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866
864화. 거래
흰 여우는 즉시 뒷다리를 허우적거리며 허칠안에게 자신을 내려놓으라는 의사를 표했다.
허 무임승차가 그대로 하자 백희는 덥수룩한 여우 꼬리를 치켜올린 채 넘어진 조각상 옆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높은 받침대를 쳐다보곤 돌아서서 말했다.
“저 올려주세요.”
“너 혼자 뛸 줄 모르니?”
허칠안은 반문했다.
흰 여우는 약간 울먹이며 말했다.
“저는 못 뛰어올라요. 마마가 강림하시려면 체면이 서야 하니 제가 저곳에 올라가야 해요.”
허칠안은 여우를 들어 올려 원래 묘신 조각상이 서 있던 받침대 위에 두었다.
흰 여우는 움츠리더니 곧 여우 꼬리를 모으고 눈을 감았다. 그녀는 마치 잠이 든 것 같았다.
허칠안과 모남치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대략 반 각 뒤, 연기처럼 넓고 아득하고 바다처럼 드높은 의지가 강림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백희 체내에서 소생했다.
몸 뒤로 두 번째 꼬리가 자라나더니 세 번째, 네 번째…… 꼬리 아홉 개가 나타났다. 마치 병풍을 펼친 공작새 같았다.
백희가 눈을 떴다. 새까맣고 또렷한 눈이 마치 눈언저리에 넘치는 청광으로 대체된 듯했다.
은방울 같은 애교 섞인 웃음소리가 사찰 내에 울려 퍼졌다. 그 웃음소리는 중생을 매혹하는 매력을 지녔다.
‘왔다…….’
만요국 공주, 구미천호, 세상 전봉 강자 중 하나였다.
허칠안은 그녀와도 ‘한 번 본 인연’인 셈이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상대를 얕볼 수는 없기에 몸을 약간 팽팽하게 죄고 읍했다.
“마마를 뵙습니다.”
백희는 아홉 개 여우 꼬리를 흔들며 걸어왔다. 그녀는 한 걸음 한 걸음 허공을 내디뎌 허칠안 앞에 멈추고는,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웃었다.
“은라 자네가 나를 무슨 일로 찾았는가?”
‘큰누나 같은 모습이야…….’
허칠안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바로 일을 얘기하는 대신 일단 흰 여우를 자세히 살피며 물었다.
“백희가 마마의 혈통입니까?”
이 구미천호가 나타난 방식이 좀 이상했다. 그녀는 의지가 강림한 게 아니라 직접 소생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서 백희 그 자체가 깊이 잠든 구미천호라고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원하기만 하면 직접 이 몸을 점거할 수 있었다.
지금 허칠안은 이 조작을 확실하게 깨달았으니 견문이 넓어진 셈이었다. 특정 비법 외에, 의식을 탑재하는 저장체 역시 아주 중요했다. 통상적으로는 핏줄이 같은 혈통만이 가능했다.
구미천호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추측해봐도 무방하네.”
……허칠안은 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구미천호는 옆으로 고개를 돌린 채 모남치를 쳐다보았다. 후자는 바로 눈을 부릅떴다.
‘보긴 뭘 봐!’
그녀는 성의 없이 시선을 옮기더니 계속해서 부도보탑을 바라보았다.
“자네는 이미 신수의 다른 팔을 찾았는데 왜 그를 풀어주지 않지?”
구미천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매력적이었다.
‘지금 나한테 질문하는 거야……?’
허칠안은 차분하게 말했다.
“그를 풀어주는 전제는 그걸 다룰 수 있는가 입니다. 게다가 탑령은 신수를 풀어주길 원치 않습니다.”
“어리석긴!”
그녀는 욕을 하면서도 연인 간에 뾰로통하게 구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허칠안은 이건 아마 가장 높은 경지의 유혹이 아닐까 생각했다.
“탑령이 원치 않으면 강제로 파괴해야지. 말을 듣지 않는 법보가 무슨 소용이 있나? 신수의 단수는 악의가 충만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건 적을 제압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네.
합리적으로 이용한다면 자네가 단계를 뛰어넘어 적을 죽이는 걸 도울 수 있지. 자네가 그것과 함께 지냈으니 아마 그것이 소통할 수 있고 협의할 수 있다는 걸 알겠지. 순수하게 본능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사악한 물건이 아니라.”
흰 여우는 걸으면서 말했다. 그녀는 발걸음을 멈췄을 때 허칠안과 거의 얼굴을 맞댄 상태였다.
흰 여우는 분명히 여우 새끼였지만, 성숙한 여인의 아주 강한 내공을 드러냈다.
