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858
857화. 검이여, 오라
낙옥형은 멍하니 지붕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동공에 초점이 없는 듯했다.
낙옥형은 깊이 잠들었다가 깬 뒤에 생각이 멍해져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분간하지 못할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지난번에 마지막으로 이런 기분이었을 때, 그녀는 아직 소녀였다.
낙옥형은 ‘후’하고 숨을 내뱉더니 가슴 속의 잡념을 없앤 다음 정신 상태를 고요하게 유지하였다. 그녀는 원신을 안정시키고 반성하며 7일 동안의 기억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일곱 가지의 인격은 업화가 몸을 태울 때의 그녀를 ‘심마’라고 칭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지금 업화가 가라앉자 일곱 가지 인격의 기억이 차례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낙옥형은 요 며칠 허칠안과 무슨 일이 발생했든지 간에 자신은 전부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선 그녀가 허칠안에게 호감이 있다는 점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하여 낙옥형이 그를 싫어할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다음으로 그녀는 자신에게 여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 일부러 첫 번째 쌍수 할 때 주 인격의 신분으로 허칠안과 하룻밤 뒤엉켰다.
그러니 낙옥형은 자고 일어났을 때 자신이 낯선 남자와 꼬박 7일을 잠자리한 걸 발견하는, 그런 상황을 마주할 리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몸도 그에게 주었다. 낙옥형은 이 7일 동안 반복적으로 쌍수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처음으로 그와 쌍수할 때 나는 아직 저항하는 마음이 컸다. 내가 이 7일간의 기억을 받아들이면 그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더는 어색하고 난처한 감정이 생기지 않겠지…….’
낙옥형은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기억의 파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먼저 ‘노(怒)’ 인격의 기억을 ‘회상’했다.
화면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기억 속의 그녀는 허칠안을 화난 눈초리로 냉대하며 걸핏하면 화를 냈다. 포악한 태도는 그녀조차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여전히 그대로네. 성격이 거칠고 급해. 그녀가 대표하는 건 내 마지막 고집이다. 업화 때문에 정이 부족한 남자에게 굴복하길 원치 않은 거지. 뜻밖에도 독자적으로 업화를 억누르길 택하고 쌍수를 거절하다니. 아주 이성적이지 않아……. 음, 그의 태도는 그래도 괜찮았다. 거칠고 화를 잘 내는 ‘나’ 때문에 너무 큰 불만이 생기지는 않았어.’
낙옥형은 남몰래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노’ 인격이 너무 감정적이고 이성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남몰래 허칠안의 양호한 태도에 만족하였다.
이때 한 화면이 스쳤다. 깊은 밤, 허칠안이 억지로 침실에 난입하여 노 인격을 ‘꼬드겨’ 두 사람이 침상에서 맞붙었다. 그런 뒤 그녀의 옷이 하나씩 벗겨져 새하얗고 풍만한 몸이 남김없이 드러났다.
낙옥형은 다소 화가 나서 눈썹을 치켜올렸다.
‘하지만 그가 한 말에 일리는 있다. 노 인격은 쌍수 하려 들지 않는데 다른 인격도 만약 이러하다면 나는 죽은 목숨이지. 그가 다른 인격의 상황을 모르니 강제로 난입한 것도 나를 위했기 때문이다…….’
낙옥형은 억지로 자신을 설득하였다.
‘좋아. 노 인격의 하루가 이렇게 지나갔군.’
비록 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보자면 낙옥형은 그래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다음에는 무슨 인격이지…….”
낙옥형은 그다지 자신 없이 한 마디 중얼거렸다.
일곱 가지 인격은 무작위로 나타나 찾을 수 있는 흔적도 규칙도 없었다.
이내 한 화면이 스쳤다. 낙옥형은 두 번째로 나타난 것이 어떤 인격인지 알았다.
욕!
화면 속 그녀는 일찌감치 되살아나 허벅지를 허칠안의 허리 위에 자발적으로 걸치더니, 그가 자신과 수행하게끔 유혹했다.
낙옥형은 꼬박 하루 밤낮을 이렇게 놀아났다.
‘수치를 너무 모르는구나, 수치를 너무 몰라…….’
낙옥형은 피가 낯가죽에 솟구쳤다. 그녀는 바닥에 있는 구멍을 뚫고 들어가고 싶다는 충동이 생겼다. 낙옥형은 거북한 나머지 발가락을 힘껏 구부리고 온몸을 팽팽하게 조였다.
