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879
877화. 머리를 맞대다
“무림맹 본부의 상황을 말씀해보시지요.”
백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류홍면에게 쏠렸다.
류홍면은 서서히 회상에 잠겼다.
“무림맹은 견융산에 있습니다. 산기슭 아래 군진(軍陣)이 있는데 2만 중장기병이 있는 걸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사실 기껏해야 기병 8천에 중기병은 4천이 넘지 않을 겁니다.
2만 군은 그해 옛 맹주의 직계 부대입니다. 다만 벌써 몇 번을 갱신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군대 외에 무림맹 내부 고수는 통계를 내리기 어렵습니다. 저라고 해도 정확하게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진짜 중시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건 조청양과 옛 맹주입니다. 조청양은 강호 100위 순위에서 5위에 드는 반 초범입니다. 일대일로 싸운다면 우리 중 누구라도 그를 당해낼 수 없을 겁니다.
옛 맹주에 관해서라면, 비록 강호에서 그의 존재는 무림맹이 만들어낸 술수라고 여기는 자가 적지 않지만, 저희 단계에서는 당연히 그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옛 맹주는 수백 년 동안 얼굴을 드러낸 적이 없지요. 저도 그전에는 이게 무슨 연유인지 잘 몰랐지만 지금 궁주의 밀서를 보니 이제야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겠습니다.”
검주 강호의 상황을 설명한 뒤로 류홍면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이 침묵 속에, 희현은 냉정하게 판단을 내리고 우주 밀정을 쳐다보았다.
“저희는 더 많은 군사가 필요합니다. 동해용궁의 동방 자매 그리고 두 금강에게 서신을 보내 여기서 일을 논하자고 하시지요. 그들에게 속히 오라고 하십시오.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 * *
오늘 휴가인 허신년은 속도가 빠른 말을 타고 성을 나왔다. 재빠른 말 덕분에 경성 교외 운록서원에 당도하기까지 한 시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내 허신년은 빠르게 산을 올라 서원을 지나 뒷산 대나무 숲으로 향했다.
“원장님! 신년, 원장님을 뵈러 왔습니다!”
허신년이 죽루 밖에서 읍하였다.
순간 그의 발밑에 청광이 번쩍였고, 허신년은 빛에 실려 죽루로 들어갔다.
* * *
고상하고 단정한 죽루 안엔 조위 혼자 앉아있었다.
그는 탁자 옆에 차분히 앉아, 차를 음미하고 있었다.
그 맞은편 자리엔 이미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차 한 잔이 있었다.
허신년은 그 차가 자신을 위해 준비된 것임을 알았고, 이는 조위가 표명한 태도라는 것도 잘 알았다.
본래 허신년의 신분으론 조위와 동등한 자격으로 얘기할 자격이 없었다. 수련 경지든, 제자로서든 허신년은 응당 조위 앞에 서 있는 게 옳았다.
“감사합니다, 원장님.”
허신년이 읍하고 거리낌 없이 자리에 앉았다.
조위는 찻잔을 내려놓고 온화한 눈빛으로 허신년을 응시했다.
“자네에게 부탁하고자 하는 일이 두 가지 있네. 서원을 대신해 접본 한 부를 올리고, 나 대신 왕정문과 오후에 차를 마시는 약속을 좀 잡아주게나.”
눈을 반짝이던 허신년은 약간 머뭇거리다가 답했다.
“알겠습니다.”
* * *
강주 변방.
암말은 고개 숙여 나무통 안의 농후 사료를 먹고 있었다. 꼬리도 살랑살랑 흔들리는 것이, 상당히 기분이 좋아보였다.
그 곁에는 양쪽으로 수말 2마리가 있었다.
수말들은 암말의 사료를 계속 탐내며 머리를 디밀었지만, 암말도 꾸준히 목을 흔들며 말들을 밀어냈다.
개울가엔 모락모락 모닥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 앞에선 모남치가 산나물을 볶고, 허칠안이 숲에서 잡은 짐승을 잘게 다지고 있었다.
이영소도 개울가에 웅크려 앉아 식재료를 씻고 있었지만, 묘재방만은 일하지 않고 멀지 않은 곳에서 권법을 연마하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동피철골 이후, 이 경지의 가장 큰 특징은 기기를 토납해 기혈을 단련하는 곳으로 돌릴 수 있다는 것이네. 5품 화경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지. 하지만 연정경일 때 순수하게 기혈을 단련하는 것과는 다르다네. 자네는 심혈을 기울여 신체의 움직임을 느끼고 깨달아, 힘을 완벽하게 부려야 하네.”
