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869
867화. 기대를 걸다
경성!
허신년은 오늘 특별히 저택으로 돌아와 밥을 먹었다. 허영음을 데리고 궁에 들어가 공부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일의 전말은 이러했다. 기부금의 일이 정해지자 영흥제는 허신년을 어서방으로 불러들여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그의 벼슬을 높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에게 열심히 노력하여 조정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라고 격려했다.
영흥제는 담화 말미에 의도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허 경의 어린 여동생이 마침 글을 배울 나이라던데 그녀가 궁 안의 몇몇 황자, 공주와 나이가 엇비슷하다고 들었다. 꼬마 아가씨를 궁에 들여보내 공부하도록 하게. 태부가 직접 지도할 것이니.”
허신년은 영흥제가 선의를 드러내며 포섭하는 중이라는 걸 알아챘다.
신하의 자녀가 궁에 들어와 시독(侍讀)할 수 있다는 건 더없이 큰 영광이었다. 통상적으로 종실의 군주, 세자 및 일부 훈귀와 중신의 아이에게만 이런 자격이 주어졌다.
하지만 허신년은 이런 ‘은혜’를 원치 않아 얼른 거절했다.
영흥제는 약간 기분이 언짢아 허신년의 거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억지로 명령을 내렸다.
황제가 은혜를 베풀며 포섭하는데 어느 신하가 거절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는 겉으로 허신년을 끌어들이려는 듯 보였지만, 실질적으로는 누구를 끌어들이려는지 뻔히 보였다. 그렇기에 통찰력이 있는 자들은 허신년의 의견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허신년은 황명을 어기기 어려웠기에 어쩔 수 없이 수락하였다.
그가 집으로 돌아가 모친에게 말하자 숙모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그녀는 속으로 ‘우리 집 멍청한 딸내미가 드디어 운이 트이는구나?’라고 말했다.
이 태부는 황자와 황녀를 지도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니 그가 영음에게 글을 읽고 글자를 읽는 법을 가르치는 건 전혀 문제 되지 않을 터였다.
숙모는 지난번에 영음이 황가의 아이를 때려 황궁에서 쫓겨난 일이 지금까지도 유감스러웠다.
마차 안, 허신년은 긴 의자 위에 얌전히 앉아 있는 여동생을 쳐다보더니 말했다.
“궁에 들어가면 태부…… 선생님이 네게 뭘 묻든지, 너는 공부를 한 적이 없어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해야 한다. 알겠니?”
허영음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저 열심히 공부해서 둘째 오라버니처럼 과거에 급제할 거예요.”
‘아니, 나는 그저 네가 태부의 하찮은 목숨만 살려주길 바랄 뿐이야…….’
허신년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잠깐 생각하더니 허영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누가 너를 괴롭히면 그를 때리거라. 일이 생기면 형님이 너 대신 책임질 거야.”
허신년은 잠시 멈칫하더니 황급히 덧붙였다.
“단 분수에 맞게 굴어야 해. 전력으로 사람을 때리지 말고.”
‘그러다가 사람 죽는다.’
“응!”
콩알이는 다소 어리바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허신년은 문득 안심했다. 영음은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그래도 말을 아주 잘 들었다. 그녀는 성격도 좋고, 쉽게 화를 내지도 않았다. 누군가 먹을 걸 뺏지 않는 이상 말이다.
이내 마차가 황성에 들어갔고, 궁문 밖에서 저지당했다.
허신년이 상황을 설명한 뒤, 우림위가 궁에 들어가 통지했다. 이내 한 관원이 나와 허신년에게 읍하여 예를 갖춘 뒤 허영음을 데리고 궁으로 들어갔다.
황자와 황녀 그리고 군주, 친왕의 세자들이 수업하는 곳은 ‘상서방(上書房)’이라고 불렸다.
허영음은 신기하고 놀라워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그녀는 황궁에 한 번 와본 적 있긴 했지만, 한 번으로는 아이의 왕성한 호기심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허영음은 걷다가 갑자기 우아한 긴 치마가 멀리서 걸어오는 걸 보았다.
“언니, 언니…….”
콩알이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큰 소리로 떠들어대며, 그 우아한 긴 치마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회경이 소리를 듣고 쳐다보자 포동포동한 여자아이가 보였다. 그녀는 살짝 어리둥절했다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아이를 맞이했다.
“나를 아직 기억하니?”
“우리 큰 오라버니가 죽었을 때 집에 왔잖아요.”
허영음이 큰 소리로 말했다.
‘이 말은 약간 이상하게 들리는데…….’
회경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궁에는 뭐 하러 왔니?”
