침상 옆에 사람이 있는 걸 똑똑히 보았다. 그는 푸른색 긴 장포를 입고 머리에는 옥관을 쓴 부잣집 공자 차림이었다.
그 사람은 그녀의 개자식이었다.
쿵쿵!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두 궁녀가 밖에서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마마, 마마?”
임안은 사납게 허칠안을 노려보더니 이불을 잡아당겨 그를 덮고 목소리를 낮추었다.
“소리 내지 마…….”
그녀는 코를 훌쩍이더니 목청을 가다듬어 자신의 목소리를 정상적으로 들리게 한 뒤 말했다.
“들어오거라.”
방금 그 비명은 너무 섬뜩해서 그녀가 ‘나 괜찮아’ 한 마디로 따돌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궁녀들이 주인이 안에서 협박을 받은 건 아닐까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들은 엄격한 훈련을 거친 궁녀들이기에 임안조차 얼렁뚱땅 넘어가기 어려웠다.
침실 문이 열리자 한 궁녀가 다급한 얼굴을 하고 들어왔다. 다른 궁녀는 밖에 남아서, 주인이 언제든지 방을 뛰쳐나가 도움을 청하기 편하도록 아주 신중하게 들어오지 않았다.
들어온 그 궁녀는 좌우를 두리번거리고 침상을 쳐다보더니 물었다.
“마마, 왜 그러세요?”
임안이 담담하게 말했다.
“방금 악몽을 꿨는데 이제는 괜찮아.”
궁녀는 새빨개진 그녀의 눈가를 몇 차례 주시하더니 갑자기 모든 걸 깨닫고 약간은 믿었다. 뒤이어 그녀는 다시 침상을 자세히 살폈다.
다행인 건 국고가 텅 비어 영흥제가 궁중의 비빈, 황실 종친의 경비를 감축했다는 점이었다. 값비싼 금수탄 역시 이에 속했다.
숯불은 더는 예전처럼 제한 없이 얻을 수 없었다. 임안이 덮은 건 가벼운 ‘비단’과 ‘이불’에서 더 두툼한 ‘이불’로 바뀌었다.
양털과 오리털로 채워 넣은 이불은 두껍고 커서 허칠안을 완벽하게 감출 수 있었다.
“마마, 너무 더우세요?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셨어요.”
궁녀가 다정하게 말했다.
“본 공주는 괜찮다.”
임안은 당황할수록 겉으로는 더 냉담하게 굴었다.
“공주마마께서 심하게 헐떡거리시던데, 너무 답답하신 건가요?”
“조금. 창문을 좀 열거라.”
“아니면 노비가 방 안을 지키고 있을게요.”
궁녀가 말했다.
“필요 없다. 본 공주는 기분이 좋지 않아 혼자 조용히 있고 싶구나.”
궁녀들은 이 말을 듣자 더 고집부리지 않고 방 안을 한 바퀴 훑더니 물러갔다.
임안은 궁녀가 떠나자 침실 문을 닫았다. 그녀는 이불을 확 젖히더니 자신의 가슴 위에 드러누운 머리를 힘껏 밀쳤다. 그녀는 수줍고 화가 나고 기쁘고 놀랍기도 하여 버들눈썹을 치켜세우고 말했다.
“개자…….”
입에서 막 두 글자가 튀어나오자마자 허칠안이 막았다. 그는 방문 방향을 향해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아직 안 갔어요.”
임안이 고개를 돌려 보니 역시나 문 옆에 바짝 붙은 그림자가 보였다. 방 안의 움직임을 몰래 듣고 있는 듯했다.
허칠안은 이불을 잡아당겨 두 사람을 덮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몰랐는데 마마의 노비가 아주 눈치 빠르네요.”
예전에 그는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전부 궁에서 상궁들이 훈련시킨 자들이지. 후궁들 곁의 대궁녀는 더 눈치가 빨라.”
임안은 한 마디 덧붙이더니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힌 채 화를 냈다.
“개자식, 담이 아주 크구나. 본 공주의 침상에 감히 올라오다니. 가, 가버려. 낙옥형 침상 위로 가라고!”
그녀는 작은 손을 뻗어 그를 힘껏 밀쳤다.
허칠안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가까이 다가가, 서로의 얼굴에 숨을 내뱉을 수 있을 정도의 거리까지 끌어당겼다.