허칠안이 고기를 얇게 다지면서도 전수를 잊지 않았다.
묘재방 역시 동작을 멈추지 않고 소리 높여 대답했다.
“저 이미 부릴 수 있게 됐습니다!”
순간 이영소가 피식 웃었다.
“자네 아직 멀었네.”
“도사가 뭘 안다고!”
묘재방이 바로 욕을 해 댔지만, 이영소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람은 날 때부터 자신의 손발을 통제하고 몸을 다룰 수 있지. 하지만 이건 신체를 가장 보잘것없이 활용하는 것이야. 보통 사람은 육신의 힘을 십 분의 일도, 이도 발휘하지 못하지. 위기의 순간에 비교가 안 되는 힘을 폭발시키는 게 가장 좋은 증명이야. 5품 화경의 정수(精髓)가 바로 장악할 수 없는 이 힘을 장악하는 것이지. 제 말이 맞지요, 서 선배님?”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경지는 속성으로 연마할 수도, 자원으로 쌓을 수도 없네. 개인의 천부적인 자질과 깨달음에만 의지해야 하지. 고품으로 갈수록 기연과 각성이 더욱 필요한 법이거든. 각 체계가 모두 같다만, 선배의 경험이 자네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겠지. 난 권법을 연마하는 것 외에도 매일 명상을 게을리하지 않고 원신 단련을 유지하길 건의하네.”
다시 묘재방의 질문이 이어졌다.
“왜 또 원신을 단련해야 합니까? 육신을 단련하는 게 아니고요?”
허칠안이 웃으며 말했다.
“신체는 대뇌의 조종을 받기 때문이야. 뇌가 잘 개발될수록 신체를 다루는 능력이 더 강해지거든.”
묘재방은 알 듯 말 듯 묘한 얼굴이었고, 이영소는 생각에 잠겨 들었다.
* * *
왕부.
허신년은 왕부에서 점심 식사를 마쳤다.
식사 후엔 왕사모가 허신년을 규방 외청으로 데리고 왔다.
물론 둘은 정혼한 사이지만, 아직 출가한 것이 아니니 사내는 여인의 규방에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
외청 장식은 호화로웠다. 값비싼 지의(地衣)가 깔려있고, 박고가 위에는 진귀한 각종 골동품이, 벽에도 명인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왕사모는 재능이 아주 뛰어나고 용모도 빼어난 여인이었다. 허신년도 그녀와 함께면 늘 유쾌한 감정이 들었다.
다만 왕사모는 이따금 사랑하는 사내에게 심술을 부릴 때도 있었는데, 다행히 허신년도 이제는 몇 마디 달랠 줄 아는 사내가 되었다.
“영월 동생도 곧 19살이 되겠네요.”
왕사모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하지만 허신년은 다른 일을 생각하고 있느라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혼인할 나이가 되기도 했군요, 정혼은 했나요?”
대봉에서 평민 여인은 통상 14살 이후, 고관대작의 여인은 16살 후에 혼인을 올리곤 했다. 늦어도 22살을 넘기는 법은 없었다.
곧이어 허신년이 21살의 정혼자를 보며 말했다.
“급하지 않소. 몇 년만 더 있다가.”
왕사모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 마디 덧붙였다.
“저희가 혼례를 올리면, 동생이 고를 수 있는 남편도 더 많아질 거예요.”
왕사모의 생각은 아주 분명했다. 장차 허부에 시집을 가면 반드시 허영월의 짝을 찾아 보내버릴 생각이었다.
왕사모는 지금 허씨 집안의 마님만으로도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었다. 거기에 허영월까지 보탠다면 장차 자신의 입지가 위태로워질 것 같았다.
물론, 왕사모가 그리 호전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혼인하는 것도 집안싸움을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녀는 자신 곁에 존재하는 위협 요소를 최대한 줄여, 누구에게도 견제받지 않고 살아가고 싶었다.
허신년은 일단 적당히 뭐라고 둘러댄 뒤에 끝으로 덧붙였다.
“나는 왕 재상님과 상의할 일이 있소.”
왕사모는 고개를 끄덕인 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께서 병이 나신 것 같아요. 얼마 전부터 계속 기침하시고 정신이 혼미하셔요. 늘 멍하니 계시더라고요.”
허신년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관심을 내비쳤다.
“사천감 술사를 찾아가 봤소?”
왕사모가 탄식을 했다.
“사천감 사람이 말하길 아버지께선 과로가 누적돼 병이 되셨다고 해요. 근심이 너무 많아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요. 그리고 풍한에 걸리시기도 했고요.