허칠안은 미간을 찌푸리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구미천호는 어리둥절하여 그를 잠시 살피다가 갑자기 크게 웃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를 조롱했다.
“수고(獸蠱).”
수고(獸蠱)가 바로 심고였다.
구미천호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호족에 가장 부족하지 않은 게 바로 미인이지. 요사스럽고 제멋대로고, 순수하고 호감을 불러일으키며, 어여쁘고 친절하며 얼음처럼 차갑지……. 본궁이 허 은라가 심고를 수련하도록 호족 미인들을 하사하겠네.”
‘마마, 우리 호족은 약속한 말은 틀림없이 지켜야 해요…….’
허칠안이 나지막이 말했다.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본 은라는 호색한이 아닙니다.”
모남치는 속으로 내내 정색했으며, 가슴 속에는 화가 들끓었다.
그녀는 명색이 여인으로서 본능적으로 고혹적인 구미천호에게 위화감을 느꼈다. 모남치가 더 경계하는 점은 따로 있었다. 허칠안은 줄곧 꽃밭에서 여유롭게 굴었는데, 그녀 앞에서는 잇속을 차리지 못하고 은근히 제압당하는 듯했다.
그는 수련 경지 방면이 아니라 주도권 차원에서 제압당한 듯했다.
허칠안은 깊이 숨을 들이쉬더니 말했다.
“이번에 마마를 모셔 오라고 한 건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구미천호는 웃음을 머금은 채 말을 하지 않고 그가 계속 얘기하길 기다렸다.
“제가 혼천신경의 파편을 찾았습니다.”
허칠안은 뜸을 들이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흰 여우는 꼬리 아홉 개를 가볍게 쓰다듬다가 갑자기 굳었다. 몇 초 뒤, 구미천호의 부드러우면서도 매력적인 목소리가 울렸다. 그 목소리에는 갈증과 놀람과 기쁨이 다소 배어 있었다.
“혼천신경임을 확신하는가?”
허칠안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손짓하여 부도보탑을 불러와 탑령과 소통하였다.
부도보탑 1층 대문이 열리고 금빛이 혼천신경을 감싼 채 날아와 허칠안의 손바닥에 떨어졌다.
혼천신경은 마치 깊은 잠에 빠진 듯했다. 속눈썹 없는 그 눈이 더는 거울 면에 부각되지 않았다.
구미천호는 눈으로 혼천신경을 좇았다. 그녀 눈의 청광이 서서히 수그러들면서 새까맣고 또렷한 눈동자가 드러났다. 역시 이 두 눈은 백희와는 달랐다.
백희의 눈은 촉촉하고 순진한, 아주 깨끗한 아이와도 같았다.
지금 이 눈은 아주 많이 복잡한 기색을 띠었다. 아련함, 슬픔, 기쁨, 서운함…… 눈은 마음의 창이라던데 그것이 담고 있는 정서는 이토록 복잡했다.
“혼천신경이 예전 만요국주의 화장 거울이라고요?”
허칠안이 구리거울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법보이니 그것만의 독특한 능력을 지녔지. 하지만 모친께서는 평소에 확실히 그걸 탁자 위에 두고 화장 거울로 사용하셨네.”
구미천호의 눈에서 복잡한 감정이 걷히더니, 다시 청광이 넘쳐흘러 눈가를 가득 채웠다.
허칠안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럼 마마께서는 무엇으로 거래하실 계획입니까?”
주객이 전도되었다. 허칠안이 주도권을 잡았다.
구미천호는 탄식하더니 짜증을 냈다.
“네 이 야박하고 의리 없는 남자 같으니라고. 내가 백희를 민며느리 삼으라고 자네에게 보낸 것도 모자란가? 이렇게 끝없이 욕심을 부리다니. 됐네. 야희도 어쨌든 자네 옛 정인이니 내가 백희와 야희를 함께 자네에게 보내지.”
모남치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나한테 무임승차하고 싶니?’
허칠안은 ‘허’하고 소리 내더니 말했다.
“마마, 이런 농담은 하지 마시지요. 법보는 세상에서 보기 드뭅니다. 혼천신경이 비록 파손되었지만, 저는 용기로 그걸 온양하여 곁에 남겨두고 적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만약 성의가 없으시다면, 이만 먼저 물러나겠습니다.”
구미천호는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 말씀이 맞구나. 남자가 마음을 독하게 먹으면 정말 인정사정없다던데. 하긴, 허 은라가 백희와 야희 자매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이상, 본궁이 다른 방법을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겠군.”
그녀는 진작에 꿍꿍이가 있었던 듯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봉마정 두 개!”
허칠안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네 개!”