“마마, 제가 여러 날 떠돌면서 시도 때도 없이 마마를 염려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매일 밤 항상 날개가 없다는 사실이 후회스러웠어요. 그랬다면 바람을 타고 마마를 보러 올 수 있었을 테니까요.”
허칠안은 그동안 쓰레기 남자 성자와 함께 지내면서 여자를 달래는 수법에 통달했다. 또한 그는 예전에 이해하지 못했던 핵심 이치를 깨달았다.
사내가 여자를 달래려면 우선은 그녀의 입장에 서야 했다. 그런 뒤 그는 그녀가 무슨 말을 듣고 싶어 하며 또 어떤 태도를 원하는지 세심하게 따져보아야 했다.
이때 사내는 자신의 각도에서만 판단하면 안 되었다.
만약 그가 자신의 입장에서 달랜다면 질 터였다.
예를 들면 허칠안의 입장에서 보자. 국사는 애당초 몸을 태우는 업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흑련 저지를 도왔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업화가 재발하여 쌍수하지 않으면 천겁에 죽을 터였다.
무릇 그에게 인성이 좀 있다면 도덕적으로 바지를 벗어야 했다.
하지만 만약 그가 이렇게 설명한다면 임안은 지금 폭발할 터였다.
하지만 임안의 입장에 섰을 때 그녀가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을까? 그녀가 원하는 태도가 무엇이었을까?
“찌푸렸다 웃었다 하는 마마가 제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오매불망 그리워했답니다.”
허칠안은 손을 뻗어 임안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는 눈빛이 진지했으며 어조는 간절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잘못했다는 걸 압니다. 오늘 집에 있으면서 걱정이 태산이었어요. 감히 마마를 마주하러 올 엄두가 나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마마를 흠모하는 제 마음을 거스를 수 없었습니다.”
임안은 귓가에 울리는 진심 어린 말을 들으니 심장이 빠르게 뛰었으며 뺨이 화끈 달아올랐다.
뱃속에 가득했던 억울함이 깨끗이 사라지고 독한 결심도 사탕발림에 녹았다.
그녀는 콧방귀를 뀌더니 억지로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임안은 허리를 감싼 그의 팔을 밀치더니 고개를 돌렸다.
“허 대인은 다른 여인을 달랠 때도 이런 식이겠지?”
그녀는 자신의 쌀쌀맞은 태도로 이 남자를 제압하려 했다.
허칠안은 그녀의 작고 깜찍한 귓불을 주시하며 핥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은 채 한숨을 내쉬었다.
“휴, 보아하니 제가 뭐라고 말하든 간에 마마께서는 저를 용서하지 않으시겠군요. 저 내일이면 경성을 떠납니다. 다른 요구사항은 없어요. 다만 마마께서 제게 한 가지만 약속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가 초반에 내뱉은 말에 임안은 가슴이 철렁하여 조급한 마음이 솟구쳤다. 그러다 그녀는 그가 뒤에 내뱉은 말을 듣더니 황급히 물었다.
“무슨 일?”
그녀는 이내 자신의 어조에 기개가 부족했다는 생각에 콧방귀를 뀌었다.
“본 공주가 참작하여 처리하겠다.”
“공주마마께서 소직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반짝이는 등불을 봐주시길 청합니다.”
임안은 이 말을 듣자 한동안 어리둥절했다. 그녀는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녀는 개자식이 이불을 잡아당겨 자신들의 머리를 덮는 걸 보았다.
* * *
뒤이어 임안은 끝없는 어둠 속에 빠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 앞에 빛이 나타났으며 귓가에는 휙휙 부는 바람 소리가 들렸다.
땅거미가 짙게 깔렸으며 달빛이 하늘에 높게 걸렸다.
그녀는 천지 사이에 서서 찬바람을 맞았다. 이곳은 광활하고 쓸쓸하지만, 또 자유로웠다.
임안은 의아해하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녀는 둥둥 떠다니는 포대 위에 서 있었다. 머리 꼭대기에는 썰렁하면서도 찬란한 달빛이 흩뿌려져 있었으며, 발밑에는…….
그녀는 문득 눈을 크게 떴다. 촉촉하고 고운 눈에 수많은 집의 등불이 비쳤다.
아래쪽은 경성 전체로, 외성은 대부분이 칠흑같이 어두웠다. 이따금 드문드문 등불이 보였다.
가장 밝고 가장 찬란한 건 황궁이었다. 황궁은 마치 거대한 불꽃 같았다. 불꽃의 외부 테두리인 황성 역시 반짝반짝 빛났다. 화려한 등불이 황궁을 호위했다.