허영음의 어리바리한 얼굴에 약간의 망연함이 드러났다. 그녀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뭐가 신장을 만든다(*‘作甚: 무엇을 하다’를 ‘做腎: 신장을 만들다’로 잘못 이해함)는 거예요?”
“너 여기에 뭐 하러 왔냐고.”
회경은 말하는 법을 바꾸었다.
“공부하러 왔어요. 어머니가 저더러 공부하래요.”
콩알이는 순진한 얼굴로 묻는 말에 대답했다.
회경은 환관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폐하께서 허 이소저가 입궁하여 공부하도록 특별히 허락하셨습니다.”
회경이 말했다.
“내가 그녀를 데리고 상서방에 가겠다.”
환관은 감히 거절하지 못하여 몸을 굽힌 채 물러났다.
“가자!”
회경은 온화한 표정으로 콩알이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허가 꼬마 아가씨와 교집합이 많지 않았다. 회경은 그저 그녀를 허칠안의 장례에서 한 번 보았을 뿐이었으며, 그 뒤로는 딱히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녀가 아무리 허칠안과 사이가 좋고, 아무리 허신년을 좋게 본다고 해도 집안의 예닐곱 살짜리 아이에게 관심을 유지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녀는 심지어 리나가 허영음을 제자로 거두었는지도 몰랐으니, 콩알이의 대단한 점이 무엇인지는 더욱 알 리가 없었다.
일호는 원래 도도하고 사람들과 그다지 잘 어울리지 않았다. 천지회 구성원 중에서도 그녀와 이런 일상사를 얘기하는 이는 없었다.
“언니, 정말 예뻐요.”
콩알이는 회경 곁을 따라 걸으면서 고개를 들어 한 마디 했다.
회경은 웃었다.
“언니, 정말 예뻐요.”
한참 뒤에 그녀는 또 한 마디 했다.
회경은 고개를 숙였다. 여자아이의 큰 눈에 잘 보이고 싶어 하는 기색이 번뜩이는 게 보였다.
“무슨 말을 하고 싶니?”
회경은 눈을 가늘게 떴는데, 그녀의 마음을 쉽게 알아차렸다.
“언니 집에 가서 떡 먹을 수 있어요?”
콩알이의 속셈이 드러났다.
회경은 웃기 시작했다.
“가능하지.”
그녀는 원래 똑똑한 사람을 아주 좋아했다. 똑똑한 아이도 그중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이 아이는 영리할 뿐만 아니라 담도 컸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콩알이는 회경을 따라 상서방에 이르렀다.
열두 명의 아이가 널찍한 대당 안에 놓인 탁자 열두 개 뒤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그들은 대당 앞에 있는 늙은 태부에게 시선을 집중하며 수업을 경청했다.
태부는 여든에 가까운 고령으로 3대에 걸친 원로였다. 그는 정덕제 시기에 차석으로 진사에 급제하여 원경제를 가르쳤고, 회경과 임안을 가르쳤으며 지금은 또 황실의 신세대를 지도하는 중이었다.
애당초 원경제가 도를 닦으며 정무에 태만하자, 태부는 황궁에 뛰어들어 어서방 밖에서 혼군을 꾸짖었다.
그런 뒤 그는 낙심하여 경성에 은거하였다.
원경제가 죽은 뒤, 그는 그 비밀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이 되었다. 하여 그는 마음에 맺힌 응어리를 풀고 다시 사랑하는 일에 뛰어들어 여력을 발휘하였다.
“태부!”
회경은 콩알이를 데리고 문턱을 넘어 예를 갖췄다.
“장공주마마를 뵙습니다.”
태부는 몸을 굽히고 답례하였다.
“장공주마마를 뵙습니다.”
십여 명의 황자, 황녀, 군주 세자가 일어나 예를 갖췄다.
회경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곤 허영음을 쳐다보았다.
“이 아이는 태부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녀는 허칠안의 어린 여동생이에요. 너희 그녀를 괴롭히면 안 된다.”
그녀가 허영음을 데리고 온 중요한 이유는, 황실 아이들에게 경고하여 이 어리바리한 아이가 이곳에서 괴롭힘당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태부가 웃으며 말했다.
“장공주께서는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 아이는 아주 대단하거든요.”
그는 지난번 허영음의 쾌거를 한 차례 얘기했다.
회경은 의아해하며 동그랗고 귀여운 여자아이를 쳐다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본 공주가 괜한 걱정을 했군요.”
태부는 아주 깊은 의미를 담아 말했다.
“마마께서는 궁중의 일에 지나치게 소원하십니다.”
회경은 웃더니 조용히 작별 인사한 뒤 떠났다.