구미천호가 짜증을 냈다.
“차라리 나더러 자네의 모든 봉마정을 제거해달라고 하지? 내게 방법이 있긴 하지만, 나도 기껏해야 두 개밖에 뽑을 수 없네. 더 많이 제거할 힘은 없어. 자네도 이미 알겠지만 봉마정은 부처가 제련한 법기로 그자 외에 보살만이 모조리 제거할 수 있네. 그리고 내가 지금 국외에 있기에 구주 대륙으로 돌아갈 수 없네. 봉마정을 제거하려면 한동안 기다려야 하지.”
‘불완전한 법보를 봉마정 두 개와 맞바꾸는 건 나한테 확실히 큰 이익이다. 지금 형세로는 봉인을 푸는 것보다 더 수지가 맞는 건 딱히 없어…….’
허칠안은 눈살을 찌푸렸다.
“얼마나요?”
“석 달!”
그녀가 말했다.
“안 됩니다. 저는 한 달이라는 시간만 드릴 수 있어요. 기한이 지나면 거래는 파기됩니다.”
허칠안은 상당히 강하게 나왔다.
석 달은 너무 늦었다.
“가능하지!”
구미천호는 받아들였다.
거래가 성사된 뒤, 허칠안이 말했다.
“마마께서는 해외에 뭐 하러 갑니까?”
구미천호가 웃으며 말했다.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족인을 찾으러.”
허칠안은 딱히 잘 알아듣지 못했다. 어쩌면 그는 이 말에 담긴 정보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구미천호가 설명했다.
“신마 시대가 종결된 뒤 인간, 요괴 두 종족이 부상했지. 신마의 후예 중, 일부는 해외로 멀리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네.”
‘해외로 멀리 떠났다라…….’
허칠안은 갑자기 운주 전설 속의 ‘백제(白帝)’ 신수가 떠올랐다. 그건 기린의 후예로 추정되는 기이한 짐승이었다.
이 짐승은 일찍이 해외에서 건너와 바다와 인접한 지역인 운주에 오랫동안 체류했다. 이것이 숨을 쉬면 바람이 되고, 숨을 들이쉬면 천둥이 되었다. 이 짐승은 나타날 때 비바람과 천둥, 번개를 동반하였기에, 그 당시 운주의 가뭄을 해결했다.
“구미천호는 신마의 후예지만, 족인 수가 항상 드물었어. 지금 구주 전체에 나 하나만 남았네.”
구미천호는 탄식하더니 자신의 잘못을 크게 뉘우쳤다.
“본궁은 몇백 년을 살았어. 나 역시 시집가고 싶지 않겠는가. 그래서 미래의 부군을 찾으러 바다로 나갔지.”
……허칠안은 순간 그녀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는 솔직히 말해서 구미천호의 성격을 좀 당해낼 수 없었다. 예전 무협 소설로 따지자면 그녀는 톡톡 튀는 성격에 매우 변덕스러운 요녀였다.
음, 구미천호는 본래 요녀였다.
‘왜 반드시 동족을 찾아야 하지? 다른 족인을 찾으면 안 되나……?’
허칠안이 말했다.
“제 생각에 심고가 잘 어울리는데요.”
구미천호는 말문이 막힌 채 그를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자네 도발이 아주 훌륭해.”
허칠안은 억지로 웃더니 화제를 돌렸다.
“혼천신경이 왜 중원을 떠도는 겁니까?”
“예전에 요족이 크게 패하면서 잔존 병력이 사방으로 뿔뿔이 도망쳐 구주 각지에 숨어들었네. 내가 궐기한 뒤, 대부분의 만요국 잔존 병력을 귀순시켰으나 여전히 일부 요족이 불문에 겁을 먹고 있지. 그들은 인족에 녹아들어 평온하게 사는 걸 택했어. 혹은 산림에 은거하며 두 종족의 일에 더는 개입하지 않거나. 하지만 그들 수중에는 많든 적든 만요국의 유산이 있었네. 밖에서 유실되어 찾아내지 못한 보물은 혼천신경뿐만이 아니야.”
구미천호가 말했다.
“마마, 우선 급하게 가지 마십시오. 저 묻고 싶은 게 몇 가지 더 있습니다.”
그는 혼천신경을 부도보탑에 거두어들이면서 물었다.
“그해 불문이 만요국을 멸망시킨 진짜 이유가 뭡니까?”
사서에서는 요족이 소동을 피우며 백성을 해하여 인족을 위한 마음에 불문이 요족을 멸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하지만 허칠안이 이렇게 많은 일을 겪은 뒤에도 여전히 책에 적힌 내용을 믿는다는 건 너무 멍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