그녀는 욕 인격이 약간, 약간은 방탕할지도 모른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낙옥형은 욕 인격이 이렇게까지 수치를 모르는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는 이게 자신이라는 걸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욕 인격 다음은 공포 인격이었다. 공포 인격은 나타나자마자 하루 밤낮으로 지친 허칠안에게 달라붙어 수행하였다.
낙옥형은 똑똑하게 ‘보았다’. 허칠안이 쌍수를 끝내고 방을 나섰을 때의 창백한 얼굴을.
국사는 이런 허칠안을 보자 마음이 복잡했다. 그녀는 ‘그를 섭섭하게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이 생각은 잇따라 오는 기억에 격파당했다. 그녀는 허칠안이 공포 인격을 얕잡아보다 큰코다친 뒤, 뒤이어 애(哀) 인격과 접한 모습을 보았다.
“내 나이로는 자네 어머니 노릇을 해도 남아도는데…….”
“내가 20년 동안 고생스럽게 살면서 원경제와 타협하지 않은 게 헛되지 않았군. 자네가 강호행을 마치면 우리 정식으로 도려를 맺자고.”
“얼른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
“미워.”
“얼른 허랑이라고 불러보세요.”
“허, 허랑…….”
‘허랑?!’
낙옥형은 어안이 벙벙한 나머지 몸을 휘청거렸다. 그녀는 몸이 약간 떨리더니 입술도 덩달아 떨렸다.
‘내가 뭘 한 거지? 앞으로 그 앞에서 어떻게 고개를 들라고?’
이건 아직 끝이 아니었다. 애(哀) 인격은 스스로가 가련하고 아주 예쁘다고 생각하며 그에게 속마음을 다 털어놓았다. 그녀는 자기 마음의 여정을 말하면서 뭐 일찌감치 그와 친해지고 싶었지만, 또 차마 하지는 못해 속으로 갈등하느라 괴로웠다고 말했다.
애(哀) 인격은 나중에 그가 자발적으로 자신에게 연락해 너무 기쁜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이건 중상모략이야! 거짓말이야!’
낙옥형은 극도로 화가 났다.
어둠 속, 그녀는 자신의 과거 성품이 철저하게 무너졌다는 걸 알아차렸다. 한 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치욕은 아직 더 남았다. 애(哀) 인격은 허씨에게 이미 애정이 넘치다 못해 일편단심이었다.
낙옥형은 객잔 안에서 그녀가 취했던 온갖 자세를 ‘보았다’.
그것들은 전부 상고 시대 방중술에 나오는 수행법이 아니었다. 이는 순순하게 허씨가 그녀를 농락했다는 증거였다.
‘나를 업신여겼어, 나를 업신여겼어…….’
낙옥형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후!
그녀는 천천히 심호흡하여 감정을 가라앉혔다. 낙옥형은 다소 공허한 눈빛으로 방 안의 어느 곳을 바라보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기왕 그와 쌍수하기로 마음먹었으니 이미 그를 미래 도려로 삼은 것이다. 허 참, 허랑이라고 부른 건 과하지 않아. 도려 사이에 재미를 보는 건 인지상정이지. 신경 쓸 필요 없다, 신경 쓸 필요 없어……. 적어도, 적어도 이건 나와 그 사이의 일이니 제삼자는 전혀 모르잖나.”
그녀는 갑자기 어느 기억이 떠올랐다. 어느 방 안, 탁자 옆, 임안, 회경, 이묘진 그리고 감정의 두 여제자가 앉아 있는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저는 여러분들 중에 허랑을 좋아하는 이도 있고, 그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품고 있는 이도 있고, 그에게 남몰래 마음을 품고 있는 이도 있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오늘 밤 이후, 본좌는 여러분이 가져서는 안 될 생각을 접길 바랍니다. 허랑, 말 좀 해.”
낙옥형은 바람에 조금씩 풍화된 돌조각 같았다.
그녀는 기쁨도 슬픔도 없이 오랫동안 조용히 앉아 있었다. 한순간, 낙옥형은 오른손을 뻗어 감정 기복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검이여, 오라!”
시퍼렇게 녹이 슨 철검이 연못에서 날아와 자신을 낙옥형 손에 넘겼다.
국사는 금광을 휘몰아 영보관을 뛰쳐나갔다. 그녀는 마치 전장에 뛰어드는 장군처럼 희생을 감수하는 용기를 품은 채 결단력을 뽐내며 장렬하게 갔다.