태부는 손짓하여 허영음더러 앞으로 걸어오게 한 뒤 물었다.
“지난번에 미처 너를 시험하기도 전에 네가 궁을 나갔지. 이곳에 오기 전에 어디에서 공부했니? 네 스승이 누구지?”
콩알이는 고개를 갸우뚱한 채 생각하더니 솔직하게 대답했다.
“잊었어요.”
‘?’
태부는 어리둥절했다. 은사조차 잊었다는 말인가, 아니면 이 아이가 아직 공부를 배우지 않았다는 말인가?
그는 잠시 침음하더니 말했다.
“삼자경을 외울 줄 아느냐?”
“그럼요, 그럼요.”
허영음은 흥분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태부는 표정이 누그러지더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외워보거라.”
* * *
회경은 궁에서 나온 뒤, 한림원에 가 허칠안이 당부한 일을 허신년에게 전했다.
영흥제는 그녀와 그의 친오빠인 사황자를 아주 꺼리기 때문에 이 일은 허신년이 말하러 가야 했다.
만약 허칠안이 사적으로 그녀와 긴밀하게 연락한 걸 영흥제가 안다면, 또 질투하고 시기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
새로운 군주가 자리에 올랐을 때가 가장 예민한 시기였다. 회경은 문제를 일으키길 원치 않았다.
“휴, 일이 단기간에 성사될 수는 없지요.”
허신년은 탄식했다.
“나라를 다스리는 건 물고기를 요리하는 것처럼 서서히 도모하는 걸 중시합니다. 하지만 만약 국가가 이미 고황(苦況)에 들었다면 또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폐하도 그렇고, 왕 재상도 그렇고 조당의 제공들 모두 비슷한 경험이 없습니다.”
회경이 담담하게 말했다.
“허 대인, 우리가 그날 바둑을 둘 때 했던 내기를 아직 기억합니까?”
허신년은 정중한 기색을 보이며 몇 초간 망설였다.
“당연히 기억하지요, 마마.”
회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기대를 걸어봅시다.”
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화제를 돌렸다.
“사흘 후면 제천대전(祭天大典)입니다. 폐하께서 그때 기부를 호소하실 겁니다. 허 대인은 은자를 얼마나 기부할 계획인지요?”
허신년은 그녀가 자신을 일깨우고 있음을 알기에 말했다.
“마마, 안심하십시오. 이 일은 제가 진작에 형님과 타당하게 의논했습니다. 저는 석 달 치 봉록을 기부할 겁니다. 형님은 백은 오천 냥을 기부할 거고요. 이렇게 하면 저는 많이 기부했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지 않을 것이고, 또 제가 기부를 추진하였으면서 자신은 돈에 인색하다고 지적하는 이도 없을 겁니다.”
일개 서길사가 백은 오백 냥을 기부한다고 하면 일이 날 터였다.
하지만 기부하지 않는다면, 또 세차게 몰아치는 비바람 같은 오명을 얻을 터였다.
“이렇게 하면 좋겠습니다.”
회경은 갑자기 안심되었고, 돌아서서 말했다.
“올 때, 궁에서 허 대인의 여동생을 만났습니다.”
이 말을 들은 허신년은 걱정 가득한 얼굴을 하고 탄식하였다.
“마마, 만약 오늘 별일 없으시다면 상서방에서 그녀를 살피실 수 있을까요?”
회경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허 대인께서는 그녀가 괴롭힘당할까 봐 그러십니까?”
‘나는 태부의 안위를 생각하는 거라고…….’
허신년은 다시 탄식하더니 콩알이의 찬란한 사적을 차례대로 아뢰고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저는 이미 폐하께 완곡하게 거절했지만, 폐하께서 고집대로 하시겠다는데 어쩌겠습니까. 휴.”
회경은 그 말을 듣더니 멍해졌다.
청운산의 모든 선생이 화가 난 나머지 그녀를 보면 피하고, 이묘진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으며 초원진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데다 재화와 명성을 갖춘 왕사모마저 화를 내며 울었다니…….
“여동생이 공부하고 싶지 않아서 멍청한 티를 내는가 보군요.”
회경이 말했다.
“그 아이가 만약 멍청한 척하는 거라면, 서원의 선생, 이 도사, 초 형 그리고 사모가 이렇게 기가 꺾이고 낙담하지 않았을 겁니다. 심지어 그들 중엔 좌절감을 못 이겨 통곡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허신년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녀는 정말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이 실패했고 모범이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강렬한 자기 의심과 자기 부정에 부딪혔다.
영음이 만약 멍청한 척했다면, 그들 역시 전혀 골치 아픈 일 없이 웃으며 넘겼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