전에 위연이 있을 때는 투지가 불타올랐는데 지금 위연이 죽고 나니 정적이 없어지면서 의욕이 확 빠지셨지요. 본래는 포부를 펼치실 수 있었는데 갑자기 재난이 닥칠 줄 누가 알았겠어요…….”
허신년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왕사모의 거처를 나온 허신년은 익숙한 길을 걸어 왕 재상의 서재로 갔다.
문을 두드리고 허가가 떨어지자, 허신년은 바로 안으로 들었다.
왕 재상은 김이 무럭무럭 나는 찻잔을 감싸고 탁자 뒤에 앉아 있었다.
앞은 텅텅 비어 아무것도 없었다. 방금까지 멍하니 앉아 있던 모양이었다.
“재상 대인, 원장님께서 뵙고 싶어 하십니다.”
허신년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왕 재상은 그를 잠시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담담하게 말했다.
“딱히 만날 일이 없네. 난 이미 그 대신 싸울 정력도 없고 흥미는 더더욱 없지. 새 군주께서 제위에 오르니 그의 운록서원도 이를 빌려 종묘를 되돌리고 싶은 거겠지. 분명히 조정과 재야가 동요하고 문관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걸세. 이 결정적인 시기에 이게 뭘 의미하는지, 자네도 분명히 알아야 해.”
허신년이 나지막이 말했다.
“운주 반란군이 세력을 비축해 거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약 운록서원이 종묘를 되돌릴 수 있다면, 틀림없이 아주 강한 조력자가 될 것입니다.”
왕 재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조정에 필요한 건 운록서원의 그 고결한 서생들이 아니라 은자네. 다 쓸 수 없는 은자. 가서 조위에게 알리게. 만약 그가 국고에 은괴 5백만 냥을 늘릴 수 있다면, 이 늙은이의 자리를 순순히 양보하겠다고.
운록서원 지식인에게 대립하는 것이 천하 세가의 공감대이자 문관의 공감대이네. 이 시기에 운록서원의 편을 들어 문관들이 반발한다면, 누가 이재민을 구휼한단 말인가.”
허신년이 탄식을 했다.
“이해했습니다.”
* * *
셋째 날, 허신년은 휴가를 내고 한림원 대신 운록서원으로 향했다.
“왕 재상께서 원장님을 만나지는 않겠다고 하셨지만, 접본을 건네셨습니다. 폐하뿐입니다. 그는 상대하지 않으시겠다고…….”
조위는 탄식하더니 경성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됐네, 나는 영흥에게 이미 모든 성의를 다했어.”
허신년은 여전히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할 수 없었다.
* * *
달은 밝고 별은 드문드문한 밤, 찬바람이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듯한 배 한 척이 운무 사이를 누비며 우뚝 솟은 웅성 상공에 천천히 정박했다.
뱃머리엔 머리칼과 치맛자락을 휘날리는 동방완용이 우뚝 서 있었다.
“스승님, 우주에 도착했습니다.”
* * *
소원 안.
희현은 마침 도난, 도범 두 금강을 대접하고 있었다.
상석에 앉은 희현은 불문 금강을 보며 상대방을 넌지시 떠보았다.
“두 금강께서는 구룡 숙주를 찾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도난이 고개를 살짝 저었고, 수라 금강은 눈을 감고 말을 하지 않았다.
희현은 그냥 웃곤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도 두 금강이 중시하기에는 자신의 신분이 부족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때, 정심이 말했다.
“희현 시주님, 저희더러 기다리라고 한 맹우가 누구입니까?”
희현은 사실대로 대답했다.
“무신교 사람입니다.”
순간 도난 금강이 눈을 뜨고 그를 쳐다보더니 말없이 다시 눈을 감았다.
무승 정연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때 가면 용기를 어떻게 분배하지요?”
잠룡성과의 협력은 불문 고위층의 결정이었다. 설령 용기가 잠룡성의 소유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는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무신교와 불문의 관계는 아직 그 정도까지 되지 않았다.
희현이 막 입을 뗐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뜰 밖을 쳐다보았다.
정심, 정연 등도 동시에 비슷한 동작을 했다.
곧이어 소원의 낡은 나무 문 두 짝이 울렸다.
류홍면이 다가가 문을 열자, 앞에는 동방 자매를 필두로 하는 동해용궁 일행이 있었다.
희현은 곧바로 일어나 빙그레 웃으며 맞이했다.
“두 궁주께서는 안으로 드시지요.”