* * *
허부, 콩알이가 정력이 넘쳐 이른 아침에 일어나 시끄럽게 구는 통에 숙모를 깨웠다. 숙모는 하품하면서 콩알이를 나무랐다.
“너는 걱정을 좀 덜어줄 수는 없니? 날이 밝기도 전에 소란을 피우다니. 어미가 너한테 밥 먹이고 옷 입히는 게 이른 아침부터 단잠을 깨우라는 건 줄 아니?”
숙모는 허리춤에 손을 얹은 채 말을 번지르르하게 늘어놓았다.
콩알이는 그녀 앞에 서서 고개를 숙인 채 겸허하게 잘못을 인정했다.
“너 잘못을 아니, 모르니?”
“잘못했어요.”
“다음번에 또 그럴 거니?”
“그러지 않을게요.”
“말해봐, 네가 뭘 잘못했는지.”
“어머니, 제가 뭘 잘못했어요?”
콩알이는 이해하지 못하고 물었다.
숙모는 하마터면 숨을 쉬지 못할 뻔했다. 그녀는 무력하게 주저앉아 한 손으로 이마를 어루만지며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로 말했다.
“나가, 나가. 어미는 너를 보고 싶지 않구나.”
“알겠어요!”
허영음은 깡충깡충 뛰며 밖으로 달려갔다.
“어머니, 신선이 있어요!”
그녀가 청 입구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쳤다.
“아주 예쁜 신선이에요.”
숙모가 멍하니 걸어가니, 청 밖의 소원에 우의를 입고 손에는 녹이 슨 철검을 든 특출난 미모의 여인이 서 있었다.
숙모 자신이 선녀라 이 여인을 보자마자 ‘같은 부류’라는 공감대가 솟구쳤다.
“허칠안은?”
여인은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그녀는 무표정이었다. 하지만 여인의 이 사이로 비집고 나온 목소리는 약간 이를 부득부득 가는 감이 있었다.
숙모는 비록 국사의 명성을 익히 듣긴 했지만 이 여인이 누군지는 몰랐다.
“칠안은 날이 밝기 전에 갔어요. 소저는 누구신가요? 그를 무슨 일로 찾나요?”
숙모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디로 간다고 얘기하던가?”
낙옥형은 표정이 무섭도록 가라앉았다.
“아니지.”
“……네?”
숙모가 막 대답하자마자 눈동자에 금빛이 비쳤다. 그 여인은 금빛을 몰아 날아갔다.
* * *
모남치는 경성에서 거리가 요원한 서북쪽 관도에서 암말 등 위에 타 있었다. 그녀는 두 손을 말 안장에 대고 여우가죽 외투를 걸친 채 눈을 가늘게 뜨고 멀리 바라보았다.
곁에는 말을 탄 사내들이 두 명 더 있었다. 각각 묘재방과 이영소였다.
전자는 허칠안의 수행원으로 그를 따랐다. 후자인 성자는 애초에 강호를 떠도는 최종 목적이 바로 경성에 정착 하는 것이었다.
경성에는 인종 도사 낙옥형, 대봉 제일 미인 진북왕비, 교방사의 기녀 등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애석하게도 세상사는 예측하기 어려웠다. 경성은 그에게 그저 마음 아픈 장소에 지나지 않았다.
기왕 이런 상황이 된 이상, 다시 강호를 누비며 태상망정하는 여정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천종은 지금 그를 체포해 산으로 돌아가 감금하려 했다. 예상컨대 더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할 것이었다.
이영소는 자신이 이미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고 생각했다. 사문으로부터 비롯된 화를 넘으려면 태상망정이 유일했다.
하지만 그가 태상망정하기 전에 허칠안을 따르는 편이 더 안전하다는 점은 확실했다. 이영소는 홍안지기와 사문 양측의 압박을 해결할 수 있었다.
사매 이묘진은 자신이 남몰래 허칠안을 흠모하지 않았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쓰레기 남자를 멀리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이영소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했다. 사매의 성격상 그녀가 정말 허칠안을 신경 쓰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와 함께 유랑했을 터였다.
괘씸한 허칠안!
“양 형, 제가 책임지고 그를 주시하겠습니다. 그가 했던 일을 남김없이 상세하게 양 형에게 전하지요.”
그는 아침 햇살에 고개를 돌려 경성 방향을 멀리 바라보았다.
이영소가 허칠안을 따르는 마지막 이유는 의형제 양천환의 부탁을 받아 암암리에 그를 감시하기 위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