그리고 부유한 자들이 사는 내성은 마치 화염의 겉불꽃 같았으며, 반짝이는 별들을 빽빽하게 수놓은 듯했다.
임안은 지금껏 경성의 야경을 본 적이 없었기에 순간 매혹되었다.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낭만적인 일은 허칠안의 시 ‘만선청몽압성하’였다. 지금은 이 남자가 또 그녀에게 다른 풍경을 보여주었다.
“감기 걸리면 안 돼요.”
허칠안은 걸어와 장포를 벗어 그녀에게 덮어주었다. 그는 내친김에 미인을 품에 안았다.
임안은 술에 취한 것처럼 눈이 요염해지더니 얼굴이 빨개졌다. 그녀는 팔랑팔랑 취하고 싶었다.
허칠안은 이런 반응이 전혀 의외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이를 충분히, 심지어 예상한 바였다. 임안은 선명하고 눈부신 걸 좋아하기에 이런 공세에는 저항하기 어려울 게 분명했다.
‘이따가 포대를 손현기에게 돌려줘야겠군. 이 수는 회경한테 소용없지……. 앞으로 성자에게 좀 잘해야겠군. 어쨌거나 그한테 배운 것들이니까…….’
허칠안이 생각하는 사이, 귓가에 임안의 잠꼬대 같은 목소리가 울렸다.
“개자식, 황제 오라버니에게 혼담을 꺼내는 게 어때?”
임안의 생각에, 허칠안이 경성을 떠날 때 했던 뜨거운 입맞춤을 보면 두 사람의 관계는 확정된 셈이었다.
이 남자는 어느 정도 호감이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였다.
“그럴 거예요.”
허칠안은 그녀의 아름다운 달걀형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그 개인적으로든 대봉을 위해서든, 지금은 엄청난 도전이 기다리는 시기였다.
이기면 좌 임안, 우 회경을 낀 채 국사는 다리 위에 앉게 할 수 있으며 왕비는 뒤에 숨게 할 수 있었다.
지면, 잘 도망가야 했다.
* * *
밤이 깊었다.
궁녀는 조심스럽게 문을 밀치더니 살금살금 침실로 들어와 침상 옆에 이르렀다.
임안 전하는 이불을 두른 채 편안하게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마치 무슨 기분 좋은 꿈을 꾸는 듯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궁녀가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듯한 심정으로 막 떠나려다가 갑자기 안색이 살짝 변했다. 그녀는 전하의 새하얀 목덜미 쪽에 입맞춤 자국이 가득 퍼져 있는 걸 보았다.
‘이건…….’
궁녀는 순간 두피가 저리고, 질겁하여 사방을 둘러보았다.
한참 뒤, 그녀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표정이 별안간 부드러워졌다.
* * *
같은 깊은 밤, 희현은 어느 작은 도시 용마루 위에 서서 아래쪽의 교전을 내려다보았다.
류홍면이 자잘한 용기 숙주인 강호객을 희롱하고 있었다.
요 며칠, 그들은 천기궁 밀정의 경로에 기대어 용기 숙주 여럿을 찾았다.
이곳저곳을 떠도는 강호객도 있고, 점잖고 고상한 지식인도 있었다. 심지어는 관아에서 당직하는 하급 관리와 규방에서 시집가기만을 기다리는 여인도 있었다.
희현은 가능한 한 자잘한 용기를 수집하려 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처럼 그는 이로써 아홉 개 용기의 숙주를 끌어들일 수 있었다.
물론 이는 허칠안을 끌어들일 가능성도 있었다.
“홍면, 시간 낭비하지 마시오.”
희현은 일깨웠다.
류홍면은 즉시 상대를 기절시켰다.
희현은 품에서 손바닥 크기만 한 청동 솥을 꺼낸 다음 입으로는 주문을 외웠다. 솥 입구에서 청광이 발사되더니 그 용기 숙주를 그 안으로 거두어들였다.
청동 솥은 사방정(四方鼎)이라고 했다. 이는 국사가 옹주성의 일을 안 뒤에 사람을 파견해 보내온 선물 중 하나였다.
그건 보통 수납 법기와는 달랐다. 후자는 물건을 들일 수만 있지만, 그건 사람을 거둘 수 있었다.
희현은 솥을 잘 챙기고 서북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허칠안!”
* * *
이튿날!
경성 영보관 정실 안, 깊이 잠들었던 낙옥형이 아름다운 눈을 천천히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